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2011년 3월 13일 일요일 오후 3:13:36  김대식


(막 1:3, 개역)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요 1:23, 개역)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어머니랑 대화를 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주님이 대화를 하자라고 다가오심은 곧 변론하자 나랑 따져보면서 토론하자 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변론이 바로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라는 선지자에게 주어진 메시지 이다.

예수님의 길이 울퉁불퉁 협곡이 많은 골짜기의 길이다.
그 길을 선지자는 평탄케 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즉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쉽게 편하게 만들라 라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어떤 누구도 앉을 수 없는 매끄러운 자리로 만들라 라는 뜻이다.

그런데 선지자 라고 해서 그 길을 예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하시겠다는 취지이니 너는 그것을 목격하고 외치라 라는 뜻이다.
증인이다.

그럼 그 평탄케 된 아름다운 길은 무엇인가?

바로 선지자란 예수님의 길을 미리 딱고 길을 낸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죽음을 더욱더 재촉 하도록 기름 빠다 발라서
감히 그 길이 너무 너무 윤기나게 아름답고 매끄러워서
그 빈자리에 아무도 못 앉도록 만들라 라는 뜻인데
아무도 못 앉도록 만들려면 싫어하는 첩경을 만들면 되는데
너무 너무 윤기나게 만들고서는 아무도 못 앉게끔 하라 라고 하니
이 이중적인 모순의 길을 선지자는 신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울퉁불퉁한 그 길에 홈페인 곳에 선지자 자신의 죽음의 시체를 얹고서
그 위로 주의 마차가 스무스하게 부드럽게 지나가게 하고
또 한 선지자가 뽈록 튀어난 언덕의 산을 자신이 다아나마이트가 되어서
언덕산을 터트려서 산을 깍아내어서 주의 행렬이 스무스 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시체로 깔리고 폭파물로써 설치되어 깍아서
선지자는 주의 길을 매끈하게 평탄게 하는 것이다.

즉 소모품이다 라는 뜻이다.

이 영광 스러운 일에
선지자는 이 일 자체가 가로질러버리는 일인데
자기 것을 챙길 여유조차도 주지 않는다고
투덜 대면서

열심히 특심인데 나만 남았다고 따진다.

그런데 방금한 이 일이 무엇인줄 주님은 7천명을 남겼다고 채널돌리기 가로지르기 탈주를 보여주신다.

7이란 이미 완료인데 부족함이 없는 완료인데
왜 뭔가 잘못 되었는냥 부족하다고 미완료이다 라고 여기느냐

1-6일 의 연장선의 영속성이 7일이 아니라 완전히 딴판으로 분리된 날이 7일이다.
이 7일을 위해 1-6일의 날들은 가로지름 당해야 한다.

즉 없어도 된다.

7 안식 곧 예수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평탄(탈주, 가로지르기)케 하기 위해 소모품 자체가 되어
소모품 자체가 잉여 덩어리 가로지르는 사건의 부품 또는 기계인데

그 기능만 하면 될 일이지
자신의 눈으로 영 돌아가는 일의 방식이 자신의 계획과 다르다 라고
엑스트라다가 영화감독에게 따진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변론 대화 하자 라고 하신다.
즉 대화 자체가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 사고방식은 무조건 대화도 필요도 없이 그냥 찢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찢김 당하고 아 그렇군요 나 아니요 주님이 맞네요
진작 그래 말하시지 라고 찢겨 보니
자기 기능을 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삐짐은 삐짐을 찢으심으로써
제자리로 맡은 기능을 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길을 예비코자
죽음으로써 카페트를 까는
우리 껍데기가 이렇게 까지 쓰여진다는 자체가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그 영광에 참예케 해 주시니
(사실은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실제로 없다. 로봇 형사 가제트는 그저 사건의 들러리로 나올 뿐이고 정작 해결사는 꼬마 여자아이가 다 해결하듯이. 예수님이 사실을 다 해결해놓고서는 그 영광에 우리를 참예 시킬 뿐이다.)

그저 그저 그저 오직 감사가 아닌 것이 없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 소리는 없다. 안보인다. 그런데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없음]으로만 취급 받는 소리야 말로
생생하게 뼈속까지 휘벼파들어가 마음을 찢는다.

예수님의 죽음(십자가)은 온 세상을 다 덮어버리는 세밀한 음성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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