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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님하고 모세에 대해 대화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모세에 대해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저의 밑바닥엔 저의 고정관념이 남아 있어서 아직 정립이 안 된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모세에 대해 언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80116 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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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모세의 어떤 부분? 구체적으로 알고픈 내용이 무엇인지요

지난번에 나누었던 대화를 제가 다 까먹어 버렸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새로운 입장에서 처음 듣는다 생각하고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알고픈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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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가나안땅까지 못 들어갔지만  신약에서 주님이 모세를 인정했다고 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모세가 가나안땅을 못 건너 갔는지에 대해도 언급을 했던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ㅡ.ㅡ
080116 20:31:31

 지금 : 쪽지 보셨나요?
 둘로스 : 모세가 가나안땅까지 못 들어갔지만 신약에서 주님이 모세를 인정했다고 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모세가 가나안땅을 못 건너 갔는지에 대해도 언급을 했던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ㅡ.ㅡ
 지금 : 네
 둘로스 : 모세의 역할은 율법의 역할과 같습니다.
 둘로스 : 모세 본인도 율법을 지킨적이 없습니다.
 둘로스 : 단 한개도요
 둘로스 : 즉 모세는 율법이 누구를 지향하는
 지금 : 무엇을 보고 알수 있나요?
 둘로스 : 몽학선생인 가이드로써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로스 : 모세는 화를 내었습니다.
 둘로스 : 그 이유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죽습니다.
 둘로스 : 죽는다는 표현을 아주 재미 있게 했는데
 둘로스 : 나이가 120살이 되어서 늙어 힘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둘로스 : 오히려 눈이 시퍼렇게 살았다고
 둘로스 : 죽을 때가 아닌데 죽었다고 언급합니다.
(신 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둘로스 : 즉 의도적으로 죽이시는 겁니다.
 지금 : 네
 둘로스 : 모세가 화를 낸 이유는
 둘로스 : 백성들이 설득 당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한 겁니다.
 둘로스 : 즉 말을 죽어도 안듣는다는 이유로 화를 내었고
 둘로스 : 그로인해 연쇄적인 잘못이 바로
 둘로스 : 바위를 두번 쳤다는 것입니다.
 둘로스 : 한번 쳐도 될 일을 구지 두번 치는 이유는
 둘로스 : 자신의 위치를 백성들에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였습니다.
 둘로스 : 즉 기적을 유발케 하여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기적을
 둘로스 : 자기쪽으로 땡겨서 그 기적과 자신의 공로와 동일하게
 둘로스 : 백성들에게 인식시킬려고 했던 겁니다.
 둘로스 : 오늘날의 전형적인 목사들과 같은 입장이였던 거죠
 지금 : 그렇죠
 둘로스 : 자 이런 죄인 중의 괴수인 모세이지만
 둘로스 : 그는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는 약속으로 인한 조치로 인해서
 둘로스 : 그 역할을 한 겁니다.
 둘로스 : 그리고 이런 이유로 구원과 심판이 달라지는게 아니라
 둘로스 : 이미 창세전에 택했기에
 둘로스 : 신약에서 변화산 에서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가 만나는 겁니다.
 둘로스 : 예수님은 왕으로서의 대표이고 엘리야는 선지자로서의 대표이고
 둘로스 : 모세는 거룩한 율법으로서의 대표로서 변화산에서 만나는 겁니다.
 지금 : 다 한자리에 있는거죠?
 둘로스 : 네
 둘로스 : 그것을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보고
 둘로스 : 너무 그 영광에 놀라워서 초막 셋을 짖겠다고 한 유명한 고백이 나오지요
 지금 : 네
 둘로스 : 이것을 또 건축헌금 내라고 유도하는데 써먹는 놈들이 또 한둘이가 아니지요
 지금 : 네
 둘로스 : 자 여기서 알고픈게 뭔가요
 지금 : 주님이 신약에서 모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었는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서요
 둘로스 : 변화산 사건 말고 다른 부분요?
 지금 : 네
 지금 : 그때 주님이 모세에 대해 뭐라고 언급했다고 했던것 같거든요
 둘로스 : 혹시 인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때의
 둘로스 : 불뱀 물리도록 하는 사건?
 둘로스 :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둘로스 : 또는 실로암 연못을 중심으로 한 소경이야기 에서
 둘로스 :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제자인데 너는 누구의 제자냐?
 지금 : 신약에서 변화산에 있었던 모세를 보고 우리는 모세가 가나안땅에 안 들어 갔어도 구원받았다고 생각해야 하나요?
 지금 : 신약에선 그 부분 이외엔 없었나요
 둘로스 : 구원을 목적으로 성경을 보며는
 둘로스 : 모세가 당장 앞뒤가 안맞아요
 지금 : 그러니깐요
 둘로스 : 그런데 언약을 중심으로 성경을 보며는
 둘로스 : 율법의 대표자이기에
 둘로스 : 자신도 그 율법에 저촉을 받는 모습으로써 보여주는 겁니다.
 둘로스 : 물론 모세는 가나안 땅 들어간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둘로스 : 왜냐하면 모세의 후계자가 여호수아 입니다.
 지금 : 네
 둘로스 : 그러나 여호수아의 후계자는 없습니다.
 둘로스 : 즉 모세를 대신한다는 의미 입니다.
 둘로스 : 결국 율법으로써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다 라는 거죠
 지금 : 그렇죠
 둘로스 : 오직 피로써 다른 말로 사랑으로써만 들어가는 것이기에
 둘로스 : 사실상 율법 도 피를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둘로스 : 반드시 육을 죄 아래에 가두는
 지금 : 그래서 신약에 모세가 변화산에 있었던거군요
 둘로스 : 꽁꽁꽁 묵어버리는 식으로써 다가와야
 둘로스 : 죄가 왕노릇 하는 자리에
 둘로스 : 피가 발려서 은혜가 왕노릇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둘로스 : 그렇기에 모세는 의도적으로
 지금 : 네
 둘로스 : 주님이 빼버립니다.
 둘로스 : 육의 한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이고
 둘로스 : 어떻게 보면 모세가 화를 내었고 또 반석을 두번 치는 이유는
 둘로스 : 율법 아래에 갇혀 버린 인간상을 대신해서 보여줬다고 보면 됩니다.
 둘로스 : 그래서 후대에 유대인들은
 둘로스 : 그런 모세의 한계점인 육의 모습을 보고도
 둘로스 : 모세의 제자 라고 우기고파 하는 것을
 둘로스 : 의도적으로 유도한 거죠
 지금 : 가나안땅에 묻히고 안 묻히고 의미는 죽여한게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관계성으로만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다는거군요
 둘로스 : 또 제사장 계열인 레위지파의 한계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둘로스 : 네
 둘로스 : 그러나 인간은 약속의 관계성 보다
 둘로스 : 자꾸 영웅을 따라하면 된다고 본 거죠
 지금 : 네
 둘로스 : 그래서 성경의 믿음의 위인들을 따라할려는
 둘로스 : 교회 교육은 잘못 된 겁니다.
 지금 : 그래서 가나안땅에 묻히고 안 묻히고를 가지고 천국에 갔다 안 갔다 말하더군요
 둘로스 : 에그것이 다 내 구원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둘로스 : 앞 뒤 안맞도록 하신 겁니다.
 둘로스 :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둘로스 : 교회 교육이 의로 교육하는 거랑
 둘로스 : 교회가 교육하는 거랑 천지차이 입니다.
 둘로스 : 의란 바로 모세를 빠뜨려서 구원하는 식 입니다.
 둘로스 : 모세를 누락 시켜서 구원하는데
 둘로스 : 사람들은 모세를 누락시키지 않고 모세를 앞장세워서
 둘로스 : 그 뒤에 숨어서 구원챙길려는 의도를
 둘로스 : 의가 까발리는 겁니다. 들추어내는 거죠
 지금 : 율법은 행위고 의가 되니 모세를 탈락시킨거군요
 둘로스 : 그렇기에 의란 인간들이 생각하는 좋은 뜻이 아니라
 둘로스 : 반드시 우리가 싫어하는 바 되는 모습의 의 입니다.
 둘로스 : 일종의 간섭 이지요
 지금 : 네
 둘로스 : 그러니 모세 붙잡은 놈들은 ㅋㅋㅋㅋㅋ
 둘로스 : 썩은 동아줄을 붙잡은 겁니다.
 둘로스 : 반대로 자신들이 썩은 동아줄이라고 판단 했던 예수님을
 둘로스 : 오히려 창녀 세리 강도가 붙잡으니까
 둘로스 : 비웃고 웃으워서 가소롭다고 비방했는데
 둘로스 : 팔을 어긋맞게 한 결과죠
 지금 : 자기 기준으로 다 이해를 하니 전체적으로 연결이 안 되는것 같습니다
 둘로스 : 율법은 예수님을 말하고자 몽학선생인 가이드로써
 둘로스 : 가이드 붙잡고 의 의 의 이라는 구색을 갖추는 껍데기를 구비한 겁니다.
 둘로스 : 그러나 정작 율법의 내용인 사랑은
 둘로스 : 예수님만이 실현하십니다.
 둘로스 : 모세는 이 예수님을 바라 봤지요
 지금 : 결국 사랑의 관계성만을 알리고자 주님은 오신거구
 지금 : 성경은 그렇게 완료형을 쓴것인데 우리 멋대로 해석해 버리니 오류일수 밖에요
 둘로스 : 그렇죠
 둘로스 : 이미 완료된 미래가 우리를 당기고
 둘로스 : 확정된 창세전의 생명이 우리를 인도하는데
 둘로스 : 인간들은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행동 여부로써
 둘로스 : 결판을 지을려고 하는 겁니다.
 둘로스 : 그러니 성경도 그런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둘로스 : 놀랍게도 성경은 그런 의도에 전혀 맞지 않도록
 둘로스 : 앞 뒤가 안 맞는 논리적인 모순으로만 가득차도록 되어 있습니다.
 둘로스 : 어떤 단어를 소유하고 문자를 지켜버리면
 둘로스 : 그 반대의 단어와 문자가 반대적인 의미로써 작용하기에
 둘로스 : 하나를 지켜버리면 동시에 다른 하나를 어기는 식이 되어 있도록
 둘로스 : 성경은 우리를 당혹하게 만듭니다.
 지금 : 맞다 그래서 그때 모세는 자기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나 못 들어가나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 모세는 주님을 바라 보았으니깐요
 둘로스 : 굿 굿 굿
 둘로스 : 약속을 바라봤다는 자체가
 지금 : 이제 생각나네요 ㅋ
 둘로스 : 모세가 바라 본게 아니라
 둘로스 : 미래의 예수님의 믿음이
 둘로스 : 과거의 모세에게 덮쳐 버린 겁니다.
 둘로스 : 그러니 모세는 보기 싫어도 볼수 밖에 없는 겁니다.
 둘로스 : 예수님의 믿음이 덮쳤기 떄문이지요
 지금 : 네
 둘로스 : 반대로 예수님의 믿음이 덮치지 않은 자는
 둘로스 : 자기의 구원을 자기가 달성해야 하는
 둘로스 : 죄의 소원이 덮친 자 입니다.
 둘로스 : 다윗도 같은 원리요
 둘로스 : 아브라함도 야곱도 다 같은 원리 입니다.
 지금 : 솔로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둘로스 : 네 물론이지요 노년에 개판이였죠 우상 숭배도 하고
 지금 : 그렇죠
 둘로스 : 그런 인간도 죄인이기에
 둘로스 : 주님의 필요한 겁니다. 의사가 필요한 겁니다.
 둘로스 : 의인이 아닌 환자 였다는 뜻입니다.
 지금 : 네
 지금 : 우리는 영에 예민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무슨 뜻일까요
 둘로스 : 그게 말이 안됩니다.
 둘로스 : 영에 예민한게 아니라
 지금 : 영에 예민해야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이 뜻에 살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 민첩하게 움직일수 있으니
 둘로스 : 영에 예민할려고 하는 육인 나에게 관심 두기 때문 입니다.
 지금 : 그건 주님을 눈치 보는거 아닌가요
 둘로스 : 영은 육을 찬단하고 죽입니다. 육은 영을 거부하고 독자적입이다. 영을 이용만 하죠
 지금 : 주님의 눈치
 둘로스 : 그럼 육은 영에게 죽으면 가만히 있게 되지
 둘로스 : 예민하게 정신병자 처럼 불안해 하는 것이 아니지요
 둘로스 : 스트레스만 늘어갑니다.
 둘로스 : 민첩하게 움직이고픈 욕심 때문 입니다.
 둘로스 : 주님의 눈치를 보자 라고 말하는 인간의 눈치를 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 : 그냥 맡기면 되는데 힘든 삶만 살아가는거 아닌가요
 둘로스 : 그러니깐요 율법으로 인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라고 표현한 겁니다.
 지금 : 그렇게 말하면 영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거라 합니다
 둘로스 : 경험되는 영은 없구요 경험창고를 박살내는 영 뿐입니다.
 지금 : 그렇죠
 지금 : 박살내려고 온것 아닌가요
 둘로스 : 영이 임하면 오히려 자기가 미워집니다.
 둘로스 : 내가 내 목숨만 사랑했다는 것에 대해서
 둘로스 : 미워집니다.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둘로스 : 그런데 방금 말한 그런 투로 이야기하는 자들은
 둘로스 : 자기를 자꾸 사랑하기에
 둘로스 : 자기에게 예민한 인간으로 개조하고픈 겁니다.
 둘로스 : 즉 믿음의 영웅이 되고파 안달이 난거죠
 둘로스 : 가만히 있지는 못하는 불안증세 입니다.
 둘로스 : 거기서 계급이 나타나고 서열이 나타나고 성화 단계가 나타나니
 둘로스 : 종교가 그래서 사람 다 배리는 겁니다.
 지금 : 내가 주님께 맡기고 있는건지 아님 내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지 분별하기에 영에 예민해야 한다고 합니다
 둘로스 : 그게 거짓입니다.
 둘로스 : 그렇게 되면 위선만 더해 갑니다.
 둘로스 : 골치 아파요
 둘로스 : 원래 욕심대로 살아 왔었습니다.
 둘로스 :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누르면
 지금 :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엄청 힘이 들어가는거 아닐까요
 둘로스 : 남이 있을때와 자기 혼자 있을때가 달라집니다.
 둘로스 : 그러니깐요
 둘로스 : 사람이 더 배려놓게 됩니다.
 둘로스 : 분별할려고 하지 말고
 둘로스 : 분별 당하세요
 둘로스 : 아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였군요
 둘로스 :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이 퍼붓는 그 사랑에
 둘로스 : 저는 그저 내 욕심만 챙겼군요 
 둘로스 : 라고 분별을 당하시면 되는 것을
 둘로스 : 주님의 숙제로 인해 구별 당하면 될 일을
 둘로스 : 자꾸 주님의 숙제를
 둘로스 : 내 숙제로 보니까
 둘로스 : 착각을 하는 겁니다.
 지금 : 자기숙제로 보니 자기 정죄 + 위선을 행하느라 아마도 힘들것입니다
 둘로스 : 분별해 봤자 얼마나 분별을 제대로 할까요?
 지금 : 글게요
 둘로스 : 아마 어설퍼 어설퍼 너무 어설퍼서
 둘로스 : 나중에 보면 기가찰겁니다.
 둘로스 : 마치 꼬마 여자아이가 소꿉놀이를 하다가
 둘로스 : 엄마가 설거지 라는 깨끗이 씻는 행위를 보고 따라할려고
 둘로스 : 책상 의자를 싱크대 곁에 두고 거기 올라가서
 둘로스 : 접시를 딱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로스 : 그럼 엄마는 두배의 일이 늘어납니다.
 둘로스 : 가만히 있는게 돕는 거죠
 둘로스 : 엄마 내가 도와줄께 라고 나서니까
 둘로스 : 엄마의 숙제를 자기 숙제로 착각하는 겁니다.
 둘로스 : 방해만 될 뿐입니다. 자기도 감당못해서 근심하면서 남 걱정하는 거죠
(눅 10:38)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눅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눅 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눅 10:4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 10: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지금 : 어차피 그들은 나 외에 다른신이 없는 사람이잖습니까
 둘로스 : 그러니 관계성이란
 둘로스 : 그 나 라는 자아를 깨드리러 다가오시는 주님의 열심만 바라보는 자이고
 둘로스 : 관계성에 놓여지지 않는 자 곧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으로서 예정됨을 거부하는 자는
 둘로스 : 자아를 자아만이 구원할수 밖에 없는 겁니다.
 둘로스 :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보는데까지 다 해보는 겁니다.
 둘로스 : 성경의 명령어를 모조리 지킬려고 하는 거죠
 지금 : 그런데 언제까지 자신의 악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에 감사 하냐 이거죠
 둘로스 : 두려워서 그런겁니다, 사랑이 없어서 그런겁니다.
 둘로스 : 사랑이 다가와 주지 않기에 자기가 사랑하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지금 : 그 사랑을 알면 주님의 뜻을 따라 성장해서 행해라 이건것 같습니다
 둘로스 : 걱정안해도 됩니다.
 둘로스 : 자신의 악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 조차
 둘로스 : 예수님의 숙제로써 다가오는 겁니다.
 둘로스 : 그러니 언제까지냐 라고 내가 안달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로스 : 만약 방금말한 감사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칩시다
 둘로스 : 3초 지나면 또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 맞습니다 ㅋ
 둘로스 : 소유가 된다고 안정감이 오는게 아닙니다.
 둘로스 : 그 반대 입니다.
 둘로스 : 비록 흔들림을 당해도
 둘로스 : 누가와 함께 있느냐로 인해 달라집니다.
 둘로스 : 놀이 공원에 가면
 둘로스 : 발 바닥 붙은 것을 흔드는 기계가 있습니다.
 둘로스 : 그런데 혼자 있거나 외롭거나 아무도 없다면
 둘로스 : 그것은 진짜 로 놀이가 아니라 공포가 되고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됩니다.
 둘로스 : 그러나 아무리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갈라져도
 둘로스 :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지금 : 그렇죠
 둘로스 : 주님과 함께 있는 자는 비록 두려워도
 둘로스 : 주님이 그 두려움을 거두어 주시는 사랑의 관계로 맺고자 일하십니다.
 둘로스 : 얼마나 든든한지
 둘로스 : 안정감이 오히려 그 흔들림 속에서 더욱더 찐하게 다가옵니다.
 둘로스 : 그것이 바로 세미한 음성이라고 표현된 내용이지요 (왕상 19:12)
 지금 : 주님 마음데로 우리를 휘둘리시겠다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것을 막을수가 있나요
 지금 : 다 착각이죠
 지금 : 그래서 우린 할말이 없는거 아닌가요
 둘로스 : 네 그렇죠 항상 나의 예상과 꼼수와 노림수를 비켜 가십니다.
 지금 : 네
 둘로스 : 그러니 계산은 오히려 목회자들이 하기 바쁩니다.
 둘로스 : 그래서 가장 안 믿는자들인 겁니다.
 둘로스 : 계산하기 바쁘다 보니 말이죠
 둘로스 : 불안해서 그래요
 지금 : 그러니 지금 얼마나 소경이 많나요
 지금 : 그 실체를 못 보니
 둘로스 : 구ㅡ냥 솔직하게
 둘로스 : 나 소경입니다.
 둘로스 : 나 죄인 중의 괴수 입니다.
 둘로스 : 이것을 외치라고 목회자로 삼았던것인데
 둘로스 : 반대가 되고 말았어요. 자꾸 의인 될려고 하니, 의인 되면 또 남을 가르쳐들려고 합니다.
 둘로스 : 또 만약에 나 죄인입니다 그런 외침을 하는 십자가만 증거하는 목회자를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싫어합니다.
 지금 : 자신은 투명하고 깨끗한 유리같은 영을 갖고 있기에 사람보고 목회 안 한다고 합니다
 둘로스 : 나 소경입니다 라는 말을 왜 싫어할까요?
 둘로스 : 분명 바울은 무익한 종이라고 했는데, 죄인 중의 괴수 라고 했는데
 지금 : 돈이 안 되서 그런거 아닌가요 ㅋ
 둘로스 : 맨날 머리 싸매고 하는 짓이 유익한 종이 어덯게 될까 라는 고민만 하고 있는 겁니다.
 둘로스 : 어떻게 하면 유익한 종이 되지?
 둘로스 : 이것은 마치 여자꼬마아이가 엄마 설거지 걱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거 소꿉놀이 장난질이죠
 둘로스 : 별 쓸데 없는 고민을 하는거죠. 마치 케이블 티비 약품 광고 보고 맞어 나도 저런 병일거야 라고 건강염려증 처럼
 둘로스 : 가만히 있는 것이 돕는 건데
 둘로스 : 나서겠다고 하니까 방해짓만 하는 겁니다.
 지금 : 네피림들은 얼라들 데리고 세뇌 시키느라 바쁘네요
 둘로스 : 아무나 네피림 짓을 못합니다.
 둘로스 : 주님으로 부터 지독한 미움을 받은자이기에 하는거죠 그것이 신비인 겁니다.
 둘로스 : 차라리 소경이라고 하면 주님이 고치실텐데
 둘로스 : 자꾸 본다고 우기고 있으니 의사가 필요 없지요
 지금 : 네
 지금 : 나는 소경이다 외치면 너는 성장하지 못해서 그런다고 치부 해 버리니 어디 말을 꺼내겠나요
 지금 : 말로 사람을 갇어 버리니 옴짝 달짝 못합니다
 둘로스 : 그러니 결국 종교란 눈치 보기 밖에 없습니다. 성화론자의 특징 남을 어린아이 취급하면 자동 자기는 어른이죠
 지금 : 네
 둘로스 : 평생 그짓만 합니다.
 둘로스 : 또 눈치 볼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 체제요 환경입니다.
 지금 : 맞습니다
 둘로스 : 그 시스템을 외부에서 허물지 않는 이상
 둘로스 : 더더욱 눈치로만 지내는 겁니다.
 둘로스 : 그래서 전쟁을 요청하는 자의 기도가 없는 겁니다.
 둘로스 : 주님의 아이디어만이 가능합니다.
 지금 : 네
 둘로스 : 전쟁을 요청하는 기도가
 둘로스 : 결국은 출애굽의 재현입니다.
 둘로스 :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둘로스 : 겁도 없는 짓이지요
 둘로스 : 이미 마귀가 다 장악해 버린 세상에
 둘로스 : 그런 SOS 를 치고 있으니
 둘로스 : 마귀가 가만히 두겠습니까?
 지금 : 주님이 그래서 불을 던지러 왔노라 하시잖아요
 둘로스 : 네 바로 그겁니다. 불이란 이미 사랑이 아니면 다 제거된다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금 : 네
 둘로스 : 사랑만이 통과하고 나머지 불순물은 다 제거되는 겁니다.
 둘로스 : 그것을 전쟁용어로 뭐라고 하더라
 둘로스 : 브로큰 아워?
 지금 : 모릅니다 ㅡ.ㅡ
 둘로스 : ㅋㅋ
 둘로스 : 영화 제목 속에서도 있던데
 둘로스 : 일종의 포격을 요청하는데 군사기밀암호인데
 둘로스 : 아군이 있어도 요청을 하는 겁니다.
 둘로스 : 불바다 만들어서
 둘로스 : 보석만 가려내는 식이지요. 위 아 숄져 멜깁슨이 주연한 영화에 나오더군요
 지금 : 주님만이 전신갑주가 되는것이죠
 둘로스 : 브로큰 애로우
 지금 : 검색 했군요 ㅋ
 둘로스 : 네
 둘로스 : 폭격요청 ㅋㅋ
 둘로스 : 기도란 결국 전쟁 요청 입니다.
 지금 : 네
 둘로스 : 불의한 재판관에게 과부가 귀찮게 해서라도
 둘로스 : 억울한 일을 풀려고 하는 이유가
 둘로스 : 기도란 바로 이런 의도이다는 겁니다. (진리만 남기고 다 제거하겠다는 자기부인의 자세죠)
 지금 : 주님이 풀어주셔야죠 방법이 없잖습니까 ㅋ
(눅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눅 18: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눅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눅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눅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눅 18: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둘로스 : 즉 전쟁에는 원수인 상대방이 있는데
 둘로스 : 오늘날 교인들은 원수가 없기에
 둘로스 : 기도가 다 자기쪽으로 향합니다.
 둘로스 : 자기를 위한 기도는 곧 자기를 폭격하는 셈인줄도 모르는 겁니다.
 둘로스 : 폭격요청입니다. 브로큰 애로우
 둘로스 : 악과 싸워본적이 없는데 무슨 원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 기도할때 제 안에 있는 원수와 싸워주십시요 요청하는게 마땅하겠네요
 둘로스 : 바로 그거죠. 자기부인 입니다. 자아만 눈 띄면 늘 욕심과 걱정 뿐 그거 불태워 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둘로스 :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사랑과 감사 뿐입니다.
 지금 : 우린 기도가 성도의 삶이라고 하는데 ㅡ.ㅡ
 둘로스 : 권태로워서 심심해서 할짓이 없기에 하는 겁니다.
 지금 : ㅋㅋ
 둘로스 : 결국 기도도 고상한 취미라서
 둘로스 : 서로 기도 싸움을 하는 거죠
 지금 : 주님이 싸우게 해야지 자기가 분별해서 자기가 싸우고 있으니 힘들어요
 둘로스 : 어떤 나이 많은 권사와 늙은 여전도사가
 둘로스 : 조그마한 일로 다툼을 가졌는데 이것이 그만 새벽기도에까지 어어져서 기도 싸움이 되고 만 겁니다.
 둘로스 : 주님 제 마음을 아시지요 라고 권사가 크게 외치면
 둘로스 : 여전도사가 뒤쳐질까봐 주님 내 맘 아시지요
 둘로스 : 서로가 자기 맘 좀 알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 자기 한 푸는거죠
 둘로스 : 그러니 기도가 한 恨 풀이가 되는 겁니다. 자기부인이 아니라
 둘로스 : 원수가 자기자신인줄도 모르기에
 둘로스 : 배불러서 하는 소리 입니다.
 지금 : 그러게요
 둘로스 : 그럼 폭격요청을 했으면
 둘로스 : 결국 자기가 당해야 합니다.
 둘로스 : 그런데 기여이 이길려고 하고 있기에
 둘로스 : 기도로 장난치는 거죠
 지금 : 말씀을 먹었으면 그 말씀으로 분별해서 싸운다고 하니 맨날 힘든 삶이지요
 둘로스 : 그 분별이 결국 자기가 이기면 분별했다고 보는 거죠
 지금 : 돌고 돌고네요 ㅋㅋ
 둘로스 : 지면 분별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니 잠 못자는 것이니
 둘로스 : 평생 자기 숙제인 셈입니다.
 지금 : 그러게요
 지금 : 주님의 숙제라고 하면 의지박약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ㅋ
 둘로스 : 이런 인간의 힘의 탐욕을 주님은 마음것 이용하십니다.
 둘로스 : 저거들끼리 싸우라고 말이지요
 둘로스 : 그러나 약속은 이미 저 멀리 떠나십니다.
 둘로스 : 주님 손해 본것 전혀 없습니다.
 둘로스 : 아쉬워 하시는 것 전혀 없죠. 이스라엘을 떠난 주님이 아쉬워 하지 않지요.
 지금 : 그쵸
 지금 : 우리만 손해죠 ㅋ
 둘로스 : 종교란 결국 장난치기 입니다.
 둘로스 : 하나님을 장난감 다루듯
 둘로스 : 자기 애완용으로 두는 겁니다.
 둘로스 : 그 버릇이 바로 목사들이 교인들을 다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금 님의 말 : 하나님을 브랜드로 자기 정욕 채우기네요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둘로스 : 거룩을 교인들에게 심겠다는 둥
 둘로스 : 등등 별 짓을 다 동원합니다.
 지금 : 꿩잡는게 매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둘로스 : 교인도 만만치 않게 목사를 장난감 다루듯 합니다.
 지금 : 서로 서로 적당한 선에서 놀고 있는거지요
 둘로스 : 네 서로 이용 안당할려고 발악을 하는 겁니다.
 둘로스 : 서로가 장난감 되어 주길 바라는 거죠
 지금 : 네
 지금 : 세상에 있든 교회에 있는 매 한가지에요
 둘로스 : 그러니까 절간 이라니깐요
 둘로스 : 대한 조계종 절간교회 라는 간판인거죠
 지금 : ㅋㅋ
 지금 : 적당한 선에서 봐 주며 혼합하기
 둘로스 : 상호 위선 상호 기만 상호 인정 즉 처세술만 남았고, 눈치 보는 기술만 뛰어난 기술전문가가 된 거죠
 지금 : 그렇죠
 둘로스 : 윷놀이에서 내가 도를 내면 너는 모를 내라 라는 일종의 게임 입니다.
 둘로스 : 마작 이요 도박인 거죠. 남 꺽는 재미에 중독되어 남을 못 이기면 잠 못자요.
 지금 : 네
 둘로스 : 그러니 종교는 지상최대의 사기극이요 중독성 강한 마약게임이죠
 지금 : 그러니 주님이 올수 밖에요
 지금 : 둘로스님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지금 : 그래도 이렇게나마 대화할수 있는 분을 붙여 주시니 감사하네요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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