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딥 임팩트

잠깐 tv를 켯다. 거의 끝부분인듯한 영화인데 내용을 보니 딥임팩트 라는 제목이다. 자주 재방영하는 영화인데 그냥 스치듯 보았는데 물이 덮치는 그 순간의 인간들의 움직임을 보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아 은사란 이거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종의 구원 티켓인데 (하늘의 시민권)
주인공 여 기자가 구원 티켓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갓난 아기를 안고 있는 애기와 엄마를 태우고 자신은 구원 티켓을 넘겨버리는 것이다.

아 이거구나

은사란 바로 맞바꾸기 이구나 맞바꿔치기(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맞바꿔치기이다. 아들의 죽음이 아비를 살려 아비의 믿음이라고 기념케 한다. 고아 과부 나그네의 심판을 미리 앞당겨 항복하는 것이 이스라엘을 영접하고 이스라엘이 복과 저주의 중심임을 외치는 것이 기생라합의 믿음이다. 정작 이스라엘은 딴데 정신팔려 있는데 말이다.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

종말때에만 주어지는 선물인 은사란 일종의 구원티켓인데 구원티켓을 소유해서 구원이 아니라.
구원 티켓이 그 인간을 어떻게 가지고 소유하는 고 하니
죽음의 자리에 놓여져도 상관 없도록 구원티켓(은사)가 그 사람에게 덮친 것이다.

그래서 맞바꾸기 해도 상관 없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그래서 당당했다.
너가 가야할 지옥 내가 가마 그리고 너는 천국에 가라 라고 맞바꿔치기 해도 상관없는 두려움이 없는 사랑(십자가)을 외쳤다. 즉 은사가 아니면 절대로 나올수 없는 출처를 말해준다. 사랑이 아니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것이다.

목사 라는 은사가 왜 주어질까?

너 천국 가라 내 너 지옥갈 꺼리 대신 가마 라고 맞바꾸기 하기 위해서 은사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은사를 소유로 아는 자는 그 소유욕에 반드시 충실하도록 되어 있다.

맞바꾸기는커녕 불쌍히 여김의 은혜를 알기는커녕 자신만큼은 구원에 대한 집착을 버릴수 없도록

졸지에 구원 티켓이 없었으면 집착도 안 생길텐데
그 구원티켓(은사)이 그 집착에서 못 벗어나도록 심어버리는 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실제적으로 사도행전에 보면 허다하다.

앞으로도 공부하게 될 사도행전에서 이런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왜 맞바꾸치기를 당했지를

선한 목자의 좋은 것(성령)을 선물하심으로써 생수의 마르지 않는 샘을 마시게 될 것이다.

기대가 되지 않는가? 다시는 목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는 그 감격이 미리 온 몸을 적시운다.

사적인 가정 가족 챙기기부터 시작해야 인간은 남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즉 물 붓기이다. 인위적으로 물을 길어다가 퍼붓는 행위다.

자체적인 생명의 물이 나올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사란 그 자체적으로 넘쳐나오는 성전이라는 몸에서 나오는 생명수다.

맞바꾸기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는가?

(예수님이 마 25장의 종말의 비유에서 나타난 증거방식이 바로 맞바꿔치기의 방식이다. 이 역전이 은사를 소유해서가 아니라. 은사에 소유 당해서 펼쳐지는 상황이 종말의 상황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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