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전 9:57:56  김대식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가짜 휘발유를 파는 범인을 잡는 경찰들의 새로운 범행수법에 대한 대처법으로써 새로운 장비와 새로운 수사방식이 동원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옥에 넣겠다는 것이다.

법이 많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죄가 점점점 지능화 되고 복잡 다양으로 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죄에는 새로운 법이 따라 붙게 된다.

인간은 법 없이는 못 산다.

법이 없는 세상은 곧 경찰이 없는 세상이 되고
경찰이 없는 세상은 곧 범법자들만 난무 하는 세상이 된다.

여기서 예수님은 나쁜 놈이 된다.
법을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의문의 증서를 도말하신 분은 의문의 증서를 준 그 당사자 이다.단순히 도말 즉 찢으신게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 곧 육체와 함께 말이다.
율법에 저촉받는 그 육체를 찢어 버리셨다.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법 없이는 못 사는 인간에게 법을 없애 버리게 되면
무법 천지가 된다.

내가 지금까지 지켜보아온 목사들의 근심꺼리를 보게 되면
한결같이 그 걱정은 딱 하나다.

법 없어 질까봐 하는 두려움이다.
교회 법을 만드는 이유도 그러하다.
무질서가 되는 개판 5분전이 되면 그것처럼 발 동동 구르는
기가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기에 오른팔 왼팔로써 장로들까지 그 정치세력에 합류한다.
패거리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힘의 우위에 따라 왕따가 생기고 집권세력이 생긴다.
이거 농담이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랬고 오늘날 교회는 정치세력과 동일하게 움직인다.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왕따받는 자들도 세월에 따라 뒤짚어지면 또 다시 가해자 세력으로 변모하고 만다. 그래서 법이 곧 힘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더 지능화되고 복잡다양하게 확장 증식하게 된다.

법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세력 즉 힘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그러면 취미생활인 정치를 못하게 된다.

두 세 명이 모인 곳에서 하물며 힘 과시(자랑)가 있는데
여러 명이 모인 곳에서 큰 소리 칠 줄 모르게 되면 그거 무슨 맛으로 살 것인가?
다들 부러워 죽는 판국에 그 부러운 자리에 누구든지 한 번 앉고파 난리다.

꼭 큰 소리를 치는 것이 힘이 아니라.
부드러움 조차도 정치세력으로써 힘 과시가 된다. (대중을 이끄는 인기요소가 된다. 또는 새벽기도로 히트 치거나? 레크레이션? 등등등)
이 부드러움의 정치는 주로 여성목사들에게서 나타난다. 마음 여린 남자 목사도 마찬가지다.

어째꺼나 저째거나
법이 없으면 곧 죄도 없게 되니
힘이 사라진다.
힘이 사라지면 인간은 죽는다. 죽어 !!!

(히 2:6, 개역)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히 2:7, 개역)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히 2:8, 개역)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히 2:9, 개역)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10, 개역)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1, 개역)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 2:12, 개역)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히 2:13, 개역)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히 2:14, 개역)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 2:15, 개역)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힘이 사라지는 세상을 인간은 원치 않는다. (이런 인간을 말씀은 창조한 적 조차도 없다.)
그래서 힘의 균형인 법 지키기가 정치적인 분배로써 잘 활용이 되기를 바란다.

법이 사라지면 죄도 사라지게 되니
목사는 죄인 없이는 돈 벌이가 안되고
경찰은 범법자가 없으면 경찰이라는 직업도 사라진다. 뭘 먹고 살겠는가?
판사는 법 어긴 자들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교사는 무지한 죄가 가득한 무식한 학생이 없으면 굶어죽는다. 학원문 다 닫게될 판국이다.
의사는 환자 없이는 못 산다. 병원이 사라진다. 병원 근처면 부동산 값에도 영향이 있는데?
경찰서, 학교, 병원, 교회, 자연공원 이런 주변 부동산 조건이면 에덴동산 아닌가?

(창 13:9, 개역)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10, 개역)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것이 메시아 사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인간의 메시아 사상
곧 마귀 없이는 못 사는 인간에게서
그 메시아를 부셔 버리는 메시아가 나타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임마누엘 전쟁이다.

그래서 인간은 예수님이 싫타

법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법이야 말로 가장 공평하다.

누구든지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고(자유의지)
못 지키면 징벌을 그 법의 가치에 따라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억울하다 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그 억울하다 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그 법을 가지고서 복음을 증거하신다. 그래야 유구무언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헌 옷(법) 앞에서 새 옷(새언약)의 진가는 반드시 헌 옷을 바리새인이 목숨걸고 사수해 주어야만 새 옷의 가치가 빛난다. 빛나는 옷인 영광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법을 없애 버리고 사랑을 도리어 공평화(보편화) 시키면 (팔 어긋맛기:탈주)

이것보다 가장 악한 것이 인간에게는 없다.

이 악하고 못때빠지고 사탄적인 사랑을
편파적이고 독재적이고 배타적인 이 악한 사랑을
미래완료로써 다 이루셨다 라고 외쳐 버리면 (십자가 들이대면)

인간이야 말로 그 가면이 벗겨져서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드라큘라)

십자가의 사랑이야 말로 그들에게는 지옥의 사자 이다.

이것 보다 세상에 억울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룩한 법 법 법 법을 달라고
법을 목숨걸고 지키겠노라고 법 사수에 평생을 소진한다.
법과 몸이 결탁 곧 일치화 되었기에 ...

(인간은 헌옷인 자기만의 예복을 천국의 혼인잔치에서 고집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일방적으로 편파적으로 주문제작한 집단 피 옷(새 언약 옷)인 천국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어둠에 내어 쫏겨 이빨을 갈며 억울해 운다.
이 인간의 몸 곧 율법적인 율법 아래에 갇힌 몸이 아닌 다른 몸 곧 새언약의 몸을 얻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법을 지켜도 지옥에서 이빨을 갈며 억울해 한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상황에서의 천국비유다.)

(마 22: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 22:2, 개역)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 개역)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6, 개역)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마 22:7, 개역)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 22:8, 개역)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마 22:9, 개역)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 22:10, 개역)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 22:11, 개역)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마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오로지 천국에는 십자가의 사랑만 있을 뿐이다.

(롬 7: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오로지 악마의 세계이기에 정죄함 뿐이다.
(또 생명의 성령의 법 이라고 성경말씀에 적혀 있으니
반드시 법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자들이 있다.
성령이 지킨다는 뜻이다. 이런 육체의 소욕을 성령의 소욕을 매일 매일 쳐 버린다.

그래서 나오는 기도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살려주이소마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저 그저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 뿐이고
반대로 거봐요 법 주니까 저 법 잘 지키잖아요 라는
성전 안에는 반드시 두 기도가 대립되어 있다.

(눅 18:10, 개역)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어 그러고 보니 누가복음은 희년이라는 도저히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들에게 보편적인 집단성으로써 성령이 요엘서처럼 부어지듯이
동시에 심판이라는 보편성으로써 영원히 철두철미하게 가르는 의미이다. 누가복음이 더 심하다. 인간좋으라고 주어지는 구원은 없다. 이 지독한 사랑으로 철저한 단절성인 건널수 없는 강이다. 그 간격을 더욱더 벌려버리는 찢어버림 이다.
마태복음만 유대를 구석 구석 두 조각 내겠다는 철저한 가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누가복음에서는 이방세계를 구석 구석 두 조각 내고 전지구 전우주까지 주의 주 되심을 이루기 위해 구석 구석 빈틈없이 피의 십자가를 들이대시겠다는 무서운 취지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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