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뚫혀버림을 당한 기뻐하심을 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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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난 시간에 가이샤가 아니라 사가랴 이고. 666 영화가 아니라 [오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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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 기뻐하심을 입은 자는 누구뿐? 예수님 뿐 (학부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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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영이 하는 일에 인간의 반응은 놀라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벌벌 떨게 되는 일 뿐임 (뚫혀버렸기에)

(눅 1: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눅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 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 1: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눅 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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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7 예수님이 태어났어요 (눅 2: 1-20)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7공부 p30-31
교재 : 어린이 매일성경 2008년 1-2월 (고학년 4-6학년) 성서유니온 http://www.su.or.kr/

오늘 교재 내용 살펴보기 전에 주일학습활동 이라는 p28의 내용을 살펴보면
(앞의 내용을 공부했기에 이런 학습활동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학습활동의 내용은 지금 수많은 종교단체에서 늘 하는 게임형식의 레크레이션이나 또는 깨달음을 줄수 있는 활동으로 자주 사용이 됩니다.

아마 여러분이 초등학교 시절을 지내오면서 학교 교재에서도 다루었지 않았나 하는 예상도 해봅니다.

교재에서는 이렇게 다루고 있습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서 게임장소의 반환점을 정해 놓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한 사람은 눈가리개를 하고 또 한 사람은 눈을 가린 사람을 잘 인도하여서 반환점을 돌아오게 하는 겁니다. 승리한 팀은 작은 선물을 주고 예수님의 말씀에 인도받는 어린이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자 라는 내용입니다.

이거 저도 학생회나 청년회 수련회 때에 늘 하는 스파르타 훈련으로써 예를들면 한 사람은 주변의 사람을 믿고 그 믿음대로 고대로 뒤로 쓰러지면 주변의 많은 사람의 같은 조 사람들은 그 사람을 모든 정성과 최선의 성심을 다해서 그 사람을 땅 바닥에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받아내어서 똑바로 세우는 그런 훈련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주변의 사람을 또는 나 외의 사람을 믿어보자는 의미와 자신을 포기해야만 주변 사람을 믿을 수 있다는 그런 교육효과를 추구하는 그런 훈련입니다. 이번 비슷한 류의 게임방식이 참 많이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런 교육적인 학습활동의 훈련이 참으로 신선하고 좋은 교육 효과를 줄것이라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만 정작 성경에서는 이런 학습적인 훈련으로써 믿음이 훈련되어지는 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저는 이런 학습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에 자부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속에서 양육(그들의 표현) 받았지만 정작 믿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참으로 많았고 또 왜 정작 어려움이 닥칠때에 자신에게 믿음이 왜 없냐 라고 그 답답함을 오히려 저에게 화풀이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정작 어려움이 닥치면 그동안 훈련해 왔던 그런 스파르타 훈련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즉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어려움이 닥치는 것을 실감했다는 거죠.

이 교재의 [반환점을 돌아라] 게임을 어떻게 보면 장애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임 내용이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재내용 말고 우리 학생회 공부 내용에서 이 게임을 살펴보면 새롭게 한번 수정해 봐야 할 것입니다.

바로 지난 주에 배운 공부 내용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에 쇠창살이 꼿혀서 신체에 구멍이 뻥하고 뚫혀버린 자들이 바로 세례요한과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그리고 마리아입니다. 2장부터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 앞에 왜 이런 자들을 1장에서 언급하냐 하면 주님의 탄생 앞에서 인간의 도움이 일체 없는 철저한 차단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창조 앞에서 말이지요. 그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끊쳐짐을 당한 마리아입니다. 즉 뚫혀버린 겁니다. 또 세례요한의 가족 또한 특히 아버지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죠 그 벙어리가 되었는데 다시 그 벙어리 됨을 뚫혀버렸습니다. 그 과정이 있는 이유는 앞으로 태어나실 창조주 예수님이 바로 이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뚫혀버렸다 라는 의미를 강조한 겁니다.

그럼 이 게임을 수정해 보면
눈을 가리우지 않은 아이가 눈가리개를 한 아이를 인도한다고 했는데
그 반대입니다.

세례요한이 우리를 지금 인도하는데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면
몸뚱아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혀버렸고
눈을 가리개로 가리웠고
입이 벙어리로 막혀 버린 사가랴에게서 태어났고
팔 다리 다 끊쳐버린 제물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모습으로써
이렇게 당당하게 외칩니다.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리고서는 눈을 가리우지 않을 아이를 반환점을 돌면서 인도를 합니다.

한번 실습을 했으면 좋겠는데
생각을 해보세요 얼마나 웃끼는 모습이고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닙니까?
일부러 무시 받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 반환점을 도는 모습이 마치 여리고성을 도는 것과 같은 의미로써 학습활동이 진행된다면 더더욱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무시받는 어리석은 게임이 되고 말겁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내는 믿음이나 신앙교육은 우리 쪽에서 출발하는 이상 다 엉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죽음이나 죄의 권세 앞에서는 아무 쓸모짝도 없는 어떤 것도 뚫어버리지도 못하는 무능한 뿔 (송곳)이요 무능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전쟁은 육이 절대로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의 말씀 앞에서 뚫힘을 당해야할 입장이지 건방지게 뚫어야 하는 훈련이나 연습을 할 입장이 못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학습활동 게임은 반대로 해야합니다. 무시받고 뚫혀버렸고 어떤 누구도 믿음이 가지 않는 그 사람이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는 그 인도함을 받기 싫어하는 모습 속에서 그 무능하고 뚫혀버린 자에게서 구원을 받는 그런 학습활동이 성경에 일치하는 모습인 겁니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하자는게 아니라 그 분이 이런 모습으로 오고 이런 모습으로만 활동하신다 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 목적인 겁니다.

자 그렇기에 그 다음 페이지의 내용은 이런 입장과 연결된 상태에서
예수님의 탄생의 사건을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베들레헴이라는 의미와 천사들의 찬양 내용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자가 태어나는 곳이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마을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촌구석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죠 일부러 무시받는 곳에서 의도적으로 그 곳에서 태어난 겁니다.
그 베들레헴과 연관된 의미가 바로 짐승의 밥통 곧 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도 같은 의미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자라고 성장하신 곳도 나사렛이라는 저주받은 마을에서 자라십니다. 결국 같은 의미죠

사실 광야에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원망할 수밖에 없는 무시받는 곳으로만 인도를 받는 이유도
사실은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온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나 육(인간=이스라엘)은 영(예수님)을 감당할 수가 없기에 그 반대의 모습으로써 거부하지요. 그렇기에 빛은 어두움을 통해서 차이성을 나타냅니다. 사랑은 미움을 동원하듯이.

결국 베들레헴이 구약에 예언된 이유도 십자가의 지혜 곧 어리석은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주는 겁니다. 자 그럼 학습활동의 게임도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야지 인간의 지혜는 믿음이 연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두 지혜를 비교하면서 학습해야 그 차이성이 드러납니다.

자 그리고 천사들의 찬양의 의미도 너무 중요한데요
마치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난 천사의 행동과 비슷한데요
제가 강조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제 표정을 보라고 하면서 이야기 한 것이
세례요한이라는 아들을 주겠다는 천사의 메시지가 천사 혼자만 기쁘고
그 소식을 듣는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에서는 참으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소식인 겁니다.
바로 즉각적으로 그 기쁜소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데
일부러 의심하기도 전에 의심한다 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리고
입을 벙어리 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천사가 말한 기쁜소식 다움을 더더욱 기쁜소식 답게 한다는 겁니다.
천사 자기만 기쁘고 남들은 하나도 안 기쁜거죠. 벙어리 되었다고 기뻐할자 아무도 없듯이
그런데 천사는 혼자 기뻐합니다. 사가랴 벙어리 만드는데 성공했고 기뻐한 거죠. 왜냐? 뚫혔다는 증거입니다. 즉 막을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뿔 모든 것을 뚫어버려서 구멍을 다 내버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천사들이 나타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전하는데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쁜 소식을 들고 왔다. (즉 다 뚫어버리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죠)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해 구세주가 태어났다. 너희에게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볼 것이다 라고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다 말하니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한 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을 외치는데 그 내용이 바로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내용인데 이 내용의 의미를 사람들이 거꾸로 알고 있습니다.
즉 너거들 다 죽었다 너희들은 이제 다 뚫혀 버렸다. 너희들은 다 이제 물에 빠진자이다.
아이고 기뻐라 기뻐
이것이 바로 영광 곧 지극히 높은 곳의 하나님의 영광이 덮여진
그 영광이 뚫힘을 당한 자들이 바로 평화가 되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 다 라는 겁니다.

그럼 앞에서 우리가 기뻐하심을 입은자가 누구였을까요?
그러죠 그래서 누가복음 1장에 기뻐하심을 입음 당한자가 그냥 기쁨이 아닌
정작 그 반대의 끊쳐짐을 당한 마리아 그리고 벙어리가 된 사가랴
노년의 할머니가 아기를 잉태하는 불미스러운 사건
곧 그들이 낳은 세례요한이 하는 일 등등이 바로
기쁨에 의해서 기쁜 소식 곧 복음에 의해서 뚫힘을 당한자가 바로 기뻐하심을 입은자 라는 겁니다.
그 자들에게만 평화가 되는 겁니다. 왜? 전쟁을 곧 뚫는 송곳에 의해서 이미 패배했기에 그들에게는 전쟁이 완료되었기에 평화가 되는 겁니다.
평화란 전쟁이 완료된 상황이지 전쟁도 없이 승패도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누가 이겼고 누가 졌다는 것이 분명하게 분리되고 나누어진 상태입니다.

결국 전쟁을 본자 만이 평화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사가랴 찬양과 마리아의 찬양은 한마디로 말해서 전쟁요청이다는 거죠. 본인들이 그 전쟁에서 뚫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승리 곧 영광을 이미 봐 버렸고 승리를 이미 맛봤기 때문에 뚫혀진 자만이 구원자를 외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랑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모습은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이듯이 마찬가지로 지금 마리아의 찬양하는 그 모습이나 사가랴의 찬양의 모습이나 세례요한의 증거의 모습이나
지금 천사들의 찬양 모습인 전혀 기쁘지 않고 도리어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지금 캄캄한 밤에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에게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의 찬양이 벌벌벌 떨리는 두려운 소식으로 들리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천사들은 신이나고 기뻐하는 겁니다.

이제 천사들의 기쁨의 찬양처럼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뚫히지 않는 것이 없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이요 평화요 희년입니다.

우리의 죄악도 뚫어버리고
우리의 욕심도 뚫어버리고
우리의 탐심으로 인한 우상숭배도 다 뚫어버리고
막힌 담을 모두 허물어 버리는
여리고성의 뿌뿌뿌 희년 나팔 소리를
지금 사람들은 벌벌벌 두려워 떨지만
천사들은 신이 나서 뿌뿌뿌 나팔을 불고 있는 겁니다.

이제 앞으로 천사들은 예수님의 피를 담은 십자가의 지혜를 어깨에 지고
모든 세상을 모든 권세를 모든 죄악을 다 뚫어버리고 여리고성을 허물 듯이
다 허물고 다닙니다. 우리는 그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함을 입은 자가 되는 겁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만 평화와 안식과 희년 (처음의 사랑으로)을 그 현장에 이끌림을 당하면서
목격하는 목격자의 증인의 증거자가 되는 겁니다. 기뻐함을 입었기에
그 기쁜소식이 모든 것을 뚫어버리는 그 현장을 똑똑하게 보고 목격함으로써
그 기쁨을 외치지 않을 수 없도록 기쁨이 덮쳐서 우리도 뚫혀버린 모습으로써
여러분 보십시오? 아무도 못 뚫는 튼튼한 바벨탑도 견고한 성곽도
모두 뚫어버리는 이 지혜 이 어리석은 무시받는 십자가의 지혜가 옳았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다 가짜였습니다. 라고 기쁘게 외치는 겁니다.

구약의 참선지자들은 이 영광이 덮쳐져서 심판(뚫혀버림)을 신체에 담고서 신나게 외쳤습니다. 지금 천사들도 신나게 외칩니다. 이 아기 예수님이 이제 모든 것을 다 뚫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라는 크리스마스때 세상사람들도 외치는 뜻도 모르고 외치는 이 천사들의 찬양은 사실은 모든 권세를 다 허물어 버리는 십자가의 지혜만이 뚫어버리는 것이 바로 기뻐하심을 입은 자의 평화요 희년 곧 자유의 날 구원의 날인 겁니다. 그 외의 사람은 기쁜 소식이 뭔지도 모르도록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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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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