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꾼 목자(거짓 선지자)와 선한 목자와의 차이


뭐든지 차이가 드러나면 어린아이도 알 정도로 쉽다.
(만약 비스무리하면 헷갈린다.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귀의 작전은 뭐고, 그 마귀의 작전과 차이나는 예수님의 작전은 뭔가?)
너무 너무 쉽다. 복음 보다 쉬운게 없다.
피가 모든 실상을 차이성으로 허상을 동원하여서 증거했기 때문이다.

왜 천국을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시고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는가 그렇게 차이성을 부곽 시키는 것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라고 예수님은 참으로 천진난만하게 말씀하신다.

(마 11:25, 개정)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왜 천진난만하다 라고 내가 표현하는고 하니? 딱 맞아 죽을 소리를 골라 했다 라는 생각에서이다. 어떤 목사도 이런 소리 못한다. (천진난만한 유일한 분이다. 하늘에서 난 유일한 분이다. 딴 사람은 땅에서 난 자요. 알 턱이 없다.)

(마 11:26, 개정)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정)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침 식사 중에 어머니가 티비를 보다가 동물들이 나오는 화면을 보고 물으신다.

왜 동물들은 항상 윗대가리가 있는지 참 신기하다?
왜 있는줄 아니? 그건 말이지 왕질 ...

성질 급한 내가 말을 딱 짤라먹고 까먹기 전에 내질러버렸다.

그것은요?

예수님이 왜 선한목자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겁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그 증거에 동원되는 소모품입니다.

어무이!!
왜 광야에서 동물들이 항상 떠돌이 하다가 강을 건널 때 꼭 악어들이 일부러 기다리고 있는 곳에 왜 가는 줄 아십니까?

여기서 삯꾼 목자와 선한 목자의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진짜 목자는 (윗대가리- 경상도이라서 정감있는 표현이지 욕이 아님) 자기 백성을 일부러 악어(죽음) 있는 곳만 골라 다니면서 강을 건너고 통과 합니다.

왜냐하면 악어 저거 아무것도 아니고 죽음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는(허상)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 목자입니다.

그런데 아주 아주 재미있게도 가짜 목자인 삯꾼 목자는 항상 악어(죽음) 없는 곳으로 골라 골라 갑니다.

어무이 !! 여기서 아주 중요합니다.

가짜 목자 가짜 부모 가짜 선지자가 악어(죽음=심판=저주) 없는 곳으로 백성을 몰고가는 이유는 백성을 디기 디기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등쳐먹기 위해서 자신이 악어임을 감추기 위한 겁니다.

반대로 선한 목자와 참선지자는 심판 있는 곳으로만 몰고갑니다. 죽어도 상관 없는 죽음이 묻지 않는 약속이 우리 속에 있는지 없는지 오히려 가려내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약속이 발린 자는 처음부터 죽음과 상관없기에 약속이 그 사람을 다루고 있고, 약속이라는 피가 발리지 않은 자는 처음부터 탈락이기에 탈락을 더더욱 구체화 시키기 위해서 죽음으로만 몰고갑니다. 그게 어제 설교 세례요한와 회개에 대한 이야기 잖아요.
(참부모란 죽음으로 몰아가는 자이다. 그 부모를 존경하라고 했다. 예수님의 심판의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는 부모는 반드시 그 반대로 너는 잘되어야 돼 살아야 돼 라고 죽음만 피해 피해 자식을 몰고가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미 죽어 있는 상태다. 디아더스. 그러니 아브라함이 얼떨껼에 믿음의 조상 된 것이다. 자기가 부모 노릇을 해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난 미래의 사건이 덮쳤기 때문이다.)

사실 수요일 설교 축복 개념도 그런 의미이고 어제 학생회설교에서 나온 부모 개념도 그런 의미입니다.

섬기는 목자는 그 섬김이 자꾸 죽을 곳으로만 몰고간다는 것 곧 심판입니다.
반대로 등쳐먹는 삯꾼 목자는 심판만 피해 반대로 구원받을 만한 곳으로만 인도 합니다.
등쳐먹기위한 돈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매일 욕 얻어먹어가면서 맨날 맨날 죽을 곳으로만 인도 잘하다가

갑자기 막판에 바위를 한 번 쳐야할 것을 두 번 치는 이유는

하도 하도 답답해서

이래도 안 믿을끼가? 확실하게 믿을수 있는 근거를 주마 하고 믿게해줄려고 과거의 경험을 끌여다가 기적을 보여줍니다. 빈자리에 덥석 앉은 거죠.

그래서 옳치 옳치 주님께서 인간의 한계성이 바로 이것이고 인간에게서는 섬김이 있을 수 없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탈락 시키는 겁니다.

비록 탈락해도 율법을 쥔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기에 구원하고는 상관 없고 그 역할을 하시는 겁니다. 그 당시로는 모세가 구원인지 모르죠.

모든 권한은 예수님에 달린 것이니까요.

아무튼 율법을 쥔 인간의 완악성을 바로 예수님의 섬김과의 차이성에서도 좋은 예를 들어준 겁니다.

아무튼 삯꾼 목자는 어린아이도 알아볼수 있습니다.

말로는 분명히 섬깁니다.

그러나 때려죽어도 백성을 심판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어그러진 길 (예레미야 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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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으로 집어 넣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의 물세례가 아니라, 세례식 장난만 칩니다)

반대로 구원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구원은 없고 정작 구원장사로 돈 쳐먹죠.
또 반대로 물 속이 아니라 물 밖으로 끄집어 내 놓고 오히려 평생 코 끼이도록 만들어 종으로 부려먹습니다. (그들의 유아세례와 노아방주를 교회라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그러함)

그러나 선한 목자는 아예 본인이 본을 먼저 보여줍니다. 악어 중앙으로 통과 합니다. 죽을수도 있는게 아니라 먼저 일빠다 일번 타자로 죽습니다. 이래 죽으래이 라고 말이죠.

그러면 또 반발하죠. 이단사상 중에 집단자살로 구원을 이룰려고 했는 사건들을 예를들면서 도리어 이단이다고 거짓선지자다 라고 공격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집단자살이라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죽음으로 사적인 구원챙길려는 개인의 욕망일 뿐이고

여기서 말하는 심판 곧 개인 죽음이 아닌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저주인 심판으로만 몰고하는 것이 성령의 일이다 라는 겁니다.

성령은 좋은 것을 주실려고 친히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인도자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방식인 이 십자가의 방식이 아니면 다 거짓이다 라고 성령은 우리를 매일 매일 십자가의 죽음에 넘기웁니다.

내 죽음을 실제화 시키라는 말이 아니라. 그 속에 예수님의 죽음이 실제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 본들 그건 죽음도 아니요 저주도 아니요 심판도 아닙니다. 그저 허상이요 우상적일 뿐입니다.

실상의 심판과 실제적인 죽음은 예수님 뿐이기에 예수님의 죽음을 보라고 성령은 우리를 몰아 넣는 겁니다.

여기에 반드시 동원이 되는 것이 악어와 같은 거짓선지자입니다.

거짓선지자의 목적은 처참한 인자의 달리심을 못 쳐다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자의 죽음을 왜 쳐다보는데?
말라꼬?
내 죽음도 아닌데?
왜 남의 죽음을 쳐다봐야 하는데?

인자의 죽음은 모든 아담의 동질이 된 죽음을 못 밖고
마지막 아담의 죽음과 상관 없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교체하기 위한 심판임을 보라고
달리시고 들리시는 십자가의 예정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 몰라 몰라 시끄럽다. 우리는 악어 피해 갈란다.

과연 악어 피해 갈 수 있을까요?

아주 아주 놀라운 것은 자기자신이 악어(귀신)인데? (식스센스)

그래서 어제 설교에서 독사의 자식들아 진노를 피할줄 여기지 말라 라고 외치는 세례요한의 세례가 구원용이 아니라 심판용 임을 반대로 설교 했지요.
[ 회개 (누가복음 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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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누가복음-2009/014강-눅3장7-9(회개)-luk100207.hwp  ]

왜 심판용인가? 잉여(여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하지 아니하면 잉여(은혜)가 아니라 자기행위(열심이 특심)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과 동류가 안되고 자꾸 처음 아담과 동류가 되기 때문에 새술은 새부대에 담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중고등부 성경공부 잠언 84강
http://media.woorich.net/student/wooristudent100207.mp3
http://media.woorich.net/student/wooristudent100207.avi    ]
  
도끼가 나무에 놓였으니 열매맺지 아니하면 찍혀 버리는 이유는

바로 그 도끼가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우기는 회개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는 발상 자체가 마귀자식임을 드러내는 것이 도끼입니다. 단절입니다.

오히려 돌삐처럼 회개조차도 무능함에 놓여있는 심판받아 마땅하고 독사의 자식임이 마땅함을 아는 것이 바로 물세례의 취지입니다. (악어 피하고자 회개와 열매맺기가 아니라 악어 백번 물려 죽어도 마땅한 죄인임을 예수님이 악어에게 물려죽음을 보고 내가 악어였구나 라는 실상(하늘에서 난)을 보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나무에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자입니다. 봐서 보게 되는게 아니라 하늘에서 났기에 동류인 겁니다.)

바로 이 물세례가 동류 찾기입니다.
물세례 조차도 하늘에서 나지 아니하면 벌어지지 않는 사건입니다.

지나개나 교회에서 세례식때 물 뿌리든 침례등으로 물에 빠뜨리든 그것은 다 그림자일 뿐입니다.

하늘에서 나지 아니한 물세례는 의미 없습니다. 그 물세례 조차도 하늘에서 나지 아니한 것은 다 도끼에 찍혀 불에 태우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백부당 만부당 죽어 마땅한 독사의 자식임을 알아야 되는 것이 마땅하지
구원의 정당성? 아브라함 자손? 선민? 선택? 다 헛소리죠.

실상은 심판입니다.

그래서 참목자요 선한 목자는 아주 아주 얄밉고도 정말 싫을 정도로
마귀가 악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곳만 골라 골라 가서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임을 보여주는 곳으로만 (낮추심 = 십자가) 인도하는 겁니다. 이게 교체의 목적인 광야 교회죠.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 곧 회개란 교체작업인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회개란 자기가 자기를 치고 심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성령이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령이 씌인 거짓목자는 악어가 없는 곳으로만 피해 다닙니다.
놀랍게도 식스센스 지가 악어입니다. 자기가 악어인줄 모르고 악어 피해 다닌 겁니다.

바로 너가 악어야 라고 그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세례요한의 세례요, 하늘에서 난 물입니다. 짤라버리는 겁니다. 제대로 실상을 보라고 허상을 짤라버리는 단절의 물, 하늘에서 난 물입니다.

또 같이 따라간 그 놈들도 지가 악어인줄도 모르고 악어 피해 돌아다닌 것이죠.
(식스 센스)

이 엄청난 반전이 십자가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지혜입니다.

참 목자가 왜 심판으로 몰고가고 죽음으로 몰고가고 십자가로 몰고갈까요?

십자가 밖은 꾀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갈 3:1, 개정)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진정으로 섬기는 자는 심판으로 몰고가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심판 받은 자가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놈도 심판 받은 자는 없습니다. 바로 그것을 알고 아브라함이 쳐다본 겁니다.

(롬 4:1, 개정)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개정)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정)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정)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롬 4:5, 개정)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정)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롬 4:7, 개정)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롬 4:8, 개정)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래서 믿음의 조상인 겁니다. 예수님의 작품입니다. 내 심판 받고 죽으마 너 구원받고 살아라. 이것이 어린양의 제물 되심입니다.) 

(요일 4:10, 개정)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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