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강 물에 빠뜨림을 당한자를 무시하는 자

물에 빠뜨림을 당한자를 만들어 편애하니 무시하는 자가 유발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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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강 회개하지 말고 회개하는 사람 만드심

기도하지 말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예정 됨
찬양하지 말고 찬양하는 사람으로 예정 됨
예배하지 말고 예배하는 사람으로 예정 됨
기뻐하지 말고 기뻐하심을 입은 자로 예정 됨
기다리지 말고 기다림을 입은 자로 예정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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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케 하는 물세례

교재 p36-37 예수님만 높여요 (누가복음 3장 1-17절)

어린이 매일성경 2008년 1-2월 (고학년 4-6학년) 성서유니온 http://www.su.or.kr


지난 주 글이 너무 어려워서 다시 작성해 봅니다.

우리가 처음 공부시간에 1년 동안 배울 것을 주제로 삼은 것이
바로 왜 막으시는가? 입니다. 무슨 말인고 다시 요약하면
누가복음의 대상은 이방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주제는 이방인 구원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 반대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은 율법에 의하면 철저한 육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인 유대인은 출애굽의 경험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방인을 출애굽 경험을 한적이 없기에
다른말로 해서 육이 아닌 영의 일 하늘의 뜻을 심기 위해서 출애굽을 재현하는 겁니다.
육의 차단과 단절을 경험해야 하고 세상탈출 출애굽의 사고방식을 탈출케 하는 경험을 해야하기에 출애굽의 홍해 사건인 할례 곧 세례로 인해서 모조리 물에 빠뜨려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 한번도 노예된적이 없고 포로된적이 없고 고아 된적 과부 된적 나그네 된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출애굽에서 애굽의 노예 되었던 너희들을 빼내어준 여호와 로다 라는 이 여호와가 누구인가를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노예 된적이 없다는 말은 여호와의 아이디어에서 노예된 적은 없습니다. 즉 파라오 왕을 강퍅케 했고 파라오 왕이 여호와가 누구냐 라는 무시하는 마음이 가진자로 부터의 노예 당한적이 단 한번도 없는 이방인이기에 이 과정을 재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재현을 할때에 예수님을 무시하는 파라오 왕의 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 파라오 왕의 세력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홍해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육으로부터 탈출(차단 단절)하여서 영의 세계로 인도받는 일을 새로 경험케 하시는 겁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1강때 물에 빠뜨리는 선지자에 대해서 공부했고 누가복음은 이 물에 빠뜨리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왜 물에 빠뜨리실까요? 물에 빠져 보면 무엇이 보이게 됩니다. 무엇이 보이게 된다고 했나요?

나만 생각하고 나의 일들로만 신경쓰는 모든 나 중심의 세계를 물에 빠뜨려 보니
세상에 영의 일들이 펼쳐지는데 천사들과 영들이 부지런히 무슨 수상한 일들을 벌리고 있는 겁니다.

출애굽의 재현이라고 했으니까 누구와 같은 자가 일어나며 그 누구와 같은 스토리가 재현될까요?

그렇죠 바로 모세죠

모세가 아기때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아니 모세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렇죠 두 살 밑으로 다 살인 당하는 일이 벌어졌지요

자 그 때의 살인자 세력이 바로 출애굽 전쟁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즉 애굽나라 왕입니다. 그 파라오 왕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는 모세와 같은 자는 누구죠? 바로 예수님이지요

그리고 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두 살 밑으로 죽임을 당하는 살인자의 세력이 등장하지요
누구입니까? 

자 이것이 키 포인트 입니다. 어려워서 쉽게 할려고 했는데 또 어려워 지네요

즉 전쟁의 대상이 누구이냐가 오늘의 키 포인트인데

마태복음은 바로 쉽게 나옵니다. 마태복음의 대상이 유대인이라고 했듯이
마 2장에는 헤롯 왕입니다. 그런데 마 2:19절에 죽지요. 그리고 세례요한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독사의 실체는 마 4장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전쟁의 대상입니다. 그 마 4장의 마귀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 마귀의 사고방식과 일치한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이 바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방식이 똑같이 전개 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좀 더 확대 됩니다.

세례요한이 회개케 하는 물세례를 베풀때에 모든 무리들 전부를 독사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육체가 다 전쟁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세 그룹의 사람이 세례를 받는데

요한은 회개 즉 돌이키라고 (바꿔치기 할까요? 마음을 바꿀까요?) 합니다. 어떻게?

바로
첫째 그룹인 일반인 무리가 요한에게 우리는 무엇을 회개 즉 돌이킬까요?

옷을 두벌 가진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고 먹을것이 있는 자는 그렇게 할것이라 하고
있음을 추구하는 자에게 없음에 허덕이는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은 세리인데 세리가 요한에게 나아와서 우리는 무엇을 회개 할까요?
세리는 유대인의 매국노요 원수 보다 더 악한 배신자입니다.
그 세리에게는 정한 세금 외에는 늑징치(늑탈 징수) 말라 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인 군병들이 요한에게 나아와서 우리는 무엇을 회개 할까요?
군병들은 그 당시 경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조폭처럼 깡패와 같은 부패경찰과 같았습니다. 그 군병들에게는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즉 협박 공갈로 위협하고 폭력을 휘두르지 말며, 무소하지 말며 즉 안했는데 범죄 했다고 억울하게 누명 씌우고 죄를 뒤짚어 씌우지 말며,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곧 정한 월급으로 족하고 삥땅치지(빼앗지) 말라는 겁니다.

자 세 그룹이 세례를 받고 회개를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정작 회개의 도사들인 유대인들이 세 그룹 속에 속한게 아니라
자신이 독사의 자식인 줄로 알고 그 모습을 돌이켜 달라고 바꿔 달라고 하는 세 그룹이 회개하러 물세례를 받으러 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복음에서의 전쟁의 대상은 곧 이 세 그룹에 해당 되지 않는 모든 사람이 되겠지요. 즉 육입니다. 육이 영의 전쟁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물에 빠뜨리는 영의 일에 회개케 하는 선지자의 일에 의해
물에 빠뜨림을 받지 않는 자가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는 육의 사람인 겁니다.

지난 주에 부활에 대해서 잠깐 했는데 유월절과 같은 의미인데
예수님의 피가 발리지 않는 모든 자는 이 전쟁의 대상인 애굽나라요 피를 무시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이 되는 겁니다.

자 뒤에 나오는 누가복음의 모든 내용은 그럼 누가 피를 무시하는 자인가 잠깐 힌트를 삼아 보게 되면 육의 일을 챙기는 자입니다. 곧 선함을 고수하는 자입니다. 이방인의 지혜인 육의 행함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 대비된 그 반대의 불의한 청지기, 탕자,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잃어버린자, 싸가지 없는 여동생 마리아, 등등이 바로 피가 반드시 발려야만 하는 죄인이 되는 거구
그 반대의 사람들은 피를 무시하고 피가 필요 없는 불뱀에게 물려놓고도 장대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보지않는 자들인 자기의 육의 지혜를 쫏는 자입니다. 거기에 십자가는 어리석음으로 그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자 그럼 누가 피를 무시하고 여호와가 누구냐(파라오왕의 말) 라고 깔보느냐
회개치 않는 자(바꿔치지 당하지 않는자), 물에 빠드림을 받지 않은자,
기다림을 입지 못한 자.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자, 잃어버림을 당한적 없는 자 등등의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아닌 자가 바로 전쟁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럼 구원받는 자는 누구인가요?

고아 과부 나그네입니다. 왜죠? 고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계시니깐요

그래서 일부러 물에 빠뜨림을 당한자, 기뻐하심을 입은자, 기다림을 입은자를 만드시는 겁니다.

그 자가 고아 과부 나그네입니다. 왜 고엘이 누구냐를 제대로 보여주기에
죄인에게만 의사가 필요합니다.

고엘이란 복수자 기업을 무를 자 빚을 대신 탕감하는 자 대신 책임지는 보호자 라는 뜻입니다. 편애란 이런 의미에서만 설명이 가능 합니다. 원수에게만 용서가 필요하지 원수 아닌 자에게는 용서가 필요 없습니다. 피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아 과부 나그네 아닌 자는 누가 나를 보호하고 빼내고 복수하고 탕감하는 지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오히려 그런자 곧 선악을 아는 법을 쥔 자를 만든적이 없다고 지독하게 미워 합니다. 미움의 대상 전쟁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창조주 자체가 필요없다고 무시하기에 그들은 보호자가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서 배운 공부하면서 다룬 자들인 모두를 일부러 물에 빠뜨리는 겁니다.

우리가 배운

1 . 세례요한 본인 즉 물에 빠진 모습 채로 태어난 겁니다.
2. 그리고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 제사장을 물에 빠뜨리는 모습 (벙어리 만듬)
3. 그 벙어리의 아내 엘리사벳은 할머니로써 아기를 갖게 되니 부끄러움을 당하는 모습이죠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마리야

4. 마리야는 나이 늙은 할머니 로써가 아닌 정 반대인 시집도 안 갔는데 임신하게 되니
율법에 의해서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입장이 되는 겁니다.
돌에 죽임을 당하는 입장이 곧 물에 빠진 자의 모습인데 물에 빠져 보니 비로소 전쟁 곧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찬양하고 요청합니다. 영의 일을 보게 됩니다. 육이 차단 당하니까

그리고 사가랴 제사장이 입이 열리게 되니 비로소 또 외칩니다. 영의 일들을 찬양하는데
구원의 뿔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다 뚫어버리는 송곳으로써 안 뚫히는 것이 없다고 외칩니다. 그것이 바로 평강 곧 평화입니다.

전쟁의 종식이 될 때 평화인데 우리는 전쟁의 종식이 없이 평화를 자기유익으로 따로 챙길려고 하는 것을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고 물에 빠짐을 당함으로써 영의 일을 보고서 외친 겁니다. 이 평화를 입은 자가 바로 기뻐하심을 입은 자인데

5. 번째 사람들이 바로 밤에 자기 양때를 지키던 치던 목자들이 기뻐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갑자기 천사들이 나타나 노래 합니다. 무서워 떨고 있고 하나도 안 기쁜데 너희들에게 좋은소식을 알려주겠다 라고 합니다. 졸지에 기뻐하심을 입게(당하게, 꽂혀버리는) 되는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기뻐하심과 평화가 그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꽂혀 버립니다.

6. 선지자 시므온입니다. 성령을 지시로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기에
졸지에 아기 예수님을 보고서 비로소 죽게 되는 영광을 받게 입게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언을 합니다. 이 아기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한 비방받는 표적이 된다 라고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들추어내는 칼로 마음을 찌르듯이 한다고 예언을 합니다.
7 선지자 안나는 매우 늙었더라를 강조하고 어느 정도로 늙었는가? 결혼 7년 만에 과부 되어서 과부 된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며 섬겼다고 합니다. 한번 나이를 예측해 봅시다. 어린나이에 시집 갔다고 쳐도
15+7+84는 106살? 물론 이 부분을 번역상 오류 라고 하면서 그냥 84살이라고 합니다만
어찌되었던 매우 늙었다 라는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즉 선지자 시므온과 선지자 안나는 한마디로 말해서 과부요 나그네입니다. 물에 빠진 자입니다.

8. 그리고 최근에 공부한 12살 아이 예수입니다. 예수님이 미아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부모가 미아 취급 당하는 꼴이 된 겁니다. 팔을 어긋맞게 된 상황인 거지요 그럼 누가 고아와 같은 자 입니까? 부모입니다.

자 위의 모든 상황이 뭡니까? 물에 빠진 자들이다는 겁니다.

이 물에 빠진 자들만이 예수님과 연관이 되는 겁니다. 왜? 물에 빠진 자를 건지시는 분이니까?

그럼 출애굽이라는 심판의 사건을 재현하는 원리라면
애굽나라에 해당되는 이 물에 빠진자를 무시하는 자들을 건지시는 예수님을 무시하는 자들은 누가복음에서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물에 빠뜨림을 당하지 않은 자입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아닌 자들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왜 제가 이렇게 길게 표현하면서 강조하느냐 하면

세례요한의 세례 곧 회개케 하는 물세례는 일종의 전쟁 개시요 전쟁 선포요 동시에 승리완성입니다.

그럼 무엇을 겨냥한 회개냐 뒤바꿔치기인 교체작업인가? 사고방식의 전환인가가 중요합니다.

그 내용물이 바로 회개의 내용물입니다.

결국 회개를 당하고 교체를 당하고 뒤바꿔치기를 입음 당하지 않는 자는
회개를 지키기로 때우고 회개를 자기 숙제로 보기 때문에
그는 고아 과부 나그네를 무시하고 곧 고엘도 무시하고 피도 무시하는
반드시 행함의 법을 쫏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전쟁의 대상이 되고
그들에게서 무시당한 고아 과부 나그네 인 자는 무식하고 유치하고 어리석게 그저 자기가 할게 없고 오로지 예수님의 피만 바라본다고 사람들의 구경꺼리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 죽임을 당해도 상관 없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자들은 이미 바꿔치기를 당했고 기뻐하심을 입음 당했기에 구지 자기를 챙길필요 없이 회개케 하시는 피가 발렸기에
넉넉하게 이미 승리한 채로 영이신 예수님의 남은 고난은 채움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에 나타난 회개의 의미입니다. 사고방식의 전환인
육의 차단 당함과 영(십자가의 피)의 세계에 작살이 꽂혀서 이끌림을 받는 자가
바로 회개케 하시는 성령을 입은자인 고아 과부 나그네입니다.
이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아닌 자는 성령의 일에 심판 대상이 되는 겁니다.

회개 안 했다는 이유로 말이죠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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