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강 마귀의 정체

예수님이 들추어내시는 마귀의 정체 (마귀가 인간에게 심은 죄의 내용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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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란 두 세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소품 (미끼)

죽음의 떡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 생명의 떡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
 
우리 인간은 자기를 위한 빵 밖에 모름 그래서 그 가치 때문에 빵의 필요성을 자기가 심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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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강 자기를 위한 떡 (학부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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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 6: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요 6: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요 6: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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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p40-41 마귀의 3가지 시험 (누가복음 4장 1-13절)

어린이 매일성경 2008년 1-2월 (고학년 4-6학년) 성서유니온 http://www.su.or.kr


마귀의 정체를 들추어내신 예수님

지난 시간에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이유는 죄인의 세계에 뛰어들어서 제물이 되기 위함입니다. 제물이 되어서 뭐하실려고 할까요? 바꿔치기 곧 회개를 이루실려고 합니다. 무엇을 교체하시는데요? 우리의 사고방식인 우리 마음의 생각을 교체 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죄로 가득차 있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귀에게 갇혀버린 우리를 끄집어 내실려고 죄인인 우리의 저주 속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시각이지 우리의 시각은 누가 물에 빠졌는가? 누가 갇혔는가? 그런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먼저 앞서 보내셔서 우라는 죄에 빠져있는 죽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회개케 하는 물세례를 베푸는 세례요한을 통해서 처음의 자리인 고아 과부 나그네의 처음 모습에서 교체당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해 물에 빠뜨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죄인이 앞으로 오실 구원자와 연결이 되도록 하는 겁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거든요.

여기에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베푸는게 아니라 도리어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하늘이 열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다 라는 음성이 들리고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예수님께 내려왔습니다.

자 이제 이 영의 일이 개시가 되는데 바로 영의 일은 육의 생각의 반대의 일만 하는 겁니다. 그 영의 일은 바로 예수님이 제물이 되실려고 죄의 세계에 뛰어들어서 그 죄를 제거하는 죄와의 전쟁입니다. 사랑은 전쟁입니다. 전쟁을 걸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죄를 가만히 두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죄를 가만히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수시고 침투하여서 전쟁을 벌리는 겁니다.

자 물에 빠지러 오신 예수님은 이제 이 물 속의 세계인 죽음의 세계를 생명의 세계로 바꿔치기 하시고 물 바깥의 세계를 살았다고 여긴 그 바깥을 도리어 죽음의 세계로 바꿔버립니다. 마치 노아 심판처럼 사람들에게 비웃음꺼리가 된 그 답답하고 미련스러운 방주는 심판이 묻지 않았고, 방주 바깥의 세계는 죽음의 세계가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죠.

이제 예수님은 물에 빠지심으로써 물에 빠지지 않는 회개치 않는 자를 적으로 삼아버리시고 전쟁을 하십니다. 물에 빠진 자인 고아 과부 나그네인 아버지(고엘)의 보호(불쌍히 여기심)가 필요한 자는 물(심판)에 뛰어드신 예수님의 생명이 퍼부어지지만
그 반대인 물 바깥에 있고 물에 빠진 자를 무시하고 비웃는 자들은 그 심판에서 보호해 줄 자가 아무도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물 바깥의 나는 살아 있다 라고 착각하는 그 세계의 정체와
왜 그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하신 일을 비아냥 거리고 무시하고 거부하고 반드시 싫어하고 미워하는지를 오늘 마귀의 사고방식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자 먼저 성령에 이끌려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성령님이 인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의 일이 마귀의 정체와의 차이성으로써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마귀를 통해서 증거하시는 겁니다.

마치 빛은 어두움이 동원되지 아니하면 그 차이성을 우리가 알수 없듯이 말입니다.

자 그럼 마귀의 3가지 시험은 뭘까요?

재미있게도

마귀의 시험이 아니라 예수님이 들추어내시는 마귀의 정체입니다.
즉 마귀는 자기 멋대로 시험내용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인간 속에서 인간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밝혀내시는 주님의 일하심과 연관이 되어 있기에 마귀는 아무내용을 가지고 시험하는게 아니라 정해진 대로만 시험 합니다. 그것은 곧 마귀 자기의 숨겨둔 정체를 들추어 내는 것이니 마귀는 원치 않아도 그 정체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빛은 어두움 속에서 가장 잘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첫 번째의 시험 내용은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문제를 해결하라 라고 합니다.
즉 배고픔의 문제입니다.

돌덩어리를 떡으로 만들어라 라고

고아의 배고픔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라 라고 요구 합니다.

자 마귀는 지금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숨겨둔 정체를 밝힙니다.
자신이 인간 속에 심겨둔 그 마음이 뭔가를 예수님 때문에 밝혀집니다.

즉 마귀는 사람들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을 심었다는 겁니다.

떡으로 사람은 산다.

그래서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신, 영웅, 대통령, 국가를 자기의 목숨을 위해서 찾는다 라는 것을 들통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고
고아는 고엘의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산다 라고 하십니다. 즉 고아 아니다고 하는 자는 아버지가 필요없는, 보호자가 필요 없는, 떡만 챙기기 위해서 아버지가 필요한 약탈자입니다.

두 번째 마귀의 시험이자 마귀의 숨겨둔 정체는
마귀가 예수님은 순식간에 하늘 높이 올라가서 천하만국인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보여주며
이 모든 세계 국가의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모두 내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 나에게 절하라 그럼 이 모든 세계의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
라고 합니다.

즉 마귀의 실체는 세상의 임금이 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나그네 떠돌이들의 안식처 평화의 집이 될수 있는 주인의 권리를 주겠다. 라고 정치적으로 모든 세상 권력을 마귀가 쥐고 있다 라고 합니다. 즉 임금이요 주인이다는 거죠. 이 임금의 자리를 주겠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졸지에 예수님에 의해서 마귀가 바로 가짜 임금으로써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숨겨진 정체가 밝혀집니다. 무엇으로 나그네 떠돌이들의 임금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힘이요 권력이요 권세요 영광으로써 떠돌이 나그네들의 임금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죽음의 협박으로써 나그네의 임금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깡패들이 약자들에게 가서 자릿세를 뜯어먹는 것을 보호비로써 받아먹는 식입니다. 이것이 깡패조직의 조직시스템의 확대가 바로 국가체제입니다. 눈에 보이는 법체제인 가인의 성입니다.

(히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인간의 국가체제에서는 일체 볼 수 없는 말씀에 기록하기를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나라와 백성이 따로 있다고 증거 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만 섬기는 자를 찾으러 온 겁니다.

그 자가 바로 고엘이 찾는 나그네입니다. 세상 국가 체제를 부러워 하지 않고
그 반대로 예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의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인
시므온과 같은 기다림을 입은 자를 되찾으러 오신 겁니다.

세 번째 마귀의 시험이자 마귀의 정체를 통해서 예수님과의 차이성이 무엇인고 하니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만일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천사)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91:11-12)
그리고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받을어서 발이 땅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라고 종교적인 문제인 복받은자 맞는가 사랑받는자 맞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종교적인 영웅에게는 항상 신이 그와 함께 하기에 늘 기적이 함께 따라다니고
저주가 묻지 않는 복 받은 자의 모습임을 늘 강조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마치 우리 학생들에게는 로또 당첨과 같은 기적 같은 일) 과연 있는자 인가 하는 문제이죠. 이런 기적이 따라다니는 자면 그 자는 하늘로부터 사랑받은 자로서 사람들이 믿어줄것이며 알아 줄 것이다 라고 합니다.

(마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마귀가 인간에게 심어서 장악해 버린 마음들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차이점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써 마귀가 아무리 유혹을 해도 거기에 속지 않고

성경 말씀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라고 하시면서

시험이란 자기를 챙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할려는 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시험의 반대는 자기를 챙길 필요조차 없는 모습인 사랑의 상태입니다.

즉 사랑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기적인데
인간들은 사랑에는 관심 없고 그 기적으로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되고 그 댓가가 나를 어떻게 가치있게 만드느냐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유대인에게 심겨진 마귀의 생각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그램을 조금 보면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어린 아이의 모든 불안 증세는
부모가 부어준 사랑이 없기에
자기가 그 사랑을 하루 하루 생산해 내고 그 생산해 낸 것을 저축하고 하루 하루 꾸려가야 한다는 철저하게 어른들의 직업으로써의 행함의 월급처럼 돈처럼 사랑을 벌어내어야 한다는점입니다.

이게 무슨 생 고생 입니까?

아이가 사랑을 마치 어른들이 돈을 하루 하루 벌 듯이 사랑을 벌려고 돌아다니는
자기가 자기를 챙겨야만 한다는 것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

보호자가 없기에 보호자 있으나 마나한? 사랑을 주지 않기에
그 결핍을 자기가 직접 챙기고 다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란 관계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사랑의 탯줄이 끊어져서 공급이 안 되기에
자기가 직접 사랑을 돈처럼 벌고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 없이 자기가 직접 투쟁하고 자기가 직접 싸워서 쟁탈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고함 지르고 힘으로 이겨야 하고 욕으로 폭력을 가해야
겨우 겨우 자기를 지탱할수 있는 겁니다.

아기는 그럴 필요가 없는 데 벌써부터 어른처럼 행동하는 딴딴한 폭력악동이 된 겁니다.

물렁 물렁한 제리처럼 연하고 나약한 보호하고픈 마음을 유발케 하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요구하는 겁니다.
기적이 있으면 자신이 강해 진다고 남들이 무시 못한다고 여기는 겁니다.

현대에서는 그 기적이 바로 돈으로써 임금 노릇을 하는 겁니다. 돈이 결국 자기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겁니다. 돈만 있으면 남으로부터 무시 받을 일이 없다고 여기는 거죠.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단순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라 라고 마귀의 말을 강력하게 짖밟아 버리는 힘으로 다가오는게 아니라 대화의 방향이 완전히 딴판인 관심사가 다르다 라는 식으로써대답을 하시는 겁니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의 인간의 질문에 동문서답하는 식이 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마귀의 3가지 시험을 이기십니다.

자 그런데 말 빨로 다 이길 것 같으면 구지 시험이라고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말로만 다 이기는데 말이죠.

그러나 이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단 하나도 이길수 없었고
오히려 제대로 갇혀 버려서 빠져나올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상태로 모든 인간을 장악한 내용이다는 겁니다.

이런 마귀의 생각을 들추어 내시면서 그 정체를 밝혀서 마귀를 이겼듯이
이제 마귀가 심은 이런 생각이
사람들과 부딪끼면서 이런 생각에 넘어가질 않는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겁니다.

자 그럼 마귀의 실체는 한마디로 말해서 물에 빠지지 않은 모습을 갖추자 라는 겁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물에 빠져도 상관 없는 사랑으로 왔다 라는 겁니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를 챙겨야 하고 신을 이용해서라도 자기를 위하여 살아라 라는 것이 마귀의 생각이고

거기에 차이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물에 빠지러 오셔서 인간의 사고방식을 교체 하겠다 라는 겁니다.

물 속의 세계를 죽음으로 여기고 물에 빠진자를 무시하는 그 선악의 사고방식을 바꿔치기 하심으로써
도리어 물 속의 죽음의 세계가 도리어 생명의 세계가 되고 물 바깥의 살았다고 난 안죽었다 라고 물에 빠진자를 무시하고 비아냥 거리는 그 물 바깥의 세계를 심판하겠다는 것이 바로
교체작업인 회개입니다.

우리는 불 속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여기고 불 바깥이 살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 속에 뛰어드심으로써 도리어 불 바깥의 세계를 죽음의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 불이란 우리가 불내는 그런 불이 아니라
여호와의 불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그 옷은 어떤 것으로도 찢겨지지 않는
물 속, 바다 속, 홍수 심판 속, 모래 속, 광야 속, 불 속, 지독한 미움 속, 원망 속, 저주 속 등등 에서도 찢겨지지 않는 편애입니다.

그 편애를 설명하기 위해서 일부러 동원되는 것들이 바로 위의 것들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을까요? 마귀가 있어야 마귀가 시험을 해야
예수님의 사랑이 제대로 설명이 되는 겁니다.

그 차이성으로써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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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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