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2011년 2월 27일 일요일 오후 10:57:04 김대식


여자 되기, 춘향뎐(에스더), 암행어사 출도요, 팔어긋맞기라는 가로지르기(탈주)


하만은 온갖 폭력성으로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그것을 좋아라 하고 희열을 느낄때에

못땐 춘향이 에스더는 죽이면 죽으리라 로 버팅기면서

오로지 십자가의 사랑이 떠날까봐 두려워 떨며 주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다.


감히 자신 보다 더 나은 믿음이 없다고 힘자랑을 해대고 온갖 인기를 과시하는 자는
바로 그런 춘향이가 미워 죽는다.

뭐 순결?~~~

순결 ~~~~~~~

오냐 내가 너의 몸을 더렵혀 주마 마음껏 유린하마?
너의 더러운 몸을 이몽룡이가 알아줄까?

하만은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만끽하다
쭐꾸덕 미끄러진다.

그 빈자리를 앉다 미끄러진 선배 뒤를 따라 미끄러져 자빠진다.

오늘 kbs 라디오 문화읽기 프로그램을 춘향전 내용 듣다가
생각난 내용을 각색해서 한번 적어봤다.


어제 어머니랑 대화한 내용이 떠올랐다.

남자의 기능은 여자로부터 고발당하여 나 아니요 여자의 후손이 옳았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기능이 남자의 기능이라고 했다. 이것을 전쟁 곧 사건이라고 한다. 이기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미 이겼기에 져도 상관없는 죽어도 상관없는 기능이 남자의 기능이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에게 의해 고발당하고 죽어야 하는 기능이요
그 내용인 죄 짖고 그 씻김받은 내용을 요셉에게 증거로
그 증거물의 열매를 내놓는 것이 유다의 기능이다. 이것이 찬양이다.
(종말에서만 나오는 것이 찬양이다. 전쟁종식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란 곧 약속 성취다. 마지막 아담만이 성취한다. 남자는 이 싸움의 목격자로써 여자의 후손의 전쟁담을 외치는 기능이다. 전쟁 속에서 말이다.)

(창 3:15, 개역)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찬양이란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희락을
근심 대신 찬송을

팔을 어긋맞게 한 그 가로지르기의 내용물을 내놓는 것이다.

요셉은 이 내용을 나오기 까지 간첩으로 뒤집어 씌우고
끝까지 피(십자가)의 긍휼이 나올 때 까지 뺑뺑이 돌린다.

그래야 야곱의 자식들의 죄와 유다 자식 그냥 자식이 아닌 다말을 통해서 낳은 자식의 피와

결탁이 되어서 그 목숨값이 피 값이 되어야 화평 화해 변론이 성사 된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와 결탁한다. 그래서 남자의 기능 곧 은사는 자신이 업신여긴 무시해버린 그 여자의 후손이 도리어 자신을 구원하는

그 어리석음(장난:탈물질적놀이 해학:잉여 가로지르기 탈주)의 지혜만이 옳았음을
그 부정적인 개같은 이방여자가 나(유다가 해석한 엉터리 언약관 약속관) 보다 옳았음을

외치고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이 남자의 기능이다.

반면에 여자의 기능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전남편 율법으로부터 이혼 당하고 새남편 십자가의 용서로 새시집가는 것이 여자의 기능이라고 했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남자 보다 여자가 오래 산다.
법 적인 남자는 빨리 죽어야 한다는 취지다.

안나 라는 선지자는 일찍 과부가 되었다.
과부란 60세 이상의 여자로써 아들도 없다. 즉 육적인 것이 단절된 자 라는 것이다.
고자 고녀에 해당된다.

우리 어머니는 해당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자가 다 짤려 버린 여자이다.

나오미다.

그 나오미에게 어머니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룻의 고백에
나오미는 화들짝 놀랜다. 너 보고도 그런 말 하냐? 내 하나님은 나를 괴롭히는 자이다.
그 괴롭히는 자를 전능자 라고 한다.
그것을 보고도 그런 소리 하느냐?

첫째 며느리처럼 너도 그냥 니 민족에게 가거라?

아닙니다 어머니 그러니까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저 똑똑히 봤습니다.

믄소리 하노? 보고도 그런 소리 하냐? 아이고 마 모르겠다 니 마음대로 해라

남자가 단절된 과부의 몸에서 생명이 나온다.

다들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고 노래 부른다.

재 대신 화관 슬픔 대신 희락 근심 대신 찬송은 주님의 주 되심의 작품이다.

죽은 자 인데 어찌? 산 자의 노랫말을 나오미에게 붙이는지 나오미 조차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일이 믿겨질 수 밖에 없도록 벌어진다. 믿음은 미끄럽기 짝이 없는 빠다바린 빈자리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는 두 번 결혼 해야 한다.
법이라는 남편에게서 이혼 당하고 즉 남자가 죽는 것을 보고
출애굽 하고
다시 요단강 도하 로 입 약속의 땅을 해야 하는 기능이 바로 여자의 기능이다.

반드시 새 시집을 가는 기능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남자 여자 합친 아담의 기능은

첫 번째 아담은 죽어야 하고 마지막 아담은 살아야 한다는
마지막 아담만 살고 구원받으면 된다는 것을 외치는 것이 아담의 기능이다.

즉 첫 번째 아담의 기능은 누락이다.

죽었을 때 그 첫 번째 사망을 통해서(물론 아무도 죽을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이 첫 번째 아담의 사망을 종식화 시킨다. 십자가에서 어리석게도 죽어버려 모든 아담은 다 죽은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 아담인줄 알기에)

모든 아담을 죽이고

다시 주 안에서 함께 다시 살고 다시 죽고 다시 살고 하는
두 번째 사망을 주와 함께 함으로써

마지막 아담만을 높이는 기능을 성령이 선물로써 주신다.

그래서 이 고난에 모든 피조물이 동참한다. (로마서)

놀랍게도 얼마전에 내렸던 눈이라는 선지자의 소멸성
홍수라는 선지자의 소멸성
지진이라는 선지자의 소멸성의 출현을 보고

참선지자(기능)의 소멸성과 일치한 것을 보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흰 눈이 소멸 되어가면서
해도 달도 별도 주의 지혜를 주고받는 그 찬양이(완료 주는 높으시고 인간은 멸망되어야 함의 완료) 들려오는 듯 했다.

밤새도록 매일 매일 몸을 긁으면서 괴로움을 토하던 욥이 정작 예수님의 고통을 보고서는 감히 입을 띠지 못하고 제가 감히 그동안 헛소리를 했습니다 주님의 고통의 끔찍함 앞에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님을(장난이였군요)

가로지르기(장난놀이)

주님의 고통 주님의 지혜는 장난이 아니군요 라고 주님의 장난을 보고 자신의 장난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첫 번째 아담은 아담도 아니군요
진짜 아담은 주님 뿐입니다 라고 쌍둥이로 오심은 바로 첫 번째 것을 패하려 오심이
옳았음을 외친다.

그것이 바로 시므온 선지자다. 이제 저를 놓아주시는 군요, 할 일 하나만 남았는데 그거 하고 빨리 제대를 해야 하는데 그 기능이 이제야 이루어주시는 목격을 해주시고 비로소 외치게 찬양하게 해 주시는 군요

(눅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이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해 비방받는 표적을 외치는 것이 아담의 기능이다.

이것이 남자의 기능 여자의 기능 즉 피조물의 기능 교회의 기능이다.(선지자 기능)

그러나 동시에 그 반대 되는 기능을 마귀는 주님으로부터 부여 받는다. 그 차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반드시 에서가 야곱과 반대 되듯이 아벨의 차이성이 가인으로써 반드시 그 기능을 발휘 해야 한다.

이 양쪽 기능을 부어넣으심으로써 토기장이는 자신의 영광을 자신의 일을 자신이 스스로 이루심으로써 영광 받으신다.

다 이루었다.


(믿음과 행함이란 반드시 그 반대되는 차이나는 믿음과 행함을 유발하면서 비슷한 구별을 육체의 인간은 도저히 구별 불가능한 것을 반드시 주님은 구별케 갈라놓는 일이 바로 거룩이다.

그러니 마귀의 믿음과 행함이 부어진 구별의 거룩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믿음과 행함이란 반드시 차이나는 인간의 믿음과 행함을 치고서 드러난다.
어떤 육도 자랑치 못하도록 입 띠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는 입막는 믿음이요 입막는 행함인데
인간의 믿음과 행함이란 혀 띠는 믿음이요 혀를 다룰수 길들일수 없는 행함이다.

(약 3:6, 개역)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 3:7, 개역)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약 3:8, 개역)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9, 개역)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 3:10, 개역)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약 3:11, 개역)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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