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갚는 일을 돕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귀 (시편 91)

 

진짜 메시아라면 하나님의 원수 탕자를 저주하는데 도와줄 것이다고 주장하는 마귀



(
12:19, 개역)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2:20, 개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12:21, 개역)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0:30, 개역)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12:19, 새번역)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 , '진노하심에' 32:35

 

(4:6, 개역)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4:6, 새번역)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 91:11;12

(4:10, 새번역)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하였고 / 91:11; 12

 

(91:10, 개역)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91:11, 개역)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91:12, 개역)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91:13, 개역)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마귀가 시편 9111.12절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너가 메시아가 맞다면

절대로 화가(하나님의 심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천사들을 명해서 너의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천사들이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딧히지 않게 하며

너는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를 것이다 라고 말이죠.

 

마귀가 어떻게 하나님의 원수가 망할 것인지를 말이죠.

 

왜 마귀는 시편을 인용할까요?

시편이 예수님을 말하는데 있어서

시편을 달달 외운 성경박사들인 유대인에게서는 전혀 예수님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 힌트를 삼을수 있는데

결국 그렇게 되면 시편은 그저 율법에 해당될 뿐이다는 겁니다.

죄 아래 가두기 위한 율법의 기능말이죠.

 

즉 유대인을 대변한 마귀의 주장인 겁니다.

시편 91편의 내용은 결국

 

원수 갚는다 라는 겁니다.

원수는 망하고 의인은 주께서 건지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마귀가 놓칠 리가 없습니다.

 

모세도 실패했고 다윗도 실패 했고 베드로도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몽학선생이라는 트럭에

실패한 모든 인간을 담아서 쓰레기 청소차 처럼

예수님에게로 달려갑니다.

심판주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트맨 다크나이트 영화처럼 조커가 이 트럭을 탈취해서

마치 마귀가 이들을 모두 잡아드린 것처럼

밀까부듯이 철저하게 조사하여서

심판 주 예수님에게 송사하는 겁니다.

법으로 법대로 처리하라고 말이죠.

 

그것을 멀리서 보시고 드디어 자신이 친히 피를 흘려서

피로 사신 교회라고 신부 옷과 꽃단장 시킬 모든 재료들을 준비하고서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신부들을(제사장 옷 에봇을 더럽혔다고 마귀가 잡은 여호수아 대제사장을 비롯한 일곱교회들)

그 어떤 조건에도 맞지 않다고 모든 증거를 모아서 고소하고자

마귀는 신나게 이들을 잡아서 드디어 욥기에서의 내기처럼 이겼다고 자신만만하게

끌고 가는 겁니다.

 

그야말로 마귀가 원하는대로 이들은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원수는 망하고 의인은 모든 재앙에서 벗어나는데

이들은 모든 재앙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졸지에 원수가 당하는
쫄딱 망해버리는 모습이니

마귀는 드디어 내기장기 게임에서 이긴거나 마찬가지이다고 좋아라고 신나게 송사를 하고자 달려가는 겁니다.


도리어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는 겁니다. 심판주 이시니까 말이죠..

 

도리어 실로암 소경에게 너를 고치신 분이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꼴 처럼 말이죠.

 

결국 원수 갚는 것에 누가 예민했던 겁니까?

원수 갚는 일을 마귀가 예민하게 굴었던 겁니다.

그러니 엉뚱한 원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마귀가 맡은 역할입니다.

즉 자신이 원수가 아니다는 것을 감추는 방식으로써 원수 만들어 내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이다는 겁니다.

 

그럼 주님의 자녀는 어떤 자입니까?

아무리 봐도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상한심령이 임한 자입니다.

 

그러니 마귀는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기 때문에

번제와 제사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죠.

바로 유대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원수가 되냐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들을 그야말로 가만히 못 봅니다.

철저한 원수로 보는 시선인 이유인 겁니다.

 

그러나 상한심령이 임한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를 간구하는 겁니다.

자신이 원수로써 심판 받아 마땅한 자이기 때문에

주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자 번제와 제사를 추구하는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는 맏아들과

원수 짓만 골라했던 탕자가 인애와 자비를 간구하는데 있어서

 

아버지의 사랑은 처음부터 법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잃어버린 대의에 충성하셨던 겁니다.

 

이 말은 곧 잃어버린 대의에 충실했다는 말은

상대적인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마귀를 상대로 한 전쟁은 오로지 하나님께 있다는 거죠.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있지 인간에게도 마귀에게도 있지 않다 말이죠.

곧 구원전쟁은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

있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늘 잃어버린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모든 누명이란 누명은 다 뒤짚어 씌워짐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누가 원수 갚아야 한다고

하나님의 원수를 갚자 라고 외치겠습니까?

당연히 마귀가 하나님의 원수를 갚도록 하자 라고 외칠 것 아니겠습니까?
에스더에서 나오는 하만 이 그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보충물로 나서는 겁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편 91편을 마귀가 인용하는 겁니다.

오늘날 이단들 특히 신흥 이단들이 특히 이런 식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정통이라고 우기는 이단들은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보니
하나님의 원수 갚겠다고 나서는 것 보다. 그저 돈 되는 교회 사수에 집중하는 거죠.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가 하나님의 원수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율법을 어긴 자들

한마디로 막 사는 자들

탕자들을 잡아드리는 겁니다.

거기에 모세도 다윗도 모조리 다 실패한 자들인 탕자이니까 말입니다.

 

다윗이 안식일을 어기고

제사장만 먹는 진설병을 먹었을때에

누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디어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 되었다고 좋아라 했습니까?

 

사울 왕입니다.

 

이것은 예고편입니다. 본 편이 바로

 

안식일날만 골라서 일부러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일하심에

바리새인들이 견디질 못합니다. 그러니 바리새인이 이 사울왕과 똑같이 행동한다는 겁니다.

 

그럼 마귀는

아니 하나님은 누가 봐도 마귀 편에 서신것처럼 다들 그렇게 보이고

도리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박힘으로써

저들 말마따나 왜 남은 구원하면서 너는 너를 구원 못하냐 라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는 버리시나이까 라는 울부짖음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느냐 말이죠. 왜 그 울부짖음에 무응답이냐 라고 놀려먹듯이 비방한다 말이죠.
도대체 예수 너는 하나님이 너의 편이 되어 주시기는 하시니?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어디 있느뇨?

 

마귀의 뜻은 하나님께서 잘도 들어주시는데

너 예수의 뜻은 단 하나도 안 들어주냐 말이죠.

왜 하나님은 예수를 버리시느냐 말이죠.


이것이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3년 동안 잠수타면서 부딧힌 문제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답이였습니다.

이유 없는 답 입니다.

 

문제를 푼게 아닙니다.

문제 백날해보세여 풀수 있나?

천년 만년을 줘도 못 풉니다.

그럼 어떻게 사도바울이 풀었냐구요?

사도바울이 푼게 아니라

그 문제지에 답이 저절로 씌여졌는데
문제 자체가 답이였다 말이죠.

십자가가 십자가 라고 답을 쓴 겁니다.

사도바울은 답이 대신 써준 답의 혜택을 누린 겁니다.

패쓰 통과 한 겁니다.

 

무시험 합격입니다.

 

이 문제 하나로 인해 다들 지옥가는 판국에

지옥 백부당 만부당 마땅히 지옥가야할 사도바울이

졸지에 합격을 한 겁니다.

사도바울에게서 그 원인이 없다는 것이기에

사도바울에게서 백날 그 원인을 찾아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원수 문제를 해결한 셈이 되거든요.

사도바울은 그런적 없습니다.

도리어 죄인 중의 괴수

원수 중의 대원수라고만 외칠 뿐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 없다 말이죠.

그것이 사도바울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라고 외치는 이유입니다.

그럼 마귀의 활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인 찾고 조건 갖추고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마귀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단들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시편 91편의 내용을 그대로 문자적으로 따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단 뿐만 아니라 정통이라고 우기는 성화론자들도 동일한 해석인

문자적인 해석입니다.

 

그럼 해석은 해야 할 것 아니냐 라고 따질 것 아니겠습니까?

해석 불가 라니깐요.

 

그 어떤 인간도 해석할 권리가 없어요


마귀가 인간에게 해석 당하지 않는 판국에
예수님은 더더욱 해석 불가 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성령까지 해석하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웃끼냐 말이죠.
 

그럼 사도는??

사도는 성경을 완성하기 위해서 주어진 은사입니다.

 

후사도는 비성경적입니다. 인간들이 의미를 부여해서 만들어낸 성령은사 조작입니다.

그럼 교부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들이 의미를 부여한 교회 개념은 다 엉터리입니다.

그러니 정통 교회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정통교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안되는 판국에 그것도 구약에서 말이죠.

솔로몬 이후로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이제 없습니다.

그렇다고 역사 속에서는 없지만

묵시에서는 교회는 늘 또렷하고 명료하게 이미 완성 되었다는 거죠.

그러니 이것은 믿음으로 볼 문제이지

역사나, 시공간의 행함으로 볼 문제가 아닌 겁니다.

 

창조론자들은 소위 기독교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복음은 과학에 의해서 그 어떤 것도 해명 될수 없습니다.

오로지 믿음 곧 성령으로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교회도 동일하다는 거죠.

그런데 교부 타령 후사도 타령 그래서 나온 교회의 정통성은

어쩌면 창조론자들의 시선과 똑같은 육의 소욕에서 나온 거다 말이죠.

성령의 소욕에서 나오는 것은 그런것들과 썩여지지 않는 물과 기름 같다 말이죠.

 

그럼 그 성령은 무엇만 주장하는데?

당연히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교회를 운영하는데 그 어떤 도움이 안됩니다.
그런 돈 안되는 십자가가 어떻게 교회를 움직일까요?
인간은 돈으로만 교회를 운영하는 판국인데
즉 교회를 운영할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령이 주도해야할 문제이지

인간이 교회를 운영 불가입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빼내어야 교회가 운영이 되니까

사람들에게 먹혀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 교회이지

십자가가 아니다는 거죠.


결국 교회도 힘을 추구하기에
힘이 되기 때문에

힘 되는 교회에 매달린다는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전혀 힘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가 도리어 이 십자가를 하나님의 저주라고 뒤짚어 씌우는 판국에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의 원수로써 십자가에 매 달려 죽어야 하는 판국이다 말이죠.

그것도 교회로부터 마귀로 몰려서 하나님의 원수 취급받도록 하신다 말이죠.

교회로부터 말입니다.

 

이 뫼비우스의 끈을 무슨 수로 끊겠습니까?

 

외부인 곧 불쌍히 여기시는 분의 피로 대신 값을 치르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피로 사야만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마귀의 노예에서

예수님이라는 새 주인으로부터 바뀌어지는

예수님이 마귀의 손에서 빼앗는 전리품일 수밖에 없다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도둑이라고 표현 한 이유입니다.

밤에 몰래 집에 쳐들어와서 주인을 결박해서 새간을 빼앗는

늑탈하는 도둑질 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애굽을 결박시켜서 빼내신 구원사건이였듯이

빼앗는 전쟁이다는 겁니다.

 

그럼 원수는 누가 갚느냐 라는 거죠.

 

마귀는 자꾸 원수를 자기가 갚는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용한 것이 시편 91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유대인들이 바로 이 시편 91편 그대로

하나님의 원수를 잡아서 원수를 갚았는데

그 원수가 바로 예수입니다.

 

캬 이런 역설이 어디 있냐 말이죠.

 

유대인들은 단순히 예수를 이단으로 본게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유대 역사 속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가장 큰 하나님의 원수이다는 겁니다.

누가? 예수가 말이죠.

 

그 단 한명이 이때까지 유대역사에서 경험해온 하나님의 원수 중에 가장 큰 원수이다는 겁니다.

정신세계를 쥐고 흔들어버리니까 말이죠.

 

그 한 명을 죽이는데 있어서 모든 역량을 다 모으는 겁니다.

그렇게 뿔뿔히 흩어져서 개별자로 각개전투하듯이 전투를 벌린

독립해방군들이 단 한번도 뭉쳐본적이 없는데

이 예수 하나 죽이는데 만큼은 그 어떤 교파 분파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서 성사 시킨 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자 그러면 이 하나 됨에 있어서

하나님의 원수를 갚는데 있어서 시편 91편을 여러분 같으면

예수님을 죽이는데 사용하지 않을까요?

시편 뿐이겠습니까?

성경 모든 말씀을 다 인용해서라도 하나님의 원수인 이 예수를 죽이는데 이용할 겁니다.

 

당연히 오늘날 이단을 규정할때도 당연히 성경해석에 의한 것으로써 성경말씀이 인용됩니다.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안그럴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원수 아닌자가 있냐 말이죠.

마귀 아닌 자가 있냐 말이죠.

마귀 아닌 자가 돌로 쳐라 말이죠.

 

그래도 유대인은 자신만만하게 나와서 돌로 칠려고 했다 말이죠.

죄 없는 자가 쳐라 했을 때 난 죄 없습니다 라고 나와서 칠려고 했다 말이죠.

예수님께서 땅에 쓱 S S G 씁니다.

돌들고 나온 자들이 간밤에 무슨 짖을 했는지 땅에 적기를 하신다 말이죠.

어 어찌 알았찌? 갑자기 그 자신감이 졸지에 죄책감으로 몰려옵니다.

돌을 내려놓고 꽁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창녀라는 그것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은 여자를

마침 예수님이 옆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시험을 한 그 모습 자체가

바로 우리 인간들의 하나님의 원수된 모습이다 말이죠.

그런데 양의 탈을 쓴 무리 는 문자적 해석을 계속 주장합니다.

다시는 그런 죄를 짖지 말라고 이 문자 크기를 확대하면서 빨갛게 적은 인터넷 글을 보고

아 이 여자 마귀가 제대로 들렸구나 라고 했죠.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현장에서 잡았는데

역시나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문자를 크게 쓴다 말이죠.

이 문자 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이죠.

아무도 지킨 자가 없기 때문에 마귀가 자신만만하게 예수님에게 까지 시험을 한 것인데

또 다시 손할례로 돌아가자 라고 외치고 있으니

아무도 못 지킨다 라는 것을 그 목사 사모인 마귀들린 사모도 알고서

뻘겋게 크게 확대를 점점 크게 해서 화풀이를 하듯이 히스테리로 적었던 겁니다.

(마 23:1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자기도 천국 못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중간에 가로막고 있는줄 꿈에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가 힘 합쳐서 손잡고 복음을 무너뜨리자 라고

원수 갚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거죠.

 

결국 말씀 지키는 자는 마귀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씀을 지키는 겁니다.

 

안식일을 어긴 다윗, 하나님의 원수 다윗을 죽이겠다고

다윗에게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준

제사장까정, 그 동네 사람들, 친척들까지 하나님의 원수로 취급해서 다 죽여버리는 겁니다.

다윗을 돕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이다 말이죠.

역설적이게도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됨을 감추는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하나님의 원수 갚는 거다 말이죠.

 

율법의 가입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함이기에

마귀는 알았던 겁니다.

그 어떤 인간도 말씀을 지킬수 있는 인간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마귀가 직접 송사자로 나서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이죠.

 

그것이 유대인이고요

그런데 십자가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에 다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넘어지게 되니

도리어 남에게 하나님의 원수라고 뒤짚어 씌울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로 또렷한 증거물을 역설적이게 잡히게 되더라 말이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더라 말이죠.

 

이것이 하만이 도리어 에스더에게 말려든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십자가 지혜의 사건이다 말이죠.

그럼 마귀는 다른 일을 못합니다.

 

십자가의 지혜의 사건의 보충물도 동원이 될 뿐이다 말이죠.


다른 짓을 못해요 마귀는 ~~~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자주 충돌하시는 이유입니다.

 

바리새인 덕분에 마귀와 예수님의 차이를 알수 있고

그래서 발생된 십자가의 사건으로 인해

성경 전체를 확대해서 십자가의 지혜를 보도록 성령이 인도하는 겁니다.

 

이것이 문자해석과 성령 해석의 차이입니다.

 

문자해석은 항상 의문의 의문의 꼬리를 물어서 모호하고 흐릿합니다.

그러나 성령해석인 십자가는 항상 또렷하고 명료합니다.

 

오늘도 마귀는 시편 91편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하듯이

우리에게 조건을 따지고 묻고 갖추라고 합니다.

 

의인이라면 절대 망할 리가 없다.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원수라면 쫄딱 망하게 된다. 하나님이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십시오.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비로소 누가 써준 답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해야 할 하나님의 저주인 심판을

하나님의 원수인 죄인 중의 괴수인 나 사도바울을 대신해서 심판받으신

오히려 사랑이였기 때문에

이유 없는 용서이였기 때문에

이 또렷함이 밝히 보여서

다른 답이 없음을 보게 된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기에 망할 리가 없다고 본 자들은

여전히 말씀을 지키라고

그러면 하나님의 원수 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전히 거짓선지자들의 외침은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 망할리 없다는

그 모호한 의문의 흐릿한 것을 반복케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뛰어내려라고

기적을 보여주라고

절대 망할리 없다 라는 것을 보여주라고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라고

시험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잘도 인용하는 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원수로 취급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이 닥치면 십자가 라는 명료하게 밝히 보이는

주님의 사랑이

자신의 피로 사신

대신 죄 값을 치르시는

그 긍휼을 경험케 해 주실 겁니다.

 

아무리 봐도 창녀처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나인데도 불구하고

마귀는 이것을 예수님에게 까지 확대해서 시험하다가

하나님의 원수를 잡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냐 라는 그 시험에

돌로 쳐죽이는 십자가형을 행해야한다는 교회사람들의 주장에

예수님은 자신의 피 값

또렷하고 명료한 피 값으로 대신 죄 값을 치르시는

피 사건을 벌리시는 겁니다.

 

마귀의 지나치게 확대시킨 그 사건을

예수님은 더 역설적이게도 더더더 확대시켜 우주에 까지 확대시켜서

자신의 피 기능을

드리어 환자에게 의사노릇하겠다고 피를 잔뜩 발랐을때에

이 일이 너무 크게 확대되었다고

마귀가 도리어 더 크게 놀라는 겁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인만을 지옥으로 보낼려고 했던 하나님의 원수가

 

도리어 간음한 여인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율법으로 송사한 바로 그 놈이

? 율법을 지켰다고 우기니까

말씀을 지켰다고 우기니까?

그 놈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로

하만처럼 도리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손에 맡겨지지 않은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십자가로만 시편 91편을 인용하는 마귀를 잡으심입니다.

십자가의 피로써만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 사랑의 승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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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똑같은 예로 6.25전쟁 때

북한 장교가 남한 교회에서 에수 사진을 짖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고
예수 얼굴 사진을 절대로 밟지 않겠다고 한다면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나쁜 북한 장교가 말했을때에


더 더 나쁜 목사가 지혜롭게 제일 먼저 예수 얼굴 사진을 지근 지근 밟아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제일 먼저 보여주니까 교인들도 다 지근 지근 밟아 밟고 지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 교인들 다 살았다고 하지요.

그 유태인 엄마는 자기 자식인 아이들의 뺨을 때리면서
너거 누구니? 난 너거들이 누구인지 몰라 라고
나는 너희들의 엄마가 아니야 어디 감히 독일인 고아가 나를 엄마라고 하느냐 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더 나쁜 짖을 해야
더 나쁜 거짓말을 해야
아이들의 뺨을 제대로 때려야

아이들을 혹시 살릴수 있을지도 모르죠 ~~~

그러나 혈통적 육적 유태인의 단점이 유태인임을 손 못놓는다는 사실
(반대로 난장이 삭개오 세리 매국놈은 이미 놓아버린지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

절대로 선민이라는 의식과 하나님을 손 못놓는다는 사실

아마 독일인은 오로지 예수님을 죽인 유태인이라는 그 목적 하나로 벌어진 사건이기에

이 전체 숲을 본다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거짓말을 외쳐야 진짜 아이를 살릴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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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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