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깨기 vs 도장맞은자 십사만사천 (7: 1- 9)

 

사랑(기쁜소식)은 빼앗기 약탈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사랑은 에서를 미워(도장깨고)하고, 야곱을 빼앗기, 강탈, 탈취, 약탈(야곱) 하는 도장 찍기다.

계 22 도장깨기 도장맞은자 십사만사천 (계 7, 1- 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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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9,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3:27,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12:29, 새번역) 사람이 먼저 힘 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 어떻게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있느냐?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수 있다.

(3:27, 새번역)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것이다.

(12:29, 공동) 또 누가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빼앗아가려면 먼저 그 힘센 사람을 묶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그 집을 털어갈 수 있을 것이다.

(3:27, 공동) 또 누가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털어가려면 그는 먼저 그 힘센 사람을 묶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그 집을 털 수 있을 것이다.

(13:15, 공동)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러 내려오지 말며

(12:29, 바른) 사람이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 어떻게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 가서 그의 세간을 빼앗을 수 있겠느냐? 그를 묶어 놓은 뒤에야 그의 집을 강탈할 수 있을 것이다.

(3:27, 바른) 사람이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세간을 탈취하지 못하고 그를 묶어 놓은 뒤에야 그의 집을 털 수 있을 것이다.


(
7:1, 개역)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7:2, 개역)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7:3, 개역)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7:4, 개역)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7:5, 개역)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6, 개역)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7, 개역)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8, 개역)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7:1, 새번역) 그 뒤에 나는, 천사 넷이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아서, 땅이나 바다나 모든 나무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7:2, 새번역) 그리고 나는, 다른 천사 하나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땅과 바다를 해하는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7:3, 새번역)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는,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아라."

(7:4, 새번역) 내가 들은 바로는 도장이 찍힌 사람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마에 도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7:5, 새번역) 도장이 찍힌 사람은, 유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갓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7:6, 새번역) 아셀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7:7, 새번역) 시므온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레위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7:8, 새번역) 스불론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요셉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22: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2:2, 개역)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22:3, 개역)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22:4,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22:6, 개역)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22:7, 개역)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22:8, 개역)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22:9, 개역)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22:10, 개역)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22:11, 개역)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22:15, 개역)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얼마전에 젊은이들이 토론고수를 깨는 토론대첩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본적이 있습니다

뭐 별 내용은 없고 도장깨기라는 말이 생각나서 언급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브루스 리 라는 이소령 영화가 생각났고

또 가장 도장깨기 라는 개념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는

최배달 이야기를 다룬 영화 양동근이가 주인공인 바람의 파이터 라는 영화에서

아 도장깨기가 이거구나 라고 도장깨기개념을 제대로 보여주더라구요

최배달은 일본식이름이고 최영의 가 본명 이라고 하네요

 

여기서 도장이란 무술도장이라고 무술을 연마하는 무리나 관장의 의미도 있지만

도장찍힌 간판이라는 겁니다.

즉 무허가든 정식인가를 받았든 도장찍힌 간판을 걸고서 무리를 지어 무술을 연마한다는 거죠

 

그런 관장에 도장깨기란 도장찍힌 간판을 깨버리기라는 무술시합으로써

간판을 내리느냐 계속 간판을 달고 관장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다른관장에 찾아서 무술실력을 겨루어서 무도장을 다 차지하느냐 라는

일종의 전쟁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스포츠가 이런 전쟁의 형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FC 바르셀로나(카탈루냐)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축구경기는
실제로 독립운동전쟁을 대변해 주고 있듯이 말이죠.

 

자 그럼 이제 이런 도장깨기라는 의미를 가지고서

도장맞은자 십사만사천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이 십사만사천은 다윗의 군사 곧 찬양대에서 나오는 개념입니다.

12지파의 각각의 찬양대가

 

각 지파당 만이천명 그래서 12000명 곱하기 12지파 하면 십사만 사천이 나온다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숫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래되면 또 어디더라 몰뗑뗑교? 아니다 안뗑뗑? 어 뭐였지?

! 여뗑뗑증인처럼 그 숫자에 미쳐서 강박증에 집착한다 말이죠

그것이 졸지에 남근이 되어서 우상화 되어 그 숫자에 들어갈려고 집착한다 말이죠

피라미드(암웨땡) 판매가 그것을 세뇌 시키잖아요

 

한번은 지인이 하도 간청을 해서 암웨땡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배포하는 교육책자에 피라미드판매구조가 로마카톨릭 구조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래서 부자를 꿈꾸는 많은 종교인들이 여기에 휩쓸려서

한번 싹쓸이 붐이 일어났기도 했다 말이죠

그것도 다 의문의 반복으로 끝나자 처음에 인기있던 암웨땡 판매원들이 나중에는 밉상을 받아

딴데도 피하고 했는데 큰 교회에야 티 안나지만 조그마한 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거든요.

 

아무튼 이 십사만사천이라는 V.I.P 에 들어갈려고 얼마나 전도했냐 말이죠.

 

그러나

오히려 천만인의 어미다 라고 했다 말이죠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또 그런데 아무리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자만 돌아온다 라고 했다 말이죠


(10:22, 개역)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결국 남은 자 라는 의미이지 우리가 셀수 있는 그런 숫자가 아니다는 겁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

 

작다

작다 라는 기능이지

많다 라는 존재가 아니다는 겁니다.

많으면 누가 무시 받겠냐 말이죠

적으니까 무시 받는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사건으로써 십자가가 낳은 자녀 라는 겁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새임금의 새백성으로써

인침받은자 도장 맞은자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자

임마누엘의 증거를 받은 자만 돌아온다는 겁니다.

 

(1:13, 개역)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4:30, 개역)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1:14, 새번역) 『④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인치심이)'

(4:30, 새번역)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1:13, 바른)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딤후 2:19, 바른)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굳건히 서있으며, 인치심이있어 "주께서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아셨다." 라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불의에서 떠나라." 하셨다.

(4:30, 한글킹)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로 인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찬양자가 곧 새노래를 부르는자

? 유리바다를 건넜기에 말이죠

 

이것은 찬양이라는 사건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 부른게 아니라

찬양이 나를 노래 부르는 겁니다.

도저히 부를수 없는 이름을 불렀다는 거죠.

내가 아닌 주님의 이름(도저히 불가능한 부를수 없는 그 이름)이 나를 부르는 겁니다.

우리는 구한적도, 부른적도 없는데 말이죠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65:1, 새번역)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10:20,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65:1(칠십인역)

(65:1, 공동) "나에게 빌지도 않던 자의 청까지도 나는 들어주었고, 나를 찾지도 않던 자 또한 만나주었다. 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민족에게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해 주었다.

(10:20, 공동) 또 이사야는 더욱 대담하게, "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이 나를 만났고 나를 구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하였습니다. / 이사 65:1.

(65:1, 바른) "나는 나를 요청하지 않던 자에게 나를 찾게 했고 나를 구하지 않던 자에게 나를 발견하게 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않던 민족에게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다.' 말하였다.

(65:1, 현대인)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나를 나타내고 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에게 내가 발견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은 나라에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다.' 하였다.

 

(65:1, 킹흠정)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찾아내었고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였나니 내가 내 이름으로 불리지 아니하던 한 민족에게 말하기를, 나를 보라. 나를 보라, 하였노라.

 

 

자칭 남은자라고 우기던 바리새인은 오히려 예수 라는 이름에 다 걸려넘어졌죠.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부르고 있다고 찾은바 되었다고 우기는데

문제는 주님 쪽에서 나는 너희들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는 겁니다.

그 알리바이로 예수님께서 직접 바리새인과 충돌하시면서

예수 라는 이름에 다 걸려 넘어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윗의 찬양군대가 사실상

사울왕이 죽고 난뒤의 사울왕 군대의 장군들이 다윗의 찬양대에 편입되어 속하게 됩니다.

이 말은 남은자가 자기가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도장깨기 라는 전쟁으로 된 거다 말이죠

 

애굽도장 깨기를 주님 혼자 어린양의 피로써 했고

다시 그 이스라엘을 예수님이 이스라엘도장깨기를 해서 빼냈고

사울왕도장깨기를 다윗왕을 통해서 했고
(물론 다윗은 도망다닌 것 밖에 없었습니다, 철저한 무능이지요)


다시 그 다윗왕도장깨기를 다윗의자손이신 임마누엘이 깨뜨려서
남은자 도장맞은자 십사만사천을 빼내셨다는 겁니다.


남은자는 다 죽여 놓고서 다시 삼일만에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일곱인 일곱나팔 일곱 대접 만에 살리시는 그루터기로써 인맞은자입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동전처럼 말이죠.

 

인 맞은 자란 결국 출애굽전쟁을 해서 구원, 애굽깨기로 결박으로 빼낸 탈취물이다는 겁니다.

십자가전쟁을 해서 구원했다는 겁니다. 노략물 강탈 늑탈물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피의 승리의 증상물이다는 것이 도장깨기로 인한 도장찍기입니다.

저쪽 도장을 깨뜨려 간판을 찢어버리지 않으면

저쪽 무리 속에 있는 자들을 빼낼수가 없다 말이죠

전리품 싸움이다 말이죠.

 

휘장을 찢어 막힌 담을 허물지 않으면

도장 간판을 찢지 않으면

평화는 없어요

전쟁의 종식은 없는채 계속 의문의 반복 뿐이다 말이죠

의문의 증서를 찢어야지요

그것이 주님 쪽에서의 평화를 맺고자 넘어오시는 빼앗기입니다.

 

새 임금으로부터 도장맞지 못한다 말이죠

이것이 임마누엘

니 사부와 내 사부가 다르다

내 사부는 우리와 함께 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도장간판이 찢어진 자에게서만 나오는

성령으로부터 인치심을 받은 자만의 고백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구원받고자 아무런 보탬이 되는 행함을 실천하여도 거짓입니다.

자기공로로, 자기구원으로, 개인 자아에게 회귀하는 의미가 아닌

 

고수들끼리의(혈과 육의 전쟁이 아닌, 예수님과 마귀의 전쟁) 도장깨기 무술전쟁으로 인해서

전리품으로써 이동 당한 겁니다.

 

고래싸움이지 새우싸움이 아니다 말이죠

 

도적이 주인을 결박하지 않으면 그 세간을 빼앗을 수가 없다 말이죠

 

예수님과 마귀의 싸움입니다.

인간은 끼일수 없다 말이죠

사망권세, , 죽음과의 싸움입니다.

거기서 빼낸 노략물이 인맞은자입니다.

 

네 맞습니다. 십사만 사천을 빼앗았다는 겁니다.

즉 동시에 저쪽을 완전 거들냈다 라는 완벽한 넉넉한 승리이지

여땡땡증인처럼 십사만사천을 흐릿하고 모호한 개념으로 만드는게 아닙니다.

여땡땡증인들은 의문을 찢은게 없이 십사만사천을 이룰려고 하니

도리어 십사만사천이라는 숫자가 그들에게 올무가 되어 넘어지는 겁니다.


상대방 개념은 없는채 자기쪽만 조건 갖추는게 아닌데 말이죠.

아이쿠 비밀을 발설했넹

그 무리들에게서 빠져나오면 안되는뎅

물론 그들은 이래 말해 줘도 어차피 모릅니다. 비밀인데요 뭐.

아무튼 완전 거들내었다는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승리이다 말이죠

 

안땡땡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의 주인이 왔으면

그 주인 앞에서 뭘 해도 부정타 부정타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고백해야할 죄인이라는 부정한 자리에 놓여져야 하는데

 

도장 증거를 구하지 않으니까 성령을 구하지 않으니까

찾지도 두드리지도 구하지도 않으니까

자꾸 막살지 않는 자리에 앉아버리니까

의인의 자리에 앉아버리니까

안식의 주인의 기능이 필요가 없고

도리어 의문의 번제와 제사의 자리로 족해 버리더라 말이죠

 

아니 자기 의를 예수님 앞에서 왜 나타내냐 말이죠

주님 그거 도장깨는데

깨어질 것을 붙잡냐 말이죠

 

주님은 자신이 천국을 침략하듯이 도적처럼 주인을 결박하고 도장깨기 밖에 관심 없는데

 

사부들의 전쟁에

 

쓸데없이 자기 무술실력 자랑하겠다고

막살지 않았다는 둥

십의 이조 드렸다는 둥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는 둥

주여 주여 주의 이름으로 사단도 물리쳐서 하늘에서 마귀가 우수수 떨어진다는 둥

 

과연 그럼 내일도 그것이 계속 된다는 보장 있냐 말이죠?

왜 그런 의문의 의지하느냐 말이죠

 

차라리 주님에게 다 떠 맡겨버리는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마귀에게 갇혔습니다.

이 마귀도장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마귀 도장깨어주십시오

가인의 이마 표 는 조마 조마 함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가인 아무도 건드리지 마 ! 굳 잡 도장 쾅쾅 찍었다 말이죠

이것을 반드시 역이용합니다. 날 건드리면 가인은 칠배이지만 나 라멕을 건드리면 칠십칠배 라고 말이죠

인간의 최초의 노래입니다.

모든 인간의 노래는 내 사랑 실패하게 만들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음녀의 노래죠

 

거기에 상대적인 노래는 바로 십사만사천명의 노래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주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로만 유리바다를 건넜고

나는 원망만 했을 뿐인데 용서 하신 그 사랑에 무릎 꿇었다 라는 겁니다.

 

이런 의미를 다 빼먹고 안식의 주인이 홀로 다 받아야 할 영광을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자기가 구원받아야 한다는 둥

그것이 졸지에 조건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십사만사천을 숫자 피라미드 판매 조직의 브이 아이 피가 되기 위해서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억지로 전도하러 돌아다니는 여호땡증인 보세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이던가요? 얼굴에 다들 탐심만 가득하다 말이죠

남들은 지옥가든 말든 자기만 그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목표달성금액성과금 도달할려는 보험왕 전도왕이 될려는 모습 아니냐 말이죠

위의 속이는 놈들만 배불려 주는 꼴이다 말이죠

이런모습 또한 껍떼기 밖에 모르고 속 알맹이는 저 안땡교처럼 다 버리더라 말이죠

이런 초보단계의 이단은 아무것도 아니죠

정통교단과 성화론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자들은 저런 단계 다 지나가고

동네 양아치에서 기업깡패 수준에서 놀고 더 나아가 정치에까지

그래서 탄생한게 국가 이다 말이죠

 

거리끼는 불편한 걸림돌이 정작 속 알맹이인데 말이죠

 

숫자에 미쳤어요

 

지금도 저 숫자에 들어가고자 얼마나 미쳐있는지

 

아직도 도장간판이 찢어지지 않았기에 도장맞지 못한 티를 팍팍 내더라 말이죠

정통교단이라는 도장간판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 찢어지지 않으면

주님을 찬양할 수가 없어요

 

완악한 수건 벗지 못하고 도장간판을 여전히 달고 있으니

 

누가 침략에서 주인을 결박하게 도장을 깨어주지 않는한

그 조직의 이데올리기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겁니다.

 

도장 깨는 십자가는 또렷한데

그 뒤에서 조직을 만드는 그 흐릿함만 반복하더라 말이죠

 

깨어진 도장간판을 모아서

아 왜 사람들이 역여져 탑을 이루니까 국가라는 집단이 된 예술작품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이 십사만 사천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깨어진 도장간판을 주어모아서 본드를 붙인 것이 바로 666이라는 국가와 종교다 말이죠

 

주님은 종교를 깨고 있는데

인간들은 부서진 도장간판 주서모아서 종교를 만들어내더라 말이죠 국가야 말로 최초의 종교이니까 말이죠

 

지금 이사야를 보고 있지만 졸지에 이 이스라엘을 붙잡고 종교를 붙잡고 있기에

이사야 선지자가 임마누엘을 통해서 이 종교를 도장깨기하듯이

간판을 찢어버리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민족이라고 우기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종교예요

십사만사천이 아니라

666이다 말이죠

 

666 도장을 깨어서 거기서 빼낸 자가 바로 십사만사천이라는 남은자 곧 새노래를 부르는 찬양자 이듯이

 

끊임없이 666이라는 심심하면 종교를 만들어내는 그 속에서 도장깨기를 하시는 겁니다.

 

무신론이라는 종교

국가 라는 종교

성화론이라는 종교

정의구현사제라는 종교

개혁주의라는 종교

정통교단이라는 종교

신흥이단이라는 종교

유대교라는 종교

 

한 시간도 쉴 틈없이 심심하면 생성이 되는 그 모든 종교를 십자가가 밝히 깨뜨려서

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셔 인치심을 받아 빼내어짐을 당한 자가 바로 남은자

곧 십사만사천이다 말이죠

숫자의 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대조적인 상대적인 의미입니다. 666의 대조

 

이렇게 숫자로 표현된 것은 인간은 수에 칠 가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수로 표현함으로써 인간배제를 의미 합니다. 누락

 

그래서 일곱교회라고 숫자의 수가 아니라

인간배제로 만들어진 일곱이 오른손으로 붙잡은 교회이다는 겁니다.

안식의 주인이 붙잡은 교회

 

그럼 여기에 상대적인 사단의 회에 속한 교회가 반드시 대조를 이루듯이

딸려나와서 수로 표현된다 말이죠

 

그렇게되면 그들은 문자와 수에 집착하게 되는 강박에 갇혀 버리는 겁니다.

십사만사천에 못들어가면 미치니까

안미치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전도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겁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의 주인이 붙잡아 주지 않으니까 불안하니

그것을 안식일 지키는 것으로 떼울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는 마약이다 말이죠

이것을 공격하는 철학자 놈들이 역시나 또 종교를 만들어내더라 말이죠

마약이라고 공격하면서 자기가 마약을 퍼트려요 글쎄

 

이것이 바로 인간은 갇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주인을 결박해서 빼내지 않으면 안되는

도둑이 나타나주지 않으면 안되는데

 

지 잘났다고 도둑이라는 부정한 의미를 꼴에 선악을 판단할 줄 안다고 ㅋㅋㅋ

지금 선악 운운하는 그런 배부른 입장이 아니라 물에 빠진 나를 살려낼자가 없다는 겁니다.

 

도둑이면 날 물에서 건져낼 자격이 없다고 우기니까

주님께서 더더욱 도둑으로 오시는 겁니다

즉 건져내기 싫다 라고 말이죠

 

아니 도장깨러 오신 분에게

선악을 깨러 오신 분에게

우리는 저런 십자가의 저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에게서 건짐을 받기 싫다 라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하나님의 저주 받은거 맞아요

그런데 그럼 너는

그러는 너는 지금 마귀의 손아래에서 못벗어나는 세간인데

 

그러니 추호도 나오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겁니다.

바로왕을 강퍅케 해서 부르짖도록 해서 그 부르짖음을 듣고 빼내시겠다는 구원전쟁이 바로

도장꺠기입니다.

 

애굽깨기

이스라엘 깨기

사울왕깨기

다윗왕깨기

사단의 회 깨기

교회깨기

 

이것이 바로 십사만사천이라는

십자가의 승리로 인한 결과물 증상물이다 말이죠

다 이루었다 라는 승리쾅쾅 종지부를 찍었다는 겁니다.

끝났다는 겁니다.

이 끝을 미리 당기는 것이 종말의 단체인 십사만사천입니다.

종말을 누리는 겁니다.

도장깨기를 누리는 겁니다.

 

매일 매일 도장 받았다고 우기는 나를 매일 매일 깨뜨리는 것이 바로 도장깨기입니다.

동시에 십자가 사건으로써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십사만사천이 도장찍기입니다.

이 두 사건을 동시에 매일 매일 벌리시는 십자가에 의해서
매일 매일 깨어지는 그리고 다시 삼일만에 십자가로 도장 찍는

매일 매일 끊임없이 분절하는 십자가의 피 용서로 새노래를 부르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슬픈마음있는사람.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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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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