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터인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 위에 세워지는 성령의 전

2012년 3월 23일 금요일 오후 4:15:44  김대식


(행 1:8, 개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마음인 성령께서 일방적으로 전쟁을 선포 합니다.

만약 북한이 핵미사일을 쏜다 라고 하면 벌써 언론방송매체가 시끄러워집니다.
하도 많이 떠들어서 그런지 시큰둥해지기도 하지만 (거짓말인줄 뻔히 알기에 한 두 번 속은 것이 아니다 라는 태도여서)
그래도 직업상 또는 그것과 연관되어서 먹고사는 것이 걸려있는 자들은 의식을 안하고서는 안되는 겁니다.
오죽하면 남의 나라까지 신경쓰는 겁니다. 한국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들 나라와 백성이 신경쓰여서입니다. 저마다의 유익의 경계선에서 핵미사일은 그 사이 사이를 잘 건드려야 이슈가 됩니다 실컷 만들어 놓고도 이슈가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의 일방적인 전쟁 선포인 온 유대 예루살렘 사마리아 땅끝은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카든지 말든지

먹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소도 팔고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겁니다. 아예 씨알도 안먹히는 겁니다.

이것이 짐승세계 온천하 만국 구석 구석, 모든 시공간의 짐승권세 세력권에, 곧 온 유대짐승, 예루살렘 짐승, 사마리아 짐승, 땅 끝 짐승을 배경으로 하는 십자가의 전쟁입니다.

아무 반응이 없다고 주님은 이 전쟁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의 반응과 반대로 더 잘된 겁니다. 반응할까봐 걱정한 겁니다.

괜히 고침을 받으면 안되고 듣고 깨달을까봐 걱정하시는 겁니다.
핵미사일은 그 유익의 경계선을 신경망처럼 건드려야 반응을 하지만

십자가의 복음은 그 경계선 사이 사이의 신경망을 건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완료로 출발했기에 나중에 신경망 건드려져서 깨달아 지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것은 동방박사가 별을 따라와서
혹시 여기에 메시아가 태어나지 않았나요? 묻는 것과 같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고요한 한 밤 중에 다들 불끄고 자고 있는데
졸지에 캄캄한 밤에 온 불을 켜고서 소동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메시아 태어난 곳을 찾으라 라는 발칵 뒤짚어 지는 겁니다.

다들 아기 메시아를 찾는다고 잠도 안자고서 설쳐댑니다.

졸지에 마귀가 그럼 그렇지 눈치를 챈 겁니다.
몰래 온다고 하더니

400년 이상 선지자도 끊기고 그렇게 조용하더니만 결국 이제야 왔구만
찾아서 죽여라 라고 메시아가 오기 전까지 멀쩡하던 인간들이
발작을 하면서 미친 듯이 아기를 찾습니다.

이런 짐승들을 따돌리고서는 뒤로 몰래 빼돌려서
영광 받을 것 다 받고 동방박사를 돌려 보내버립니다.

도대체 동방박사는 말라꼬 그 먼길을 목숨까지 걸 정도로 위험한 곳을 찾아와서
딸랑 예물을 드리고 경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뭔가 대단한 서사적인 맛이 하나도 없는 별로 영웅적이고 신화적인 면이 하나도 없이
벌 떼 집만 수셔놓고 자기 할 일 끝내고 가버리고 무대뒤로 퇴장하는 식입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수심을 당한 벌떼 집은 심각합니다.

멀쩡한 인간들이 짐승같이 아기 메시아를 찾습니다.

자 이것이 묵시의 방식입니다. 개입입니다.

약속의 자녀만이 없음 취급당하고 불임여성이 되고 충돌로써 전쟁이 배치시키는 전쟁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적군의 예민한 신경망을 건드려서 메시아를 죽일려고 변모하는 짐승기계를 새롭게 창출해 내시는 겁니다.

이것은 유대 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도 해당되고 사마리아(유대인들이 피해다니는)도 해당되며 땅 끝(죽음의 세계)도 해당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전쟁을 펼치는 성령이 곧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강퍅한 자와 그 강퍅한 자로부터 빼돌리는 가구품 전리품까지

십자가의 각본대로 배치 되어야만 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지금 현대는 어떻습니까?

지금 현대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내려와도 무반응할 것이다 라고 서로가 믿고 있을 정도요
교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교회를 괜히 주님이 세우신게 아닙니다.

짐승의 터 위에서 세웠기에 아무리 무반응하고 노아의 때처럼 시집 장가 간다고 관심없어 한다고 자신만만해 지겠지만

그런 종말의 구조 조차도 주님이 짜놓으신 각본인 겁니다.

그래서 불을 질러 버립니다.

그재서야 인간은 아무리 반응하지 않을 거야 라고 우겨도 반응합니다.

고맙게도 주여 누구십니까? 라고 별을 따라오는 위험한 곳을 따르는 동방박사의 입장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짐승처럼 반응합니다. 왜 내 시집 장가 소팔고 밭에 나가는 일인 저마다의 일하는 것에 개입을 하느냐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사소한 것 하나 하나 세세히 심각하게 개입해서 반응을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종말의 영입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에도 시큰둥한 인간도
이 십자가의 영인 성령의 전쟁에는 아주 아주 애민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서는 못배기도록 하시는 것이 주님의 전쟁입니다. 곧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입니다.
듣고도 무반응해질 소식 같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로 반응을 나타내는고 하니
애굽이라는 그 당시 최고의 나라 오늘날로 치면 미국 러시아 중국을 초토화 시켜서 깡그리 박살낸 이름없이 빛도 없이 바람같이 나타났다 바람같이 사라진 잠행자 같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식에

40년동안 간담이 써늘해져 벌벌벌 떨고 있던 그 여호와가 왔다 라는 것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겁니다.

그런 여호와 이면 내 민족 내 나라도 단숨에 허무 곧 먼지로 만들어 버릴 정도이니
이제야 오셨군요 라고 자신의 죽음 자신의 심판 자신의 저주를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자체가
말도 안될 정도로 자신을 죽이러 온 성령의 군대를 맞이할 정도로 기쁜 그 정도로 예민하고 심각한 복음이다 라는 겁니다.

물론 아무도 무 반응에 비래 기생라합 혼자만 벌벌 떨면서 미리 항복합니다.
저는 이 빨간 밧줄 피 때문에 살지
제가 잘나서 잘 믿어서 소용없습니다.
이스라엘도 믿지 않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만 쳐다 봅니다.
제발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피를 신호로 기표로 흔적 싸인 표적으로써 도리어 이스라엘에게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아군 이스라엘 조차도 안 믿는 판국에, 적군 속의 한 이방인 여자, 적군 여자, 그것도 기생이 믿더라 라는 겁니다.
얼마나 막사는, 팔을 어긋맞게 하는, 그야말로 피 멋대로의 복음입니까?
유물론처럼 끈적 끈적한 피라는 물질이 인간을 도리어 자기물건 다루듯이 다루는 겁니다.
붉은 밧줄이 인간을 배치시키는 겁니다.

웃어라 동해야 라는 글을 올리고 바로 그 다음 회에 보니까 빨간 어린아이 옷이 주체가 되어 도리어 인간을 물건처럼 사건의 구조에 배치 시키고 있는 겁니다. 회장자리가 빨강옷에 좌우되는 판국입니다.

물론 마귀세계도 동일합니다. 돈이 인간을 죽였다 살렸다 합니다. 돈에는 칼도 생명도 없는데 희한합니다.

무능해 보이는 젖먹이 아기 때문에 평상시 멀쩡하던 인간들이 악마로 본색을 드러냅니다.
짐승으로 변모 합니다.

자 여기 주님의 믿음이, 심지어 그 믿음 싫고, [나]라는 인간의 믿음이 좋다고 해서 죽여버린 믿음이였는데 졸지에 다시 살아나버린 주님의 믿음이

참으로 뻔뻔스럽고 일방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멋대로 선언을 해서 배치시킵니다.

그래서 소동이 다시 벌어집니다. 짐승들로 변해버리는 인간은 이 소동 때문에 본색이 드러납니다ㅓ.

성령의 전쟁에 원수의 발등상이 되는 배경으로 일방적으로 삼아서 전쟁 선포를 하는 겁니다.

인간은 무시로써 일관해야만 합니다. 반응하면 자신만 피곤해 집니다.

이런 무시를 배경으로써 하는 것이 종말입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일방적인 전쟁선포로 시작하는 겁니다.
그것이 이미 다 이겼다 라는 식입니다.
(뿌뿌뿌 승리의 나팔을 성령 혼자 불고서 전쟁을 합니다. 역사를 무시하면서 미래에서 소급하는 식입니다. 전쟁 끝났다 우리가 승리했다 라고 선언하고 비로소 전쟁 시작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그런 식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반대라서 막아버립니다. 죽으시면 안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나 결과를 통보받는 식으로 우리는 짐승에게 갇혀진 자로써 그 전쟁 덕분에 빼내임을 당하는 전리품의 신세요,

그런 죄인이, 그런 괴물이, 그런 환자가, 이 분만이 참 의사다 라고 외치는 반응이 전리품으로써 목격자의 증언인 겁니다.


(수 2:3, 개역)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수 2:4, 개역)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수 2:5, 개역)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수 2:6, 개역)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수 2:7, 개역)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수 2:8, 개역)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수 2:9, 개역)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수 2:10, 개역)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 2:11, 개역)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수 2:12, 개역)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수 2:13, 개역) 『12절과 상동』

(수 2:14, 개역)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수 2:15, 개역)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수 2:16, 개역)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
(수 2:17, 개역)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수 2:18, 개역)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내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수 2:19, 개역)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수 2:20, 개역)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수 2:21, 개역)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수 2:22, 개역)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따르는 자가 돌아가도록 사흘을 거기 유하매 따르는 자가 그들을 길에서 두루 찾다가 만나지 못하니라』
(수 2:23, 개역)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와서 그 당한 모든 일을 고하고』
(수 2:24, 개역)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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