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죽음을 포기하는 죽음


예수님도 포기한 하나님의 자리 vs 절대 포기 못하는 인간이 따먹은 선악의 자리

(빌 2:5, 개역)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개역)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개역)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개역)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개역)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개역)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왜 에스더가 왕비가 된 것이 이 일을 위한 것이다 라고 할까?

우리가 어떤 자리에 놓여지는 것은 바로
이 일을 위한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신다.


아니 !! 저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고?

에이, 에이, 소경 된게 무슨 하나님의 영광 된 것이고!!

적어도 에스더 처럼 왕비가 되었으면 또 몰라 !

예수님 ! 농담 하시는 거죠?



저 사람이 세리가 된 것도, 창녀가 된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왜! 바리새인 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영광 받으심 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를

지젝의 말 처럼 즉 희생을 포기하는 희생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죽은 신을 위하여 라는 책에서 나온다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는 신앙, 죽음을 포기하는 죽음이라고 응용해 봤다.


왜 우리가 지금 있는 그 자리를 포기하는 자리로써 여겨야 하는 것일까?

소경이다고?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
문둥병자 이다고? 앉은뱅이 이다고? 창녀, 세리 다고?
마귀라고? 전혀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


이 자리를 포기하기 위해서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스로 높다 라고 여기는 자리는 때려죽어도 포기 못하는 자리가 되었기에
그야말로 이미 멸망 받았느리라 라는 자리가 된다.

괜히 붙잡았어 괜히 붙잡았어

자리는 옮기라고 있는 것이다.
목숨은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있는 것이다.

그 생명 조차도
보잘것 없는 목숨 조차도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 지금 당신의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아버지 자리?
자식의 자리?
목사의 자리?
성도의 자리?

한번씩 포기 해 버리자

그 자리에 누가 있는지를 보자


아버지를 포기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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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비켜 주세요 나의 심판 주를 보고 갈게요


심판 주를 보는 안식날


(요 9:1, 개역)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 9:2, 개역)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4, 개역)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5, 개역)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 9:6, 개역)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요 9:7, 개역)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8, 개역)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요 9:9, 개역)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요 9:10, 개역)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요 9:11, 개역)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요 9:12, 개역)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요 9:13, 개역)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요 9:14, 개역)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요 9:15, 개역)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요 9:16, 개역)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요 9:17, 개역)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요 9:18, 개역)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요 9:19, 개역)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요 9:20, 개역)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요 9:21, 개역)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요 9:22, 개역)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요 9:23, 개역)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요 9:24, 개역)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요 9:25, 개역)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 9:26, 개역)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요 9:27, 개역)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요 9:28, 개역)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요 9:29, 개역)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요 9:30, 개역)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요 9:31, 개역)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요 9:32, 개역)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요 9:33, 개역)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요 9:34, 개역)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요 9:35, 개역)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요 9:36, 개역)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요 9:37,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요 9:38, 개역)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요 9:39,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 9:40, 개역)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요 9:4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당황하셨어요? 바리새인님

(요 9:32, 개역)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저도 많이 당황 했습니다

창세 이후로 본적도 없는 심판주를 만나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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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은 내가 우상임을 지적 받는날


우상의 날 vs 주의 날




관계성의 날이란 내가 약속(언약) 아닌 것에 자꾸 마음이 가 있는 것을


주님께서 자꾸 목을 꺽어서(자기부인) 진짜로 봐야 할 것을 보도록 하시는 날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날인가?

사생아가 아니기에 매 맞는 날이 있다는 것!

이것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아닌
요나의 표적만을 보여주시고자 하신 예수님 자신의 날이다.

나의 우상성(자기를 위하여) 때문에 예수님 마저도 이용해 먹을려는 그런 나를

지적 할 줄 모르는 주의 날은 그야말로 우상의 날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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