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깊은 것 vs 하나님의 깊은 것(자기 아들을 내어주심) (2.18-29)

 

주의 성실하심이 사단의 깊은 것을 들추어내시고, 주의 인자하심이 새벽별을 주시리라

계 10 샛별을 주시리라 (사단의 깊은 것 vs 하나님의 깊은 것) (계 2,18-2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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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개역)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2:19, 개역)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20, 개역)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21, 개역)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2, 개역)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23, 개역)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24, 개역)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25, 개역)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26, 개역)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27, 개역)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28, 개역)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29, 개역)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18, 새번역) "두아디라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라. '그 눈이 불꽃과 같고, 그 발이 놋쇠와 같으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 또는 '천사'

(2:19, 새번역)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2:20, 새번역)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미혹시켜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다.

(2:21, 새번역)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2:22, 새번역) 보아라, 나는 그를 병상에다 던지겠다.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을 당하게 하겠다.

(2:23, 새번역) 그리고 나는 그의 자녀들을 반드시 죽게 하겠다. 그러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

(2:24, 새번역)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인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2:25, 새번역)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

(2:26, 새번역) 이기는 사람, 곧 내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2:27, 새번역) 『㉦「그는 쇠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고, 민족들은 마치 질그릇이 부수어지듯 할 것이다./ 2:9(칠십인역)

(2:28, 새번역) 이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다스리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샛별을 주겠다.

(2:29, 새번역)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2:26, 공동) 승리하는 자, 곧 나의 일을 끝까지 수행하는 자에게는, 여러 민족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 / 시편 2:8-9.

(2:27, 공동) 그는 쇠지팡이로 질그릇을 부수듯이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2:28, 공동) 이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세로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내가 샛별을 주겠다.

 

(2:1, 개역)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2, 개역)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2:3, 개역)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2:4, 개역)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2:5, 개역)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2:6, 개역)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7, 개역)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개역)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개역)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2:6, 새번역)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 또는 '왕을'

(2:7, 새번역) "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2:8, 새번역) 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너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2:9, 새번역) 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 하셨다." / 또는 '철퇴로 다스릴 때에'

 

 

(2:6, 공동) "나의 거룩한 시온 산 위에 나의 왕을 내 손으로 세웠노라."

(2:7, 공동) 나를 왕으로 세우시며 선포하신 야훼의 칙령을 들어라.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2:8, 공동) 나에게 청하여라. 만방을 너에게 유산으로 주리라.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너의 것이 되리라.

(2:9, 공동) 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2:10, 공동) 왕들아, 이제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신을 차려라.

(2:11, 공동) 경건되이 야훼께 예배 드리고 두려워 떨며 그 발 아래 꿇어 엎드려라.

(2:12, 공동) 자칫하면 불붙는 그의 분노, 금시라도 터지면 살아 남지 못하리라. 그분께 몸을 피하는 자 모두 다 복되어라.

 

 

마침 두아디라 교회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시편 2편과 다시 그 시편 2편과 연관되게 이사야 2장이 오늘 나오는

우상과 예수님이 한 세트를 이루듯이

곧 거짓선지자 이세벨과 두아디라 교회가 한 세트를 이루는 겁니다.

 

에서는 미워했고 야곱은 사랑했다 라고 한 세트를 구성하듯이 말이죠.

 

약속 성취를 이렇게 차이로써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 차이성을 바로 약속 성취라고 합니다.

 

반면에 우상은 차이가 없어요.

그래서 거짓선지자 이세벨처럼

기존의 것을 들고 들어오는 겁니다.

니골라 당이 예수 믿기만 하면 되니까

구지 개종 절차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기존의 것과 예수님을 썩어 버리는 혼합주의를 하더라 말이죠.

심지어 이스라엘이 이렇게 우상의 본부

강도의 소굴이 된 것이 다 기존의 것을 버리지 않아서 이다 말이죠.

 

그래서 엘리야 때에 이세벨의 우상 숭배가 이스라엘에 퍼졌듯이

이사야 때도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상숭배를 없애는 인간의 신앙에 이제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을 정도로

아예 이스라엘 전체를 팔아 넘겨버리는

제대로 된 심판자를 요청하는 것이 이사야의 기도 이더라 말이죠.

 

그럼 제대로 된 한 세트를 언급합니다.

우상 숭배에 대조되는 개혁을 시도하는 이스라엘 왕은

결국 얼마가지 못해서 다 넘어지는데 있어서

제대로 된 상대자를 언급하는데 있어서 이사야는 남겨진 씨를 언급합니다.

 

자 이렇게 되니 이제는 이 남겨진 씨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해서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뭘 해도 우상 숭배자임을

저 남겨진 씨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잠재적인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에

아예 미리 이 남겨진 씨로 인해 심판 받는 죄인으로써

이사야는 이 남겨진 씨를 증거합니다.

 

이것이 동행이라고 했지요.

다윗과 다윗의 자손의 동행

왜 다윗과 하나님과의 동행을 하나님의 동행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 이다 라고 표현한다 말이죠.

다윗의 손에 죽어야만 하는 다윗의 자손이

그 죽은 자가 도리어

살아 있다고 여기는 이 죽은 다윗을

도리어 살려내는 자가 바로 후손, 남겨진 씨 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살아난 처음 사람이 바로

믿음이 살려낸 처음 사람이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다 말이죠.

우리는 자꾸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원조 라는 의미로 착각한다 말이죠.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한다 말이죠.

? 아브라함으로부터 뿌리가 내려오는 족보를 곧 육을 언급하더라 말이죠.

바보 바보
그거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믿음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의 첫 출발자가 아니라

그래 되면 왜 노아는 아니냐 말이죠.

설명을 못해요

믿음의 첫 출발자가 아니라

그 반대로 믿음이 희생해서 살려낸 처음 혜택을 받은 자 이다는 겁니다.

믿음이 처음으로 살려낸 자 이다는 겁니다.

아니 언제 죽었어야지?

그러니까요 바로 그겁니다.

아브라함이 죽지 않았다고 본 거다 말이죠.

 

아닙니다 죽은 자입니다.

? 우상 숭배자 이거든요. 우상 조각가 이다 말이죠.

그 우상 조각가를

죽은 자를 살려낸

믿음이 처음으로 반칙을 벌려서 살려냈다는 겁니다.

아 그럼 우상숭배하면 믿음이 살려준다는 말이냐?
아니지요
후손 이삭이 이 우상조각가에게 때려죽어도 바뀌지 않는 아브람을
뜯어내면서 아브라함으로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삭의 죽음이다 말이죠.
이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쳐다 보고 기뻐하는 겁니다.
결국 아브람은 이삭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삭과 함께 죽는 겁니다. 그리고 이삭과 함께 사는 겁니다.
곧 실상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그리고 삼일 만에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겁니다.

이렇게 본인에게 벌어진 사건을 믿는 것을 의로 여겼다 말이죠.
어떻게? 의롭지 않는 자를
경건치 않는 자를 곧 우상조각가를
뜯어내어서 우상에서 손 때게 하시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 옳았다 라고 말이죠.


이것을 다시 다윗이 보고 행복한 자라고

자기도 아브라함처럼
우리야의 죽음을 통해서 본인이 죽은 본인이 살아난 것을 선물로
예상치 못한 행복을 누리는 겁니다.
다윗을 뜯어내는 다윗의 자손이 벌린 사건을 옳았다고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경건치 않은 자를 곧 우상숭배자를

피로써 용서하시는 그 의롭다 하심을 믿음을 의로 여겼다 라고

믿음 스스로 혼자 다 자작극을 벌려 놓고서는

그 공로를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편파적으로 뒤짚어 씌워서

의로 여겼다고 표현했다 말이죠.

거룩을 몸에 칭칭 감았다 말이죠.

우상에게 칭칭 감겨 포로된 자를

예수님의 희년 완성으로 칭칭 감았다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칭칭 감아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언제 십자가에 달린 적 있었던 가요? 없었잖아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깊은 것인 십자가의 지혜인데

 

오늘 상대적으로 나오는 사단의 깊은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깊은 것인 십자가를 못 알아보도록 하기 위해서

셀프 디스 하듯이 사단의 얕은 것으로 또는 하나님의 얕은 것으로 성경을 보도록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십자가를 거리낀다고 거부하는 유대인의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얕은 것만 주장하고 그와 동시에 사마리아인 저 개같은 이방인과 상종 하지 않겠다고

자신들의 처음 모습을 발로 차버리는 모습이 바로 사단의 얕은 것만 보더라 말이죠.

 

헬라인도 마찬가지 십자가를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보는 겁니다.

저런 인신 제사를 왜 따라하냐 라고

그래서 종묘 사직이나 꾀하고

인간의 꾀와 노림수를

전통화 역사화 해서

그것이 지혜인줄 따라는

초등학문이라는 철학이라는 속임수에 빠져 있더라 말이죠.

 

바로 이런 우상성에 대조로써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서

사단의 깊은 것과 하나님의 깊은 것을 대조시키는 겁니다.

 

마귀의 세가지 시험 곧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따지는 시험에서

시편 91편의 인용구가

번역본에도 언급 되었는데

 

(4:6, 새번역)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 91:11;12

(4:6, 공동)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 시편 91:11-12.

 

 

온 천하 만국을 너에게 줄테니 내게 절하라 라는 내용의 구약 인용구는

잘 언급이 되지 않더라 말이죠.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절하라 말이죠.

 

그런데 시편 2편에 나오더군요

 

(2:6, 개역)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7, 개역)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개역)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개역)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즉 너가 하나님 아들 맞아? 그럼 심판자 곧 우상을 섬기는 열방을 부수는 심판자가 너 라면

그래 너가 심판하도록

너가 복수하도록 해 줄게

절 하라 라고

시편 2편을 인용했다 말이죠.

 

지금 현재 이스라엘이 여기에 이미 다 넘어갔잖아요.

 

발람의 꾀랑 비슷하죠.

그래 너가 광야를 통과했군 대단해

그래 너가 저 최강국 애굽을 멸망시키고 나온 이스라엘이지 아주 대단해

너야 말로 대단한 가치를 가진 자야 라고

인간의 가치성을 높이는 것이 바로 발람의 꾀다 말이죠

 

그런데 만약 그런 높은 기대치에 못 미치게 되면

쭐꾸덕 베드로처럼 오히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졸지에 원수를 심판 할려다가 도리어 원수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원수 갚는 것이

우상을 부수는 것이

우상숭배자를 심판 하는 것이

저 세리와 저 매국노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유대인들은 모두다 사단에게 넘어가서

저 마다의 독립운동을 벌리고 있다 말이죠.

저 로마로부터

저 원수로부터

이스라엘 나라 회복 운동을 벌리고 있는

그 대표성이 바로 가룟유다 독립군 아니냐 말이죠.

우상숭배자인 원수들과 싸우는 철퇴를 휘두르는 자

 

자 그럼 이런 기도를 했던 다윗을 보자 말이죠.

그럼 다윗이 철퇴를 휘둘러서 우상숭배자 곧 원수를 이겼던 가요?

 

이게 아이러니 합니다.

오히려 원수를 타파 하기는커녕

도리어 원수가 되어 버렸어요.

 

율법의 4배나 갚으라 라고 한 것이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고 자기가 옳았다고 여기더라 말이죠.

 

그런제 주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번제와 제사가 아니라

상한심령 곧 인애와 자비이다 말이죠.

 

본인이 원수가 되어야만 그 인애와 자비의 대상이 되더라 말이죠.

안 그러면 자꾸 반대로 대상물로 삼아서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 라는 말 밖에 할 줄 아는게 없다 말이죠.

 

이게 우상이다 말이죠.

 

즉 약속을 못 지키는 겁니다. 다 이루었다고 선언을 못해요.
그러니 여전히 지킬 것이 계속 남아서 의문의 반복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기존의 것을 그대로 들고와서 변화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바로 우상이다 말이죠.

 

그럼 우상이 아닌 약속은 뭐냐? 바로 차이입니다.

이 우상과의 차이성이다 말이죠.

 

우상이란 돌 조각이나 나무 조각을 보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얕은 겁니다.

점 점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말이죠.

구약 후반부 호세아에서 우상이란 점점 그 의미가 깊게 들어가서 드러납니다.

우상이란 호세아 에서는 나무조각 돌조각을 우상숭배라고 하지 않고

음란한 마음을 우상이라고 한다 말이죠.

그럼 그 상대적인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 아는 지식이 그 상대적인 한 세트를 이루는 겁니다.

 

자 그럼 고멜과 호세아는 결혼 하면 안되잖아요

그런데 결혼해요 음란한 여자랑 말이죠.

왜 그럴까요?

 

이것을 다윗과 다윗의 자손으로써의 하나님의 동행이라고 어머니께 설명했는데

지난 주에 조금 언급해서 며칠 전에 다시 좀 길게 나누기도 했는데요.

 

왜 하필이면 다윗과 하나님의 동행이라고 바로 하나님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꼭 구지 다윗의 자손이라고 표현했냐 하면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마치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믿듯이

기능으로써

다윗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다 말이죠.

 

즉 이 말은 믿음이란 인간이 믿는다는 둥 하는 것은 모조리 다

종교 곧 666에서 인간들끼리 소통 매매가 되는 개념이고

 

믿음이란 반드시 후손이 죽음으로써 아브라함을 뜯어내듯이

다윗을 뜯어내는 자가 다윗의 자손이다 말이죠.

그럼 다윗은 의인의 자리가 아닌 동일시 자리가 아닌

죄인의 자리로써 차이성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는 죄인의 기능이 덮쳐진 겁니다.

이것을 회개 라고 한다 말이죠.

과거 반성하고 고치고 질질 눈물 흘리는게 회개가 아니라

그딴 회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윗이 먹고 마시고 씹고 뜯고 하는 것이 회개이다 말이죠.

 

기존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래서 막살아라 곧 회개하라 라고 한다 말이죠.

 

그것도 회개의 달인 들 앞에서

절대로 막살면 안된다고 하는 막사는 달인들 앞에서 막살아라 라고 말이죠.

 

부정의 부정인 거죠.

 

그러니 처음것

이전 것

사라질 것

지나 간 것

해와 달도

다 없애 버리는 것으로써의

다윗의 자손이

다윗을 살려내는 겁니다.

? 다윗은 자꾸 기존의 것을 주장하니까

율법의 4배나 갚으라 라고 주장하니까

이것이 우상 숭배이다 말이죠

 

기껏 인간에게서 나올수 있는 최대치의 신앙이 이거다 말이죠.

그런데 뭘 감추었습니까?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동시에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살인을 한 것을 감추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했다 말이죠.

말씀을 지킨다는 것이 예수님을 죽이고 있다 말이죠

 

그저 사단의 얕은 것만 생각하고

율법 지키고

저 세리와 저 매국노 저 우상숭배자 저 간음한자 저 음란한 자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율법을 어기고 있는 율법을 죽이고 있는 것인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깊은 것인 십자가와 꽝 하고 부딧혀야 합니다.

 

왜 우리 어릴적에 그런 종류의 놀이가 많았죠

한가지 예로 종이 찢기

어떤 종이가 강한지 종이로 종이를 찢는 게임인데

심지어 좀 위험한 연필 깍는 칼도 했고 등등

 

다 도토리 키 재기 하듯이 도진개진 고만 고만 한 것들끼리 가지고 와서 누가 센가로 힘겨루기를 했다 말이죠.

 

이것이 사단의 얕은 것으로 서로 키 재기를 한 것이다 말이죠.

 

그럼 진짜 센 것이 뭐냐 말이죠.

 

젖먹이 보다 강한 자가 세상에 없잖아요.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더라 말이죠.

말이 되냐 말이죠?

 

그래서 일찌감치 말도 안된다 싶어서 십자가 라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약한 것을

아예 제외를 시켰다 말이죠.

그래놓고 원수를 갚겠다고

원수를 이겨보겠다고

우상을 타파해서 철퇴를 날려 보겠다고 하다가

다들 추풍낙엽처럼 다 쭐꾸덕 미끄러져 날라가 버리는 겁니다.

 

오죽하면 유대인을 장악한 마귀가

예수야 너도 원수 갚으러 왔지?

하나님의 아들 맞잖아 그럼 원수 갚아야지

그래야 그 원수로부터 구원자가 되잖아

 

그래서 원수 갚아라 라고 한다 말이죠.

전쟁 하라 말이죠.

저 로마로부터

저 원수로부터

 

그런데 신약에서 우상이란 바로 이것이 탐심이라는 겁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면 모조리 다 우상이다 말이죠.

 

그럼 그 상대적인 우상의 반대는 뭐냐?

바로 십자가 이다는 겁니다.

원수를 용서하시는 사랑이다는 겁니다.

 

이거 이거 마귀가 견디질 못하고 발악하는거다 말이죠.

 

그래서 사단의 가시를 뺴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깊숙이 집어 넣으시는 겁니다.

?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바라보라고

곧 십자가만 밝히 보이기에

십자가만 자랑하라고 말이죠.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에

사단의 깊은 것이 뭔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인 십자가의 원수 사랑만을 쳐다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두아디라 교회를 주님은 저들과 차이를 내시는 겁니다.

 

인간 스스로가 차이내는게 아니라

회개하는게 아니라

주님의 기도가 두아디라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겁니다. 회개하시는 겁니다.

곧 책망이요 간섭이요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겁니다.

 

사단은 사단의 깊은 것을 감추고서

사단의 얕은 것을 연막탄으로 깔고서

 

하나님의 깊은 것 곧 십자가를 모르도록

우리들을 우상숭배 곧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도 십자가도 예수님도 다 끌어들이는

원수를 이기고자 하는 탐심에 빠지도록 하는 겁니다.

 

내 손으로 저 세리와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내 손으로 저 음란한 우상숭배자와 같지 않음 삶을 살고 있어 라고

사단의 얕은 것만 쳐다보고

그 연막전술에 빠져

사단의 깊은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인 십자가의 공로를 못 쳐다보도록 하더라 말이죠.

 

십자가 앞에서 무조건 이유없이 죄인임을

이 죄인을 이유없이 무조건 용서하신 그 사랑를 못 쳐다보도록

내 돈 띠 먹은 놈 백데나리온 띠먹은 자를 용서치 않고

철퇴로 원수 갚는

 

이것이 원수가 뭔지도 모르고 원수 갚겠다고 나서는

사단의 얕은 것만 보도록 하는 사단의 속임수에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너를 꾀냐 라고

간섭하시고 꾸짖으시고 책망하시는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두아디라 교회와 거짓선지자 이세벨이 한 세트를 구성해서

하나님의 깊은 것과 사단의 깊은 것의 차이성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세벨이 모든 선지자를 죽이니까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내 열심히 특심인데 나만 남았다고

여진히 사단의 얕은 것만 보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깊은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십니다.

큰 파도 큰 태풍 큰 지진 큰 번개 등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듣낄라 말라 하는 세미한 음성으로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합쳐서 850 1로 싸워 이겨도

그 이긴

그 불가능한 승리가

나의 육의 자링이 되어버린 이상

 

이세벨의 우상숭배를 못 이깁니다.

원수 갚기는커녕 원수 갚을려다가 도리어 원수가 되고

매국노가 되고

배신자가 되는 판국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이 뭡니까?

다윗이 원수 이겼지 않았다는 겁니다.

도리어 사울왕이 죽고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요즘으로 치면 교회는 더더욱 원수짖으로써

다윗을 괴롭혔다 말이죠.

평생을 우리아 장군을 고의적으로 죽인 그 코투리를 잡고서

죽을 때 까지 물고 늘어지는 백성들이 많았다 말이죠.

 

그 원수까지 다 싹쓸이 해야 합니까?

온 천하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줄테니

내게 절하라

원수 갚도록 해 줄게 절하라???

 

그게 하게 되면 어차피 또 의문의 반복이라는 쳇바퀴만 돌 뿐입니다.

마귀가 원하는 바 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해서

곧 십자가의 피 용서를 통해서

오히려 내가 주님으로부터 용서 받아야할

? 무조건 이유 없이 심판 받아 마땅한 자이기 때문에

저 원수 보다

그럼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 말이죠.

완벽한 거룩이 아니면 무조건 불로 태움 당한다 말이죠.

완벽하냐 말이죠?

일곱 이냐 말이죠.

 

조금이라도 거룩하지 않는 이상

저 원수가 심판 받는 거나

너가 거룩하지 못해서 타 죽는거나

뭐가 다르냐 말이죠.

 

둘 다 더럽기는 마찬가지 인데

 

왜 그런 기존의 것을 들고 오느냐

 

처음 것은 다 지나가는데 ~~~~~~

 

그래서 새벽별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동방박사가 이스라엘 약속의 사람도 아닌데 이 새벽별을 쫏은 반면에

이스라엘은 이 새벽별을 못 받았고 못 봤다 말이죠.

 

이 새벽별이란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 때문에

즉 긍휼 때문에

간밤에 주의 성실하심으로 전쟁을 벌려서 원수를 철퇴로 부수심으로써

빠져나온 자들이 아침에 새벽별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새벽별 되신 예수님의 죽도록 충성하심 때문에 말이죠.

 

(벧후 1:19, 개역)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벧후 1:19, 새번역) 또 우리에게는 더욱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22:16, 개역)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22:16, 새번역) 나 예수는 나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어, 교회들에 주는 이 모든 증언을 전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요, 빛나는 샛별이다."

 

새벽별을 받지 않은 자는

저 어두움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겁니다.

 

인간 자체가 어두움 인데

소경인데

우상인데

무슨 수로 어두움 속에서 빠져 나오겠습니까?

 

우리의 어두운 눈은 그가 누구인지도 몰라 봤다 말이죠.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53:2, 개역)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53:3, 개역)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53:4, 개역)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3:5, 개역)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인간의 믿음으로는 아침을 맞이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깊은 것 곧 십자가의 피

어린양의 피 만이

사단의 깊은 것을 들추어내심으로써

고난의 종이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비로소 사단을 들추어내심 앞에

아 무슨 수로 저런 사단을

저 원수를 이길수 있는가?

저 지옥에서 빠져나올수 있는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

벌어진 것이 구원전쟁 곧 출애굽이였듯이

 

이전 것은 지나갈수가 없이

여전히 우상에게 속해서

자기 탐심에서 빠져나올수 없도록 하신 그 불가능에서 말도 안되게 벌어진 사건이 바로

십작가 사건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다 말이죠.

개인 구원이 없어요.

 

오로지 우리의 어두운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심으로써 나음을 입게 된 거다 말이죠.

 

그럼 두아디라 교회는 이미 빠져나온 자로써

주님의 깊은 것 곧 십자가 라는 피 용서인 새벽별을 맞이하면서 찬양하는 겁니다.

 

이 새벽별 때문에

이 사단의 깊은 것인 원수로 부터의 탈출, 구원을

십자가의 피로써

어린양의 피로써

우리 죄악을 그에게 감당 시킴으로써

사단의 깊은 것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곧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심을 누리는

 

매일 매일 벌어지는 십자가의 사건을 즐기며 노래 부르는 겁니다,

 

주님의 성실하심으로 간밤에 전쟁이 종식이 되지

그래서 아침을 맞이하면서 새벽별을 맞이하게 되지

 

주의 성실함이 임하지 않는 자에게는

밑도 끝도 없는 전쟁 속에서 마침이 없이

곧 평화가 없이

의문의 반복만을 할 뿐인

칼을 놓을 수가 없어요.

저 어두운 통로에서 빠져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2:4, 개역)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2:1, 개역)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2, 개역)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2:4, 개역)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2:5, 개역)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전쟁의 종식인 평화가 없다 말이죠.

새벽별이 없어요.

주님은 평화 막힌 담을 허는 자가 없다 말이죠.

다윗이 원수 갚던가요? 죽을 때 까지 원수에게 시달리지요.

 

(12:19, 개역)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0:30, 개역)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10:30, 새번역) 『㉪"원수를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 하고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신 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32:35 32:36; 135:14

(10:30, 공동) "원수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하시고 또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하고 말씀하신 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신명 32:35. 신명 32:36; 시편 135:1-4.

(19:18, 새번역)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32:35, 새번역)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원수들이 넘어질 때가 곧 온다. 재난의 날이 가깝고, 멸망의 때가 그들에게 곧 덮친다.'

(8:13, 새번역) 각 지방에서는 그 조서를 법령으로 공포하여 각 민족에게 알리고, 유다 사람들이 대적들에게 원수 갚을 날을 미리 준비하게 하였다.

(12:19, 새번역)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 , '진노하심에' 32:35

(삼하 14:11, 공동) 여인은 계속 간청하는 것이었다. "저 원수 갚겠다는 자들이 제 아들을 기어이 죽여 없앤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못한다고 임금님의 하느님 야훼를 두고 맹세해 주십시오." 그가 다짐하였다. "살아 계시는 야훼 앞에서 맹세하거니와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없게 해주리라."

(왕상 3:11, 공동)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장수나 부귀나 원수 갚는 것을 청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옳은 것을 가려내는 머리를 달라고 하니

(35:4, 공동) 겁에 질린 자들을 격려하여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원수 갚으러 오신다. 하느님께서 오시어 보복하시고 너희를 구원하신다."

(12:19, 공동)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서에도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 신명 32:35.

 

사단의 깊은 것을 모르게 되면

원수 갚겠다고

가룟유다처럼 독립운동하겠다고 난리 칠꺼다 말이죠.

예수님이 도와줄 줄 알았는데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자로 보이니까 팔아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 곧 십자가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우상숭배에 빠진거다 말이죠.

자기가 이렇게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내 열심히 특심인데

왜 안도와 주냐 라고

 

자기를 위한 예수가 되어 주지 않는다고 말이죠.

 

이런 탐심

오히려 우리가 이런 탐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의 깊은 것으로 빼내주신 것은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화목제물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사랑 때문인 겁니다.

 

평생을 이 십자가의 피만 자랑하고

십자가의 피를 거부하는 탐심에서, 우상에서 빼내주시는

주님의 기도를

그 놀라운 탄식을

그 간섭으로 매일 매일 건져달라고 합시다

 

나 라는 원수로부터 제발 건져주세요

나 라는 살인자 로부터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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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인터넷 삼성 앱에서는 보이고요. 나머지 앱브라우저는 모르겠구요.
그 동안 몰랐는데 다 되는 줄 알았는데 크롬만 쓰다가 익스플러어 에서 단추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참고하세요.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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