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요약정보
어드벤처, 액션 | 미국, 캐나다 | 157 분 | 개봉 2009-11-12 |
홈페이지
국내 www.2012movie.co.kr/ | 해외 www.sonypictures.com/movies/2012/
제작/배급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배급),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수입)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존 쿠색 (잭슨 커티스 역), 아만다 피트 (케이트 커티스 역), 치웨텔 에지오포 (애드리안 헴슬리 역), 탠디 뉴튼 (로라 윌슨 역), 올리버 플랫 (칼 안휘저 역)  출연 더보기




줄거리

고대인들이 예언한 2012년 인류 멸망, 그들의 예언이 현실이 된다!
고대 마야 문명에서부터 끊임없이 회자되어 온 인류 멸망. 2012년, 저명한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실제로 멸망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각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곧 고대인들의 예언대로 전세계 곳곳에서는 지진, 화산 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 재해들이 발생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도래한다. 한편, 이혼 후 가족과 떨어져 살던 소설가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인류 멸망에 대비해 진행되어 왔던 정부의 비밀 계획을 알아차리고 가족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사투를 벌이는데…

과연 잭슨이 알아차린 정부의 비밀 계획은 무엇인가?
2012년, 인류는 이대로 멸망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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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잃어버린 방주를 찾아서

2012 라는 또 인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종말을 다룬 영화를 봤다.
호기심과 자극은 흡입력이 있어야 먹혀든다.

흡입력이 사기가 되었든 진실성이 되었든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종말 조차도 장난이고 재미이고 눈요기감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종말론 장사를 하든 말든 상관없다.
이미 세상 속에서 자기를 자기가 구원하는 짖은 누구든지 다 하고 있다.
목사라는 직업을 가져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고
종교를 가져서 교회를 다녀서 절간을 다녀서
모두가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 짖은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는 그 속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도
자기 사랑 자기가 챙기는 방식이다.

아이 조차도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 자이다.

10년 전 쯤인가?
직업훈련원에서 처움 서먹한 관계를 해소하고자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그 환경에 맞게 설정한 것이 바로
종말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일반인이라서 종교성은 없다.
다만 어렵고 극한 상황의 자극은 반대로 단결성과 하나됨을 유발하기에
그런 심리를 가장 잘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 그런 프로그램이였다.

imf 가 터지고 직장을 잃고 낙담하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막연한 젊은이들에게
극한 상황에서의 희망
이것보다 더 삶의 의욕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것이 어디있으랴 ?

그래서 몇몇 조로 나누어서
과연 종말이 왔다고 가정 했을때에
지구 멸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우주선에 과연 그 한계적인 좌석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조 별로 한 후 조 별 발표회를 하기로 한 것이다.

각종 직업에 따른 사람 분류
그리고 선택

그 선택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이 직업훈련원의 교육시스템과 연관된 내막이였다.

자 이제 당신의 입장이라면 누구를 선택하고 어떤 직업의 사람을 우주선에 태울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해 보시오.

그런데 사람들이 의외의 반응이다. 역시나 흡입력이 있었다.
얼마나 진지 하든지.

20초반에서 30이전의 젊은이로 모여있어서인지
얼마나 뜨겁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각종 유용한 직업 새로운 시대에는 이런 직업의 사람이 딱 필요하다는 저마다의 논리를 펼칠때에 참으로 그럴듯한 설명이였고 타당성이 있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던 딱 한가지가 있었다.
그것도 7개 조 였던가?
모든 조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반드시 우주선에 태워야 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문제는 목사다.

설정을 미리 던져서 목사이지. 소위 종교지도자인데.
이 목사에 대해서 종교가 없어도 다들 한결같이 우주선에 태워도 무방하다는 동일한 성향이다. 적어도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투이다.
그런데 그것은 목사 보다 더 전문가들이 많다. 
심리학자 의사 심리치료 상담의 대가들 멘토 등등
그런대도 왜 목사를 태울려고 할까?

나는 아무리 봐도 사기꾼인데 사람들은 사기꾼을 우주선에 태울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알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사기꾼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노아 방주 컴풀랙스로 가득차 있다.
그 노아방주라는 그림자를 잇고자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이다.
그런데 교회야 말로 가장 모호한 소리만 떠벌렸다.
인간 제사장들이야 말로 가장 모호한 자들이다.

그 모호함을 잇고 잇고 이어서, 그림자와 안개를 잇고 아무리 이어도 실상은 되지 못한다.
도리어 되지 못함을 더 떠벌려 주고 있는 셈이다.

구원자 라는 영웅도 늘 모호하다 약속을 지킨적이 없다.
안개를 잇고 그림자를 이어주고 모호함을 계속 이어주면 구원자로 쳐주자 라는 모호함이
계속 실체처럼 설치고 다닐 뿐이다.
의문의 증서를 찢어져야 한다.
모호한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 배후의 실체가 드러나야만 한다.

그 실상을 보지 못하는 이상 그 모호함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주선에 목사를 꼭 태워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깜짝 놀랬다.
평상시 교회에 대한 반감과 기독교에 대한 안티적인 인간도
종말이라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휴머니즘은 그런 안티도 받아줄 정도로 방주에 태워줄수 있는 여유와 자비와 긍휼이 있고 그 하나됨이 그 일치성이 진정으로 새시대를 여는 희망이 아니고 무엇이랴
라고 넓은 아량으로 수용한다.

분열과 갈등과 배타성과 차이성을 주장하면 새시대가 어찌 희망적이겠는가 여전히 지옥이지 않겠는가 라는 취지로서 목사를 태우겠다는 모든 주장이였다.

아 짜증 났다. 목사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아니라,
모든 이들은 목사를 용서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욕심을 부려서 남들 어려울때 혼자 다 끌어 해쳐먹어서 그렇지
검소한 모습이라면 늘 도와주고픈 마음들이 다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구나.
사적인 종말에 나타나는, 놀아나는 인간의 포용적인 저 마음, 저 장난
 
남을 정의롭게 디기 디기 생각해 주는 마음
그런데 성경을 보면 달라진다. 저런 자비심이 바로 마귀가 예수님을 꼬시는 3가지 모습이다.

결국 마귀가 아니면 우리는 예수님과의 차이성을 알 길이 없다.
그저 자신을 자기가 불쌍히 여기듯 남에게도 그렇듯
예수님과의 일치성을 보는 시선은 한시도 멈춘적이 없다.

노아 홍수가 다시 현대에 벌어져도
또 불심판이 다가와도
희망의 사과나무가 다 불태워줘도
인간만 있으면 희망이다.

인간


그 인간 하나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

방주 찾기는 거짓이다.

결국 인간은 인간 자신을 찾아 가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이기에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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