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을 없애버리는 예수님


(눅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눅 13: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3,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게 되자
저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도피성이 없어서 저주받아 죽게 된 것이다고 한다.

또 제사의 제물에 유대인의 피가 빌라도의 만행으로 인해 묻게 되자
왜 우리에게 피할 바위, 피할 도피성이 되어 주지 않는 겁니까?

제발 빌라도 좀, 손 좀 봐주세요 라고 한다.

다 도피성이라는 복과 도피성없음의 저주에 대해서 
유무를 따질 때(유대인 나치학살처럼)

예수님은 나도 빌라도 손에 죽으러 왔다고 한다.

즉 억울한 일을 해결 해 주겠다는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빌라도를 더욱더 팽창 확장 시켜서
그 빌라도 손에 예수님 본인도 죽으러 왔다고 하신다.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것처럼 ...

이것이 진짜 도피성 되신 예수님의
가짜 도피성 없애는 방식 곧 십자가다.

이 어리석은 십자가의 지혜를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미련함으로 남도록 하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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