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넘어서, 온 땅의 열방이 찬양하는 십자가 사건 (시편 96편)
할례의 수종자 되신 예수님의 새노래, 그리고 이방인을 제물로 받는 열방의 통치자의 새노래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종 되심과, 참 기쁨의 산 소망이 된 왕 되신 그리스도
(롬 15:8, 새번역)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를 받은 사람의 종이 되셨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증하시고, / ㉡유대 사람을 가리킴』
(롬 15:8, 공동)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진실성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할례받은 사람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고』
(롬 15:8, 한글킹) 『이제 내가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일꾼이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고』
(롬 15:8, 현대인)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만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는 유대인들의 종이 되신 것은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임을 보이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며』
(롬 15:8, 가톨릭)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시 96:1, 새번역) 『새 노래로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땅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시 96:2, 새번역) 『주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에 영광을 돌려라.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하여라.』
(시 96:3, 새번역) 『그의 영광을 만국에 알리고 그가 일으키신 기적을 만민에게 알려라.』
(시 96:4, 새번역) 『주님은 위대하시니, 그지없이 찬양 받으실 분이시다. 어떤 신들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다.』
(시 96:5, 새번역) 『만방의 모든 백성이 만든 신은 헛된 우상이지만, 주님은 하늘을 지으신 분이시다.』
(시 96:6, 새번역) 『주님 앞에는 위엄과 영광이 있고, 주님의 성소에는 권능과 아름다움이 있다.』
(시 96:7, 새번역) 『만방의 민족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여라.』
(시 96:8, 새번역) 『주님의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라. 예물을 들고, 성전 뜰로 들어가거라.』
(시 96:9, 새번역)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께 경배하여라. 온 땅아, 그 앞에서 떨어라.』
(시 96:10, 새번역) 『모든 나라에 이르기를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세계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 주님이 만민을 공정하게 판결하신다" 하여라.』
(시 96:11, 새번역) 『하늘은 즐거워하고, 땅은 기뻐 외치며,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도 다 크게 외쳐라.』
(시 96:12, 새번역) 『들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도 다 기뻐하며 뛰어라. 그러면 숲 속의 나무들도 모두 즐거이 노래할 것이다.』
(시 96:13, 새번역) 『주님이 오실 것이니,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니 숲 속의 나무들도 주님 앞에서 즐거이 노래할 것이다. 주님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뭇 백성을 다스리실 것이다.』
(롬 15:1, 개역)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롬 15:2, 개역)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롬 15:3, 개역)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15:4, 개역)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 15:5, 개역)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롬 15:6, 개역)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롬 15:7, 개역)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8, 개역)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롬 15:9, 개역)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15:10, 개역) 『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롬 15:11, 개역)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롬 15:12, 개역)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롬 15:13, 개역)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4, 개역)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롬 15:15,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롬 15:16, 개역)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 15:17,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롬 15:18, 개역)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롬 15:19, 개역)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20, 개역)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 15:21, 개역)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5:22, 개역)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롬 15:23, 개역)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롬 15:24, 개역)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롬 15:25, 개역)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롬 15:26, 개역)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롬 15:27, 개역)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 15:28, 개역)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롬 15:2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롬 15:30, 개역)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롬 15:31, 개역)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롬 15:32, 개역)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롬 15:33, 개역)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앞의 글에서 선지자란 경계인이라고 했습니다.
마침 오늘 시편 96편에
새노래는 유대인에게 곧 할례를 받은자에게는 종이 되는 새노래이고
이사야 53장처럼 말이죠. 고난 받는 종
이방인 곧 열방에게는 제물받으시는 분 곧 높임을 받는 임금 통치자 왕이 되는 새노래이다는 겁니다.
이방인 자기자신을 제물로 드려 마땅히 높임을 받는 분인 왕으로써의 예수님이다는 겁니다.
결국 새노래는 사건을 말하는 겁니다. 룰루 랄라 노래라는 음악이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중간에 경계인이 된 새노래 라는 사건이
이런 일들을 벌립니다.
할례를 받은 유대인에게는 종으로
이방인이 복종하는 높임을 받는 왕으로
종과 왕, 이 중간 간극 사이 경계에 새노래가 있는 겁니다.
이 둘이 어떻게 하나가 되느냐 말이죠.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 돼지로 취급하고
이방인은 유대인을 헬유대 수구 꼴통으로 취급하는데 말이죠.
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이 간극을 무슨수로 하나로 만들어
서로가 주님을 찬양토록 하느냐 말이죠.
이 간극 좁히기는 그야말로 불가능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두 쪽 모두 종이면 종으로만 하던가?
아니면 왕이면 왕으로만 하던가?
유대인에게는 종으로
이방인에게는 왕으로
왜 이런 차이가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요?
(롬 15:16, 새번역)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내게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방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15:17, 새번역)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롬 15:18, 새번역) 『그리스도께서 이방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나를 시켜서 이루어 놓으신 것 밖에는, 아무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롬 15:19, 새번역) 『표징과 이적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영의 권능으로'』
사도바울 본인이 경계인으로써 이방인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케 만들고자 하고
유대인에게는 섬기고자 로마로 간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전쟁개념이 실제적으로 칼과 창 이라는 구체적인 것들이 동원되는
군인으로써 전쟁이 벌어집니다. 인간은 곧 창과 칼을 쥐게 된다는 거죠.
적군을 죽이고 대적 원수와 실질적으로 싸웁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이제 그런 보이는 것이 아닌
안보이는 전쟁으로써
마치 사도바울은 군사처럼 이방을 굴복케 하는 전쟁하는 군인
이방의 사도처럼 전쟁으로 표현되고 있고
유대인은 아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아군에게는 오히려 쫏겨다니는
마치 선지자가 자기 고향 자기 백성 자기 민족에게는 싫어버린 바 되고
오히려 이방인에게는 존경을 받는 식과 같다는 겁니다.
왜? 뭔가 이상하지 않냐 라고 했냐 하면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을 높이 왕으로써 높이는 왕으로써 예수님이 찬양 되고
이방인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니까 처음부터 하나 하나 가르치는 섬기는 모습인 종으로써의 예수님이어야 하는데
뭔가 거꾸로 된 것 아니냐 말이죠.
마땅히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왕으로 높여야 하는데
오히려 이방인이 예수님을 왕으로 높이고
반대로 이스라엘을 예수님이 도리어 섬기는 종으로 오셔야 한다는 겁니다.
뭔가 맞지 않다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채로 걸러내는 작업이 되는 겁니다.
새노래는 한마디로 큰 채가 되어서
걸러내는 망이 되는 거죠.
불순물이 쫘악 빠지는
바로 이것이 새노래로써의 사건인데
신약에서는 이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는 겁니다.
그럼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어떻게 행동합니까?
맞습니다 거꾸로 행동합니다.
이방인에게는 왕으로써 그들을 정복하는 왕의 복음? 이고
왕의 복음 제가 방금 만들어 본 용어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종으로써 그들을 섬기는 종의 복음? 이라는 겁니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에
왜? 예수님은 말씀에 기록된 대로 하셨다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물론 성령의 인도로 인한 도구죠.
경계인으로써 한 쪽에서는 고향에서 쫏겨나는 선지자
그러나 다른 한 쪽 타향에서는 왕의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로써
졸지에 이방인에게는 소망이 생겨 버린 겁니다. 왕이 생겨버린 겁니다.
그 동안 이방인은 노예로써 종으로써 얼마나 많은 왕들을 접해왔겠습니까?
그러나 제대로 된 왕 하나 만난적이 없다 말이죠.
소망이 없어요 소망이
그런 이방인에게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콩꼬물이라도 좋사오니
제발 등쳐먹고 도망치는 그런 왕 말고
참 되신 왕 하나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소망했다 말이죠.
드디어 만났다는 겁니다.
귀신 들린 자에게 무슨 놈의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불가능한 소망이 그것도 산 소망으로써 나타난 겁니다.
우찌 유대인에게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 믿음이 이방인에게서 찾게 될 줄이야
예수님도 놀라시더라 말이죠.
(마 15:21,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 15:22, 개역)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개역)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개역)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개역)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고아이긴 고아인데 아버지가 졸지에 생겼다 말이죠.
나그네이긴 나그네인데 임금이 졸지에 생겼다 말이죠.
아니 이런 산소망이 생겼는데 안 기쁘고 배기냐 말이죠.
노래 안 부르고 배기겠습니까?
다윗이 막먹고 막부르고 막 춤추고
막살지 않고 배기겠냐 말이죠.
산소망이 생겼는데???
문제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도대체 어떻게 하느냐 말이죠.
이들 유대인들은 제대로 된 종 곧 섬기는 선지자를 만난적이 없는 겁니다.
이 완악한 마음이 참 선지자들을 늘 상 죽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완악한 마음인 이 수건을 벗겨내는
마음판의 할례를 제대로 실행해 주는 그런 종 말입니다.
그야말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죽기를 각오한 자 말입니다.
결국 유대인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이방인과는 정반대로 죽는거나 마찬가지이다는 거죠. (오히려 반대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심장부인 성전을 해체하고
이스라엘을 해체하고
이스라엘을 넘어서는 온 땅의 이 열방이 기뻐노래하는 이 복음을
기쁨으로 증거하는 종
이 섬기는 종
마치 며느리 다말이 끝까지 시아버지 유다를 자빠뜨리는 실족케 하는 복음인 종의 복음을 증거하는 겁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써 사도바울은 이 유대인을 어떻게 대합니까?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어떻게 할까요?
바로 섬김으로써 해체 하는 겁니다.
수건을 벗기는 겁니다.
발가벗기는 겁니다.
사도바울 본인이 그렇게 해체가 되었던 자 아닙니까?
본인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써
완악한 자 중에 완악한 자로써
죄인 중의 괴수로 수건이 1 홀라당 2 홀라당 두 번 벗겨졌습니다. ㅋㅋㅋ
그 혜택 받은 것을 그 섬김 받은 것을
이제 본인이 격었듯이
유대인을 향해, 고향을 향해 고향에서 배척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
그들의 완악한 성전을 허물기 위해서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섬기는 종의 모습인 그리스도를 본받아
십자가 사건이 반복이 되는 겁니다.
머리에 뜨거운 것을 언져 놓으면
얼굴이 빨개 진다 말이죠.
즉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겁니다.
부끄럽게 만든다 말이죠.
어떻게 부끄럽게 만듭니까?
왕으로써 굴복시키는 겁니까?
유대인은 힘으로 될 인간들이 아닙니다. 그래가지고는 수건이 안 벗겨집니다.
오히려 유대인은 기적을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말이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표적을 구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
곧은 목을 꺽어버리는 기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왕으로써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서로 임금 삼고자 했다 말이죠. 기적 보고)
종으로써 섬기는 겁니다.
(롬 12:20, 개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 새번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잠 25:21; 22』
즉 다리 걸어 실족케 해서 넘어뜨려 자빠뜨리면
꽈당 굴욕 사진이 포토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장식된다 말이죠.
얼마나 고귀하고 럭셔리한 고급진 옷으로 한 껏 치장하고 우아하게 걷고 있는데
바나나 껍질을 밟도록 해서 미끄러 자빠져 꽈당 했을때에
얼마나 얼굴이 붉어지면서 부끄럽기 짝이 없냐 말이죠.
결국 섬기는 종이다는 것은 노예처럼 굽신 굽신하고 심부름꾼센터 직원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를 넘어뜨리는 자이다는 겁니다.
할례의 수종자되신 그리스도 이시다 라는 뜻은
그야말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이다는 겁니다.
구약의 참선지자는 다 이렇게 불편한 존재이다는 겁니다.
완악한 유대인의 수건을 벗겨버려서 맨얼굴로 만드는 자로써 섬기는 자이다는 겁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맨얼굴의 민낯이 된 것이 바로 약속의 선지자인 며느리 다말의 실족케 함 때문이다는 거죠.
반면에 이방인에게는 왕이 원래 없다 말이죠.
이리 저리 왕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 이다는 겁니다.
떠돌이인 고아 에게 과부에게 나그네에게 졸지에 산 소망이 생겨버린 겁니다.
아버지요 왕이요 남편이 생긴 겁니다.
얼마나 기쁘겠냐 말이죠. 그 기뻐하는 자들의 기쁨이 되는 왕이시다는 겁니다.
높임을 받는 왕
이 두 양상(종이냐? 왕이냐?)으로써 새노래라는 사건 곧 십자가 사건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우리에게 침범해서 끝까지 십자가가 나를 다루겠다는 겁니다.
이것을 찬양자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갑지기 시편 96편을 보고 이런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시편 148편에 있는 내용인데
하늘의 해와 달들아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나팔소리 비파와 수금으로 춤추며 찬양하여라
험한 산과 넓은 바다 모두 주를 찬양하여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세상 모든 사람들아 주를 찬양하라
살아 계신 나의 하나님을
세상 모든 사람들아 주를 찬양하라
살아계신 너의 하나님을
호흡이 있는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이방인들 곧 이스라엘이 아닌 자들
심지에 바다도 하늘도 해도 달도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들이 서로 서로 예수님을 찬양하겠다고 외칠때에
이스라엘은 뾰로롱 삐쳐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 불러야 하는데
오히려 개같은 이방인들이 더 노래를 잘 부르더라 말이죠.
시기케 만든다는 겁니다.
저들을 완악케 만드셔서 이방인에게 화목케 되었다는 겁니다.
(롬 11:14, 개역)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5, 개역)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 십자가가 아니였다면
너희 이방인 다 죽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무릎 꿇어 순종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 하라 말이죠.
유대인을 거쳐서 말이죠.
반대로 에이 우리 이방인이 예수님으로부터 섬김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왕이 아닌 종으로 말야
라고 부러워 할게 아니다는 겁니다.
정반대로 거꾸로 생각한 거죠.
종으로 온다는 말은 부끄럽게 만든다는 거죠.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완악해지는 이유를
유대인들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다 말이죠.
그럼 너희 이방인도 예수님을 또 두 번 죽일래? 그럴래?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유대인이 완악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지를 꺽어서 버림으로써
너희 이방인 죽은 가지가 접붙임 당한거지
저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화목이 되어 접붙임 받았겠냐 말이죠.
그러니 이유 없이 무조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무조건 찬양함으로써
저들을 시기케 하는 겁니다.
배아프게 만든다 말이죠.
(롬 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롬 11:2, 개역)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롬 11:3, 개역)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롬 11:4, 개역)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롬 11:5, 개역)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7, 개역)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롬 11:8,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9, 개역)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개역)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롬 1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 11:12, 개역)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3, 개역)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 11:14, 개역)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5, 개역)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 11:16, 개역)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롬 11:17, 개역)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18, 개역)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롬 11:19, 개역)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
(롬 11:20, 개역)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롬 11:21, 개역)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 11:22, 개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롬 11:23, 개역)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롬 11:24, 개역)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롬 11:25, 개역)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 11:26, 개역)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롬 11:27, 개역)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28, 개역)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롬 11:29, 개역)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30, 개역)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롬 11:31, 개역)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1:32, 개역)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3, 개역)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4, 개역)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5, 개역)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6, 개역)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권능이다는 겁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끄러지게 한다는 겁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하는 부끄러움이 되는 거죠. 십자가가
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는 역시나 미련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십자가이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런 사건으로써 새노래인 시편 96편은 이런 의미를 담고서 외쳐지는 겁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라는 스피커 곧 소리를, 악기를 통해서 말이죠.
원래 처음 악기였던 이스라엘이 이것을 노래해야 하는데
완악해 져서 이스라엘 악기를 못 쓰게 되는 겁니다.
소리를 부르니까 삑사리 나니
악기를 교체시키는 겁니다.
또는 엉뚱한 거짓선지자의 외침을 소리내고 있더라 말이죠.
그래서 이 이스라엘이라는 악기를 버리고
새로 장만한 이방인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이 십자가를 찬양하는 겁니다.
이방인악기가 얼마나 신나게 부르고 있는지
산소망이 생겼다 말이죠.
소리가 없었는데
졸지에 악기가 되어서 말이죠.
자 그럼 사도바울은 왜 로마에 죽는 것 뻔히 알고
또 성도들이 성령을 받아 알아채고서는 가지 말라고 만리고 있는 와중에도
왜 사도바울은 신나 있는 것일까요?
산소망을 전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고
유대인에게는 섬기는 종되신 예수님을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도가 된 것이니
다른 이유가 없는 거죠.
그저 이유 없이 죽든 말든 살든지 죽든지
그저 알려주고 싶은 것 뿐입니다.
하늘과 해와 달들아 소리 높여 찬양 하여라
하늘도 해도 달도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이
그저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참사랑을 보라고
산소망이 아니냐 라고
완악한 마음의 수건을 벗기고자 할례케 하는 마음판의 할례를 수종드시고자 끝까지 섬기시고자 종이 되셨다고
이 분을 너무 너무 증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말이죠.
모든 것이 신나게 벌어지고 있는 십자가 사건인 겁니다.
새노래 사건입니다.
이 즐거운 복음을, 기쁨의 새노래를,
놀라운 십자가의 용서를 마음껏 부르고, 신나게 노래하고, 기쁘게 춤추고, 즐겁게 누리시면 됩니다.
온 땅이여 주를 찬양 날마다 주를 찬양하세 ~~~
하늘의 해와 달들아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나팔소리 비파와 수금으로 춤추며 찬양 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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