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골라당 과 vs 에베소교회의 첫사랑 지적 (2: 1- 7)

 

말 되는, 사람을 의식하는 파 만드는 니골라 당이냐? vs 말 안되는 첫사랑인 에베소 교회냐?

계 07 말 되는 인간모임이냐 vs 말 안되는 첫사랑이냐 (계 2, 1- 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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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 개역)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18:22,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18:23, 개역)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18:24, 개역)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18:25, 개역)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18:26, 개역)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8:27, 개역)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18:28, 개역)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18:29, 개역)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18:30, 개역)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18:31, 개역)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18:32, 개역)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18:33, 개역)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18:34, 개역)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18:35, 개역)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2:1, 개역)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2, 개역)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3, 개역)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4, 개역)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5, 개역)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6, 개역)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2:7, 개역)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2:1, 새번역) "에베소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 말씀하신다. / 또는 '천사'

(2:2, 새번역)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2:3, 새번역)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냈으며, 낙심한 적이 없다.

(2:4, 새번역)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2:5, 새번역)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2:6, 새번역) 그런데 네게는 잘 하는 일이 있다. 너는 니골라 당이 하는 일을 미워한다.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2:7, 새번역)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겠다.'" / 28:13; 31:8; 9

 


먼저 변론하자 라고 했을때에

변론 이라는 의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른손이다는 겁니다.

1절에 나오죠

 

(2:1, 개역)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같은 의미의 단어로는 신원 하다 라는 표현도 있는데요

 

(1:17, 개역)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23, 개역)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예수님께서 먼저 희년을 선포하실때에

바로 사마리아인 곧 이방인에게 하시는게 아니라

반드시 유대인에게 먼저 신원 하십니다. 변론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발로 차 버립니다.

 

뭐 내가 고아인줄 아느냐

내가 과부인줄 아느냐

내가 나그네 인줄 아느냐 라고 말이죠.

 

난 죄인이 아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변론자 필요없다

난 환자가 아니다 환자를 부르러 온 의사는 필요가 없다.

난 소돔과 고모라 곧 흑암의 백성인줄 아느냐 그래서 오른손이 필요가 없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발로 차 버립니다. 그 발로 차 버린 변론자가 이방인에게 넘어가는 겁니다.

 

이것을 바로 첫사랑 처음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버린 이스라엘에게서

구원 곧 말도 안되는 처음자리인 첫사랑이 곧 이스라엘자리가

이 이방인으로 넘어오는 겁니다.

이방인에게로 넘어온 변론자를
유대인들은 역시나 말도 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발로 차 버린 이단 예수를
설마 이방인이 받아주겠어?

받기는 커녕 기생라합처럼 빨리 심판해 주세요 라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치더라 말이죠.
그 어려운 유대인도 못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해내지 말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말이 안되기에
더더욱 시기하도록 만드시더라 말이죠.

 

(4:16, 개역)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4:20, 개역)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4:21,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4:22, 개역)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4:23,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4:24, 개역)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4:25,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4:26, 개역)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4:27, 개역)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4:28, 개역)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4:29, 개역)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4:30, 개역)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희년 곧 은혜의 해 곧 신원의 날을 줘도 안 먹어요

오히려 요셉의 아들 목수의 아들 아니냐 라고
어딜 감히 창조주 위의 건물주를 가르쳐들려고 하냐 라고 분히 여기더라 말이죠
.

 

? 이미 말 되는 구원을 이미 스스로 다 갖추었는데

곧 니골라 당이다는 거죠.

뭐 내가 희년이 필요한

기쁨이 필요한 슬픈자인 가난한 자라꼬?

해방이 필요한 포로 된 자 라꼬?

눈 뜸이 필요한, 밧줄로 꽁꽁 묶여 누가 풀어줘야만 하는 뭐?

내가 눈 먼 자라꼬? 내가 억눌린 자 라꼬?

나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자가 아니야 라고

이스라엘이라는 처음 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리더라 말이죠.

난 죄인이 아니니까 변호사가 필요가 없어 라고

마귀가 장악한 줄도 모르고 말이죠.

마귀가 장악한 줄 모르는 것이 마귀에게 장악당한 겁니다.

그러니 변론자로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4:17, 새번역)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4:18, 새번역)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 61:1; 2

(4:19, 새번역)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이미 종교 라는 사람의 수가 모여진 파 당이 결성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이죠.

 

그래서 처음자리 처음사랑이 넘어가는 겁니다.

 

니골라 당의 특징은 파를 만드는 겁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조직을 형성 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겠다는 완악한 마음이다는 거죠.

 

그러나 정작 사람을 기쁘게 하면 자기 자신을 저주해 버리겠다고

이미 사도바울이 선언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인데

왜 그 의문의 반복에 목숨걸겠냐 말이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이라는 것은 없다 말이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 일 것 같으면 주의 종이 아니다 라고 선언했다 말이죠.

 

(1:10, 개역)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자 그럼 상대적인 첫사랑은 뭡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 사랑했다는 겁니다.

? 남겨진 씨 때문에

이유도 없이 말이죠.

미래에서 말이죠

 

과거를 묻는게 아니라

미래완료 때문에

변론자 때문에

죄인이 되어야 했다 라는 겁니다.

 

그 미래완료인

원인 없는 결과로 생겨난 것이 교회입니다.

피로 사셨거든요. 피로 사신 교회이다 말이죠.

곧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만 생겨났다 말이죠.

마치 구약의 야곱이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이스라엘이 되었듯이 말이죠.

그 야곱이라는 자의 죽음의 경험으로 인해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을 보고도 안 타 죽는 자가 생기는 겁니다.

 

그냥 죽음이 아니라

~~~~ 하고 죽는게 아니라

미래의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같이 죽고 같이 살아 나기 위해서 말이죠.

 

이것이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첫사랑이다 말이죠.

 

그렇듯 교회는 오로지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연관 되었다 말이죠.

다른 것이 일체 연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국 니골라당은 교회를 사람과 사람의 조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원인을 또는 시간과 공간을 갖추는 조건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당을 짖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이거든요.

 

그러나 교회는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곧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는가만을 외치는 겁니다.

얼마나 거리끼는 걸림돌입니까?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가 바로 이 외침에서 태어난 겁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3일만에 다시 살려내셔서 주가 되게 하셨다는 겁니다.

 

이 주 되심을 외치는데 있어서 십자가의 죽음 곧 너희가 죽인 예수를

저들 니골라 당은 빼버리고

자꾸 눈에 보이는 교회를 의식하고

그 공간과 그 시간에 걸맞는 조건을 갖출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러나 주 곧 주체는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교회의 머리가 되는 주체가 되는 것이고

그 머리의 그 몸으로써의 교회가 된다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이 거리끼는 걸림돌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

바로 당 짖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인간모임 곧 종교를 결성하는데 있어서

666이라는 사람의 수가 매매가 되는데 있어서

십자가는 불편하거든요.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니까.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고 버리더라 말이죠.

 

?

사람을 의식하게 되었다 라는 거죠.

 

졸지에 원인이 생겨 버리고

시 공간이 생겨 버리게 되고

조건이 생겨 버리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럼 에베소 교회에게 첫사랑을 잊어 버렸다는 것은 뭡니까?

자꾸 저들 니골라당처럼 조건을 달지 말라는 겁니다.

 

첫사랑에 조건이 있던 가요? 없잖아요

무조건이요 무상이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바로 일만달란트 용서처럼

무조건적인 용서였다 말이죠.

말도 안되는 16만년을 일해도 못 갚는 빚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것을 글쎄 다시 조건으로 삼아서

무조건적인 용서를 조건으로 삼아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식하고 당을 짖게 되니까

이것이 니골라당

곧 내 돈 백 데나리온 떼 먹고 가는 놈을 도저히 용서를 못하는 겁니다.

정작 자기는 일만달란트 탕감 받아 놓고서는 말이죠.

 

무조건적인 용서를 용서의 조건으로 삼아 버리니까

무조건을 무시하고 삭제하고 용서를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십자가를 조건으로 삼아버리니까

십자가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 듯이 말이죠.

 

마귀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는 말을 베드로에게 미란다 원칙처럼 말 안하니까

마귀라고 하니까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외치면서

십자가의 용서 때문에 부정한 자가 되면 안된다고

기생라합의 기생이라는 부정성을 부정하더라 말이죠.

? 그게 종교 라는 666의 사람의 조건을 유통 시키는

십자가를 무색하게 하더라 말이죠.

16만년을 무시하고

일만달란트를 무시하고

기여이 빚 갚아야 한다고 사기를 치고 있으니

거리끼를 걸림돌을

16만년을 없애 버리니까

백데라니온 떼 먹은 자를 덮 썩 물어서 쭐꾸덕 미끄러지더라 말이죠.

 

요즘으로 환산 하면 돈이 매년 마다 환산가치가 달라지고

또 빈부격차가 심할수록 체감도도 달라지기 때문에

요즘 최순실의 800조는 뭐 벌써 말이 되어버렸으니

말 안되는 의미로써 숫자 자체도 실감이 안 나는 세태가 되었다 말이죠.

빚진자 라는 사실을 염두하시면 됩니다.

부정한 자 곧 죄인 중의 괴수 라는 겁니다.

 

죄의 무게인 거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그 이전이라는 시간으로 보면

일만 달란트는 16만년을 일해야 갚을수 있는 빚이고

백 데나리온은 1003개월만 일하면 갚을 수 있는 빚이다 말이죠.

 

몇백번? 몇천번?을 죽었다 깨어나야 갚겠냐 말이죠.

말이 되는 소리 입니까?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는 것도 말도 안되는 판국에

천 육백번? 천이 넘어가면 이것은 행함의 차원 가능성의 차원이 아니다

불가능성의 차원인

말도 안되는 차원인

묵시의 차원

곧 묵시의 인물 곧 예수님에 대한 문제이다는 겁니다.

변론자 또는 오른손, 신원의 날, 구원의 날이

날짜(안식일)와 공간(성전) 자체가 인물이 되어버리니까 말이죠.

희년은 은혜의 날은 곧 예수라는 인물이 되니까

그 분의 손에 의해 용서냐 아니냐 라는 겁니다.

다른 인물 없어요.

목사 말 듣지 말라 말이죠.

 

성경에는 항상 이렇게 초과잉적으로 오바 합니다.

이게 진리이다 말이죠. 초과잉성

말 되는 소리 없어요.

 

이상민의 빚은 빚도 아닌 셈이지요.

그런 빚도 벌써 수천번 죽고 싶을 정도로 자살할려고 한다 말이죠.

벗어나고프니까 말이죠.

포승줄에 꽉꽉 묵여 있으니까 얼마나 풀려나고 싶고

해방 되고 싶겠냐 말이죠

 

그 신원자가 그 변론자가 바로 남겨진 씨 예수님이다 말이죠.

오른손이다 말이죠.

 

젊은 청년들이 학자금 대출이다 뭐다 해서

1억 빚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서

자살할려고 한다 말이죠.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니까 말이죠.

 

궁상민이 때문에 용기를 얻고 자살할려는 마음을 고쳐 먹은 자가 많다고 하는데

궁상민이가 어떻게 되면 우짤려고?

도로 고쳐먹은 마음을 실망할려고?

 

그런 의문을 쳐다볼게 아니라

미흡하고 모호한 것을 쳐다볼게 아니라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십자가라는 어마 어마한 말도 안되는

일만달란트의 용서를 쳐다 보라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자꾸 사람을 기대 건다 말이죠.

처음자리 라는 이스라엘의 자리는 육의 혈통이 아닌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은

묵시적인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이스라엘은 오로지 첫사랑만 쳐다보는

십자가 라는 무조건적인 용서만을 쳐다보는 자리가 이스라엘 자리인데

그것이 그만 육적 이스라엘이 발로 빵 차 버리는 바람에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더라 말이죠.

 

?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았는데

사람의 뜻에 눈치를 보니까 말이죠.

 

그러니 사람을 볼게 아니라

즉 아볼로를 본으로 삼겠다는 사람

아냐 베드로가 더 예수님이랑 더 친해 라고

가장 가까이 밀착한 자라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베드로를 본으로 삼는 사람

아냐 뭐니 뭐니 해도 사도바울이야 라고 바울을 본으로 삼는 사람

 

바로 이런 모습들이 니골라 당이다 말이죠.

그런 시선 자체가 사람들을 의식해서 신앙의 본으로 삼았다고

뭐 자랑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는지

니골라당 곧 사단의 자식이라는 거죠.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냐 말이죠.

당 짖지 말라고 했잖아요.

 

오늘날 교회는 당이 없으면 밀려나요.

없을 무 무당파 라고 말이죠.

모조리 당들 뿐이야 당 당 당당 다리 당 당

 

파를 형성해 글쎄

즉 조건을 걸고서 가입했다는 거죠.

회원가입처럼

 

교회동아리

 

서로 서로 잘돌보기로

우리가 남이가 라고 현수막 내 걸고 말이죠.

 

유대인의 습관

장로의 유전처럼

구분짖기 라는 이 버릇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는 겁니다.

입술로는 존경하나 속으로는 미워하는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말이죠.

 

(23:27,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3:28, 개역)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3:29,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23:30, 개역)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23:31, 개역)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23:32, 개역)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23:33, 개역)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3:34,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23:35, 개역)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23:36,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23:38, 개역)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23:39,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남겨진 씨 때문에 벌어지듯이

자신들이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그들은 회칠한 무덤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미래의 남겨진 씨를 보고서

자신이 소돔과 고모라 이다 라고 심판주를 영접한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더라 말이죠.

 

그냥 처음부터 저는 회칠한 무덤입니다. 저를 고쳐주소서 라고

예수님 때문에 고백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자 그러면 니골라 당도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그냥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좀더 더 잘해볼려고 말이죠.

그런데 왜 사단의 회처럼 규정 되는가?

바로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이렇게 나누어버렸다는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이다 말이죠.

 

이들이 먼저 그렇게 하니까

즉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압제 하니까 말이죠.

아니 언제?

 

이게 참 비밀이다 말이죠.

 

아니 언제 주께서 헐벗었고 배고팠으며 목말랐습니까?

우리가 그거 돕는데 달인들인데?

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언제 우리가 고아 과부 나그네를 압제했습니까?

자꾸 원인을

자꾸 시간적으로 과거를 따지더라 말이죠.

과거가 아닙니다.

미래입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의 신원자이신 예수님을 저들은 빼버리는 겁니다.

처음사람을 빼버리듯이

거리낀다고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고 버린 돌로 여겼듯이 말이죠.

즉 엉터리 하나님을

곧 우상을

약속도 못 지키는 자를 증거한 것 자체가 바로 고아를 압제한 것이다 말이죠.

증거 대라굽쇼? 다윗이 그 증거입니다.

한나도 말이죠.

또 누구? 참선지자 곧 이사야가 죽음을 당했듯이 말이죠.

 

결국

그들의 감추어진 속성을 씨앗을 뿌려서 땅의 감추어진 속성을 들추어내듯이

복음을 뿌리니까

즉 복음은 과거가 아닙니다.

미래완료입니다.

죽음으로 오는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이다 말이죠.

일곱으로 오는 미래완료입니다.

 

되도 않는 6은 거기서 턱 걸려서 7로 넘어오지를 못해요

?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는데

자꾸 그 미흡한 의문을 반복하니까

마침도 없더라 말이죠.

 

십자가의 죽음으로

피로 사신 교회이기에

교회에 피를 뿌리니까

십자가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을 뿌리니까

 

니골라 당으로 분류 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들이 원인 또는 역사

시간 또는 조건을 따지기 때문에 말이죠.

 

마귀가 시편 9111-12절을 인용해서

다윗의 고백을 가지고와서

마귀가 예수님께 메시아의 조건을 따집니다.

 

아참 녹음에는 시편 96편으로 잘못 말했는데 수정합니다.

아무리 외워도 안되네요 글쎄 ㅋㅋㅋ

 

이건 뭐 물에 빠진 사람 아무런 조건 없이 건져냈더니만

보따리 내 놓아라 라는 식이더라 말이죠.

일만달란트 용서의 비유가 그런 식이다 말이죠.

조건을 따지는 겁니다.

 

말도 안되게 건짐 받아놓고

죽다 살아놓고

정작 살려준 분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자기 변호사를 죽여요

저기 변론자

자기 신원자를 죽여요 글쎄

첫사랑을 죽여요.

 

첫사랑이 뭡니까?

물에 빠진 죽음에서 건졌다면

그 이후로 부터는

예수님과의 사랑만 누리는 삶 뿐이다는 겁니다.

그 고마움과 감사 뿐이다 말이죠.

시편 보세요 마지막으로 가면 갈수록 감사 뿐이다 말이죠.

원수에게서 건져 주셨으니 말이죠.

 

그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는 것만 누린다 말이죠.

그런데 그 이전의 것을 자꾸 요구한다는 겁니다.

먹고 사는 문제

구원 문제

왜 나를 건져놓고서는 내 보따리는 안 건져주냐 라고

과거를 자꾸 끌고 오더라 말이죠.

조건을 따졌던 과거

첫 아담을

이전 것을

지나간 것을

삭제 된 것을 자꾸 끌고 오더라 말이죠.

삭제된 나를 자아를 말이죠.

 

첫사랑은 이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처음과 나중인

알파와 오메가 이신

마지막 아담만을 쳐다보는 것이다 말이죠.

 

그 마지막 아담과 함께 우리가 되는 셀프를 말하는데

자꾸 과거의 막살지 않은 나

과거의 창녀짖을 하지 않는 부정하지 않은 나를 조건인냥 내세우더라 말이죠

십의 이조 드리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자꾸 말이 되는 신앙을 구비할려고 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진적도 없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종교생활을 추구하더라 말이죠.

 

이런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니까

즉 인간 쪽에서 가지고 오는 것

가능한 것을 원치 않아요.

 

첫사랑 자체가 불가능성으로써의 불가능한 만남이요 여전히 불가능성으로써 유지하는데

즉 원인이 없다 말이죠.

결과 뿐이다 말이죠.

 

원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무리 파당 조직 시스템을 형성하더라 말이죠.

 

이게 글쎄 유대인 곧 사단의 회에서는 말도 안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사람과 사람과의 조직을 형성하는 겁니다.

그게 그들의 교회 곧 회 모임, 거룩한 당, 거룩한 성전 터전, 성당 거룩한 모임,

거룩한 조직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거룩을 얍잡아 본 겁니다.

거룩을 인간 쪽에서 기여이 형성하겠다고 보는 겁니다.

이게 니골라 당이다 말이죠.

 

뭐 니골라 당을 영지주의만 그렇다 라고 신학에서 주장하지만

그래서 영지주의 속성을 다 빼버리면 바른신학이 되냐 말이죠?

인간의 모임은 모조리 다 니골라 당이다 말이죠.

 

즉 상대적인 자식에게 매를 대시면서

첫사랑을 잊어버리면 다 인간의 모임이 되어버린다 말이죠.

인간의 필요성으로 모이는

그 인간의 필요성이 뭡니까?

사단의 회인 유대인의 필요성이 뭡니까?

 

거룩한 성전에 뛰어내려도 발이 상하지 않게 천사들이 두 손으로 받쳐주는

하나님이 피난처 되게 해주시는 그 필요성 아니냐 말이죠.

곧 구원이다 말이죠. 마귀의 세가지 시험

 

경제 문제

종교문제 곧 구원

그리고 정치 문제 곧 인간이 국가의 왕이 되는

 

종교오락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정치이거든요.

정치가 최고의 오락이다 말이죠.

왕 게임

미드 왕좌의 게임

 

왕이 되는 조건

하나님과 같이 되는 조건

 

그래서 사람들의 결속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모임이고 국가이고

온 천하 만국의 영광이다 말이죠.

 

자꾸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고

또 그 조건을 갖추면 동시에 구분짖기에 나서는 겁니다.

사단의 회인 유대인이 특히 바리새인이 그러했다 말이죠.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십의 일조도 아니고 이조를

그리고 이레에 한 번도 아니도 두 번 금식을

그 정도로 구분짖기 거리두기의 대가들이다는 겁니다.

 

이 짖을 오늘날 교회들이 해요 글쎄

개혁주의 놈들

성화론자들

 

나는 저 성화론자들과 같지 않음을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외치는 놈들

 

자 보세요 다들 포로된 겁니다.

누가 빠져나올수가 있냐 말이죠.

변론자 오른손이 다들 필요가 없데요 글쎄

? 교회 다니니까

 

자 이렇게

조건을 갖추는 데 있어서 달인들이다는 겁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갇혀있고 포로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을 대변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런 유대인들 곧 사단의 회를 따라하는 자들이

니골라 당이고

발람의 교훈도 다 여기에 해당된다 말이죠.

 

거룩을 자꾸 인간 쪽에서 갖출수 있다고 사기를 치는

이것이 음란이라고 했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음란과 완전 정반대이지요.

물론 그것도 음란이지만

음란 아니다고 생각했던 완전 정반대의 것도 역시나 음란이다 말이죠.

항아리 속에 갇혀 있는데 그 속에 무슨 거룩이 있겠냐 말이죠.

오히려 거룩이라고 우기는 것이 더 음란하더라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 손에 의해서

신원자

변론자 때문에

말도 안되게

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로 세워집니다.

 

동시에 저들은 이 신원자를 무시하고

빼버리죠 처음사랑 처음자리를 말이죠.

 

저들 니골라당이 보기에 또는 사단의 회인 유대인들이 보기에 오히려 더 음란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글쎄 예수님께서 깨끗하다

깨끗하니까 정죄하지 않겠다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말이 됩니까?

말이 안되잖아요.

그 여인이 아닌 오른손으로 붙잡은 예수님 때문에 거룩한데

마귀들은 자꾸 그 여인을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또 구분짖기를 해요 글쎄

다시는 죄 짖지 말라꼬 조건을 달아요

니골라 당이 말이죠.

주의 오른손을 빼버려요

변론자를 빼요

신원자를

첫사랑을

지는 일만달란트 용서 받은 것을 빼버리고

백데라니온 빚진자에게 조건 따져요

 

일곱을 무시해요 글쎄 묵시를

자꾸 사람의 수 666을 따지고 그것을 유통 시킬려고 한다 말이죠.

 

일곱이 붙잡은 교회를 니골라당이 덮썩 물더라 말이죠.

백데라니온을 덮썩 물 듯이

 

이것이 일곱교회의 기능이다 말이죠.

 

에베소 교회의 기능이다는 겁니다.

처음사랑을 잊었다고 책망 하니까

 

떼거리로 달려들어서

조건을 왜 갖추지 않았냐고 달려들어서 말려들더라 말이죠.

변론자를 무시하고

처음사랑을 무시하고 말이죠.

 

저들이 아무리 눈씻고 봐도 이해가

납득이 안 되는 겁니다.

 

기생라합이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데요 글쎄

유대인은 절대로 그 더럽고 부정한 족보에 오를려고 하겠냐 말이죠.

더럽거든요,

 

또 반대로 헬라인은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라고

만약에 지식적으로 다수들에게 먹혀들었다면

더 이상 어리석고 미련하지 않아요.

왜 다수 이니까

요즘 소수자 운동들이 다수가 되어버렸잖아요.

더 이상 어리석고 미련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되어버렸잖아요.

그렇듯이 이제는 막살제 글쎄 ㅋㅋㅋㅋ

 

막살아라 라는 것은 명령어가 아니다 말이죠.

자유에 무슨 놈의 법이 있겠냐 말이죠.

물론 반드시 마귀들 들으랍시고

반발하든지 또는 지키든지 반응을 나타냄을 알고

마귀 들으라꼬 하는 소리이다 말이죠.

? 마귀에게는 자유가 없어요.

신원자가 없어요.

변론자가 없어요.

오른손

곧 신랑이 없거든요.

자유가 없어요.

사랑이 없어요.

그래서 마귀만이 의식하도록 한 표현인데

아니나다를까 덮썩 물어요 글쎄

일곱 교회를 덮썩 물어요.

미끼를 확 물어버린 것이여 ~~~

 

안식일 누려라를 지키면 누리는 겁니까 지키는 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살아라 라는 표현

곧 하나 마나한 표현을 하는 이유는

이 의미 없는 것에 목숨거는 것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당위 곧 기능이기 때문이다 말이죠.

어떤 기능

덮썩 물어버릴 수밖에 없는 숨은 자를 들추어내는 기능 말이죠.

마귀죠.

 

그러니 이게 비밀이다 말이죠.

일곱교회가 글쎄 비밀이예요.

아무리 봐도 지옥갈 자들인데

그래서 다들 공격해요 글쎄

말 도 안된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누가 자기 오른손을 붙잡고 있어서

죄수복을 입었던 것을

 

그것도 모르고 덮썩 물어버렸넹?????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인간이

인간의 모임이

666이 소통 매매가 되기 때문에

그 숨어있는 짐승의 실체가 그만 들통나 버렸넹

 

마귀는 바로 이런 니골라당 곧 사람의 모임을 유통시킬려고 한다 말이죠.

? 그래야 십자가를 빼 버릴수 있으니까

 

그 말도 안되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그 첫사랑을 빼버리니까

신원자

변론자를 빼버리니까

 

신원자가 필요가 없는 의인되라꼬

변론자가 필요가 없는 니골라당처럼 말이죠.

 

말 되는 것만 모으겠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그 짖을 하겠다는 거죠.

 

눈에 보이는 인간 모임 곧 인간의 신체를, 몸을 배제해 버리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말이죠.

무슨 수로 매매를 하냐 말이죠.

굶어 죽는 거죠.

 

바로 눈에 보이는 인간이 두렵기 때문에

지키기를 하는 겁니다.

말 되는 것만을 조건으로 삼아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다 말이죠.

 

이런 첫아담의 것

그 지나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삭제 될 것을

그들은 겁내는 겁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래요

그래서 첫사랑을 잊어버렸다고 책망하시는 겁니다.

조건을 안 따진다는 것은

지키고 행하는 것을 일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아예 다 완성해서 주는 겁니다.

이 완성을 받지 않으면

미흡한 상태로 내버려 두면 사랑이 아니무이다.

또 불안해서 그 빈자리를 매꾸어 넣을려고 안절부절 견디질 못해 한다 말이죠.

반드시 얼룩을 제거할려고 한다는 겁니다.

? 말이 되어야 남들에게 인정 받으니까

이것이 사람을 의식하는 니골라 당인 것에 반해

 

정작 오른손이 꼬오옥 붙잡아서 놓아주지 않는 그 일곱교회는

오로지 말도 안되는 예수님의 자기 목숨값으로 사신 그 사랑만 쳐다보는 겁니다.

그 정도로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결국 의문의 번제와 제사를 반복하겠다는 발상은

첫사랑을 거부하는 모습처럼

니골라 당처럼

 

사생아처럼

자기가 자기신앙을 스스로 해 나갈려는

말 되는 믿음을 추구하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종교이고 짐승이고 666인 반면에

 

일곱교회는 변론자가 꼬오옥 붙잡고 있어서

이 말도 안되는 처음사랑만을

더더욱 말도 안되게 매일 매일 누리고 있는 겁니다.

 

어 예상치도 못한 자기의 죄에 마음아파 하면서

이런 죄도 용서 받았다고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주소서 라고 뻔뻔스럽게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당당하게 외치면서

오냐 오늘밤 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죽음도 즐기는

죽음 속에서도 이런 말도 안되는 첫사랑을 누리는 겁니다.

불속에서 춤을 추듯이 신나게 지루박을 땡기는 겁니다.

어린양의 살과 피를

씹고 뜯고 먹고 마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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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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