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용서) 되기, 단절 되기, 차단 되기.
7번 용서하지 마시고, 7에 70 용서(남은자 7천명)되세요
얼룩을 제거할려고 했던 바울이
도리어 얼룩이 되어버렸다.
그림을 망친다고 스데반이라는 얼룩을 제거할려다가
도리어 본인이 얼룩이 되어서
그 얼룩이 전체 그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반대로 바울이라는 얼룩을 제거할려고 아무리 유대인들이 애를써도
도리어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얼룩은 퍼진다. 누룩보다 더 심하다.
바울 본인도 죽고싶어도 죽을수 없다. 얼룩 역할을 톡톡히 해야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라는 용서는 그야말로 얼룩이다.
왜? 내가 7번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데
도리어 내가 7에 70을 용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허걱 ! 보통 골치 아픈 걸림돌이 아니고 무엇이랴?
뭐 내가 7에 70이라는 즉 무한대로 용서받아야만 하는
그렇게도 나쁜놈 중에 나쁜놈
죄인 중의 괴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야?
그 정도로 용서를 받아야 할 나쁜놈이라고? 내가? 왜? 내가? 왜?
십자가에서 고개 돌렸잖아
싫어했잖아 얼룩을 제거할려고 못박아라 못박아라 미워했잖아
그럼 반대로 7번 8번 용서를 많이 베푸는 자가 되길 좋아했잖아
이단을 척결하는 내 열심히 특심이다를 좋아했잖아
그거 예수님이 눈꼴시러 못보고자
직접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러 이 땅에 왔잖아
어딜 감히 용서를 세워야 할 판국에
썩을 것을 세워?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결국 내가 7번 용서하겠다는 것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것을
가로막고 꾀는 것이다.
그 정도로 무시 받아야 마땅하다.
나의 사랑은 차단 당해야 한다. 단절되어야 한다.
그 반대로 7에 70이 덮쳐져야 한다.
그래서 나쁜 놈 중에 나쁜 놈
죄인 중의 괴수 만들기가 성령의 유일한 숙제이다.
이미 이미 이미 십자가의 용서이기에
그 십자가의 용서에 접붙이고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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