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지혜와 여호와의 집 (시편 127)

헛되다 라고 외치는 지혜

 


(
127:1, 개역)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127:2, 개역)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127:3, 개역)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4, 개역)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127:5, 개역)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누구 누구의 지혜 라고 하면

그 사람이 소유한 지혜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 시각입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지혜를 쌓듯이 말이죠.

마치 부자청년이 어릴적 부터 율법을 다 지킨것을 쌓듯이 하는 것이
또 탕자의 형인 맏아들이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음을 쌓듯이
베드로가 몇번 남을 용서할까요? 7번 ? 8번 이라고 하듯이
인간들이 생각하는 지혜는 이처럼 점점점 덕을 쌓듯이 발전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다릅니다.

바로 그런 잘못된 해석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해석을 가지고 와서

그 차이로써 더 나은 해석을 하는데 있어서

 

누구 누구의 지혜 곧 누구 누구가 소유한 지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지혜가 소유한 누구로 거꾸로 해석하게 된다 말이죠.

 

이 비밀을 비밀시 하는 식으로

감추어서

처음에는 오독한 것을 그 다음에는 정독하게 되듯이

그 오독을 가지고서 그 차이로 나타내는 것이 지혜이자 곧 인물이다는 겁니다.

 

결국 솔로몬이 소유한 인물(지혜)이 아니라, 지혜(인물)이 소유한 솔로몬이 되는 거죠.
솔로몬은 결국 존재가 아니라 비존재로써의 기능이 되는 겁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고 외친 세례요한처럼 누락 되기 위해
회개하기 위해. 부정하기 위해서 동원이 된 기능이다 말이죠. 퍼뜩 퍼뜩 이동해 버리듯이 말이죠.

이것을 흔히 성경에서는 누구 누구의 하나님 이라고

반드시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더라 말이죠.

그냥 하나님이 단독자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존재의 하나님은 없고요

누구 누구의 이름을 앞장세워서 자신의 기능을 나타내는 하나님이기에

기능적이지 존재적이지 않은 겁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붙는 누구 누구 라는 이름 자체가 자신의 존재성을 부인 부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 
자신이 기업의 기능이다는 것을 나타냄으로써

기존의 신 개념 하나님개념 우상들의 존재에

그 차이로써 자신의 기능을 드러내심으로써

우상 곧 원수를 파괴하는 겁니다.

 

오늘 성전 곧 하나님의 집이 나오는데

이 하나님의 집이 과연 강도의 소굴인 우상인가?

아니면 솔로몬을 다루신 지혜였던 그 인물이 나오는가?

그 인물의 기능은 바로 이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세우겠다 라는

인자하심

곧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지혜가 나오는 성전인가 라는 점입니다.

 

그냥 인애와 자비가 독자적으로 나오는게 아니라

반드시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는 다는 것이 구체화 되고서

그 차이로써 나오는 인애와 자비 곧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는 성전이라는 인물이라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솔로몬이 소유한 지혜로 보게 되면

문자적으로 이 시편 127편을 달달 외우는 식이 되다 보니

원수 문제를 곧 구원 문제이다고 했지요

자꾸 자신들의 손으로 이룰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헛되도다 라고 하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솔로몬 하면 곧 지혜인데

그 솔로몬 지혜 라고 하면 헛되도다 라는 트레이드 마크처럼

솔로몬 하면 바로 떠오로는 단어인 헛되도다 라는 특화된 특이점이

이 헛되도다 라는 것을 거치지 않고서

지혜로 바로 갈려고 하니

다 말려드는 겁니다.

문자를 붙잡고 존재를 붙잡으니까

솔로몬도 하나의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헛되도다를 외친 것인데 말이죠.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수고한 것이 헛되도다 라는 겁니다.

 

(127:2, 개역)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127:3, 개역)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4, 개역)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127:5, 개역)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127:5, 새번역)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127:5, 현대어)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이는 얼마나 복되랴. 재판받는 자리에서 원수를 만난다 해도 그는 결코 부끄러움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런 것들이 왜 헛되냐 하면

구원이 안된다는 겁니다.

즉 원수 문제죠

원수 문제를 해결 못한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수고가 말이죠.
의문의 반복일 뿐인 번제와 제사이다는 겁니다.

마치 사람의 구원이 헛된 것처럼 말이죠.

 

그럼 뭔데?

무엇이 이 원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구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혜인데 곧 인물인데

그 인물이 바로 예수님인데

이 예수님이

밤에 몰래 잠잘때에 사랑으로 오심과 같다는 겁니다.

즉 성령으로 잉태한 처녀처럼

이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듯이

그 잠을 통해서

즉 계시록에서 우리가 환상을 언급했잖아요

꿈만 같도다 라고 말이죠.

즉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이 환상이 진짜 현실이고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껍떼기일 뿐

그 껍데기를 땅콩 껍질 까듯이 까서 껍질 속을 보면

그 환상이 진짜 알맹이 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열매인데

성령으로 인해 잉태한 이 자녀가 상급인데, 기업인데

이 상급이

이 젊은 자의 자식이 바로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장수의 화살과 같아서

원수 앞에 섰을때에 든든하다는 겁니다.
화살통에 화살이 없어 보세요, 대략난감이 될것이다 말이죠.

 

이것을 제가 어머니께 이런 설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임신하니까

율법에 의해서 돌삐 쳐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 된거다 말이죠.

그래서 율법을 쥔 머슴아 남자들이 이 잉태한 처녀를 돌로 쳐 죽일려고 할때에

그 상황에 놓여졌을때에

마리아가 노래 곧 기도를 하니까

성령으로 인한 기도가 되다 보니

오히려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가시화 시키는 그 접촉점으로써 이 여인이 기도하게 되니

이제는 거꾸로 처녀가 배가 불러온 배를 껴안고 막 여러명의 남자 뒤를 쫏고 있고

남자는 이 여인 하나에 의해 도망치고 쫏겨남을 당하는

 

마치 이것을 코메디 변방의 북소리 심형래 나오는 하나의 장면처럼 제가 연기를 하듯이 보여주니까

어머니께서 웃싸 죽겠다고 깔깔깔 웃으시더라 말이죠.

처음에는 심형래 혼자가 도망치고 뒤에 여러명이 쫏아가던데
나중엔 거꾸로 심형래 혼자 여러명을 쫏아가고 여러명이 도망치더라 말이죠.

전복이 되는 겁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딸랑 남은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면서

내 열심히 특심인데 하나님 이러기요 라고 시위를 했는데


채널을 돌리니까 그 심각한 것이 웃끼는 코메디가 되어서

 

7천명이 남은자로써 남겨놨다는 말에

부끄 부끄 되었다 말이죠.

 

그래서 이제는 딸랑 여인 하나가 한가득 불러온 배를 껴안고 남정네들을 쫏고 있고

도망치듯이 남자들은 헐레벌떡 도망을 치더라 말이죠.

 

좀 전까지만 해도 그 반대로 남정네들이 돌삐를 들고 이 여인하나를 돌로 쳐죽일려고 달려들고

이 여인은 도망치기 바빳는데 말이죠.

 

이것이 한 순간에 전복이 되더라 말이죠.

(눅 1:34, 개역)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 1:35, 개역)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6, 개역)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눅 1:37, 개역)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8, 개역)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39, 개역)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눅 1:40, 개역)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눅 1:41, 개역)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 1:42, 개역)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눅 1:43, 개역)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눅 1:44, 개역)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눅 1:45, 개역)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눅 1:46, 개역)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 개역)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8, 개역)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 1:49, 개역)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눅 1:50, 개역)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 1:51, 개역)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눅 1:52, 개역)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 1:53, 개역)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 1:54, 개역)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 1:55, 개역)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악인이 너무 너무 잘 되어서 죽을때도 행복하게 죽던데

나는 매일 매일 손씻듯이 정결한 삻을 살아도

저 악인을 보니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 맞나 싶어서 실족하여서

마음에 병을 얻었다고 했는데

(시 73:1, 개역)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 73:2, 개역)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시 73:3, 개역)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4, 개역)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 73:5, 개역)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내 열심히 특심인데 하나님 과연 살아게신 것 맞습니까 라고 했는데

 

성전에 올라가 보니 아 비로소 깨달았다는 겁니다.


(시 73:11, 개역)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 73:12, 개역)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 73:13, 개역)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성소에 올라가게 되니

눈에 보이는 것과 진짜 현실인 환상에서는 이것이 뒤 바뀐 것이다 말이죠.


(시 73:16, 개역)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시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 73:21, 개역)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이것을 팔을 어긋맞게 하듯이

가시화 시킨 것이 바로

솔로몬의 재판 아니냐 말이죠.

 

그래야 구체적 보편적 지혜가 된다 말이죠.

아무도 못 풀도록 해놓고서

 

모든 사람들이 마귀 편이 되어서

다들 십자가에 못 박아라 못 박아라 외치면서 박수치는 한 쪽 기생이 되도록 한 뒤에

그것을 거쳐서 그 차이로써

그것을 뒤짚어 버리듯이

잃어버린 자를 되찾는

헐어 버리고 3일 만에 다시 세우는

이 하나님이 직접 성전을 세우는

사람의 손으로 짖지 않은

진짜 성전인 곧 인물

진짜 성전에 올라감으로써 비로서 깨달은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이 인자하심을 드러냄으로써 (인자하심=일만달란트 용서의 비유, 용서의 왕 중의 왕, 정작 용서 받은 존재는 없고 용서의 기능은 더더욱 구체적 보편성이 되는, 절대 취소가 되지 않는 용서의 비유) 

지혜를 발휘하는

그 지혜 자체가 하나의 인물이 되었을때에

비로소 원수 문제가

구원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겁니다.

 

원수와 맞딱뜨렸을때에 화살통에 화살이 없어 보세요

총을 쏠려고 할때에 총알이 없어 보세요

빈탄창이 되어 보세요

무엇으로 싸우냐 말이죠.

빈손인데

 

그런데 주님이 세우신 지혜요 기업이요 집은

미쁘심이다 말이죠

든든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장수의 화살이 되어서

그것도 정확하게 원수의 심장에 꼿혀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다 말이죠.


우리는 백날 해도 의문의 화살이라서

화살이 날라가다가 힘이 없어

바로 밑으로 떨어지고 엉뚱한데 맞추더라 말이죠.

 

원수와 맞딱뜨린 이 임신한 처녀가

원수들이 율법을 쥐고 돌삐를 들고 달려들었을때에 도망치듯이 했는데

어느새 전복이 되는 환상처럼 꿈만 같더라 같은 진짜 현실에서는

처녀가 불러온 배를 앞에서 손으로 껴안고

다른 한 손은 돌삐와 족히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바위를 들고 머슴아들을 쫏아가면서 머리 위로 들고가니

머슴아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도망치기 바쁘더라 말이죠.

 

(3:15, 개역)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이 꿈만 같이 진짜 현실이 되더라 말이죠.

주의 인자하심 때문에,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그 간극 때문에 말이죠.

 

그러니 선지자로써 솔로몬은 이 지혜를 언급하는 겁니다.

인간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쌓고 쌓는 그런 인격수양의 지혜가 아니라

지혜라는 인물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은 솔로몬 자신은 정작 이 지혜의 소유물 증상물

즉 지혜가 낳은 자식으로써

그 인애와 자비가 낳은 자녀로써

이 혜택을 누리게 되었음을 외치고 있는

새노래가 낳은 자식이다고 증인이다고 외치는 겁니다.

나 솔로몬처럼 원수문제 해결하라는 겁니다.
구원 문제 해결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거꾸로 지혜를

솔로몬이 소유했다고 보고서

소유할려고 하다 보니

정작 예수님과 곧 자신들이 버린돌에 부딧히는 겁니다.

거치는 반석에 부딧히는 겁니다.

 

부딧혀서 넘어져서 존재가 박살이 나면 또 다행인데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기 때문에

그 박살난 조각을 다시 모아서 본드로 붙여서

여전히 빈털터리로써 화살통에 미쁘신 화살이 많지도 않으면서

전세계의 돈이란 돈을 다 끌어모으는 지혜를 추구하나

정작 헐벗은 자이다는 겁니다.

 

돈으로 흰 옷을 사라 말이죠.

물론 불가능한 말이지만

그 정도로 헐벗은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인데

부요하면 부요할수록 헐벗은 것이다 말이죠.

빚으로써의 돈이다 말이죠

벌면 벌수록 헐 벗었다 말이죠.


(계 2:8, 개역)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2:9, 개역)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3:1, 새번역) "사데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 또는 '천사'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런데 신부된 교회는 비록 가난하지만 실상은 부요하다는 겁니다. 차이로써 말이죠.

이것이 분별 구별 구분시키는 이름 곧 지혜의 이름이다는 겁니다.

 

눈물로 씨를 뿌렸는데 기쁨으로 단을 거두더라 말이죠.

꿈만 같도다 말이죠.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았는데 주의 병에 담긴 것만 기록이 되었지

기록이 되지 않은 것은 다 헛되도다 라는 겁니다.

(눅 11:31,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요 10:23, 개역)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행 3:11, 개역)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행 5:12, 개역)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행 7:47, 개역)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행 7:48, 개역)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행 7:49,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행 7:50, 개역)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51, 개역)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행 7:48, 새번역)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말하기를』

(행 17:24, 새번역)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이 헛된 것이 뭔지 그 차이를 알려주는 지혜가 아니면

우리는 이 원수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구원될 수 없다고

솔로몬이 알려주는 겁니다.

그냥 솔로몬의 존재가 아니라

기능으로써

지혜에게 사로잡힌 솔로몬이 시편 127편을 통해서 외치고 있다 말이죠.

성전에 올라가게 된 솔로몬이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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