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우뢰(천둥)와 쉿쉿(세미한) 하나님의 비밀 (10; 1- 7)

계 28 일곱우뢰와 하나님의 비밀 (계 10, 1- 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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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개역)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10:2, 개역)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10:3, 개역)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10:4, 개역)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10:5, 개역)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10:6, 개역)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10:7, 개역)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10:1, 새번역) 또 나는 힘센 다른 천사 하나가 구름에 싸여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고, 그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과 같았습니다.

(10:2, 새번역) 그는 손에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펴서,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 서서,

(10:3, 새번역) 마치 사자가 울부짖듯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부르짖으니, 일곱 천둥이 각각 제 소리를 내면서 말하였습니다.

(10:4, 새번역) 그 일곱 천둥이 말을 다 하였을 때에, 나는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나는 하늘로부터 나오는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인봉하여라. 그것을 기록하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10:5, 새번역) 그리고 내가 본 그 천사, 곧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그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쳐들고,

(10:6, 새번역)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시고,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시는 분을 두고, 이렇게 맹세하였습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10:7, 새번역)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나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에게 전하여 주신 대로,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 것이다."

 

 

앞의 이사야 글에서 차라리 죽으면 죽으리라의 자리인

다윗의 자리로 가라

심판의 자리로 가라 라고 하니까

이것을 진짜로 실천하고 행하는 사람이 있어요

성경은 그 어디에도 행하고 실천하는게 없습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 보라 라고 하셔도

결국 인간은 뒤에서 쫏아오는 애굽군사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예 기대를 걸지 마시고 뭘 해도 가짜 임을 뭘 해도 죄라고 여기셔야

기쁘고 부담하나 없이 이미 결정난 사항임을

상대적인 나 원수의, 상대적인 예수님이 떳다는 그 이유로

기존의 주인인 마귀를 배신하고 회개케 만드시는 주님의 사랑을 쳐다보는

십자가의 피 용서인 긍휼과 자비를 쳐다보는 배신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나 혼자 단독적으로 독자적으로 행하고 실천하는 개념은 아예 없어요

주님을 나타내기 위함이지

내 혼자 십일조를 하고

나 혼자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나 혼자 토색하지 않고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 보고

 

그게 뭐냐 말이죠

 

이것이 무목적으로 사는 짐승같은 인간이다는 겁니다.

목숨 걸때가 없으니까 무목적으로 사는 겁니다.

 

엘리야가 그 카다가 한 방 꿀밤 지박힙니다. (왕상 19)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아닌데 칠천명 남겨 놨지롱 이라고

지 혼자

나 혼자 남았엇고

나 혼자 열심히 특심이고

나 혼자 여행하고

 

지 혼자 그렇게 심각하더니

갑자기 코메디 채널 무한도전으로 채널돌리기를 하니까

아무리 심각했던 엘리야도 웃고 배꼽잡고 그 3초전만 해도 심각하다고 그렇게 하더니만

이제는 웃더라 말이죠

 

자신의 능력으로 완벽함을 추구했는데

먹혀들지 않으니까 바로 바로 소진해 버리니

더 이상 나올것이 없다고

차라리 자살하는 것이 낫다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시위를 하는 겁니다 엘리야가 말이죠

 

아니 누가 완벽하래요?

아니 누가 자기자신을 불 질러 충성하래요?

아니 누가 내 열심히 특심 하래요?

 

모세가 40살 때 자기자신을 불질러 이 한 몸 주를 위해서 바치겠다고 하다가

초반부터 브레이크 걸려 현상금 걸리니까 도망치기 바빴다 말이죠

이제 40년이 지나서 80살에 드디어 부르니까

아니 젊어서 힘 있을때는 안 도와 주더니만

이제 늙어 힘도 없을때에 이제와서 왜 부르냐고 따지는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힘 빠졌으니까 부르는 겁니다.

 

힘 있으면 안 불러요

자기 능력이 그렇게 가득한데 말라꼬 부르냐 말이죠

그것은 교리 플러스 실천이 되니까 말이죠

불교가 웃끼게도 그 힘도 스스로 뺄려고 해요 아따 잘도 빼겠당

이 짖을 또 기독교가 따라해요 교리 플러스 실천으로 말이죠.

 

이것이 바로 오늘 나오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감추어진 단절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어코 인간들은 이 비밀을 풀었다고 우기는 겁니다.

그 꾀에 그 하만의 꾀에 자기가 잡은 자기 노예에게 도리어 짖밟히는 겁니다.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10:7, 개역)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나님의 비밀 곧 하나님의 뜻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었다 말이죠

그러니 참선지자들은 본인들이 하나의 하나님의 비밀이 되는 겁니다.

기드온 자체가 하나님의 칼이 되듯이 말이죠

그 자체가 말이죠

존재가 아닌 기능이 그렇다 말이죠

 

기드온이 구지 칼을 따로 쥘 필요가 없는

기드온 자체가 칼이다 말이죠

칼도 없는데

거짓말 아닙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아마 기드온이 따로 칼을 쥐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비밀이 아니다 말이죠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의 구분은 그 자체에는 없다 말이죠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님이 떠야 비로소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가 구분됩니다.

스스로 참선지자가 되겠다고 나서게 되면

몽둥이 맞아야 되죠

그런데 그 몽둥이가 또 자기 능력으로 권세를 가진줄 알아요 글쎄 하만처럼말이죠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하나님의 비밀이 뜸으로써

구별 구분 분별 거룩이 펼쳐지는 겁니다.

 

자 그럼 참선지자는 내 열심히 특심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거룩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어요

엘리야 자체가 하나님의 비밀인데

자꾸 자기가 참선지자 됨과 하나님의 비밀을 전달함과 따로 따로로 보고 있다 말이죠

본인 자체가 편지인데 자꾸 자기는 우체부만 되고 편지는 따로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편지가 없어요

칼이 없어요

본인이 칼이라

본인이 칼


그 겁쟁이가
? 칼이래요!!! 즉 이 말은 거짓말이다는 겁니다.

지도 알고 남도 알고 다 아는 겁니다.

겁쟁이가 무슨 놈의 칼 입니까?

어린아이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깁니까?

말도 안된다 말이죠

이 말도 안되는 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한다 말이죠 곧 거짓말

말도 안되는 거짓말

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질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엘리야의 주장대로 내 열심히 특심이라고 그 주장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버리면

마귀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일곱우뢰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버리면

마귀의 세가지 시험으로 인한 가짜 메시야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참선지자는 거짓선지자로 취급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버렸다 말이죠

다윗의 자리에 한 아기가 앉아버렸다 말이죠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참선지자로 사람들에게 인정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보는 시선이 같은 유유상종이니까 말이죠.

앗수르가 몽둥이가 되어 이스라엘을 치니까

착각하더라 말이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요.

 

바로 이렇게 두 패로 가르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결과로 그 증상으로

 

에서는 미워(버림)하기로 작정이 되었고

야곱은 사랑(용서)받기로 작정이 되었다는 겁니다.

 

곧 에서와 야곱 자체에서는 없어요

예수님이 버림 받으시는 이 하나님의 비밀 때문에 그런거다 말이죠

 

그럼 성도는 나 선택받았다 구원받았다

어떻게 하면 구원 되느냐에 대한 성취로 나 구원받았다는 자랑하겠습니까?

아니면 왜 저 때문에 버림받으셨나요 라고

예수님만 크게 보이고

그 심판성의 자리에서 예수님만 하나님의 비밀만

죽으면 죽으리라의 자리에서

내 대신 십자가에 저주 받는 그 심판을 받는 심판의 주가 옳았다고 외칠까요?

 

비밀이란 저들과의 차이성으로써 놓여지는 자리 곧

비밀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겁니다.

 

그릇 하니까 자꾸 비밀 또는 보배는 작고

그릇은 그 보배를 담아서 그 보배가 반짝 반짝 보이도록

유리그릇을 투명하게 도 닦아서 보배를 빛낸다고 종교가 가르치는데

그건 속임수이고요

 

이미 반짝 반짝 거리는 거대한 보석에게 주렁 주렁 우렁이처럼 달리듯이

그 큰 보석에게 쪼매하게 박혀 있는 것이 그릇이다 말이죠

 

주객이 거꾸로죠

 

정 보배를 빛나게 하고프면 그릇을 깨뜨리자 말이죠

자 지금부터 접시를 깨자 라는 김국환의 노래처럼 말이죠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양인자 작사/김희갑 작곡/김국환 노래) 1991

 

~ 그녀에게 (그녀에게) 시간을 주자 (시간을 주자)

저야 놀든쉬든 (놀던쉬든) 잠자든 상관말고

 

거울 볼 시간 (볼 시간) 시간을 주자 (시간을 주자)

그녀에게도 (그녀에게도) 시간은 필요하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아하~

그건 바로 내 사랑의 장점

그녀의 일을 나도 하는것 필수감각 아니겠어 그거야~

 

자 이제부터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를 깨자)

접시깬다고 (접시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접시를 깨뜨리자

 

가사 내용을 보니 접시 깨뜨렸다고 정죄하지 말고

아내의 허물을 사랑으로 감싸자

머슴아 남편 너도 해봐라 접시 안 깨뜨릴 자신있는지?

접시 깨진다고 세상이 안 깨진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그릇을 투명그릇으로 도 닦에서 만들 생각말고

그릇을 깨뜨리자 말이죠

죽으면 죽으리라

? 보배는 세상 보다 너무 너무 커서 안 깨어지거든요

이미 완료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을 박목사가 주장했는데 나중에는 본인이 이 이미 다 완료되었음을 거부하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완벽주의로 나아가버리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이지

인간이 풀 수 있는 문제가 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심판의 자리인 3일의 간극의 자리에 놓여지자 말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을 품은 선지자가 놓여지는 자리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자꾸 내 열심으로 특심까정 맹글어서 주님의 일을 했는데

? 다 죽고 나만 남았냐 라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저 이세벨이 날 죽일려고 한다 라는 거죠

이게 무슨 하나님의 일이냐 라고 낙심에 빠지는 겁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알 아세라를 850 1로 싸워 이겼는데

그 승리하신 주님 어디갔냐 말이죠

주님 설마 배신 때리는 것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그들처럼 나도 죽게 되었다고

내 혼자 남아서 뭘 하겠냐고 차라리 날 죽이라고 하더라 말이죠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여긴 그 목적성을 상실해 무목적성이 되어버리면

엘리야의 이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럴때에

주님께서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곧 일곱 우뢰, 일곱 천둥이 칠때에 기록할려고 하니까 안된다 기록치 말라 하신다 말이죠

 

아니 왜? 봉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감추어졌다는 겁니다. 단절 되었다는 겁니다.

 

(10:4, 공동) 그 일곱 천둥이 말할 때에 내가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자, "그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비밀에 붙여두고 기록하지 마라." 하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왔습니다.

(10:4, 쉬운) 내가 천둥이 하는 말을 받아 적으려 하자,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하는 것을 기록하지 마라. 그것을 비밀로 하여라.”

(10:4, 우리말) 일곱 천둥이 말할 때 내가 기록하려 했습니다. 그때 나는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는데 일곱 천둥이 말한 것들을 봉인하고 기록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쉿쉿 비밀에 붙였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비밀을 따로 마련한 노선을 통해서 펼치시겠다는 겁니다

바로 참선지자의 노선을 따로 마련해서 하나님의 비밀의 통로로 삼았다는 겁니다.

안 그려면 너 그 큰 일곱우뢰에 맞는다는 겁니다.
여섯날개를 가진 천사도 맞을까봐 싶어서 여섯날개로 가릴 판국인데

무슨 수로 기록할 재간이 있겠냐 말이죠

그래서 안 타죽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아니 왜 이렇게 일을 번거럽게 하실까요?

그냥 한번에 일괄처리 하시면 안될까요?

 

이것은 의도적으로 썩은 동앗줄을 땅에 흘려놓듯이 함으로써

넙쭉 잡는 자들과의 차이성으로써 저들과의 한 세트를 구성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다는 겁니다.

 

곧 예수님 본인이 하나님의 비밀로써

기존의 해석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비밀을 푸느냐와

예수님 본인이 하나님의 비밀로써 공짜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이 비밀의 노선에 따로 꼬불쳐 빼돌려서

이 십자가의 노선에 놓고자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심판의 자리인 다윗의 자리에 놓기 위함이다 말이죠

? 이미 한 아기가 떳기에

이 한 아기의 노선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다는 겁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안 죽이시는 긍휼을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음의 자리에 절대로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죽는

도리어 자기가 잡은 노예에게 밟혀 죽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자기 노예에게 밟혀 죽는 하만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 곧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 라는 지혜이다는 겁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롭다는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고 폐하게 멸망케 만들기 위함인

 

주의 십자가를 자랑케 하기 위함이다는 겁니다.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개역)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개역)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그럼 엘리야는 큰 번개 큰 지진 큰 천둥 큰 지진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을 만나는게 아니라

듣낄라 말라 카는 세미한 음성에서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이게 비밀이다 말이죠

 

세미한 음성? 얼마나 볼품 없습니까

즉 아무도 안 듣는 소리를 하신다는 겁니다.

다들 무시하는 소리로 오신다는 겁니다.

싫어버린바 된 모습

아름답고 풍채 있는 모습이 아니라

다들 고개를 돌려 버리는

싫어버린바 된 모습으로 말이죠

이게 비밀이다 말이죠

내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작 아무도 안 쳐다보는 겁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거든요.

 

산당을 찾고 종교를 찾고 영흠 신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왜 찾냐 말이죠

왜 불안하냐 말이죠

바로 저 저주 받은 모습 싫어버린바 되는 모습

죽음이 덮치는 모습이 싫어서 찾는거 아닙니까?

그래서 엘리야에게 내 열심히 특심이다는 것에 안 나타나시는 겁니다. 안 계셔요.

그 반대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시겠다는 겁니다.

 

이 세미한 음성을 담는 그릇으로써

엘리야는 하나님의 비밀을 품은 하나님의 비밀이 되는 겁니다.

마치 심판을 담은 그릇처럼

그런데 이 심판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더라 말이죠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이 심판성을 담을수가 없을 뿐 아니라

곧 하나님의 비밀을 모릅니다

엄집사님 질문처럼

사도바울이 자기를 스스로 침으로써

버림받을까봐 두려워 벌벌 떠는 모습 안 보여주는 거짓선지자와의 차이성을 보여준다 말이죠

아니 사도를 누가 버리겠냐 라고 마귀가 주장할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아닙니다 사도도 버립니다 라고 보여주고 있어요

 

남들이 핍박하기도 전에 자기가 자기를 핍박해요 자기를 미워해요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남들은 더욱더 핍박하지 않냐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인 사도라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선지자의 기능이다 말이죠

그래서 스스로 쳐요 자기를 쳐요

심판 속에 구원이다는 겁니다.

 

아니 누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자가 어디있냐 말이죠

사랑했으면 사랑했지 자기 마누라 자기 자식 자기 부모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자기 목숨인데?

 

(10:39, 새번역)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16:25, 새번역)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0:28, 새번역)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10:45, 새번역)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17:33, 새번역)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는 사람은 보존할 것이다.

(10:11, 새번역)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5:13, 새번역)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5:26, 새번역) 바나바와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미래완료인 한 아기(하나님의 비밀)이 떳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존의 것을 긍정하면서 밀어붙일려고 하니까

큰 지진 큰 우뢰 큰 번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려고 하지

세미한 음성으로는 만날수가 없다고 하더라 라는 겁니다.

 

아니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화해 화목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종교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말이죠

 

그래서 썩은 동앗줄을 흘려놓으니까 그것만을 붙잡고서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하더라 라는 겁니다.

 

이것은 한 아기가 앉는 다윗이라는 자리의 노선이 아닙니다.

그냥 종교다 말이죠

종교란 교리가 있고 그 교리를 실천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은 교리가 없어요

 

오호 오늘 또 이단 하나 나타났다 그죠

복음은 교리가 없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비밀이 나를 붙잡아 땡기느냐 마느냐의 여부 뿐입니다.

 

즉 하나님의 비밀은

아기 예수라는 비방받는 표적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두 패로 나누어지는 겁니다.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아기 예수를 축복하는 자는 복 받고

아기 예수를 거부하는 자는 저주 받는

 

축복한다고 하니까 아 그럼 축복합니다 라고 카면 말로 카면 복 된다 말이군요 라는 식이

아기 예수님을 거부하는 겁니다.

축복한다는 말은 같은 운명이다는 겁니다.

축복한다고 해 놓고서는 니는 니 길로 나는 내 길로 각각 따로 간다면

그게 무슨 축복한 겁니까?

 

즉 축복은 같은 운명으로써 같은 목적성이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저주는 니는 니고 나는 나다 라고 따로 따로 즉 거부하는 거죠

 

자 결국 예수님 본인이 하나님의 비밀로써

다윗이라는 자리인 심판받는 자리에 놓여짐으로써

하나님의 비밀이 앉는 자리를 본을 보여주셨다 말이죠

자 그럼 다윗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왕 다운 모습을 보여줄게 아니라

그것은 사울왕이 무목적성으로써 타인의 욕망에 밀려 밀려 등 떠밀려

짐승같이 사는 모습이고

반대로 다윗은 그카다가 박살이 나서

왕이 아닌 죄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써 죄악을 다 이기신 것을 보여줘야하기에

이 하나님의 비밀인 십자가의 피 용서를 말하기 위해서

두 패로 갈라놓는 하나님의 비밀에 의해

죄인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결국 다른 한 쪽은 의인의 자리에 놓여지는데 그것이 바로 거짓선지자의 노선이다는 거죠

종교는 마치 일곱천둥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는 식이고

반드시 참선지자의 노선은 때려죽어도 안들리는 비밀 단절 차단을 통해서

곧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펼치신다는 겁니다.

 

이 단절성이 바로 성령의 소욕이고

반대로 개방성은 육의 소욕으로써

세미한 음성은 그 자체가 들리지 않으니까 무시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를 무시할 수 밖에 없는

이 말은 내 몸 내 자아를 이미 긍정하고 들어갔기에

육의 소욕이기에

성령의 소욕인 단절을 무시할 수 밖에 없는

십자가의 저주에 못 박히는 예수님의 몸을 도저히 긍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그럼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비밀 노선을 못 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누가 종교를 택하지

커다란 일곱천둥을 원하지

천둥의 신 토르 의 노선을 원하지

 

듣낄라 말라 하는 무능한 신을 원하겠냐 말이죠

십자가에 달려 죽는 하나님을

이 하나님의 비밀을 누가 원하겠냐 말이죠

원한다면 그것은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 마땅한

내가 하나님의 저주 받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라고 인정하는 꼴인데

그거 인정해 버리면 그 다음부터 지나개나 다 덤벼든다 말이죠

가족도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형제도 다 돌던진다 말이죠

 

이 세미한 음성이라는 3일의 간극의 자리

닭이 세 번 울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그 정도로 개무시 받는 그 자리를

하나님의 비밀이 주체가 되어서

나를 그 자리에 앉혀 놓음으로써

한 아기가 앉는 겁니다.

 

이 비밀의 노선을 따로 마련했다는 그 이유로

엘리야는 들통나고

기존의 해석

어제 믿었다고 자부 했던 그런 것들이

탈탈탈 털려서

아무것도 없어도

이미 십자가에 다 이루셨다는 이 복음이 떳다는 그 이유로

종교라는 교리 플러스 실천이 아니라

그런 썩은 동앗줄이 아니라

주님이 직접 죄인되심으로써 화목제물이 되신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비밀을 통해서

저들과의 차이 구분 구별로써

자신의 피를 노래하시는 겁니다.

 

곧 아무도 듣고 싶지도

노래하고 싶지도 않는

그 노래를

세미한 음성으로써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게 없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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