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매로 알리라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오전 9:59:33   김대식


(마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눅 6:44, 개역)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계 14:4, 개역)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열매를 통해 나무를 알수 있다.
즉 나무는 약속이요 그 약속의 생산물이 약속의 열매이다.

지난 번에 여자의 기능 곧 천국에는 남자 여자 라는 구분이 없다.
이 땅에서 즉 은사로써 주의 주 되심을 증거하기 위한 기능으로써 주어진 여자라는 기능은
두 번 결혼 한다는 의미이고
반드시 한 번의 육의 남편과의 이혼을 거친 후에 새로 두 번 결혼으로써 새신랑과의 신부가 되는 것이 여자의 기능이다.(마리아는 첫 번째 남자 요셉과 실패한다. 졸지에 돌삐맞아죽을 판국인 두 번째 남편인 약속의 씨앗을 통해 두 번째 남편의 정체가 발각당한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늙은 엘리사벳 또한 두 번째 남편으로 씨앗을 가졌다고 하니 냅따 쫏아가서 확인해 보니 두 씨앗이 서로 알아보고 발길질을 한다. 복되도다 복되도다. 복받은 태여? 육은 지금 저주상태인데, 약속으로는 복받았단다. 두 세계를 가르는 하늘의 세계를 보여주는 경계선으로써의 기능(은사) 때문이다. 약속이라는 새남편을 늙은여자든 처녀든 상관없이 육의 단절된 방식인 전남편의 단절로써 상대적으로 약속이 진행이 된다. 다윗자손이 다윗의 주가 된다는 원리 또한 그러하다. 요셉은 자꾸 약속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육 말고 약속을 가지고 오란다. 첫 번째 사랑하는 여자의 아들 베냐민을 담보로 잡는다. 두 번째 육의 첫열매인 장자 르우벤의 아들이 담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제물과 차이나는 더 나은 제물인 유다의 며느리 다말에게서 취한 열매 곧 약속의 열매가 담보가 된다. 이 아이가 세 번째 약속을 입은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결탁이 되어서 그 총 세가지 담보물을 깔고서 요셉이 죽음을 구체화 하고 너희가 죽인 이 요셉이 용서로써 그 죽음도 이겼다고 약속을 구체화 한다. 그래서 뺑뺑이 신나게 돌린다. 게속 뺑뺑이 이것이 광야에서 주님이 3가지 담보물을 언약궤에 담는 방식이다.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이 약속의 행함과 vs 육의 행함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나누임 이다. 이것으로만 거룩이라는 영광을 받으신다.)

한번의 결혼으로 족해 버리고 더 이상 결혼하지 못하는 여자는 육의 여자이기에 계집종 하갈의 언약에 속한 여자다.

그러나 하늘의 어머니로써의 언약이 주어진 여자는 이 땅에서 두 번 결혼 해야 한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첫 번째 남편의 아브라함의 씨앗이 아니요, 두 번째 남편인 약속의 씨앗이 바로 이삭이다.
열매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즉 약속의 아내가 바로 사래다.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20, 개역)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의 행함논쟁은 간단하다. 열매를 통한 나무 논쟁으로 벌어져야 하는데 꼭 지들 열매들끼리의 싸움이 되니 보호자 싸움이 드러나지 않는다.

행함 자체인 결과물인 열매를 통하지 말고
그 행함의 출처인 나무를 추적해 들어가면 된다.

구약에서 사래는 죽은 태 이다. 육의 남편 아브라함에게서는 생명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롬 4:1, 개역)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개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역)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에게서는 생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내 사라의 죽은태이다.
믿음도 나올수 없다.

육과 육의 결합인 하갈에게서는 가짜 생명과 가짜 믿음이 나와서 의도적으로 퍼트리지만

정작 약속이 나올수 없는, 생명이 나올수 없는 아브라함에게서는 단절 곧 할례 곧 세례라는 죽음을 거쳐서 연합이 나와야 하기에

죽은태로써 육의 단절을(고자와 불임여성) 통해서 약속이라는 남편의 개입을 곧 생명의 개입을 아벨이 더 나은 제사를 요청(기도)하듯이 나는 죽었기에 생명을 잉태할수 없기에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마 7:6, 개역)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 7:7, 개역)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개역)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9,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마 7:10, 개역)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 개역)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2, 개역)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3, 개역)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개역)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5, 개역)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개역)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개역)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개역)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개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6, 개역)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8,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마 7:29, 개역)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래서 낳은 두 자식이 두언약으로써 서로의 아버지가 틀려서 싸운다.
이스마엘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이삭의 아버지는 약속이다.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하갈의 남자는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사래의 남편은 약속 곧 예수님이다.

이 두 싸움을 통해서 극과 극으로 갈라버린다. 간격을 영원히 벌리는 방식이
이 두 자식의 열매를 퍼트려서 과연 누가 가시나무이고 누가 좋은나무인지를 가려내고자 하는 취지이다.

자꾸 현대의 행함론자와 개혁주의는 이것을 실천의 문제로 인간 쪽으로 끌어당겨 일치화 시켜보지만

정작 말씀은 말씀 스스로 이루시기에 자기숙제에 정신팔린자는 주님의 숙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목격을 할 수가 없어서 나중에 딴소리하는 고집만 내세운다.

과연 누가 부활이라는 약속의 자녀이고 그 열매로 그 나무가 좋은나무인지를 말씀이 스스로 이루시는 그 행함을 봐야하는데 인간은 육의 행함에 정신팔려 숨어서 은밀히 행하시는 그 비밀을 알 길이 없게 되어 있다. 눈이 밝아져 버렸다. 자기만 쳐다 보기에 자기에서 눈을 뗄수가 없다.

자 이렇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두 언약의 열매들의 충돌이 가시화 됨을 통해서

예수님 또한 같은 노선의 사건으로써 등장한다.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 나무를 드러내기 위해서
말씀 해석의 차이성을 드러낸다.

결국 아버지가 틀리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행위책에 해당 되는 자는 행함을
아버지가 생명책에 해당 되는 자는 생명을

그래서 예수님이 가는 곳 마다 지진이 나서 두 갈래로 땅이 갈려지듯 분열이 일어난다.
아브라함을 영접하는 자는 복이고 거부하는 자는 저주이듯이
그 복의 기준이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듯이
약속의 기준으로써 두 패로 갈라버리는 생명의 기준을 제시하지만(이것을 거룩-분리작업 이라고 한다. 영광이다. 나누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1-6일 날과 7일째를 나누심)

이 약속의 행위 자체를 싫어하는 행위책에 씌여진 자는
자신의 행위로 융합술을 부려서(바벨탑의 특징) 갈라짐을 면하자 흩어짐을 면하자 라는
약속이 벌리는 전쟁, 거룩한 전쟁, 그 자체를 거부하는 평강 평강을 외친다.
아버지라는 뿌리가 누구인가를 가려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동일하게 예수님이 그 거룩한 전쟁의 노선에서 십자가 전쟁을 벌리신다.

누구의 열매인지 새판대기로 새롭게 가려내는 방식이 바로 십자가 전쟁이다.

십자가가 잉태하여 낳은 자식이 아닌 자는 다 거짓이다.

죽은태와 고자로써의 이 부정적인 십자가가 수고하여 낳은 자식 열매가 아니다면
이 부끄러운 십자가를 외칠수가 없다.

이 땅의 사람들은 땅과 같은 성격이다.
땅을 기반으로 해서 땅을 원천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늘의 자녀는 이 땅의 철거명령을 받은 철거반들이다.
땅의 사람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출처가 다른 자들이다.

땅을 거들내러 오신 십자가 라는 심판 기준을 저들은 거부한다.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 아비에 그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들로부터 미움받지 못하는 약속의 자녀는 가짜다.

미움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땅의 열매인 에서는 미워하기로 태어나기도 전에 작정이 되어 있고
하늘의 열매인 야곱은 사랑받기로 태어나기도 전에 작정이 되어 있다.

이 두 사람 자체를 가지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들의 나무가 다르기 때문에

나무의 진위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모든 성경말씀은 마귀 보란 듯이 펼쳐지지
인간을 위해서 주어진 말씀은 없다.

오직 마귀만을 겨냥한 말씀 뿐이다.

아버지(아비) 누구인가?
생명나무인가? 선악나무(행함나무)인가?


ps)


(롬 7: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롬 7:2, 개역)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롬 7:3, 개역)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롬 7:4, 개역)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7:5, 개역)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롬 7:6, 개역)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전남편 율법으로 부터 이혼상태가 아니면 새남편 새언약과의 결혼은 있을수 없습니다.

양다리 걸쳐본들 광야에서 탈락입니다.청함을 받은 자는 60만명이였지만 택함을 받은자는 1명입니다.

99마리 양에서 빼내기(마이너) 를 통해서만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의미가 드러나는 겁니다.

그 잃어버린 단 한마리의 차이나는 양과 그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와의 관계가(포도나무 와 가지 - 열매)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겠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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