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나팔 (8: 6-13)

계 25 일곱나팔 (계 8, 6-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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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개역)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8:7, 개역)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8:8, 개역)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8:9, 개역)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8:10, 개역)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8:11, 개역)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8:12, 개역)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8:13, 개역)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8:6, 새번역) 그 때에 나팔을 하나씩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준비를 하였습니다.

(8:7, 새번역)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우박과 불이 피에 섞여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푸른 풀이 다 타버렸습니다.

(8:8, 새번역)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8:9, 새번역) 바다에 사는,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졌습니다.

(8:10, 새번역)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큰 별 하나가 횃불처럼 타면서 하늘에서 떨어져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샘물들 위에 덮쳤습니다.

(8:11, 새번역) 그 별의 이름은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고, 많은 사람이 그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그 물이 쓴 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8:12, 새번역)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의 삼분의 일과 달의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입어서,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고, 낮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밤도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8:13, 새번역) 그리고 내가 보고 들으니, 날아가는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화가 있다. 화가 있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아직도 세 천사가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누는 도중에 문뜩 

어 이 장면이
바로 여리고성 일곱날 하루 한 바퀴 석 여섯째날까정 돌다가
마지막 일곱째날에 일곱바퀴 도는 그 사건과 연관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일곱인을 떼고 일곱나팔을 준비하는 지난주 내용에서 말이죠

 

일주일동안 입이 건지러워서 좋아라 하는 가운데

질문하신 분에게 이 의미를 담아서 팍 퍼부었습니다 뿌뿌뿌 나팔을 불었죠 뭐

 

자 이렇게 일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일곱은 미래완료 빨래끝 ~~~ 이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는 종말을 미리 앞당겨 누리는 것이니까 말이죠.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말이죠

그래서 이 끝에서 미래완료에서 거꾸로 봐야 합니다.

이 끝에서 나오는 증상물이 바로 일 이 삼 사 오 육입니다.

 

일 이 삼 사 오 육 을 거쳐서 시간순으로 맨 끝에 일곱이 되는게 아니라

그건 시간이고 역사고 공간이고

 

일곱에서 즉 미래완료가 먼저 있고 그 증상물로써 일 이 삼 사 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건이라고 하고

묵시 라고 하는데 이것을 인물이라고 합니다. 곧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존재가 아닌 사건 곧 기능입니다.

그러니 존재로서 아무리 포착해 본들

마치 공기를 잡듯 물을 잡듯 해 본든 미끄러지는 사건일 뿐입니다.

 

그러니 계시록을 해석하는 것이 시간 맞추기 계산을 하거나

기존의 종교나 종말론자들의 해석은 아예 출발 자체가 육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다 이루심에서 출발하지 않기에 곧 일곱으로 출발하지 않기에)

바리새인들처럼 이미 출발 자체가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할수 없기 때문에 엉터리가 되는 겁니다.

그들은 오히려 마귀처럼 끝에서 완료에서 십자가의 다 이루심에서 해석할까봐 두려워 하는

그런 메시아가 될까봐 미리 자신들의 메시아가 되어달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곧 어떻게 하면 구원되느냐 그 조건을 갖추고 그 조건을 요구하는 메시아가 되어달라고

그런 메시아 안 될까봐 걱정하고 근심하고 등돌리는

소위 종교를 666을 찾더라 말이죠

 

바로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시온에서 나온 거친돌이다 말이죠

 

그 예를 하나 들면 히틀러의 등장을 계시록에서 찾는 식입니다.

언제 몇 년도에 히틀러가 등장한다는 것을 성경 다니엘서와 예언서 계시록을 통해서 하듯이 말이죠

 

또 얼마전? 30년 전에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터진 것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쑥이 나오는데 체르노빌 뜻이 쑥이라는 뜻이니까

이것과 연관 시켜서 종말 계산을 한다는 둥의 해석이

바로 12346 식의 순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그래따지면 후쿠시마 원자력이 더 연관되어 있고

또 그래따지면 미세 플라스틱으로 전세계의 오염된 물과

미세먼지로 인해서 자연파괴를 생각해 보면

도대체 몇 년도를 기준으로 해서 계산하냐 말이죠

 

이미 종말 속에 들어와버린 이상 계산기 뚜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이런 자들에게 종말이 혼인잔치로써 즐길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도리어 더더욱 산당을 짖고 작은 미니 노아방주를 짖고

답답해 하면서 자기자신을 종교화 하겠습니까?

 

(타인)7번 용서했다는 계산기는
정작 본인이 도리어 770번 용서받아야 할 입장에서 보면

계산기를 두드린다는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데

머리에 숯을 얹은것처럼 얼굴이 발그레 발그레 화끈 화끈한 것인데

그 정도로 우리는 의인이 아니라 원수인데

 

(12:20, 공동) 그러니 "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는 셈이 될 것입니다." / 잠언 25:21-22.

 

계산기가 저쪽으로 넘어간 입장에서 저쪽에서도 계산기를 더 이상 안 두드리시겠다고

더 이상 허물을 보시지 않겠다고 계산하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벧전 4:8, 개역)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10:12, 개역)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마귀는 허물을 들쳐보면서까정 밀까부듯이 철저하게 조사를 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그 마귀를 따라서

계산기를 붙잡고 계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심판의 주를 여전히 시시하게 보겠다는 완악함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계시록이 저들에게서는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말이죠

 

이미 다 이루어졌는데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만약 남아버리게 된다면

인간은 거기게 집중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대비를 하겠다는 둥

숙제를 하겠다는 둥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수 있냐 라는 둥

 

숙제 할게 없다니깐요

이미 다 완료된 것을 그냥 받는 것 뿐이예요.

그것이 바로 일곱(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외친 분)에게 사로잡힌바 된 것이 일곱교회이듯

일곱에게 곧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 에게 사로잡힌 바 된 것이

오늘 또 언급하고자 하는 지난주의 고요함 잠잠함 이다 말이죠

 

고요함과 나팔은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

라는 찬양가삿말이 생각나는데

스바냐 317절 내용을 따온 노래인데

 

(3:17, 개역)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너를 잠잠히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나오미의 전능자께서

나를 잠잠히 사랑 즉 고요하게 심판 속에 집어넣어서 구원시켰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일곱의 열둘이다 말이죠

 

일곱이, 다 이루심이 낳은 증상물인 12지파 십사만사천 일곱교회이다는 겁니다.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마라 나를 마라라 하라 전능자 께서 나를 잠잠히 사랑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가스펠 부르면서 이 잠잠히 라는 의미를 모르고 불렀다 말이죠

알고보니 지근 지근 밟아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 일곱의 증상물인 열둘이 어디서 나오느냐? 24장로 중에 한 사람이 물었다 말이죠

바로 환난 속에서 나와서 피 발렸다는 겁니다.

그 환난이 바로 고요함이다는 겁니다. 고요함에서 잠잠함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오늘 나오는 쑥이 나오는데 쓰디쓴 쑥 못 먹는 물 물없는곳 양식없는 곳

그 고난 속에서 그 심판 속에서 나온 자는 열둘이다 말이죠

 

바로 어린양의 피 발린자의 출처가 바로 이 쓰디쓴 못먹는 마라에서 나온 자이다는 겁니다.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마라 마라라 하라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출처

없는데서 나온

어린양의 피 흘리심에서 나온자가 바로 다윗의 증조할머니 나오미 이다 말이죠

이 계통으로 없는 계통으로 예수님이 오시는 겁니다.

육이 조상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에서 태어난 자인까 말이죠

곧 환란에서 고난에서 광야에서 심판 속에서 나온 자가 피 발렸다는 증상으로써 말이죠

 

그러니 성도에게는 이미 미리 덮쳐버린 일곱 곧 미래완료인 종말에서 나왔기에

이 자연에 대한 심판인 첫째나팔 둘째나팔 셋째나팔 넷째나팔 등등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의지하고 기대할 것이 없도록

마치 이사야 8장으로 치면

높은 산당

신끼가 가득한 영흠한 장소인

범접할수 없는 대자연의 위대함 조차도

그래서 크게 크게 우상이 세워지는 높은 산들이

 

시온에서 나온 거친돌에 의해서 모조리 다 무너지는 겁니다

?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거든요

 

이 시온이라는 절대산을 중심으로 약속이 움직이니까 말이죠

곧 예수님입니다.

 

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첩경을 평탄케 하고자

첩경 곧 지름길을 만들고자 불도져로 밀어붙이는 시온에서 나온 거친돌로 인해

모든 산을 허물어져 버리고 모든 바다를 매꾸어 버려서
평탄케 곧 평준화 시키는 것이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이듯이

성령을 받은 자인 선지자이듯이

 

오늘 나팔을 부는 천사들이 바로 그 일을 평준화를 담당하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여리고성 사건에서

아니 여섯째날까지 광야에서 하나님을 10번 이상 원망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여리고성을 뺑뺑이 돌던 언약궤를 맨자들이

마지막 일곱째날에 드디어 죄 용서 받았다 라고 나팔을 뿌뿌뿌 불더라 말이죠

 

아니 좀전까지만 해도 울더니 갑자기 안면 싹 바꾸고 기뻐서 웃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여리고성 위에서 보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황당해 할까요

이게 전쟁입니까? 전쟁이면 무기를 들고 칼을 들고 총을 쏘면서 싸워야지요

이건 뭐 싸움도 없고 무기도 없는 전쟁이니?

뭘 어떻게 하냐 말이죠

 

무기도 없는데

소위 가장 가나안에서 난공불락의 최고의 성이 이 나팔소리로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인간이 왜 성을 짖고 왜 국가를 세우고 왜 성전을 짖고 왜 가인성 바벨탑을 세우냐 말이죠

소위 구원을 어떻게 하면 얻냐 라는 영흠한 장소 답답합을 해결해 주는 종교

구원의 문을 피라미드 부활의 영생문을 짖기 위함 아니냐 말이죠

왜 자꾸 살기좋은 국가로 만들려고 할까요?

그래서 나오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냐 말이죠

말만 번드드하지 답답함을 해결해 달라는 종교다 말이죠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온 사상 아니냐 말이죠

 

자연도 인간의 믿음 종교로써 의지의 장소이다 말이죠

그거 다 나팔소리로 와르르 무너뜨리는 겁니다.

 

10번 원망 안하도록 하는 것이 꼿꼿이 뻣뻣히 곧은 목을 꺽는 낮추심이 아니라

10번 원망 안하겠다는 그 심뽀를 꺽어버리는 겁니다.

도리어 10번 원망케 만들어서 여리고성을 뺑뺑이 돌도록 곧은 목을 꺽는거다 말이죠 회개

이게 바로 약속이고

열 번 원망 안하고자 하는 교만한 것이 바로 종교다 말이죠

 

이것에서는 열둘이 나오지 않습니다.

열둘은 환란에서 나온다 말이죠

고생하라는 말이 아니라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희생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냥 바로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어린양으로 표현하시는 것은 기능이라는 의미로써 희생제물을 말한다 말이죠

 

성도라는 어린양의 피 발린자의 출처가 바로 잠잠히 사랑하시는
물없는곳인 마라 쓴물이 있는 곳에 보내에서 원망케 만들어서 죄인임을 들추어내는 것이
일곱 번째 인을 떼는 내용이다 말이죠

 

그럴때에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부르짖음을 듣고

?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했으니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는 거죠

그 부르짖음을 듣고

 

성도의 기도를 담아서 이 부르짖음을 근거로 인해

 

드디어 전쟁을 개시 하는 겁니다. 나팔을 부는 겁니다.

뿌뿌뿌 ~~~~~ 이미 승리한 전쟁을 누리는 겁니다.

 

바로 일곱 나팔을 퍼붓기 이다 말이죠

초토화입니다.

 

인간이 의지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남김없이 모조리 초토화입니다.

 

인간은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고 그것을 붙잡을때에

주님은 얼굴을 돌리고

율법을 봉하셨다 말이죠

바로 그 얼굴을 돌리시는 주님이 옳았다고 그 분을 바라보고 기다린다고

이사야는 외친다 말이죠

즉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지

번제와 제사는 고개를 돌려 버리시는 분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화로다 화로다 화로다 라고 외친다 말이죠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뜬다 말이죠

 

(24:14, 개역)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4:15,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24:16, 개역)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24:17, 개역)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24:18, 개역)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24:19, 개역)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4:20, 개역)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4:21, 개역)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4:22, 개역)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4:23, 개역)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24, 개역)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4:25, 개역)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26, 개역)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27, 개역)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28, 개역)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24:29, 개역)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4:30, 개역)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31, 개역)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4:28, 새번역)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들 것이다."

 

(17:32, 개역) 롯의 처를 생각하라

(17:33, 개역)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17:3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17:35, 개역)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17:36, 개역) (없음)

(17:37, 개역)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독수리가 떳다면 시체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런 끝을 미리 앞당기는 것이 일곱이 떳다는 이유로써 나팔이 퍼부어지는 겁니다.

얼마나 기쁜날이냐 말이죠

 

더 이상 의지할게 없으니 말이죠

 

척박한 땅에서 더 이상 활과 화살이 필요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더 이상 높은 산에 갈 필요가 없고

종교를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해 달 산 모조리 다 없애버리니

얼마나 신나냐 말이죠

 

답답함, 번뇌, 번조를 해결하고자 찾는 신비한 것들을 다 없애버리니 말이죠

 

? 이미 십자가의 피 용서가 다 이루어진 상태로써 피가 떳기에

임마누엘이 떳기에 모조리 다 허물어 버리는 겁니다.

 

사람이 답답함을 해결하고자 종교를 찾는게 아닙니다.

종교가 있기 때문에 답답함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말이죠

그러니 종교는 병주고 약주고 하는 사기이다 말이죠

 

그 종교를 비판하는 마약이라고 외치는 철학도 역시나 사기입니다.

자기 말을 들으라 라는 거거든요

미래완료를 외치지 못해요

 

그저 의문의 것만 반복할 뿐이다 말이죠

 

그러니 거짓선지자가 등장한다는 자체가

끝이 이미 완료되었기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종교와 철학이 서로를 욕하지만 같은 편이다는 겁니다.

그들이 결집하고 연합한다는 자체가

이미 임마누엘이 떳기에 나타나는 후차적인 증상인 겁니다.

그러니까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니까 말이죠.

 

인간의 답답함을 해결하고자 등장하는 구원자이들이거든요

 

이런 구원자들로부터 구원을 구원하는 것이 나팔로 다 퍼부어서

이미 승리한 십자가의 피 용서 앞에서 왜 거짓인지로 들통나는 겁니다.

 

한참 박그네 탄핵과 북한의 핵실험발사로 인해서

유튜브에 이상한 여자전도사가 종말을 외치면서 떠들어 대는데

그런 거짓이 등장한다는 자체가 이미 완료되었기에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뻔한 거짓에 말려드는 자들의 특징은 이미 답답함이라는 번조가 덮쳐버렸기에

그 사기에 놀아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자력으로 못 빠져나온다 말이죠.

거짓선지자의 등장 자체가
이미 임마누엘이 떳기에 그 증상으로써 나타나도록 되어 있기에 오히려 기뻐하면 된다 말이죠

말씀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면 되니까

 

우와 어쩌면 말씀에 딱 맞게

시나리오대로 나타나지 라고 안 기쁘고는 못 배길 정도로 기쁘다 말이죠

주의 책에 기록된 말씀대로 응하여 지고 있으니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찌릿 찌릿 누리는 겁니다.

 

답답할게 하나도 없어요

머리 위로 북핵이 막 날라다녀도

바뀌어지는 것 하나 없다 말이죠

 

종교가 언제 틈을 비집고 옵니까? 사람이 불안 할때를 노려서 장사 한다 말이죠.

종말장사를 벌리는 겁니다.

 

아니 더 이상 할게 없는데 뭘 노릴까요?

 

목사가 교회만 생각하면 불안해 미치는 겁니다.

실패할까봐 싶어서 말이죠.

그래서 교회 포기 하라고 하니까

눈에 살기를 펼치는 것을 보고

냅따 도망쳤다 말이죠

아 이것이 십자가가 이미 다 이루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는 것이다는 겁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타나주어야만 하거든요

 

자 이 모든 것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 때문에 나타나는 신나는 혼인잔치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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