인간에게 고유영역을 인정할 수 있는가?

2009-11-02 14:54:13  이름 : 박윤진 


인간의 독자적인 행위영역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시간적으로 접근해서 소위 구원 전후로 구별해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셨습니다.

마 12장 28절-29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이 비유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악한 이 세상의 주인은 마귀다. 인간은 그 마귀의 집에 놓여진 세간살이에 불과하다. 마귀의 세간살이를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집 주인인 마귀를 결박해야한다. 마귀를 결박하려면 마귀보다 힘이 강한 자라야 한다. 그 분이 바로 성령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예수님)귀신 잡힌 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마귀보다 힘이 센 성령을 힘입어 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마귀보다 강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이 세상의 주인 노릇 좀 하라고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바로 그 마귀의 세간살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마귀이면 마귀 것이 되고, 주인이 예수님이시면 예수님 것이 됩니다. 여기서 인간을 기분나쁘게 하는 것은 마귀와 예수님 사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라던지 독자적인 행위영역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간살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귀가 싫다고 집을 뛰쳐나갈 수도 없고, 예수님이 좋다고 예수님께 덥썩 안길 수도 없습니다. 그저 마귀보다 강한 예수님께서 꺼내주지 않으시면 그냥 지옥가는 신세에 불과합니다.

다음은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고 뻔뻔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것도 2번 반복합니다.

로마서 7장 16절-17절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장 18절-20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그것은 내가 하는 짓이 아니랍니다. 그럼 누가 한거야? "죄"가 한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것, 즉 속사람이 하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했다면 그것은 누가 한 것이 됩니까?

"내가" 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내 안에 살아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이 자신있게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육체에 갇힌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죄가 하는대로 우두커니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진정한 나는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나를 나라고 인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나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대체 바울에게는 독자적인 자기 의사결정권이 없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바울에게 있어서는 '나') 원하는 것을 하면 주님이 하신 것이요, 주님께서 원하지 않는 것을 하면 죄가 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저 세간살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바울은 죄가 무엇이며, 죄를 용서하시는 피는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필기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피는 무엇입니까?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입니다. 죄인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살해당한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강한 분입니다. 가장 강한 분이 가장 약한 자처럼 잔인하게 처형되었습니다. 왜요? 지금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가를 변명치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쥐고 있는 죄의 세력은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이신 예수님 본인이 상대할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그저 죄 아니면 의에 의해 체포될 신세인 것입니다.

인간이 그저 죄 아니면 의에 의해 체포될 신세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흙, 안개, 들풀, 뼈다귀, 마귀의 자식, 살인자 등등.... 흙, 안개, 들풀, 뼈다귀 등의 자유의지가 뭐 그렇게 중요합니다. 자유의지가 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결정하던지 자신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이리 저리 끌려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덮치고 있는 것이 누구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바울의 뻔뻔함은 나는 책임없습니다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책임없다고 펄쩍 뛰면서 좋아해야 할 만한 "내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죄의 지배 아니면 피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 주제에 '나는 책임없다'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죄와 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고유 영토를 수호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책임없고 누구누구 책임이다라고 주장하는 것 속에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죄인의 모습만 어슬렁 거릴 뿐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예수님이 어느 정도 인물이시냐 하면, 성경이 다음과 같이 기록할 정도입니다.

롬 11장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만물의 역할이 무엇이냐 하면 만물이 나온 출처, 만물의 원인, 만물이 돌아갈 주인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만물 중에 인간만 쏘옥 빼내서 너는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어떤 행위를 하였느냐, 너는 어떤 의사결정을 하였느냐를 물어볼 주인은 따로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 주인은 인간이 스스로 조작해 낸,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우상입니다.

골로새서는 또 이렇게 증거합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17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 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창조되었고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 외의 만물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 만물 안에는 인간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의 피로 구원받을 때만 의미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본질이 사랑이심을 증거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천사도 흠모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평생 자신의 고유영역을 찾아 헤매는 짐승입니다. 죄의 자리에서도 의의 자리에서도 첨벙 첨범 돌아다니면서 그래도 이것 만큼은 내 소유이며 내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재미로 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성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왠 은혜인지 바로 그것이 죄임을 알고 그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피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이 고백됩니다.

자신이 이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불쑥불쑥 은혜를 주신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쫘악 덮치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 바람처럼 임의로 일하시는 결과입니다. 뻔뻔함이 아닌 감사가 성도에게서 튀어나오는 것은 이와 같이 성령의 일하심에 우리에게서 어떤 조건이나 원인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죄만 양산해 내고 있는 자신을 십자가로 말미암아 매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댓글

유상준  09-11-02 23:38  

아! 이 시원함은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소경이 보게 될때,
귀머거리가 듣게 되었을때 아니던가.

바울의 뻔뻔함을,
나의 뻔뻔함으로 만드시는.
십자가의 능력, 그의 피.

십자가 속으로 사라지자 하는
나마저 십자가로 삼키움을 당할때.
영원하신 그분의 기쁨이 되어 버려라.

마귀야 (아주 다정하게)
이제는 십자가 마을에 놀러 오면
니 세간살이 잘 챙겨야 된단다.

니 세간살이 다 뺏기면
열심히 지옥 만드시는
주님 뵙기 민망 하지 아니 하겠니.(~~~~~ ㅋㅋ)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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