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필요가 없기에 행복하다

행복할 필요가 없기에 행복이다.

행복 그 자체이기에


어제 티비를 잠깐 앞부분만 보고 잠들었는데

행복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프로이트적 해석으로 풀이한 내용이였다.

결국 너무 금기시 되어서 획일화 되다 보니
모든 야하고 성적인 것이 거세가 된 입장에서
행복할려고 하니 
오히려 힐링해야지 행복해야지 라고 하는 것이 더 스트레스가 되고
상처가 되어버린다.

결국 비교 때문이다.

저자는 사랑만이 행복해 질수가 있단다.

사랑이 금기시 되고
터부시 되기에

비교하는 그 속에서는 행복해진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

행복 할 필요가 없기에 행복한데
행복해야만 하기에 불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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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행복 분야의 권위자 에드 디너 교수의 지도 아래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행복 심리학자 중 한 명이다. 저자 역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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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식 행복이 어디 있느뇨? 할례시뇨? 무할례시뇨?

    (롬 4:1, 개역)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개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역)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9, 개역)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롬 4:10, 개역)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 김대식 비교 하겠다는 자체가 이미 불행 속으로 스스로 빠지는 것이다.

    그 비교 즉 일하겠다는 것 에서 빼내시는 방식이

    비교를 비교하는 부정의 부정이다. 나쁜 것을 더 나쁜것으로 깨는 것

    바리새인의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행복하다고 비교해서 나오는 것을
    다시 더 비교해서

    천국과 지옥의 비교인 간극에서 그 엉터리 비교를 깨뜨린다.

    행복은 무할례시 라는 것이다. 할례의 실패가 바로 마음판의 할례이다.
    행복의 실패가 바로 행복이다.

    이것이 계보학이다. 비교에서 나온 것을 깨뜨리는 더 더 더 나쁜 비교

    계보학 곧 출처를 따져 들어가봐? 
    게르만 민족아 뭐 정통이라고? 잡족이야!!!!!

    인간의 처음자리는 무능이다.

    예수님은 이 처음 사랑을 누락시키는 것을 자꾸 상기 시키신다.
    처음자리 곧 무능이 처음사랑이였기 때문이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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