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트라우마


토탈리콜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기억 편집 기술이 현실화 된다는 뉴스를 봤다.

이미 바벨탑을 역청과 벽돌로 쌓을 때부터
기술은 몸 속으로 들어온 셈이다.

선악기술 말이다.

기술이 악용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정신병치료로
올드보이처럼 최면을 걸어서
그 부분을 삭제시키듯이
기억을 삭제하면
정신병이나 그로 영향받는 몸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겠다는 취지로
기술이 상용화 되는데는 10년도 안 걸릴 전망이라고 한다.

마귀는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의 계획을 몰래 엿듣고서는 반란을 일으켰다.

사실은 일부러 엿듣는줄 알고서 흘려보낸 정보이다.

아들의 신부를 창조물 중에 가장 미약한 인간을 자신의 신부로 삼겠다는 계획이였다.

여기서 천사는 반발하면서 반란을 벌린다.

그 하늘에서 벌어진 전쟁을 이 땅에서도 가시화 하는 것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묵시전쟁 이다.

그러나 마귀는 이것을 모른다.

그것은 신부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들의 사랑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지금도 마귀는 성도를 고소 한다.
모든 신부를 없애버리면 자신이 신부가 될 것이 아닌가?

십자가의 자작극이다.

그래서 일곱 신부를 고소하는 장면과
(고소 하라고 일곱 교회의 허물을 들추어내신다. 미끼를 안 물고 싶어도 물수 밖에 없다.)

그 일곱 신부를 미끼로 삼는

창세전의 전쟁을 다시 재 반복하는 것이 계시록이다.

계시록은 일곱 교회가 잘났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귀로부터 매일 매일 고소 당할때만이 일곱교회가 이뻐 보인다.
자신의 피의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모든 허물을 덮는 피를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마귀는 이 간격을 넘어 설수가 없다.

고소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그 고소 당할 꺼리(십자가)를 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끝까지 법(선악)을 쥘 수 밖에 없고

성도는 법이 아닌 고소당하는 자리에 놓여서
오로지 긍휼만을 바랄 수 밖에 없다.

오히려 그 긍휼을 바라는 모습이 
더욱더 마귀를 열받게 하는

주님의 십자가의 용서만을 바라는 믿음이다.

주여! 맞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개에게 진주를 던짐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살지 않습니까?

(막 7:27,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8, 개역)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 15:22, 개역)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개역)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개역)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개역)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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