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 열매 말고,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자식 내놔라!! 그가 나보다 옳도다!!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사랑의 폭력성)

 


(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21:18, 개역)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21:19, 개역)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1:20, 개역)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21,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1:22, 개역)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4:32, 개역)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4:33, 개역)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24:34,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24:35, 개역)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24:36, 개역)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7, 개역)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11:12, 개역)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1:13, 개역)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1:14, 개역)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1:15, 개역)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1:16, 개역)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1:17, 개역)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1:18, 개역)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1:19, 개역)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더라

(11:20, 개역)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11:21, 개역)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11:22,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11:23,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1:24,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1:25, 개역)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6:44, 개역)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13:6, 개역)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13:7, 개역)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21:29, 개역)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1:48, 개역)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열매 카면 무화과 나무 비유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침에 어머니께서 집 마당에 있는 나무들과 꽃 야채들에게 물을 주시고나서는

아침식사때

 

참 신기하지?

 

뭐가요?

 

물을 달라고 저렇게 흔드는 것 보니 정말 신통방통이다.

 

그게 그렇게 보입니까?

 

 

뭐 하긴 나무들과 대화를 하고 집에 날라들어온 새들과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께서

그렇게 보이는게 당연하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어머니 그거 반대로 보신 겁니다.

 

어머니께서 화분에 심은 딸기나무의 딸기열매를 손자인 조카와 그리고 아들인 저에게 줄려고 빨갛게 익을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새들이 와서 먹으니까 얼마나 속상하셨는지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새들이 또 먹을까봐 따서 내어놓았지 않았습니까?

 

즉 나무와 식물들이 물달라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게 아니라

도리어 어머니께서 열매 내어놓으라고 하셔야 합니다.

 

내가 뭐 예수님이가 열매 내어놓으라고 하게?

 

그러니 반대로 보신거라니깐요

 

불교의 땡중들도 똑같이 자연의 신비한 모습을 보고서(스피노자)

하나님을 찬양하듯이

생명의 신비함에 놀라고 감탄합니다.

그리고 그래? 물달라고? 그래 알았쩌쩌용!! 물 줄게~~~~

 

이것은 누구나 보통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때도 안 되었는데 무화과 나무에게 열매 내어놓으라 라고 했는데

내어 놓지 않으니까 저주해 버리고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베드로는 충격먹었습니다.

 

왜냐 베드로가 어머니처럼 그런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는 대표성으로 언급이 된 겁니다.

 

모든 인간 특히 유대인을 대표한 겁니다.

 

어머니처럼 또는 땡중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접근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곧 종말로 접근합니다.

열매로 접근합니다.

 

분명히 때가 되지 않았다고 언급하시면서

자신 스스로가 모순 됨을 자신이 도리어 밝히면서 언급합니다.

종말은 그야말로 부조리요 모순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처럼 자기투사로 그 식물이 물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사실은 무화과나무처럼 열매 없으면 너희들은 나처럼 저주받아 죽어 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유대인들 전체가 하나님을 마치 계집아이의 인형처럼

자기마음을 투사시켜서 가지고 노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해와 달과 별은 서로가 서로에게 여호와의 지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천문과학자들이 들으면 비웃지요

 

식물학자들이 예수님의 무화과저주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습니다.

 

그런데 밥상 위에 올라오는 저 먼 바다에서 잡혀서 내 식탁의 내 입속으로 들어오면서

이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열매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라 라고

이들은 허무한데 굴복하면서 우리에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또한 자기투영의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기에

깜짝 놀란 겁니다.

 

즉 어찌 말라 죽었느냐고

사실은 자신의 투영 거울이 깨진 겁니다.

거울 놀이로 반사시켜서 계집아이 인형놀이처럼

하나님이라는 인형

예수님이라는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진짜 예수님이 그 인형을 찢고 그 거울을 깨뜨려 버리니까

놀란 겁니다.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그 다음 너 차례이다 라는 겁니다.

 

다윗이 율법으로 네 배나 갚아라 라고 율법으로 자신을 카바합니다.

그 거울 깨뜨립니다.

 

그것은 다윗의 니 생각이고 니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전해집니다.

다윗의 자기투영 거울은 깨집니다.

 

진짜 여호와는 다윗이 붙잡은 거울놀이가 아니라

 

3일 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열매를 주시겠다는 선물입니다.

 

열매 곧 3일 만에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진짜 열매입니다.

 

가짜 열매 가짜 거울 다 그 앞에게 깨어집니다.

 

그래서 3가지 물증은 가짜 물증을 넉넉히 이깁니다.

 

회개 눈물 금식이라는 가짜 투영물을

 

밧새바의 죽음, 우리야의 죽음, 이름 없는 아기의 꺽으신 뼈로써

주님이 더더욱 반칙 중의 반칙으로 카바해서 덮어줍니다.

 

그 따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운 옷이 아닌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피 옷의 가죽옷으로 넉넉히 입히시는 겁니다.

 

아무도 힐 문 할 자 없도록 말입니다.

 

3일이라는 부끄러운 물증이 잡히도록

웃사꺼리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때도 되지 않았는데 열매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본인이 적어놓고

본인이 그 웃사꺼리를 감수하도록 유도하시면서

그 어리석음이 옳았다 라고 기필코 완성하시는

 

모순의 모순으로써 승리하십니다.

 

다른 열매보다 월등히 차이나는 열매입니다.

 

자신의 죽음인 십자가를 그 밑바닥에 깔고서

종말을 미리 앞당겨 외친 무화과 나무 저주입니다.

 

그 다음 니 차례이다는 겁니다.

 

이 종말을 빨리 맞이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겁니다.

 

엉터리 열매를 기다릴 빠에

예수님이라는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열매를 보라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며느리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의 3가지 물증을 잡고자 미친 듯이

기생 노릇을 한 겁니다.

 

십자가에 죽을려고 환장하듯이 내달리는 논 스톱 밀어붙이기입니다.

 

그가 나 보다 옳았도다

 

유다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예수님의 족보 속에

다말에게서 접붙임 당한 겁니다.

 

열매로 아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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