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요함에도 처하는 자유 가난함에도 처하는 자유
미움에도 처하는 자유의 몸 편애에도 처하는 자유의 몸


핸콕

천사는 교통단속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교통단속에 걸리는 법 밖에는 낮선시선 때문에 나갈수가 없다.
꼴통이 되기 무섭기 때문이다.

꼴통! 천사들의 특징은 바로 이런 선악의 인간에게 욕먹는 짖만 골라한다는 것이다.

 

돼지코 아가씨 페넬로피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본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껍데기를 안 보고 그 속에 담겨진 약속만을 보겠다는 취지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모로만 판단하는 환경이 깔려야만 하고
그 외모로만 판단하는 환경이 틀렸다는 것을 보라는 듯이 뒤엎어버리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세상은 사랑을 포장 껍데기로 삼아 온갖 외모 치장에서만 정신팔려 있는
정신병자의 소경 세계를

도리어 정신병자 취급받는 여자를 미끼로 삼아서 고발한다.

즉 속에 있는 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치 들추기인 할례다.
안으로 움츠리고 들어가면 갈수록 그 껍질은 더욱더 단단해져 깨뜨리고 나올수가 없다.
자신이 포장한 껍데기에 자신이 갇혀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는 사랑은 모든 수치를 오히려 보란 듯이 드러낸다.

주여 저 병들었습니다. 고쳐 주십시오.

물론 드러내면 낼수록 이제 그것을 이용해서 등쳐먹는 사기꾼들이 반드시 붙도록 되어 있다.

주님은 그냥 고쳐주지 않는다. 그냥 수치 제거를 하지 않는다.
반드시 저런 사기꾼들을 통하여서 그 차이성을 드러내신다.

그 수치제거인 할례는 곧 십자가의 죽음이다.

삯꾼과 선한목자의 차이점은 그 수치를 온 동네 떠들고 다녀도 상관 없는 사랑의 세계에 완료 되었으니 이제 어느 누구도 힐문할 자가 없다. 도리어 새 술 새 부대로써 헌술과 헌부대에 갇혀 버린 인간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보게 된다. 법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동안 겁을 먹고 죽기를 무서워 자신이 왕따 당할까봐 남을 왕따 시킨 것이다.

누가 이런 짖을 했는지? 선한 목자는 자신의 피 흘림으로 들추어낸다.

악마가 그 짖을 했다는 것이다.

그 악마가 모든 인간들을 선악으로 따먹어버려서 모든 인간들은 선악의 법 시선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그래서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소유인 바로 외모에 자기이미지 관리에 없는 자기이미지에 먹혀버렸다.

그 이미지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죽음이라는 허상을 깨뜨리는 것은 사랑 뿐이다.

죽음 보다 강한 것은 사랑이다.

나 보다 강한 것은 사랑 뿐이다.

사랑 만이 유일하게 바깥으로 드러낸다.

밖으로 나가 보면 그저 자유일 뿐이다. 괜히 갇혀서 산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가두고서 법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면 자아는 없다. 자유 뿐이다.

나사로야 밖으로 나오너라

너희 두 여동생은 안에서 나올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부활을 법과 교리를 규정해 놓고 부활에 갇혀 밖으로 나오질 못한다.
그저 부활에 갇힌대로만 부활을 미워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은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무덤이 없다.
무덤이 있는 주제에 꼴에 부활까지 믿어버렸으니 부활을 죽도록 미워했던 것이다.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신다.

자유를 누릴려고 노력할 필요없이 그저 처음부터 자유다.

그 자유 누리기만 할 뿐이다.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로써 줍기만 하면 된다.

줘도 못 먹냐?

먹기 싫어도 기쁘게 자유롭게 먹도록 되어 있다.

자유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가기 싫어도 나가는 자유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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