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인 (계 6:12-17)

계 21 여섯 번째 인 (계 6,12-17).mp3
8.79MB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6:12, 개역)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6:13, 개역)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4, 개역)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6:12, 개역)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6:13, 개역)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6:14, 개역)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6:15, 개역)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6:16, 개역)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6:17, 개역)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6:12, 새번역) 그 어린 양이 여섯째 봉인을 뗄 때에, 나는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해는 검은 머리털로 짠 천과 같이 검게 되고, 달은 온통 피와 같이 되고,

(6:13, 새번역) 하늘의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거센 바람에 흔들려서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듯이, 떨어졌습니다.

(6:14, 새번역)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듯이 사라지고, 모든 산과 섬은 제자리에서 옮겨졌습니다.

(6:15, 새번역) 그러자 땅의 왕들과 고관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세도가들과 노예들과 자유인들이 동굴과 산의 바위들 틈에 숨어서,

(6:16, 새번역) 산과 바위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서,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숨겨다오.

(6:17, 새번역) 그들이 진노를 받을 큰 날이 이르렀다. 누가 이것을 버티어 낼 수 있겠느냐?"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수 없습니다.

오히려 율법이 가입이 된 것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함입니다.

즉 율법을 대상물로 삼기는커녕

도리어 율법의 대상물로 자리잡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나오는 죄에 대한 해석은

성령을 받아서 죄에 대한 해석과 정반대가 되는 겁니다.

 

서로의 소욕을 못 하도록 한다 말이죠.

 

즉 율법을 지켜도 죄가 된다는 것이 성령의 해석입니다.

그러니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받아 마땅한

엉터리 해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 외의 바깥의 한 의가 와야 합니다.

그러니 의는 인간 쪽에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막살면 안됩니다 라는 것을 율법 바깥의 외부의 한 의를 보고

저 분만이 막사신 분이 아닙니다 라고 고백하는게 아니라

 

막살지 않은 자기

결국 율법을 지켰다고 하나 실상은 죄 아래 갇혀서

율법 외의 한 의를 보고 외치는게 아니라

도리어 저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았다고 외치게 되니

졸지에 언어의 선악의 법에 걸려드는 겁니다.

미끼를 덮썩 물어버린 셈인 거지요

그것이 율법 외의 한 의를 보고 외친게 아니라

막살지 않은 분을 보고 외친게 아니라

허구인 인생을 의식해서 타인을 의식해서 사람을 보고 다수에게 먹혀드는 말을

말이 되는 소리를 한 겁니다.

말 안되는 소리를 하게 되면 바로 그 다수에게 돌삐 맞아 죽어야 할테니까요

 

그래서 성령을 받게 되면

죄에 대해서 엉터리로 생각한 것을 지적 받게 되고

아 막사는것만이 죄가 아니구나 막살지 않겠다는 것도 죄구나

뭘 해도 다 죄 뿐이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를 바로 남겨진 씨가 떳기 때문에 비로소 죄에 대해서 책망 받는 겁니다.

 

저 세리 저 토색하는 자와 비교해서 반대로 행동한 것을 갖추었다고 죄 아니다고 여겼는데

역시나 똑같은 죄이다는 겁니다.

태극기 집회 안나가고 촛불 집회 나간 것이 죄 아니다고 봤는데 둘 다 죄이고

뭘 해도 다 죄이다는 겁니다.

결국 나의 이런 죄를 십자가가 밝히 보여주는 내 죄를 대신 감당하신 십자가 라는 의를 안 쳐다보는 것이 죄이고

이 십자가만이 참된 의로움이다는 겁니다.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가 의 이다는 겁니다.

율법 외의 한 의 말이죠

율법의 완성인 사랑 말이죠

 

이 완벽한 사랑 외에는 나를 제대로 심판 할 자가 없다는 겁니다.

마귀도 우리의 허물을 심판 할 자격이 없기에

마귀를 끌어들이는 징조를 구하라 라는 겁니다.

즉 십자가 사건인 출애굽 사건을 구하라

구원 사건 종말 사건을 구하라 라는 겁니다.

 

이 출애굽 전쟁에서 마귀는 애굽의 바로왕처럼 강퍅한 자로써 등장 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런데 세상 임금의 특징이 본인은 심판의 자리에서 가장 멀리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도리어 심판의 자리에 있다고 착각한다 말이죠

가증한 물건이 서면은 도망치라고 했듯이

심판의 주도 아닌 것이 도리어 심판 받을 놈이 심판을 행하는 자리에 있다고 여기니

그 심판을 심판하는 겁니다.

 

안희정이든 좌파든 뭐든지 자꾸 구원자 행세를 하겠다고 우깁니다

바로 그런 구원자들로부터 구원을 구원하라 말이죠

목사들로부터 복음을 탈출 시켜라 복음을 구원하라 말이죠

 

왜냐하면 그들은 자꾸 심판자 노릇을 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을 심판하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 나오는 세상 왕 임금입니다. 갑질의 위치다 말이죠.

 

마치 이스라엘 로부터 새이스라엘을 탈출 시키듯이

이 종말의 사건을 구하라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애굽화 되었거든요

오늘날 교회가 마귀 본부가 되었거든요

십자가의 복음을 교회로부터 탈출 구원하시는 그 십자가의 종말 사건을 구하라 말이죠

 

그래서 마리아가 이 종말의 징조를 구하는 겁니다.

마치 오늘 본문처럼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6:15, 새번역) 그러자 땅의 왕들과 고관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세도가들과 노예들과 자유인들이 동굴과 산의 바위들 틈에 숨어서,

(6:15, 공동) 그러자 세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장성들과 부자들과 세력자들과 모든 노예와 자유인들이 동굴과 산의 바위 틈에 숨어서

 

땅의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자 권세 권력자들 각각 그에 따른 종들 노예들 똘마니들 그리고 그들과 거래하는 자유인들

 

이들이 아무리 십자가와 나 사이에 중간에 서서 가리우는 가림막으로써

십자가를 밝히 보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서 있어도

게념치 말고 십자가만 또렷히 보임을 잊지 말아라 라고

마리아는 허깨비들로부터 허상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전쟁 요청을 하는겁니다.

안그러면 평화가 없고

막힌 담을 허물수가 없는 상태로 의문의 반복만 할 테니까 말이죠

 

마리아의 기도 뿐만 아니라 한나의 기도 또한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속에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니라

도리어 저런 허상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는

애굽임을 자랑하고 있더라 말이죠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고서는 강도라고 자랑을 하더라 말이죠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새이스라엘로써 전쟁 요청 종말 요청을 하는 겁니다.

구원전쟁을 구하는 겁니다.

이것이 성도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참선지자들은 기생라합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서 집문서 땅문서 국가문서 다 팔아서 주님께 다 넘겨버리듯이

참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바닥을 뜯어내어서

임마누엘 예수님께 다 넘겨버리는 겁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아무리 자기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나오는 거룩은 없도록

의는 없도록 만들어 버림으로써

오로지 율법 외의 한 의만 쳐다보는

임마누엘만 구하지 않으면

처녀가 낳은 아이만을 쳐다보지 않으면

 

이 아기로 인해 이스라엘의 흥하고 망하는 비방받는 표적에 의해서

의와 죄가 갈려진다는 겁니다.

도리어 죄인은 심판 받아 마땅함을 알고

뭘 해도 죄인임을 회개하는 심판의 주를 보게 되는데

임마누엘을 보게 되는데

 

정작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은 구지 임마누엘을 볼 필요가 없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으로도 충분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뭘 하면 구원 얻느냐 라고 예수님을 이용만 할려고 하더라 말이죠

이용꺼리이지 심판주로 안 본다 말이죠

그런 자가 도리어 지옥에 가고

뭘 해도 죄인임을 예수님을 보고

임마누엘을 보고

처녀가 낳은 아기를 보고 저분만이 제대로 두 패로 가르는 완벽한 거룩이자

심판 주라고

누가 아기를 보고 그렇게 여기겠느냐 말이죠

그런데 그 아기가 바로 일찍 죽임 당한 어린양이다 말이죠

나의 죄에 결부가 되는 십자가 사건을 다 이루신 분이다 말이죠

나의 죄를 제대로 보여주는 십자가를 이루신 분이다 말이죠

 

이 분만이 의 이고 다른 것은 의가 아니다 말이죠

그리고 이 아기가 바로 세상임금이라는 심판자 노릇을 하고 메시아 노릇을 하는 자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피로 사시고자 피 흘리신 분이다는 겁니다.

자 그러니 이 일곱을 말하기 위해서

여섯 번째 인을 뗌으로써 벌어지는 사건이 벌어져야 합니까 안 벌어져야 합니까?

 

자꾸 저런 심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권세자들처럼

심판을 대비할려고 현대판 노아방주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저런 자들이 글쎄 가만히 있겠냐 말이죠

고맙게도 저런자들로부터 다 빼앗기도록 한다 말이죠

괜히 주님이 세우신게 아닙니다.

구원은커녕 저들로부터 다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일곱이 벌리시는 전쟁입니다.

 

마치 안식일 지키는 자 코 앞에서 안식의 주인이 손 마른자를 고치시듯이

십자가 전쟁 구원전쟁 출애굽전쟁을 종말의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이 종말의 징조를

마리아처럼

한나처럼 구할까요?

 

십자가가 또렷히 밝히 보이는데

아무리 저들이 큰 권세로 우리를 십자가를 못 보도록 가림막으로 작용해도

이미 다 완료된 상태이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건들을 격도록 되어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겁니다.

이미 완료된 증상으로써 벌어지니까 말이죠

 

그러니 안 구한다고 안 벌어지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스알야숩이라는 남은자

새 임금의 새 백성의 특징은

종말의 증상물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신나게 즐기는 거죠

 

마침 어머니랑 며칠 전에

새 남편과 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이죠

 

전 남편이 율법인데 이 율법과 이혼은 하지 않으면 어떻게 새남편과 결혼을 하느냐 말이죠

문제는 율법과 이혼하게 되면

저 바리새인으로부터 집중 공격 당하게 됩니다.

 

네 바로 그겁니다

마귀가 율법을 쥐고 있다는 겁니다.

막살면 안된다는 이 얼마나 달콤한 광명한 천사의 소리를 할까요

마귀는 바른 말만 해요 글쎄

 

마귀가 틀린 말을 하거나

광명한 천사의 소리를 하지 않게 되면

누가 속아 넘어갑니까

아무도 속아 넘어가지 않잖아요

 

그럼 성령이 필요가 없어요

다들 알아서 안 속아 넘어갈 정도이니까 말이죠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넘어가기 때문에

내 힘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이겨 낼수가 없다는 겁니다.

 

 

오죽하면 성령이라는 보혜사를 주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죄에 대해서 마귀(율법 지키는 바리새인)가 하는 말에 다 넘어가 버리고

의에 대해서 마귀(하나님나라 운동 하는 가룟유다)가 하는 말에 다 넘어가 버리고

심판에 대해서 마귀가 하는 말(선하고 정의를 외치는 촛불 시위)에 다 넘어가 버린다 말이죠

 

그 예가 베드로 아닙니까

그래서 넘어가지 말도록 닭이 대신 울어야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못 이기니까 말이죠

베드로도 안 되는 판국에 무슨 수로 우리가 이깁니까?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신 분은

정작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그 당사자 예수님입니다.

그럼 마귀는 더 이상 따질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따져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너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대신 죄 값을 그럴줄 알고 치르었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마귀가 추궁하는 것에 속지 말고

의에 대해서 마귀가 들추어내는 밀까부듯이 초정밀 조사해서 고소하는 것에 속지 말고

심판에 대해서 마귀가 정죄하는 것에 속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이는 내가 피로써 너의 모든 허물을 다 덮었다는 겁니다.

 

성령을 주시지 않으면 다 넘어갈 수 밖에 없으니까

보혜사로써

십자가의 영으로써 속지 말라는 겁니다.

 

즉 그 반대는 모든 인간은 지금 마귀에게 장악 당한 상태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 쪽은 로마 독재이고 다른 한 쪽은 그 독재와 싸우는 민주주의 미투 운동이고

이 둘에 속지 말라는 겁니다. 같은 패거리이다는 겁니다.

박그네나 문제많은문제인이나 똑같은 패거리이다는 겁니다.

 

다윗이 사울왕으로부터 도망칠때는
마치 박그네로부터 도망치는 문제인과 같은 민주열사 미투운동가 였다 말이죠

그런데 본인이 정작 사울왕이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

다윗이 그렇게 사울왕으로부터 당해놓고서는 본인이 사울왕이 되어서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 장군을 죽이고 이름없는 아이를 살려내지 못하는
가짜 이스라엘 왕으로써 들추어지더라 말이죠

 

율법의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십자가 앞에서 어딜 감히 의문의 율법 네 배를 들이대면서

밝히 또렷히 보이는 십자가를 가릴려고 하느냐 말이죠

 

즉 그 나쁜 놈을 당장 능지 처참하여 율법의 네 배나 갚도록 하여라 라는

죄에 대한 해석을 엉터리로

그래놓고 심판하겠다고 엉터리 심판으로

의도 모르고 의를 운운하는 엉터리 의로

 

이것을 성령으로 지적 받는 겁니다

 

그럼 무엇이 의 입니까?

 

바로 이런 다윗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를 용서하시는 그 의를 믿는 것을 의로 여기시겠다는 겁니다.

 

말살지 않아서가 아니라 막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막산 자를 의로 여기시는 그 의를 믿는 것을 의로 여겼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어떤 장로가 성추행을 하면서 다윗처럼 자신은 용서 받았다고 하니까

여고생이 다시는 기독교를 믿지 않겠다고 절교를 하겠다는 겁니다.

미투 운동으로 18년 전의 일을 이 기회를 통해서 터져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둘 다 성경을 핑계 대는 겁니다.

그 성추행 장로가 그것이 옳다면 교회 속에서 모든 여자를 겁탈하고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감춥니다. 아예 입도 뻥끗 말 못합니다.

왜냐하면 의로 여기지 않았거든요

의 라면 자랑해야지요

그러나 죽어도 자랑 못합니다

도리어 부끄러워 합니다.

그러니 그 장로, 사기치는 겁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그 여고생을 통해서 밝히 보여주는 겁니다.

 

또 그 여고생은 그 당시의 그 여고생은

이 마귀의 말에 속아서 여고생은 그 가짜 기독교와 싸워야 하는데

전쟁을 요청해야 하는데

저들의 배후 세력을 들추어내는 전쟁을 요청해야 하는데

그저 미투 운동이라는 저 배후세력과 똑같은 배후에 속아넘어가더라 말이죠

 

여자라서 못하기 때문에

주변의 남자친구나 아빠나 오빠나 남동생이

바로 이런 악한 세상이라는 것을 들추어내는 전쟁을 요청해야 하는데

도리어 같은 패거리로 자처하면서 의문의 운동이나 하더라 말이죠

 

마치 바리새인과 다르게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다고

아니 왜

시형제 결혼법에 의하면 큰 맏이 형수가 맏이가 죽음으로써

막내랑 결혼할 수 밖에 없게 되는게

그럼 천국에서 이 형수는 누구의 아내로써

그녀의 진짜 남편은 누가 되느냐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첫 번째 맏이의 아내가 아닌 이상은 더럽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천국도 없고 부활도 없다는 겁니다.

아니 있으면 이거 무슨 수로 해결 할래 말이죠

 

이 더러움을 무슨 수로?

 

이 심각하기 짝이 없는 문제를?

졸지에 시형제 결혼법이라는 사랑의 문제가

졸지에 더러움의 문제가 되어버린 겁니다.

십자가라는 사랑이

졸지에 더럽기 짝이 없는 거리끼를 걸림돌이 되어버린 겁니다.

 

더 웃끼는 것은 그런 더러움은 더러움 축에도 못끼는

아예 예수님 본인이 예수님의 족보를

저 더러움과 차원이 다른 더 심한 더러움으로써 족보를

곧 부활의 세계를 언급하시는 겁니다.

 

결국 천국에는 여자와 남자가 없다 말이죠

아하

이렇게 깔끔하게 해결 될 수가?

 

남자 여자 자체가 없데요 글쎄?

그럼 뭐가 있는데?

새이스라엘 12 보석 밖에 없데요

이건 또 무슨 소리

네 존재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는 소리입니다.

즉 쉽게 말하면 의사를 외치는 환자 밖에 없어요

남녀가 있는게 아니라

기능은 딱 하나

환자 죄인 밖에 없다는 겁니다.

 

결국 남자 여자 라는 존재가 아닌

이 땅에 잠시 있으면서 남자의 기능 여자의 기능은

바로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로서 남자로서 섬기는 기능을 보여줌으로써

저런 마귀의 세계와 전쟁하는 기능이고

여자의 기능은 그런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되심 같이 남자를 머리로써 사랑함에 있어서

왜 전남편 율법과 새남편 예수님의 차이를 누리도록 되어있는 교회의 기능으로써 십자가의 용서를 누리는 기능이다 말이죠

 

그러니 다윗은 그 성추행한 장로가 다윗이 용서받은 것을 이용해서 더더욱 겁탈하는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 짖는 식으로 이용하는데

정작 그게 아니라

도리어 다윗처럼 교회로써 여자로써 새남편 예수님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그런데 도리어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힘 없는 자만 골라서 다니는 겁니다.

힘 있는 자 앞에서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찍소리 못하면서 말이죠 아부하고 말이죠

도리어 그 힘 앞에서 십자가의 피 용서의 전쟁을 구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힘을 추구해 버리는 십자가의 피 용서를 거부하는 자이다 말이죠

 

그리고 그 여고생은 아무도 섬기는 자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배후를 못 보고 자꾸 피해자로만 남게 된다 말이죠

주변에서 섬기는 머슴아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같은 성추행범으로 안 본다 말이죠.

그 장로든 주변의 모든 남자든

심지어 가짜 기독교이든

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갇혀버린 입장에서 못 보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어머니께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마귀가 바로 율법을 쥠으로써 썩어버린 겁니다.

뭐가 뭔지 모르게 다 썩어 믹씽 혼합 시켜버린 겁니다.

미투나 성추행이나 역시나 같아요

남성우월주의나 페미니즘 이나 같듯이

그러나 인간의 육의 한계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늑대가 아닌 양의 탈을 써서 다 속아 넘어가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마귀에게 갇혀 버렸다 말이죠

사람들이 율법 이야기 하면 찍소리 못하고 반박을 못해요

마귀가 그래서 법을 장악한 이유입니다.

 

마치 법을 쥔 법관 변호사 검사 경찰 형사가 법을 이야기 하니까 찍 소리 못합니다.

그 직위가 그렇거든요.

그러나 그들은 법의 틈 사이의 빈틈을 노려서 범죄를 저지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래서 오늘 나오는 세상 임금에 대한 심판을

그들은 심판에서 멀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새남편이신 예수님이 마귀가 더 이상 흉내낼수 없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율법의 완성인 사랑 곧 십자가의 피 용서를 다 이루니까

마귀는 도저히 죽는 저 십자가는 못 따라 하거든요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누구에게? 율법을 쥔 이스라엘, 곧 법관 형사에게

그리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지혜입니다. 누구에게? 헬라인 곧 지식인 교수들에게 말이죠

아까 그런 장로에게 왜? 십자가를 이용해 먹어야지

도리어 성추행하는게 아니라 성추행 당하고자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냐 말이죠.

 

아브라함의 아내가 애굽족장에게 일종에 팔려나가버립니다.

아브라함은 지 혼자 살고자 어쩔수 없이 내어줍니다.

그런데 그 사라가 졸지에 애굽 부족의 여자들의 태를 다 닫아버리는 겁니다

아니 본인이 태가 닫혔는데 말이죠

아이고 재수 더럽게 없는 자를 괜히 건드렸구나 라고

도리어 재물 잔뜩 실어주고 얼른 아브라함아 떠나라 라고 하고서는

소금 이빠이 뿌립니다.

 

헬라인 지식인들이 재수 없는 자로써 그 집안 살림살이 다 거덜내는 자가 되는게 아니라

도리어 성추행을 여자가 되어서 하는게 아니라

끝까지 남자가 되어서 성추행을 함으로써 그 행동을 자꾸 쌓는 겁니다.

힘을 쌓고 지식도 쌓고 말이죠

그거 거들내지를 않는다는 점에서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는 겁니다

아니 왜 거들내는데???

 

그러니 똑같은 놈이다는 거죠

 

그래서 율법이라는 전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저런 성추행은 반복 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지젝이 말했듯이 눈에 보이는 교회 제도 자체가 성추행을 부추긴다 말이죠

천주교는 남자아이를 사제들이 주로 겁탈하고요

이거 심각한데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기독교 보다 깨끗하다고 보는데 천만의 말씀

둘 다 똑같은 이단입니다.

그래서 나온 영화가 있지요 스포트 나이트 2015

한국의 천주교는 아이들이 아닌 그냥 여자이고

 

기독교는 신흥이단들은 주로 처녀이고

정통이라고 우기는 놈들은 주로 기혼여성이고

아무튼 남자들은 남편들 아빠들은

여자들을 교회에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항상 옆에서 지켜야 한다 말이죠

 

제도 자체가 그렇다 말이죠

시스템 구조가 말이죠

그러니 아예 기대하지 말고

가급적이면 다니지 말거나

말씀 듣고 난 뒤에는 해체 하면 되요

괜히 교제 한다고 우기지 말고

 

물론 이런다고 달라질 것 하나 없습니다만.

 

그러니 아예 기대 하지 말고

 

모조리 다 율법을 쥐고서 광명한 천사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구원자들로부터 구원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성령 곧 종말의 영을 구하라 말이죠

그러면 배후 세력들이 보이고

그들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전쟁요청을 하는 것이

죄인의 특징입니다

곧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이 찾는 죄인 말이죠

 

죄인인데 전쟁을 요청하지 않아요 글쎄

환자인데 수술을 요청하지 않아요 글쎄

그래놓고 환자래

아니 의사를 말하지 않는 환자가 무슨 놈의 환자냐 말이죠

나이롱 환자라꼬 딴 노림수로 환자복을 입고 있더라 말이죠

 

전쟁을 요청하지 않아요

종말을 구하지 않아요

성령을 구하지 않아요

 

지금 사도요한은 인을 떼어 달라고 얼마나 울었습니까

그래서 신나게 일곱 인을 지금 누리고 있어요

일곱인을 구했거든요

 

소위 세상 임금이라고 권세 있다고 우기던 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이 일곱인 앞에서 우수수수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왜 진작 너의 끝을 못 보느냐 라고

나도 주님이 보여주신 끝을 종말을

성령을 못 받으면 저렇게 까불다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하늘의 귀신도 떨어뜨렸나이다 라고 외쳤다 말이죠

 

그런데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 모른다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니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보고 기뻐하라 라고 했듯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만 벌어진다는 것을 누려야지

생명책에 기록 되지도 않는 미투 운동이니

다윗의 용서 나도 받았다고 나 죄인 맞잖아 라고

의사를 외치지 않는 죄인 환자라고 우기니

 

어딜 감히 꾀냐 말이죠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그래서 폭격요청 브로큰애로우를 요청한다 말이죠

저런 존재라고 우기는 죄인은 절대로 성령을 구하지 않아요

종말을 구하지 않는다 말이죠

폭격요청을 마리아처럼 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강이다 평강이다 대충 대충 심상히 고친다 말이죠

대충 대충 성추행해놓고서는 심상히 대충 고치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또렷한 십자가의 밝히 보이는 피 용서를 흐릿하게 외치는 사기를 치는 겁니다.

막살면 안된다고 그런 자들이 외친다 말이죠

얼마나 모호한 소리입니까?

 

자 바로 그런 자들을 배경으로 깔아서 일곱인은 여섯 번쩨 인을 깔고서 등장하는 겁니다.

 

 

(1:46, 개역)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1:47, 개역)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1:48, 개역)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1:49, 개역)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1:50, 개역)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1:51, 개역)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1:52, 개역)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1:53, 개역)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1:54, 개역)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1:55, 개역)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제대로 된 심판주의 거룩한 분리작업인 종말전쟁 요청을 하지 않는다면

계속에서 의문의 흐릿함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전 남편에게서 못 벗어난다 말이죠

 

미투 운동은 오히려 더더욱 성추행을 더 부추기는 역설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잠시 감시카메라를 두면 3달 동안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다가

3개월 뒤로는 아무리 감시카메라가 있어도 원래 범죄율로 회복이 된다고

빅데이터 통계에 나오듯이

모든 인간은 갇혀 버린 겁니다.

범죄 예방 안됩니다.

그저 범인 검거를 하기에 쪼매 편해질 뿐이다 말이죠
그러니 그런 의문들을 기대하지 마시고

 

이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전쟁을 벌리시는 임마누엘의 징조

처녀가 낳은 아기 의 징조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림자인 허구에서 벗어나는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실상을 구하는 안목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