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실재계는 무능합니다.

사람을 죽이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정작 그 실재계의 그 무능한 빈자리를
상징계가 대신 앉음으로 인해

공포의 폭력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진으로 서행하던 기차에

철도선 긴급복구를 하던 인부들이 치여죽었습니다.

 

정작 지진으로 인해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지진을 피한 사람이 상징계의 불안으로인한 공포로 나타난 증상입니다.

 

부산행이라는 영화에서 좀비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살아남은자들의 불안이 정작 진짜 좀비(인간성 상실)이였다는 거죠.

불안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다는 거죠.

 

가인은 아벨의 제사를 받아준 주님께 감사하면 되는 것을

괜히 불안해서 아벨을 쳐 죽이는 겁니다.

이렇게 주님의 인애와 자비가 오지 않으면

인간의 불안은 서로가 서로를 불안의 공포로 집어넣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안정감을 도저히 찾을수가 없으니 말이죠.

 

기드온 300명의 군사가 총 칼 무기 하나 없이

횃불 항아리 나팔로써 실재계의 침범을 보여줍니다.

무능한 실재계 말이죠.

정작 그 공포로 인해 불안해서 미디안군사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임으로써

수십만명이 딸랑 300명에게 그것도 빈항아리 횃불 나팔에

7년 동안의 핍박이 종지부를 끊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기드온은 고때만 대접받고

실질적인 공포정치는 겁쟁이 기드온을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서 벌어지는 거죠.

 

엘리야가 나만 남았다고 상징계의 공포에 불안해서

내 열심히 특심이다고 외쳤을때에

7천명 남겨놨다는 말에

심각한 것 하나 없이 전복이 되어서

졸지에 안정감을 찾게 되니

상징계의 공포 보다

무능하지만 더 강한 실재계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니체 말로 하면 자기가 독수리(괴물) 인줄 모르고

괴물 보고 놀란 땅에서의 양처럼 닭처럼 독수리 보고 놀란 거죠.

자기(미운오리새끼)가 독수리인줄 모르고 독수리 보고 말이죠.

 

그 이후에 정작 진짜 상징계의 폭력은 외부 세력이 아닌

내부 세력으로써 이스라엘 속에 전체로 퍼지니까 말이죠.

 

그래서 큰 파도를 하나님의 보좌는 일으켜서

마귀가 그 빈 자리에 앉아서 제사와 번제 곧 법의 공포를 행사하는게 아니라

그 마귀 뒤에 오는 인애와 자비를 행사하시는 겁니다.

마귀()의 행사 뒤의 7천 명을 보라고

 

이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태양은 떠오르고 아침은 밝아 오는 겁니다.

이 아침이

그 경계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신 배려였다는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다는 거죠.

 

그러나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은 이 마귀의 실체를 드러내시는

실재계의 무능함을 계속 침범함으로써 불안해 하는 마귀를 공격하는 겁니다.




김대식   놀란 아이들이 있다면

더 신나게 맛나는 거 사먹이고
아주 아주 재미난 영화를 보여주고
즐겁게 노래방에서 춤추며 노래 부르고

억지로라도 즐거운 웃음 꽃이 일어나도록
기쁘고 기쁜 위로를 많이 많이 아이에게 듬뿍 주시면 됩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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