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내 돈 띠먹고 도망간 놈을

의도적으로 옆으로 지나가게 한다.

일만 달란트의 용서가 다 날라가 버린다.

왕이 모르기에 마음껏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었는데

친구들이 고자질을 할 줄이야???


반드시 이 둘이 한 세트가 되어야 용서가 우발적으로 돌출된다.
용서란 심판이요 단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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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성? 우연이라는 의미로 여태껏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책에는

이 우발성을 비필연성으로써 필연이 아니다가 아니라

필연의 초과잉을 비필연성으로써 우발을 언급했다.

아 맞구나

철저한 계획의 계획 ; 철두철미한 초과과잉 필연성이 우발성이다는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용서는 의도적으로 돈 띠먹고 도망간 자를 옆으로 지나가게 한다.

왜 하필이면 일만달란트를 탕감 받았을 때 일까?

인간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심판이 목적이다.

곧 십자가의 용서라는 우발성(필연의 초과과잉) 때문이다.

철두철미하게 예수님의 피만을 준비했고
다른 것을 알지 않기로한

하나님의 믿음이다.

인간의 믿음은 이 예수님의 믿음에 다 실족하여 걸려 넘어져야만 할 뿐이다.

안 걸렸다고?

걸려들면 피가 유통이 된다.

피 값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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