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라는 불법의 뿌리싸움(근원싸움,보호자싸움) (시편 67)

 

 

다윗언약은 얼굴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민낯으로 대하는 주의 긍휼언약입니다.


제사와 번제에 뿌리를 두느냐? 인애와 자비에 뿌리를 둔 것인가에 대한 싸움입니다.
 

제가 제목을 구원은 불법이다 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은 인간이 형성한 구원개념이 엉터리이기에

그 엉터리를 부정한 모습으로써 고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저들의 부정을 부정으로 고발하는 겁니다.
저들의 부정(행함, 제사, 번제)을 부정(십자가의 용서, 무능, 어리석음)으로 고발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형성한 구원이 왜 거짓인가?

왜 그들은 구원을 합법이라고 형성해놓고서는 정작 단 한명도 구원하지 못하는

거짓평강 거짓구원인가?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왜 예수님을 거짓으로 몰아버리는가가

바로 저들이 싫어하는 부정한자 즉 이방인 개같은 이방인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겁니다.


심지어 예수님 본인도 부정한 십자가를 통해서 저들의 부정을 들추어내고 있는 겁니다.
 

제가 어제 설명하기를 주님께서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오로지 이스라엘만 주를 찬양하도록

주를 찬양하기 위해서 이스라엘만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약속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그 약속이 깨어졌다는 겁니다.

아니 일부러 오해를 불러 일으키면서 깨어졌다는 식이지

사실은 갱신입니다. 더욱더 풍성하게 했다는 겁니다.
잉여란 잉여를 깨뜨림으로써 초과잉 잉여가 되듯이 말입니다.

 

더 풍성해 졌다는 겁니다.

그것을 실로암소경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입니다.

 

실로암 소경을 예수님께서 고치시니까

지래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바리새인이 지래 겁먹고 예수를 따르면 출교시킨다고 협박하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실로암 소경을 고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자는 바리새인입니다.

꼴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킨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이런 상황을 벌리시는 겁니다.

 

실로암소경은 자신을 고치는 장면을 목격 못했습니다.

그저 원인 없이 그 결과만을 누릴 뿐입니다.

 

그런데 원인 있어야 결과가 있다고 믿는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이 목격한 예수님이라는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

원인을 찾지 말라고 외치면서

정작 원인이 누구인가를 바리새인 입을 통해서 증거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미리 겁먹고 예수를 따르면 출교 당할줄 알아라 라고

예수 라고 본인들 입에서 소경을 고친자를 발설하고 있는 겁니다.

남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이 오히려 더 떠들어대는 겁니다.

 

오히려 마침 실로암 소경이 묻고 싶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협박하기 바쁩니다.

너 예수 따라가면 죽을줄 알아

 

그런데 실로암 소경은 나를 고친 분이 누구죠 라는 것 밖에 관심 없습니다.

곧 인물만 관심 있을 뿐입니다.

곧 주의 얼굴만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교리 안지키면 죽을줄 알어 라는 소리가 헛소리로 들리는 겁니다.

이미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났는데

그 따위 교리 안 지키면 출교시킨다고 하니 웃끼는 소리죠.
그 딴거에 무서워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바리새인은 그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부모를 통해 압박을 가하는 겁니다.

소경의 부모는 정작 이미 다 장성한 아들이니 직접 물어보라고 합니다.

안 말려들지요.

그래서 직접 불러 입을 막고자 했는데

오히려 바리새인이 그 분이 누구이다고 가르쳐주는 꼴이 되는 바람에

실로암 소경은 주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결국 그 소경은 쫏겨났습니다.

 

예수님이 그 실로암 소경이 쫏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다행히다 싶어 하십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듣고 깨달아 고침이 될까 주님은 두려워 하셨거든요.

 

보통 듣고 깨닫기를 주님은 원한다고 다들 가르치잖아요

아닙니다.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주님은 걱정하셨다는 겁니다.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즉 복음은 소경에게만 들려야

죄인에게만 들려야 하는데

 

건강한 자에게 들리면 안된다는 겁니다.

 

차라리 소경이 되어야 고침을 받게 되는 복음이 되는데

구원이 되는

이 구원이 바로 불법이라는 뿌리

위법이라는 뿌리

불륜이라는 뿌리인데

 

소경이 아니다고 하니 소경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늘 시편 67편에 찬양자는 모든 열방이 주를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누가 싫어하는고 하니

맏아들이 싫어합니다.

자기들만 주님을 찬양하도록 되어 있다는 약속이다는 겁니다.

언약이다는 겁니다.

구원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열방이 다 주를 찬양하고

다 주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자기들이 지금까지 지킨 것이 뭐가 됩니까?

자기들이 지금까기 주를 찬양한 것이 뭐가 되냐 말이죠.

 

그것을 실로암 소경이라는 부정한자에게

이방인과 방불한 흑암에 주저앉은자에게
탕자(죽었다가 살아난)같이 갇힌자에게 

희년 곧 기쁜소식이 증거되니까

(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눅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 싫어합니까?
소경 아니다 라고 하는 자들이 싫어하는 겁니다.
죄인 아니다 라고 하는 자들이 싫어하는 겁니다.

반드시 그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이 불법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반드시 거리끼는 걸림돌로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저들의 외설에 더 외설적이어야 하는 구원이다는 겁니다.
바로를 강퍅케 함으로써 영광받는 구원이다는 겁니다.

나만 구원 받아야하고 이스라엘 선민에게만 구원이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틀이 있는데.

그런데 모든 이방들이 다 구원이 될꺼 같으면 말라꼬 우리 이스라엘이 주님만을 찬양했냐 라는 식입니다.

 

에이 설마 그런 쫌생이 같은 마음을 이스라엘은 안 가졌다고 우기지만

정작 예수님의 활동에 쪽쪽 시비를 거는 유대인의 모습을 보면

증거물이 있기 때문에 유구무언이 되는 겁니다.


도장 도장끈 지팡이 말이지 말입니다.
 

그래서 꼭 주님의 일하심은

다른 말로 주의 얼굴은 일부러 안식일날 고치십니다.

제일 싫어하는 짖이다는 겁니다.
제일 싫어하는 짖을 일부러 정조준해서 말이죠.

누구에게? 유대인에게 말입니다.

유대인 보란 듯이 제일 싫어하는 짖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구원은 불법입니다.

구원이 합법, 정법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도록 유대인들은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이 지켜왔는데
정작 예수님은 구원을 십자가라는 불륜으로, 거리끼는 지혜로 만들어 버립니다.
구원이 십자가라는 불법으로 이루신다는 것이 졸지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 불법의 뿌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는 겁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방인까지 주를 찬양함으로써 약속이 깨어진게 아니라
더욱더 풍성하게 된 겁니다.

 

꼭 일부러 안식일날 고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바로 안식의 주인이시기에

안식일이 바로 날 개념이 아니라 인물(주의 얼굴)이기에

안식일이 지킴의 개념이 아니라 (번제나 제사를 원치 않고)

자비와 인애의 사랑 개념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일부러 안식일을 풍성하기 위해서 일부러 안식일날 소경을 고치시니까

저들의 눈에는 불법이 되는 겁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모든 활동은 일부러 안식일날 고치시는 식입니다
불법이다는 겁니다.
그래야 저들이 소경이면서 본다고 하니 못 보는 소경됨이 들추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실로암소경을 들어서 소경됨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활동은 일부러 안식일날 고치시는 방식인 겁니다.
불법의 방식 불륜의 방식 위법의 방식이다는 겁니다.
 

일부러 탕자를 용서하시니까

그 아버지의 사랑의 풍성함에 맏아들이 동참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불법이라고 대들도록 되어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짭니까

뿌리는 이렇게 안식의 더 풍성한 인애와 자비의 십자가의 용서인데

저들에게는 뿌리가 인애와 자비가 아니라

번제와 제사 지킴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어겼다는 예수님의 안식의 주인으로써 안식을 더 풍성하게 함이

졸지에 걸림돌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안식일날 소경을 고치는 겁니다.

 

그렇게 되니 졸지에 뿌리 싸움이 벌어집니다.

 

너 누구 제자냐?

나의 뿌리는 모세다

 

너의 뿌리는 겨우 예수냐? 에라이 쫏겨나 버려라

 

 

꼭 누구 모습입니까? 다윗 모습 아닙니까?

안식일날 제사장만 먹을수 있는 진설병을 먹게 되니까

마치 대단하게 안식일날 지켰다는 냥 사울왕이 제사장까지 다 죽여버렸잖습니까?

 

그들의 뿌리는 인애와 자비가 아니라 제사와 번제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을 어긴게 아니라 안식을 더 풍성하게 하는

안식일날 일부러 실로암 소경을 고침으로써

 

뿌리가 바로 불법으로써의 구원이다고 하시는 겁니다.

곧 불륜의 십자가 용서이다는 거죠.

 

이것을 미리 앞당겨서 다윗은 이방인도 주를 찬양케 하는

주님의 일하심을 외치는 겁니다. 노래하는 겁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십자가를 어떻게 해서든 불륜적이다 불법적이다 라는 말을 빼버리고

십자가를 걸림돌 요소를 다 제거한 상태로 오늘날 성화론자들은

교회에서 사람들을 거짓뿌리에 근거를 두고 증거합니다.

 

거짓선지자들입니다.

 

다윗은 정작 본인 당사자가 이런 편법의 구원

불법의 구원

위법의 구원

불륜의 십자가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안그랬으면 저 엉터리 제사와 번제라는 뿌리에

주님의 더 풍성한 사랑의 뿌리를 몰라보는 소경이 될뻔 했다고

 

주님의 십자가의 용서 때문에

대신 주의 얼굴이 태양빛에 다 거슬려 새까맣게 됨으로써

비로소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고

 

불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방인 마저도 용서하시는 풍성한 불법의 구원 뿌리 때문에

정작 원가지는 이 긍휼을 몰라보고 짤리는 바 되는 겁니다.

 

차라리 선민사상을 몰랐더라면

차라리 소경이였다면 고침을 받았을 건데

 

오히려 구원 받았다고 하니 오히려 구원 못 받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본다고 하니 못보는 소경이다는 겁니다.

 

인물 보다 지킴에 빠져 엉뚱한 뿌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합하지 못했던 겁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썩 물러가라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9:1, 개역)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9:2, 개역)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9: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9:4, 개역)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5, 개역)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9:6, 개역)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9:7, 개역)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9:8, 개역)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9, 개역)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9:10, 개역)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9:11, 개역)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9:12, 개역)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9:13, 개역)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9:14, 개역)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9:15, 개역)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9:16, 개역)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9:17, 개역)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9:18, 개역)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9:19, 개역)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9:20, 개역)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9:21, 개역)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9:22, 개역)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9:23, 개역)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9:24, 개역)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9:25, 개역)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9:26, 개역)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9:27, 개역)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9:28, 개역)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9:29, 개역)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9:30, 개역)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9:31, 개역)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9:32, 개역)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9:33, 개역)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9:34, 개역)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9:35, 개역)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9:36, 개역)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9:37,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9:38, 개역)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9:39,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9:40, 개역)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9:4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7:15, 개역)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개역)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개역)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개역)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4, 개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7:26, 개역)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7:28,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7:29, 개역)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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