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 돼 ~~~~

마가복음 2011. 8. 19. 21:38

안 ~ 돼 ~~~~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2011)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영화정보 > 개봉예정영화 >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58481&t__nil_upper_mini=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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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SF, 액션, 드라마 | 미국 | 106 분 | 개봉 2011-08-17 |  홈페이지국내 www.apeswillrise.co.kr 제작/배급20세기폭스 코리아(배급), 20세기폭스 코리아(수입) 감독루퍼트 와이어트 출연제임스 프랭코 (윌 로드맨 역), 프리다 핀토 (캐롤라인 역), 앤디 서키스 (시저 역), 브라이언 콕스 (랜던 역), 톰 펠톤 (도지 역)  

줄거리

유인원 인류 지배 역사의 비밀!
SF 영화의 전설 ‘혹성탈출’ 시리즈의 기원이 마침내 밝혀진다!!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치료약 개발을 위해 유인원을 이용, 임상시험에 몰두하는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 실험에 참가한 한 유인원에게서 어린 ‘시저(앤디 서키스)’가 태어나자 연구를 위해 그를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저’의 지능은 인간을 능가하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남자와 시비가 붙은 윌의 아버지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인간을 공격한 ‘시저’는 결국 유인원 보호시설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시저’는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자각하면서, 유인원 집단과 그들을 적대시하는 인간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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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서

일단 기대 이하의 재미다. 예고편에서 나온 호기심 가득한 장면은 역시나 본 영화에서는 그 장면이 전부다.

작년이였던가? 스플라이스 (Splice, 2009) 를 보았는데 약간 업그레이드 된 듯한 느낌이다. 많이 업 되었으면 재미있을텐데 쬐께 업 되어서 그냥 반복된 느낌이였다.

또 약을 먹고 20% 밖에 사용하지 않는 뇌를 100% 활용하면서 벌어지는 천재가 되는 것을 다루는 영화를 리미트리스(Limitless, 2011) 얼마전에 봐서 그런지, 그게 그거다 라는 다 비스무리한 영화구나 라는 생각이였다.

이 영화는 혹성탈출 시리즈의 처음 상황을 묘사했다고 했지만 별 의미는 없는 것 같고

그저 하나 건진 것은 참 재미있게도 동물에게 얼굴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물론 사람 연기자이고 원숭이 가면인지 아니면 분장인지 또는 그래픽으로 컴작업 해서 이겠지만

신기하게도 인간의 언어를 표출하게 되니까 갑자기 머리 뿐인 원숭이가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어 곧 기호를 가지게 되니 표정이 생기고 그 표정은 결국 선과악을 행사하는 그야말로 괴물이 되고 말았다. 수화를 해도 정작 수화를 하는 손 보다 그 얼굴 표정에 더 많은 언어기호가 표출되고 있고 시선은 그 얼굴에 집중된다.

쓸데없이 알게 된 선악 때문에 인간이 괴물이 되었듯이
똑같이 쓸데없이 보암직 먹음직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선악의 지식을 알게 되니
원숭이도 더 이상 동물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버린다.

오죽 하면 안 돼 ~~~~~~~~~~~ 라고 외칠까?
(우리도 인간과 같은 괴물이 될 수 없어 안 돼 ~~~~ 노 ~~ 우 no  ~~~ 인간 언어가 터져나온다.)

당나귀가 발람 선지자가 못 보고 있는 천사를 보고, 심판을 보고 안 돼 ~~~~~~~ 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http://www.woorich.net/board/index.php?doc=program/board.php&bo_table=amworship&sselect=wr_content&stext=%B9%DF%B6%F7&soperator=0&page=1&wr_id=1181
 주를 못 본다(눅 13:31-35) 110807 )

심판을 의식하고 당나귀는 주인 발람선지자에게 맞아죽더라도 심판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심판 속에서 버티고 있다. 매 맞음으로써 버티고 죽음으로써 버틴다.

안 돼 ~~~~~~~~~ 라고 세 번이나 주인 발람선지자에게 맞아가면서 버티고 버티는 것이다. 심판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베드로 에게 꼬끼오 라고 닭이 안 돼 ~~~~~~~~~~~ 라고 세 번 외치는 것이다.
베드로가 자기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을 닭이 가로막고자 말이다. 사람의 일, 사탄의 일, 행함을 추구 하는 것을 비천한 닭이 막는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는 그 잘나고 잘난,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는 다짐. 남들은 다 버려도 나 만큼은 네버 네버 절대로 안 버릴 거야 !!
(때려죽어도 안막살겠다고 우기고, 남 용서 7번 하겠다는 그 행함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세 번의 매맞는 당나귀의 버티기, 가로막기, 닭 울음 세 번, 희생안타(밧세바 우리야 이름없는 아기) 도장 도장끈 지팡이로 불속에서 시아버지 유다를 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안버리고는 못배기도록 예수님께서 섭섭하게 넌 날 세 번 닭 울기 전에 부인 할 것이다. 라고 하신다. 베드로를 막겠다고 고맙게도 보잘 것 없는 부정성의 어린아이처럼 무시받는 닭을 예비하시겠다는 것이다. 닭에게 고발 책망 지적 당하도록 말이다.

그러든 말든 끝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을 죽음으로부터 끄집어내고자하는 행함의 길을, 자기 원하는대로 펼친다. 사람의 일을 펼친다.

그러나 미천한 미물인 닭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인간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그 심판을 막고자 하는 행함, 그 착한 행함, 그 선한 행함을 펼치겠다는 것을 닭이 참으로 고맙게도 허물어 준다. 행함을 와르르 무너뜨려 준다.

마치 심판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해운대 라는 영화에서 파도가 육지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고 또 막고 하는 것이다.
(마침 이 부분이 생각나서 검색했는데 역시나 해운대 영화가 2009년 7월 이니까 그때 수요설교였는데 바로 딱 나왔다. 엥 개봉날짜도 똑같네
 http://www.woorich.net/board/index.php?doc=program/board.php&bo_table=wednesworship&sselect=wr_content&stext=%C6%C4%B5%B5&soperator=0&page=1&wr_id=687
  렘 5:19-25 (징벌 원인) 2009년 7월 22일 )


니가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떡하니 가로막고서 말이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또 마침맞게 노마니즘을 읽다가 점적 사유와 선적 사유에서
두 점을 찍고 그 사이의 선을 그어버리는 홈파는 사건을 보면서

이 영화에서 출애굽하는 동물감옥소에서 사건의 점을 찍고
그리고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이라는 세쿠아 숲이라는 자유의 땅 점을 찍어서 그 두 점 사이에 선을 쭈욱 그으면 사건의 선이 형성 된다.
(마치 모든 사건은 이 십자가 사건의 증식이요 반복이요 생산이다. 애굽-광야-약속의 땅 이다. 3일이라는 죽음의 광야의 간격을 어떤 누구도 못 좁히도록 벌려 놓는 것이다. 그 광야애서 심판이 덮치지 못하도록 부지런히 언약궤에 법궤에 증거궤에 원망을 담으신다. 가로막고 당나귀처럼 버티시면서 말이다.)

싸움도 요단강을 건너듯이 죽음까지 넘어서면서 이스라엘이 되어서
신과 싸워 이기는 군사가 되어

이들은 이제 혹성탈출 시리즈 내용처럼 인간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케 되는
인간을 노예로 삼는 주인이 되고 제사장 같은 존재가 된다.

물론 성경에서 인간 곧 모든 인간의 대표성인 유대인은 실패 한다.
(성공하면 큰일 난다. 그런데 바리새인 또는 오늘날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은 다시 성공하고자 시도한다. 당나귀를 여전히 패고 있고 예수님을 여전히 매로 때리고 있다. 두 점도 찍지도 못하는 주제에 행함을 우뚝 세우겠다고 안막살기를 기여이 건설하겠다고 ... )

두 점을 찍으면서 시작도 주님이요 종점도 주님이 찍으심으로써 예수님 홀로 그 두 점과 그 사이의 간격 3일을 벌려버렸다. 죽어도 산다 라는 의인의 믿음으로써 말이다.

행함을 차단하는 간격이다. 도저히 좁힐 수 없도록 베드로마저 꼬끼오 세 방에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다.

행함으로(안막살기로) 심판을 막겠다고 저주를 막겠다고 하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주님 쪽에서 가로막고 버티시는 것이다. 그 행함을 보기좋게 굴욕 당하라고 쭐꾸덕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 행함을 허물어 버린다. 죽음으로써 십자가로써 말이다.

그리고 처음도 주님이 하셨듯이 마지막도 주님이 하심으로써 시공간을 장악한다.
그러나 시간 안에 공간 안에 갇혀진 자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행함 뿐이기에
믿음으로 차단하고 가로막는 것이다. 심판에서 건지고자 말이다.
(야이로의 딸 사건에서 시차 문제, 오빠 나사로 사건에서 일부러 3일의 시간을 벌리는 문제)

그런데 거꾸로 심판을 인간 쪽에서 가로막고 있으니 웃기는 짖이다.
자기들이 상처를 치유하겠단다. 주님은 홈페임의 간격을 더 벌리시는데?

다윗이 왜 주께만 범죄 했사오니 내가 깨끗게 되었다 라고 했는가?

나의 행함으로는 (기도 회개, 금식, 마치 당나귀를 발람선지자처럼 3번 매 때리듯이) 그 심판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안막살기로 아기를 살릴수 없음을 알았다. 도리어 꺽으신 뼈로 기뻐했다. 그 간격 벌리심을 옳았습니다 라고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면 춤췄다. 왕이여 미쳤습니까 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이니 그 얼마나 특이한가?

도리어 그 꼬끼오 세 번이, 안 돼 ~~ 라는 당나귀의 외침이. 밧세바 우리야 장군 이름없는 꺽여진 뼈로서의 아기의 죽음 만이 상한심령으로써 심판을 막는 것이다. 패쓰 (넘어가다) 한다.

그것이 막 먹고, 막 마시고, 막 춤추고 이다. 막 뿌러뜨린 뼈가, 상한심령이 옳았다. 여디디야 여디디야 여디디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라고 참으로 뻔뻔스럽게 외친다.

안 ~~ 돼 ~~~~~~ 라고 가로막아 버티시는 것이다. 안 돼  라고 책망하신다.
성령이 안 ~~ 돼 라고 육의 소욕을, 인간의 행함을 책망하신다.

나의 믿음(신념)을, 나의 행함을 가로막는 그 십자가가 옳았습니다 라고 고백을
아니 하지 않을수 없음을 배제하지 못하는 것을 외치지 않고서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것이다. ㅋㅋㅋ (반드시 서울사람 만들고자 막으신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라는 그 심판이
제단 숯불을 내 입술에 대니 부정함을 깨끗게 하는 것이다.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누가 가로막으러 갈래? 저요 저요 제가 구원을 막 가로막겠습니다.
제가 당나귀처럼 저들의 행함을 막 가로막겠습니다.
제가 닭처럼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라고 막 울겠습니다.
귀를 못듣게 막고 눈을 못보고 감기게 하며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도록 고침 못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구원을 가로막는 십자가가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 쪽의 출발을 다 차단하고 오직 주님 쪽에서 출발하신 그 가로막기가 옳았음을 그 십자가를 외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철저한 단절성

(벧전 2:24, 개역)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리고 성령은
죄에 대해서 죽는 점 찍고 다시 3일만에 의에 대하여 살아나시는 점을 찍는 주의 주 되심을 외침으로써

심판이라는 바다가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다.

주의 주 되심인 십자가의 죽음 곧 십자가의 심판을 완성하심이다.

안막살기로 또는 행함으로 모조리 다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그 속에서 가로막고 버티는 십자가의 외침   안 ~~ 돼 ~~~ 
 
라고 당나귀처럼 우리한테서 매 맞아가면서 버티는 것이다.

그 가로막음이 십자가에서 죽으심 이다.

두 점 찍기 이다. 스스로 버릴 권세 그리고 3일 만에 스스로 다시 얻을 권세

유일한 선함은 이 두 점 찍기 뿐이다.
안막살기는 그야말로 악함이다. 자기도 살리지 못하고 남도 살리지 못하는
삥 뜯기 이다. 자기도 천국 안들어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하는 삥 뜯기.

(요 10:14, 개역)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6, 개역)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7,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8, 개역)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 보다 더 선할 순 없다.
이 보다 더 막살 순 없다.

닭이 막 울었 뿌린다. 베드로를 막기 위햐서 말이다.
당나귀가 막 말을 했뿌린다. 안 돼 라꼬 버틴다.

막죽어버맀뿌고 
막살아났뿌고

탕자에게 덮칠 심판을 가로막고 버티고자 십자가에서 막죽어버리시는 선하심
맏아들의 행함을 허물어 버리고자 아무리 맏아들이 아버지의 용서를 미워해도 다시 막살아나버리는 선하심

이 두 점의 간격을 영원히 벌려 버리신다.

행함을 차단하고자 말이다.

인간 자체를 가로막는다.


안 ~~~~ 돼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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