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녀 심판과 천국 잔치 (계 19: 1-21)

 

음녀 심판 곧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갚으심 과 혼인잔치 

 

 

(23:35, 개역)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11:51, 개역)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23:35, 새번역)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죄 없이 흘린 모든 피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11:51, 새번역) 아벨의 피에서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렇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19:1, 개역)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19:2, 개역)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19:3, 개역)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19:4, 개역)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19:5, 개역)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19:6, 개역)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19:7, 개역)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19:8, 개역)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19:9, 개역)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9:10, 개역)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19:11, 개역)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9:12, 개역)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9:13, 개역)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9:14, 개역)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9:15, 개역)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9:16, 개역)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9:17, 개역)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9:18, 개역)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19, 개역)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19:20, 개역)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19:21, 개역)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19:1, 새번역) 이 일이 있은 뒤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있는 큰 무리가 내는 우렁찬 음성과 같은 소리가 이렇게 울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력은 우리 하나님의 것이다.

(19:2, 새번역)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음행으로 세상을 망친 그 큰 창녀를 심판하셨다. 자기 종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그 여자에게 갚으셨다."

(19:3, 새번역) 그들이 다시금 "할렐루야, 그 여자에게서 나는 연기가 영원히 올라가는구나" 하고 외치니,

(19:4, 새번역) 스물네 장로와 네 생물이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아멘, 할렐루야" 하고 말하였습니다.

(19:5, 새번역) 그 때에 그 보좌로부터 음성이 울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종들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아, 작은 자들과 큰 자들아,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19:6, 새번역) 또 나는 큰 무리의 음성과 같기도 하고, 큰 물소리와 같기도 하고, 우렁찬 천둥소리와 같기도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19:7, 새번역)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린 양의 혼인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단장을 끝냈다.

(19:8, 새번역)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게 하셨다. 이 모시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다."

(19:9, 새번역)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여라." 그리고 또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다."

(19:10, 새번역) 그 때에 내가 그에게 경배드리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렸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말아라, 나도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네 동료들 가운데 하나요, 너와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예수의 증언은 곧 예언의 영이다." / , '형제들' 또는 '예수께 대한 증언은'

(19:11, 새번역) 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 흰 말이 있었는데, '신실하신 분', '참되신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 그 위에 타고 계셨습니다. 그는 의로 심판하시고 싸우시는 분입니다.

(19:12, 새번역) 그의 눈은 불꽃과 같고, 머리에는 많은 관을 썼는데, 그분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의 몸에 적혀 있었습니다.

(19:13, 새번역) 그는 피로 물든 옷을 입으셨고,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19:14, 새번역) 그리고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19:15, 새번역)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오는데, 그는 그것으로 모든 민족을 치실 것입니다. 그는 친히 쇠지팡이를 가지고 모든 민족을 다스리실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하신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 또는 '돌볼'

(19:16, 새번역) 그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왕들의 왕', '군주들의 군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9:17, 새번역) 나는 또 해에 한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기를,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라.

(19:18, 새번역)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힘센 자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과, 모든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의 살을 먹어라" 하였습니다.

(19:19, 새번역) 또 나는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 군대들이, 흰 말을 타신 분과 그의 군대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9:20, 새번역) 그러나 그 짐승은 붙잡혔고, 또 그 앞에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던 그 거짓 예언자도 그와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을 이런 기이한 일로 미혹시킨 자입니다. 그 둘은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바다로 던져졌습니다.

(19:21, 새번역) 그리고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가 그들의 살점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오늘 계시록 19장은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할렐루야 가 처음으로 나오는데요

마침 시편 146편에서 150편이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다섯편이라고 하던데

결국 이미 승리하고 들어가는 전쟁 곧 원수 갚음이다는 겁니다.

원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이 있겠습니까?

결국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 구원이 없듯이 사람의 구원이 헛되듯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 만을 구원이라고 한다 말이죠.

그래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곧 할렐루야

아니 왜?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도다 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전쟁이다 말이죠. 이미 다 십자가로 이미 다 이루셨다의 찬양전쟁입니다.

 

그 원수가 오늘 계시록 19장에서 음녀의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이 음녀가 레위기에서 제사장 딸이라고 했지요?

거룩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거룩에 대해서 반발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음녀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음녀가 왕들을 모읍니다.

 

이것은 마치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로마의 왕 곧 지도자를 모으듯이

빌라도 손을 빌려서 죽이는 모습과 같습니다.

자기 손에 피를 안 뭍히겠다는 거죠.

 

이 음녀가 곧 유대인 이지요. 오늘날 자칭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자들 말이죠.

이들 거짓선지자를 쫏는자들 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작용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십자가 라는 거룩이 이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를 걸림돌이거든요.

 

그래서 헬라인 즉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배척하는 헬라인

곧 이방인의 손을 빌려서 곧 빌라도처럼 말이죠. 로마의 힘.

이 십자가에 대한 거룩성을 적극 거부 반발하는 속임수 꾀를 부리는 겁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십자가를 배척하겠다는 이유로 음녀 유대인에게 속아넘어가는

참으로 디기 지혜로운 헬라인이다 그쵸. 그 정도로 어리석은 겁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십자가 피할려다가 더 어리석은 음녀의 꾀에 속아넘어가는 겁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안 속아넘어갈려고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법과 법의 틈사이를 이용해서 덤벼드는 유대인을 막을수가 없었던 거죠.

 

오늘 계시록 19장은 상대적으로 음녀의 심판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한쪽은 주의 오른팔에 놓여지는 곧 구원이지요?

 

그것이 혼인잔치(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푸는 임금 비유)처럼

 

(22:2, 개역)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초반 계시록의 한 쪽은 주의 일곱교회로 오른팔에 사로잡힌자 되고

다른 한 쪽은 주의 발등상에 놓여져서 원수로 심판 받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장 초반에 음녀의 심판과 끝부분의 짐승의 심판이 나열이 되고

그 사이 중간에 상대적으로 혼인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쪽은 심판이고 다른 한 쪽은 혼인잔치라니 얼마나 엽기적입니까?

한 쪽 강도에게는 심판이고 다른 한 쪽에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결혼 대박이다 말이죠.

우블리가 결혼 조하, 결혼 대박이라고 허구한날 외치면서 용돈 달라고 결혼 대박 외치듯이 말이죠.

 

그래서 올려봅니다 혼인잔치 비유를 말이죠.

 

혼인 잔치 곧 천국 잔치 말이죠.

 

갑자기 노래가 생각나네요 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천국 잔치를 벌려보자 천국 잔치야 ~~~~

박그네 탄핵 촛불 시위는 마귀시위이니 그것은 인간들의 복수심의 발로이지

그야말로 데모일 뿐이다 말이죠.

 

아무튼 올려보면

 

(22: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2:2, 개역)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22:3, 개역)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22:4,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22:6, 개역)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22:7, 개역)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22:8, 개역)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22:9, 개역)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22:10, 개역)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22:11, 개역)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22:15, 개역)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22:16, 개역)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22:17, 개역)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22:18, 개역)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22:19, 개역)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2:20, 개역)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22:21, 개역)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22, 개역)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22:1, 새번역) 예수께서 다시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2:2, 새번역)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2:3, 새번역) 임금이 자기 종들을 보내서, 초대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22:4, 새번역)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에게로 가서, 음식을 다 차리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라고 하여라.'

(22:5, 새번역)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22:6, 새번역)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

(22:7, 새번역)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22:8, 새번역) 그리고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22:9, 새번역) 그러니 너희는 네 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22:10, 새번역) 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22:11, 새번역) 임금이 손님들을 만나러 들어갔다가,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묻기를,

(22:12, 새번역) '이 사람아,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22:13, 새번역) 그 때에 임금이 종들에게 분부하였다.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2:14, 새번역)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22:15, 새번역) 그 때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트집을 잡아서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할까 의논하였다.

(22:16, 새번역) 그런 다음에, 그들은 자기네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22:17, 새번역) 그러니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22:18,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22:19, 새번역)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 달라." 그들은 데나리온 한 닢을 예수께 가져다 드렸다.

(22:20,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22:21, 새번역) 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22:22, 새번역)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탄복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남겨 두고 떠나갔다.

 

 

반드시 예수님께서 천국 곧 거룩한 나라에 대해서 언급하면

반드시 음녀들은 반발 하도록 이 천국을 이 거룩을 반드시 반발하는 거부성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천국을 증거하면 오늘날 현대인들도 똑같습니다. 살인의지를 표출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래서 항상 자기들의 손에 피 안 묻힐려고 아니 왜? 번제와 제사를 지켜야 하니까

인애와 자비는 거부하고 말이죠.

그래서 가이사 황제 곧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특징

음녀의 특징처럼 매매 소통 되는 것을

반발하는지를 유도신문하는 겁니다.

올무를 치고 그물망을 깔아서 걸려들기를 바라는 함정을 파는 거죠.

당연히 말려들었다고 성공이라고 좋아라 하지만

마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가지고 마침 지나가는 예수님을 시험하듯이

옳치 잘 걸려들었다 라고 시험하지만

정작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활동하시는 주님 앞에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뎅

이미 완료 되었는데

참으로 수고스럽게 의문의 것으로 시험하고 있으니

누가 말려든 겁니까?

 

자기 꾀에 자기가 말려드는 줄도 모르고

거꾸로 예수님이 말려들었다고 좋아라 하는 겁니다

천국을 유통 못 시키도록

짐승의 표를 매매하고 소통하는 것에, 종교 곧 번제와 제사만을 유통시키고

인애와 자비를 거부하더라 말이죠.

가이사 황제의 백성도 아니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우기면서

음녀처럼 제사장의 딸처럼

가이사의 것입니까? 아닙니까? 라고 시험하고 있더라 말이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다니는 자들이 다 이런식으로 시험한다 말이죠.

제가 직접 격어봤던 성화론자들과 개혁주의자들 다 이래요

세상 사람들 보다 더 해요

개콘의 어떤 코너였었는데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고

부자가 더 하다고 말하듯이

종교 곧 짐승의 표를 더 퍼트리더라 말이죠.

그러니까 가이사에게 입니까? 아닙니까? 라고 묻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안 묻죠. 짐승이니까

그런데 음녀는 이 질문에 목숨 걸어요.

맏아들은 이 질문에 목숨 건다 말이죠. 번제와 제사인 의문의 반복에 말이죠.

가이사에게? 어차피 의문이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내는 것 아니냐 말이죠.

법지키기 아니냐 말이죠. 의문의 법 지키기에 목숨 건다 말이죠.

 

(15:25, 개역)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15:26, 개역)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15:27, 개역)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15:28, 개역)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15:29, 개역)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15:30, 개역)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15:31, 개역)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15:32, 개역)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런 음녀가 언제 심판 받느냐? 바로 혼인 잔치 곧 천국 잔치가 벌어질 때입니다.

즉 신랑이 자기 신부에게 세마포 흰옷을 입힐 때

베드로에게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잘 아십니다 라고 흰옷 곧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힐때에

마귀는 제가 예수님의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잡아왔다고 의문의 질문에 목숨 걸 때

이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벌어지는 겁니다.

원수 멸망과 혼인잔치 천국잔치 유월절 어린양 피 잔치가

애굽의 멸망과 함께 동시에 벌어지면서

유리바다 홍해를 건너면서 새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잘 아십니다 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거룩한 흰옷 입히심으로써 저절로 찬양하게 되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찬양하는게 아닙니다.

먼저 물어봐 주셨던 겁니다.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뿅 갑니다. 눈녹듯이 다 녹아버립니다.

마귀에게 잡혀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 라고

빼도 박도 못하는 그 죄에

 

예수님은 일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어봐 주심 때문에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혀주심 때문에

졸지에 배드로는 신부가 되어 신랑 되신 예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탕자처럼 왕같은 제사장이요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로써

재 대신 화관을 근심대신 찬송을 슬픔대신 희락으로

이 혼인잔치의 주인공 되신 예수님, 신랑되신 예수님의 아내

곧 주의 오른팔로 높여주신 일곱교회로써 찬양하는 겁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찬양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이 새노래를 말릴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두 소경을 음녀였던 유대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막을수가 없었듯이

호산나 라고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찬양하는

어린아이의 찬양을 음녀들이 막을수가 없었듯이

아무리 칼로 창으로 총으로 말릴수가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당위이거든요

존재는 기능을 막을수가 없어요

이미 완료된채로 덮쳐지는데 누가 말릴수가 있겠습니까?

원인 없는 결과인데

존재는 이 원인을 없애버려서 자신들이 원인이 될려고 하니까 존재로만 남는 겁니다.

존재는 없는데 바보들

 

원인이 없는 결과인데

원인을 없앨려고 아무리 칼로 총으로 톱으로 죽여도

칼로 물배기 이다 말이죠.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칼에 맞아 죽고 없어지고 사라지는 유령 봤습니까?

유령에게 칼로 아무리 찔러 보세요

원인이 없는 결과인데 무슨 수로 이 결과를 없애버릴려는 원인을 만들려고 하냐 말이죠.

 

마귀가 영인데 무식하게도 육의 일만 해요

의문의 반복만 하도록 되어 있어요

영의 일을 못해요

영의 존재일 뿐이지

영의 기능을 못하는 육이예요

 

그러니 몸을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안아프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프죠

그런데 더 아픈 것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진짜 나의 구원자이자 동시에 심판자이다는 겁니다.

즉 저들은 몸만 심판할 뿐이지 영혼을 심판도 못하는 육이다는 겁니다.

영혼을 심판할줄 모르는 영이 아니다 육일 뿐이다는 겁니다.

영의 일을 할 줄 몰라요

그저 사망이 왕노릇하는 것에만 충실할 뿐이기에 죽기를 무서워 하는 육의 속성을 가지고

겁을 주는 역할만 맡은 육일 뿐이다는 겁니다.

(롬 5:14, 개역)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 5:17, 개역)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21, 개역)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히 2:15, 개역)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마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9, 개역)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30, 개역)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마 10:31, 개역)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32,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3, 개역)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40, 개역)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41, 개역)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개역)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2:4, 개역)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 12:4, 새번역) 『"내 친구인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눅 12:4, 현대어) 『[마땅히 두려워할 분;마10:28-31] 사랑하는 친구들아, 너희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그들은 몸만 죽일 뿐 너희 영혼을 죽일 능력은 없다.』


 

진짜 공포는 영혼까지 죽이는 심판자만이 나의 진정한 구원자이다는 겁니다.

마귀는 심판자가 아닙니다. 속이는 자입니다.

미란다 원칙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를 빼버려요

말하지 않아요

거룩을 알면서도 거룩을 거부합니다.

십자가만이 거룩한데 말이죠.

 

그 심판 내가 다 받았다고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온유하심으로

즉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나타나시는 겁니다.

 

결국 이 십자가의 자작극

? 심판은 십자가만이 할수 있어요.

마귀는 못해요

상처는 상처를 낸 그 찌른 칼만이 치료할수 있다 말이죠.

마귀는 못해요. 심판자가 아니거든요.

영혼을 못 죽여요 기껏 육만 죽일 뿐이다 말이죠.

 

영혼까지 심판하시는 분을 두려워 할 줄 모르면 마귀에게 다 속아넘어갑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심판의 주가 밝히 보이는데

두려워 떨림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또렷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음녀와 짐승의 최후를 보세요

종말의 잔치때 반드시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의문의 흐릿한 것에 왜 쓸데없이 목숨거냐 말이죠

가이사에게 입니까? 뻔히 알면서도 음녀는 질문하고 그 시험에 목숨건다 말이죠.

 

이미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라는 다 이루셨다 라는 찬양이 울려퍼졌다면

이미 음녀의 심판과 짐승나라의 멸망은 완료된 겁니다.

허물어진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게 아니라

 

홍해를 건너면서 유리바다를 건너면서 룰루랄라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저들 애굽은 마치 지옥간 부자처럼

창고를 늘리자 라고 피라미드 하나 세우고 또 세우고 또 세 개 네 개 자꾸 자꾸

창고를 늘리는 국가팽창 바벨탑 팽창에

의문의 것을 반복할때에

오늘밤 니 영혼 취하면 이 많은 재산이 누구것이 되겠니 라고?

 

밤에 주의 성실하심으로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밤 밤 밤 무슨 밤 종말 말이죠.

끝을 미리 앞당겨 땡기는 겁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거지 나사로, 히브리 잡족 노예들은

졸지에 부르지도 않았는데 부르신바 되었고

찾지도 않았는데 찾은바 되신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써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 옷으로 졸지에 신부가 된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첫사랑으로써

사랑받은 자가 된 겁니다.

이 처음자리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십자가의 피만 자랑하는 자로써

신부 삼으셔서

원수를 멸하신 주의 이름을 노래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록은 그야말로 기쁨의 노래입니다.

종교가 곧 짐승의 표를 받은 종교가 유통시키는 종말의 지구종말 공포가 아니라

그 뻔한 속임수에 넘어갈게 아니라

 

그야말로 천국 잔치

혼인잔치

잔치 중에 잔치가 혼인 잔치 아닙니까?

노래 중의 노래가 사랑가 바로 아가서이듯이

 

기쁨 중의 기쁨이다는 겁니다. 이중 기쁨

기쁨을 넘어서는 기쁨

 

오로지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는 고백 밖에 나올게 없는

더 이상의 고백이 나올게 없는 초과잉의 고백만 노래하는 것이

계시록 기쁜 소식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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