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속에서의 감사와 기쁨 (사 5:12-30)

 

(5:13, 새번역) "그러므로 나의 백성은 지식이 없어서 포로가 될 것이요, 귀족은 굶주리고 평민은 갈증으로 목이 탈 것이다.“

 

(4:6, 개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5:12, 개역)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5:13, 개역)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5:14, 개역)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5:15, 개역)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5:16, 개역)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5:17, 개역)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5:18, 개역)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5:19, 개역)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5:20, 개역)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5:21, 개역)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5:22, 개역)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진저

(5:23, 개역)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았는도다

(5:24, 개역) 이로 인하여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5:25, 개역)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 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

(5:26, 개역) 기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 올 것이로되

(5:27, 개역)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하며

(5:28, 개역)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으며 그 말굽은 부싯돌 같고 차 바퀴는 회리바람 같을 것이며

(5:29, 개역) 그 부르짖는 것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물건을 움키어 염려 없이 가져가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5:30, 개역)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워져서 어두우리라

 

(5:13, 새번역) "그러므로 나의 백성은 지식이 없어서 포로가 될 것이요, 귀족은 굶주리고 평민은 갈증으로 목이 탈 것이다."

(5:14, 새번역) 그러므로 스올이 입맛을 크게 다시면서, 그 입을 한없이 벌리니, 그들의 영화와 법석거림과 떠드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가, 다 그 곳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 또는 '무덤' 또는 '죽음'

(5:15, 새번역) 그래서 천한 사람도 굴욕을 당하고 귀한 사람도 비천해지며, 눈을 치켜 뜨고 한껏 거만을 부리던 자들도 기가 꺾일 것이다.

(5:16, 새번역) 그러나 만군의 주님께서는 공평하셔서 높임을 받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거룩하신 분으로 기림을 받으실 것이다.

(5:17, 새번역) 그 때에 어린 양들이 그 폐허에서 마치 초장에서처럼 풀을 뜯을 것이며, 낯선 사람들이, 망한 부자들의 밭에서 그 산물을 먹을 것이다. / 칠십인역에는 '어린 양 떼가'

(5:18, 새번역) 거짓으로 끈을 만들어 악을 잡아당기며, 수레의 줄을 당기듯이 죄를 끌어당기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5:19, 새번역) 기껏 한다는 말이 "하나님더러 서두르시라고 하여라. 그분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빨리 하시라고 하여라. 그래야 우리가 볼 게 아니냐. 계획을 빨리 이루시라고 하여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세우신 계획이 빨리 이루어져야 우리가 그것을 알 게 아니냐!" 하는구나.

(5:20, 새번역)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5:21, 새번역)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슬기롭다 하는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5:22, 새번역) 포도주쯤은 말로 마시고, 온갖 독한 술을 섞어 마시고도 끄떡도 하지 않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5:23, 새번역) 그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하며,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구나.

(5:24, 새번역) 그러므로 지푸라기가 불길에 휩싸이듯, 마른 풀이 불꽃에 타들어 가듯, 그들의 뿌리가 썩고, 꽃잎이 말라서, 티끌처럼 없어질 것이다. 그들은 만군의 주님의 율법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멸시하였다.

(5:25, 새번역) 그러므로 주님께서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시니, 산들이 진동하고, 사람의 시체가 거리 한가운데 버려진 쓰레기와 같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

(5:26, 새번역) 주님께서 깃발을 올리셔서 먼 곳의 민족들을 부르시고, 휘파람으로 그들을 땅 끝에서부터 부르신다. 그들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5:27, 새번역) 그들 가운데 아무도 지쳐 있거나 비틀거리는 사람이 없고, 졸거나 잠자는 사람이 없으며, 허리띠가 풀리거나 신발끈이 끊어진 사람이 없다.

(5:28, 새번역) 그들의 화살은 예리하게 날이 서 있고, 모든 활시위는 쏠 준비가 되어 있다. 달리는 말발굽은 부싯돌처럼 보이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과 같이 구른다.

(5:29, 새번역) 그 군대의 함성은 암사자의 포효와 같고, 그 고함 소리는 새끼 사자의 으르렁거림과 같다. 그들이 소리 치며 전리품을 움켜 가 버리나, 아무도 그것을 빼앗지 못한다.

(5:30, 새번역) 바로 그 날에, 그들이 이 백성을 보고서, 바다의 성난 파도같이 함성을 지를 것이니, 사람이 그 땅을 둘러보면, 거기에는 흑암과 고난만 있고, 빛마저 구름에 가려져 어두울 것이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딱 하나 이거 하나만 빼 먹는다고

그래서 심판하신다고 일방적으로 선포 하시는 겁니다.

 

즉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하게 나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가 뭡니까?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화목제물을 주셨다는 겁니다.

곧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은 인간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상이라고 했지요.

 

이 우상을 깨뜨리는 것은 유일하게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이 십자가만이

우상을 깨뜨리는 겁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사랑입니다.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랑 다른 구원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인 나를 자꾸 구원받고자 한다는 겁니다.

존재의 구원은 없다 말이죠.

 

기능의 구원 밖에 없는데

그 기능의 구원이란 바로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구원자의 구원 곧 화목제물 되신 주님을 외치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자꾸 존재의 죄인이 될려고 하니까

죄인이라는 조건 마저도 갖추는 죄인이 된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조건 갖추었잖아 라고 우겼지만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일치 할까요?

죄인이란 뭘 해도 일치 할수 없는 죄인이라서

주님에게 달려 있는 문제임을 외치는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않은자요

흑암의 백성이요

개같은 이방인 곧 뭘 해도 더럽기 짝이 없는

심판 받아 마땅한 자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조건을 갖추었데요 글쎄

저 세리인 매국노와 같이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데요 글쎄

 

이것이 유대인 곧 신약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거부하는 유대인이요

오늘날 종교인들 곧 성화론자들처럼 인간 쪽에서 뭔가를 자꾸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또 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안 지킬껴야를 또 지킬려고 주장하더라 말이죠.

뭘 해도 죄인이다는 기능은 갇혔다는 것인데

자꾸 뭔가를 자기 쪽에서 안 하면 안된다는 불안을 믿음으로 포장하고 있더라 말이죠.

 

그러니 성경 어디에도 우리가 지킬 것이 없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왜 지킬 것이 없는가? 아 그럼 나는 안 지키는 것을 지킬래 라고 또 나오겠지요.

안 지키기는 지킬래는 안 기뻐요 기쁨이 오지 않습니다.

 

안 지키는 것 조차도 지킬 필요가 없는

 

다 이루었다가 너무 너무 기뻐서 아니 외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즉 모든 성경은 이미 다 이루어진 것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유대인들은 거부하기 때문에

구약만 받아들이고 신약은 거부하는 겁니다.

? 신약에 예수님이 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외쳤기 때문에

졸지에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럼 내가 지금 지키고 있는 것은 뭐가 되느냐? 쓰레기 라는 말이냐?

하나님 말씀 곧 거룩한 말씀을 지키고 있는데? 그 말씀이, 그 거룩한 말씀이 쓰레기 라는 말이냐? 라고 거부하는 겁니다.

오늘날 종교꾼들 곧 성화론자 즉 인간 중에 최고의 믿음과 행함을 갖춘자들도

똑같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가장 잘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요

실제로 조건을 갖추었거든요.

그런데 거부해요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앞에서는 똥덩어리 이니까 말이죠.

사도바울이 그랬다 말이죠.

 

사도바울이 그랬다 라는 것 까지도 알 정도로 지식들은 박사입니다.

그런데 거부해요 이것이 참 신비합니다.

 

결국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공부하면 쌓을수 있는 그런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인물입니다.

 

자 그래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자에게 부르신바 되는

예수님이 주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사람의 일 또는 마귀의 활동은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상때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알았다고 주장하는데 있어서

바로 예수님이 벌리신 십자가의 지혜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다는 점입니다.

 

그 예가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활동입니다.

의도적으로 평상시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가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는 개같은 이방인에게 가서

주의 이름을 받아내는 식이더라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일 이다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바로 여기에 유대인들의 반응은 이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하나님의 일이랍시고 하는 것들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의문의 제사를 반복함으로써

자꾸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우기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우기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이런 행함에 또는 믿음에 동의를 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다 거부해야 하는데

그 거부함에 졸지에 예수님이 들어가는데

단순히 거부하다가 실수로 예수님을 거부하는게 아니라

가장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활동 하나 하나에 대해

바알세불이라는 마귀의 왕이 들어갔다는 식으로

적극적인 반감을 표출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다 이루심에서 나타난다는 겁니다.

 

즉 미래완료에서 덮쳐져서 반감을 하지

원인을 찾아내어서 반감하고 거부하는게 아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천히 여길 자를 천히 여기고

귀히 여길자를 귀히 여기는

십자가의 다 이루심 이라는 원인 없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 있는 결과로써 유대인 곧 사단의 회가 옳게 되니까 말이죠.

저들 선악의 도사들이 옳게 되니까 말이죠.

 

지옥도 천국도 다 이유 없이 가는 겁니다.

원인 없이 결과로 가는 겁니다.

원인이 없어요.

오로지 결과 곧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두 패로 갈라지는 것이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아니라

 

인간이 말씀을 지켜서 거룩이냐 더러움이냐 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대인 곧 모든 종교의 대표성이죠

유대인은 반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그럼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이기에

뭘 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우리에게는 뭘 해도 감사와 기쁨 밖에 안나오는 겁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나오는 이 심판도 왜 나오느냐

1234로 시간적으로 역사적으로 뭔가를 잘못해서 나오는

잘못한 원인에 따른 결과로써의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미래완료인 남겨진 씨가 떳다는 이유 하나로

즉 결과가 떠 버린 이유로 원인이 제거되는 식으로써

무조건 뭘 해도 심판 속에 놓여지는데

이것 조차도 원인 없는 결과가 떳기에

남겨진 씨가 떳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가 떳기 때문에

심판 속에 집어넣으시는 것인데

이것이 기쁨과 감사이다는 겁니다.

 

이유없이 무조건 기쁨과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즉 원인 없는 결과가 덮쳐지지 않는다면

광야 속에 집어 넣는

곧 죽음 곧 심판 속에 집어넣는 하나님의 일 하심에

불평 불만 밖에 나오지 않게 되는 겁니다.

자꾸 원인을 따지니까요

주님 당신 말대로 모세가 시키는대로 따라왔잖습니까 라고 말이죠.

시키는대로 했다고 자꾸 지켰다고 주장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우겨도 그것은 사람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이란 바로 광야에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고자

일부러 물 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죽는 곳으로

심판 받아 마땅한 곳으로

원망 안나오고는 못 배기는 곳으로 인도했다는 겁니다.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 말이죠.

 

자 그럼 마음 낮추기의 달인들인 불교의 도 닦기는 그럼 마음 낮춘거 아니냐 말이죠.

요즘 아주 인기 스타인 혜민이라는 중을 유연찮게 티비를 통해서 보게 되는데

우와 이거 뭐 성화론자들과 똑같아요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냉부해(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고기를 빼고 요리해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이게 마음을 낮춘겁니까 교만한 겁니까?

유대교와 똑같이 사단의 회 아니냐 말이죠.

 

주는 대로 먹지 않는 이 교만함

모든 종교가 다 이래요

 

오히려 마음을 낮춘 것을 증거하고 돌아다니는 것 보다 더 교만한 게 어디 있냐 말이죠.

그냥 주님 주시는 고기 마음대로 뜯어 먹으세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광야에서 유대인들이 이랬어요

원망 안 할 만한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원망 안하도록 교만한 마음이 들추어지지 않도록 인도해 달라고

모두다 다 이렇게 기도한다 말이죠.

 

그럼 더더욱 원망할 만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어딜 감히 그 따위 교만한 마음을 가지느냐 말이죠.

낮추시면 낮추시는 주님께 감사하면 될 것을 말이죠.

 

오늘 본문도 그러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 심판하시는 겁니다.

즉 교만했으니까가 아니라 그래서 낮추는게 아니라

미래완료에서

즉 남겨진 씨가 떳기 때문에 등장했기 때문에

낮추신다는 겁니다.

그 이유로 이유 갓지 않은 이유로 교만 속에 집어 넣고

마음을 낮추시는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쳐다보라는 겁니다.

마치 불뱀에게 다 물리도록 해 놓고서는 장대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쳐다보라고 말이죠

죄인 만들어 놓고서는(오늘밤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구원자로써

죄인을 위해 피 흘리심을 곧 다 이루었다가 떳다 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26:3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6:75, 개역)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런 하나님의 일에 우리는 관심이 없고

자꾸 사람의 일에

나는 절대로 부인 하지 않겠습니다.

장 지지겠습니다.

십자가 나도 지겠습니다 라고

자기 사랑을 나타내더라 말이죠.

 

하나님의 사랑 곧 화목제물에 관심이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말이죠.

 

(5:17, 개역)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9:13, 개역)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5:16, 개역)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가 사랑하면 율법이나 선지자를 세우고 완전케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폐할려고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안 쳐다보고

보탬이 되겠다고 나서는 자신을 쳐다보겠다는 그 심뽀를

낮추시겠다는 것에

 

오죽하면 십자가가 안 나서면 안될 정도까지

우리는 뼛 속 까지 죄인 중의 괴수이다는 겁니다.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자

개같은 이방인이다 말이죠.

 

자꾸 유대인을 따라해요

그것이 정상이라고 우기는 저 성화론자들 보세요

교회 사람들 다 이래요

바리새인 욕하면서 바리새인 짖만 골라서 하더라 말이죠.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바리새인 만들어 버리십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말이죠.

 

? 이것도 이유 없어요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떳기 때문에 말이죠.

 

이유 없는 구원이듯이

이유 없는 심판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십의 이조 드렸다는 둥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는 둥

저 세리와 같지 않다는 둥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아니 율법은 예수님만 이루도록 되어 있는데

 

도대체 뭘 믿고 율법을 다 지켰다고 우길까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였던 사도바울도 배설물이라고 고백하는 판국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늘 본문으로 인용하면

이 심판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말이죠.

 

빠져나올 구석이 없어요

그래서 바벨론 입 속에 집어넣습니다.

맞습니다. 출애굽을 또 시도하시는 겁니다.

출 이스라엘을 시도하시고

출바벨론을 시도하시고

출자아를 시도하시는 겁니다.

 

죄인 일부러 만들어서 출죄인을 시도하시는 겁니다.

 

?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떳기 때문에

저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 자들과 구별 시키기 위해서

 

피 바를려고 말이죠.

 

세 번 부인하지 않는 베드로와 세 번 부인한 베드로 두 개로 나누어서, 갈라서, 분리해서

세 번 부인한 베드로 곧 십자가의 피를 발리운 자만을 구원하시고자 말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뭘 해도 감사와 기쁨 밖에 없는 하나님의 일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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