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이 벌벌벌 떨고, 땅을 요동케 하는 복음 (시편 99)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시 99:1, 개역)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시 99:2, 개역)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


 

마태복음 10장 전체를 시편 99편과 함께 읽었습니다.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선지자를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서 동네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친구였고

누구집 자식이고

(요 6:42, 개역)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저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어릴 때 이런 저런 일들을 통해서 아이의 성격을 알고 등등등

개인적인 성향을 다 알다보니 공적인 인물로 취급할 수가 없다 말이죠.

 

그런데 동시에 이중적인 모습이 뭔고 하니

만약 그 선지자가 대법원 판사 고시에 합격했다 하면

동네방네에 플랜카드 현수막이 붙어서

서울대 몇 명 합격이라고 교회에서도 조차 내걸정도이면

동네는 오죽하겠냐 말이죠.

공적으로 말입니다.
그것은 대 환영이지요, 환영중에 환영
로또복권 당첨자 명당이면 차가 막힐 정도로 사람이 우르르 몰려온다 말이죠.

그런데 선지자가 오면 메르스 사태처럼 차도 안 다닐정도로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처럼 되어버린다 말이죠.

결국 선지자 라는 직분이 오히려 공적인 직무 보다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플랜카드를 내 걸 정도는 고사하고서라도 오히려 쫏아내기 바쁘다 말이죠.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버리고 혐오시설 취급하듯이 혐오인간으로 취급해서

쫏아내버려야만 땅 값이 안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고향에서 대접을 못받습니다.

상대적으로 이방인과 사마리아에서는 대접을 받는다 말이죠.

이 양극화 된 소유성, 곧 잉여성 때문에

우리는 거룩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봐야 합니다.

거룩이란 이렇게 같은 하나를 두고 둘로 갈라지는 현상을 말하는 겁니다.

 

성전에 두 사람이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의 성전에서 두 사람이 단순히 두 사람이라서 두 개로 갈라지는게 아니라

두 노선으로써 갈라지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성전이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교회에서는 반드시 두 패로 갈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거룩은

율법은

복음은 반드시 두 패로 가른다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원수 지간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 둘이 그렇게 원수지간이 되는게 아니라

원래 친구지간이였고

형제요 자매였는데

복음이

거룩이 들어가면

이 둘 사이가 아무리 친한 관계일지라도

서로 원수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복음이요 거룩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원수지간 만들고자

선지자는 고향에 대접 못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들어가는 겁니다.

공적임무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땅 값 떨어뜨릴려고 말이죠.

저들이 그것을 두려워 한다 말이죠.

 

경주 지진 보세요 땅이 요동하니까 그 동안 지진보험을 들게했던 보험사 조차도

더 이상 지진보험을 가입할수 없게 하더라 말이죠.

 

아이구 지진 보험도 못 드는 무서운 세상이구나가 심각한게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심한 것을 봐야 합니다.

만민이 떨도록

땅이 요동하여 흔들리도록 하는

멀쩡한 무화과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그 끝을 미리 앞당기는 심판을 보라는 겁니다.

아마 소돔과 고모라가 더 견디기 쉬울 정도로

더 심하게 흔들고자 하는 이 복음이

정작 이방인도 아니요 사마리안인에게도 아닌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는 겁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죽으러 가는 겁니다. 대접 못 받는 곳에 왜 가냐 말이죠.

대접 받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곳에 가야 하는데

오히려 복음을 거부하는 곳에 왜 들어가냐 말이죠.

인자가 넘기움을 받듯이

넘기움을 당하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대접은 아예 포기입니다.

오히려 흔들고자 함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요소는 이스라엘의 의미 자체가

땅의 흔들림 속에서 나온 것이 이스라엘의 의미입니다.

 

심판 속에서 나온 자들이 이스라엘이다 말이죠.

그러니 마땅히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일반인이 나오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어떤 어부가 퀴즈에 참가 했습니다.

아나운서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1년 이상을 바다에서 지내시는데 어떻게 멀미는 심하지 않나요? 라고 물으니까

오히려 그 어부는 땅에 발 딛고 지내는 것이 오히려 멀미가 난다고 하니

아나운서가 놀래더라 말이죠.

 

이스라엘은 심판 곧 땅의 요동 곧 주의 발등상이 나타나는 주의 오른팔에서 태어난 자들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땅이 흔들리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선지자 곧 성령 받은자가 그러합니다.

소동 속에서

요동 속에서 사는 자입니다.

 

반대로 육에 속한 자는 땅이 흔들리는 곳에서는 못 삽니다.

오늘 새벽 3시에도 경주에서 여진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관광객도 다 끊기고 호텔 식당 택시 모조리 다 연쇄작용으로 인해

사람들이 살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아 버립니다.

 

이 보다 몇천배 땅이 요동하는 일본은 그럼 벌써 망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죠.

 

그런 일본 보다 더 몇억배 더 심한 아예 요동 그 자체인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김요동 박요동 이요동 최소동 유흔들 차지진 등등 이 바로 이스라엘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그 처음자리를 차버리고

선지자를 대접하지 않고 쫏아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그 정도로 우리는 복음을 무시하는 겁니다.

내 목숨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마귀한테는 벌벌 떨면서도

정작 그 마귀가 두려워 떠는 예수님을 우리는 너무 시시하게 봐버려서

그 복음을 영접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발생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 사건은 거룩은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겁니다.

 

시편 99편에 제사장 모세와 아론을 언급해서 출애굽을 말했듯이

주의 발등상에 반드시 우리가 두려워 떠는 그 마귀를 올려 놓음으로써

주의 오른팔에 주의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겁니다.

 

이 두 상황이 동시에 벌어져야 하는 겁니다.

한 쪽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룩은 반드시 두 부류 두 노선을 항상 대비 시킵니다.

에서는 미워하기로 작정되어 있고

야곱은 사랑하기로 작정이 되었다고

 

그래서 십자가 상에 두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예수님이 달리시니까

 

한 쪽은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죽음 보다 예수님의 피 흘리신 그 사랑을 더 두려워 하는 겁니다.

 

그러나 다른 한 쪽 강도는 에수님을 시시하게 보는 무시해 버리는 모습입니다.

 

자 이렇게 이 죽음의 순간에서 마저도 죽음 보다 더 두려운

둘로 가르는 거룩이 더 무섭다는 것을

십자가의 피 용서가 죽음보다 더 두려운 심판의 기준이다는 것을

 

그래서 목숨을 죽이고 육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 할게 아니라

내 영혼 조차도 소멸하시는 분을 더 두려워 하라는 겁니다.

 

어머니께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면 베드로는 주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고 말이죠.

그럼 어떻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기전에

베드로는 자신이 도저히 이길수 없는 마귀에게 잡혀와야 하고

그 마귀를 베드로가 도저히 이길수 없는 마귀를

다시 주의 발등상에 놓음으로써 마귀 보다 더 두려운 분임을 보여주심으로써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는 물음으로써 네 제가 주님을 더 두려워하고 더 사랑합니다 라고

나를 잡은 마귀 조차도 그 앞에서 찍 소리 못하고 주의 발등상에 놓이는 것을 보고

그 부드러운 음성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외칠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 마귀가 주의 발등상에

원수가 주의 발등상에 놓이지 않으면

외질수 없는

그 정도로 정작 두려워 할 분은 마귀가 아니라

주님이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나의 전체를 흔들어 버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베드로 곧 나 곧 우리들은 그 속에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박요동 김흔들 최소동 이라는 이스라엘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이 저 허구인 이방인 보다 더 못한 이방인이 되어서

선지자를 거부하는 자들이 되고 만 겁니다.

그러니 시편 99편은 이런 상황을 염두하고서

출애굽을 다시 언급하는 겁니다.

과거의 캐캐묵은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벌어지는 구원사건임을 외치는 거죠.

 

이 복음이 가족과 가족 사이를 원수지간 만듭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런 보호막이 깨어질까봐 두려워 하는데

정작 진짜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냐 라고 깨뜨리는 겁니다.

 

땅이 흔들리고 세상이 요동하고

교회 속에서 소동이 벌어진다는 것은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또렷한 것은 또렷해지는

주님의 보좌가

주의 발등상이 나타났다는 증거로써

기뻐해야 하는 겁니다.

 

아니 내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했고

내가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써

 

정작 무엇을 제대로 두려워 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시는 사랑의 나타나심입니다.

 

성도는 끝을 현재로 투입시키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끝을 몰고오는 자들입니다.

흐릿하고 모호한 것들은 가라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라고

진짜 두려워 벌벌 떨어야 할 것을 보여주는 자들인

찬양자 이다는 겁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을 보고

사라질 안개와 허깨비를 보고 벌벌 떨고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두려워 떨어야 할 것은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그 실상을 보고

예수님을 보고

생명을 보고 떨게 하옵소서

내 목숨을 취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유일하게 물으시는 단 한 분만을 두려워 떨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 10:1, 개역)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2, 개역)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 10:3, 개역)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마 10:4, 개역)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마 10:5, 개역)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7, 개역)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마 10:8, 개역)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9, 개역)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마 10:10, 개역)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마 10:11, 개역)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마 10:12, 개역)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 10:13, 개역)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마 10:14, 개역)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 10:15,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0:16, 개역)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7, 개역)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8, 개역)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0:19, 개역)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개역)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1, 개역)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 10:22, 개역)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3, 개역)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 10:24, 개역)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마 10:25, 개역)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 10:26, 개역)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0:2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9, 개역)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30, 개역)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마 10:31, 개역)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32,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3,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40, 개역)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41, 개역)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개역)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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