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을 입은 두 증인 (11: 1- 6)

 

부정한 자(죄인으로써 화로다 나여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써

의사를 외치는 두 증인 (쓴 말씀을 먹은 자)

계 30 상복을 입은 두 증인 (계 11, 1- 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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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개역)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11:2, 개역)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11:3, 개역)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1:4, 개역)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11:5, 개역)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11:6, 개역)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1:1, 새번역) 나는 지팡이와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때에 이런 말씀이 내게 들려 왔습니다. "일어서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라.

(11:2, 새번역) 그러나 그 성전의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방 사람들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11:3, 새번역) 나는 내 두 증인에게 예언하는 능력을 줄 것이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일 동안 상복을 입고 예언할 것이다."

(11:4, 새번역) 그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올리브 나무 두 그루요, 촛대 두 개입니다.

(11:5, 새번역)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11:6, 새번역)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 활동을 하는 동안에,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몇 번이든지, 어떤 재앙으로든지, 땅을 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4:16, 개역)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4:20, 개역)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4:21,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4:22, 개역)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4:23,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4:24, 개역)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4:25,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4:26, 개역)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4:27, 개역)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4:28, 개역)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4:29, 개역)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4:30, 개역)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지난 주에 어머니께서 배에는 쓰다 라는 것은 그 만큼 말씀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성경말씀은 아예 인간이 지키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지 라는 고민이 생겼는데

끝부분에 가서야 아 이거구나 라고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의미 이다는 겁니다.

 

저는 그저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것이 의인의 반대적인 의미로

피에 부합되는 의사의 기능에 맞는 환자의 의미까지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 의미가 더더욱 확대되는 겁니다.

 

즉 쓰디쓴 말씀을 먹는 이 모습이

죄인을 부르러온 구원자

 

곧 구원자를 말하기 위해서 죄인의 자리에 놓여지는 기능이기에

쓰디쓴 말씀을 먹는 선지자는 구원자를 외칠때에

부정한 자리에서 외친다는 것

 

그래서 다윗을 기어코 죽여서 그 죽은 다윗을 다시 살리는 것이 바로

꺽으신 뼈로 살리듯이

이제 다윗은 이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희년을 복음을 외치는 찬양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상한심령 곧 정직한 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주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우는

재를 뿌리고 머리를 쳐박는

? 예수님을 말해야 하는 기능이기에

환자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죽음의 자리에서 심판의 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저분만이 옳고 우리는 다 틀렸다고 가짜라고.

 

이것은 시간의 순서로 벌어지는게 아니라

그것은 사건이 아닙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행함일 뿐입니다.
노동이요 댓가를 바랄 뿐입니다.

 

그 반대로 시간의 역순으로 벌어지는 것이 사건 곧 기능이기에

이미 한 씨앗이 떳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가 떳기 때문에

그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죄인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그 죄인을 부르러 온 의사요 구원자라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십자가 피의 자작극입니다

 

왜 이런 자작극을 펼치시느냐

바로 마귀와의 차이를 주님이 직접 벌리시는 겁니다.

 

자 그럼 반드시 마귀는 어느 자리에 앉도록 되어 있다?

몽둥이를 쥐는 율법의 자리

또는 건강한 자의 자리

의인의 자리에 앉더라 말이죠

 

성전에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결과적으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죽였을까여? 세리가 예수님을 죽였을까요?

자 그럼 세리는 왜 자신이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고

머리도 못들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쳤을까요? 찬양 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이루심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패의 자리, 상한심령의 자리, 죄인의 자리, 심판의 자리,

저 세리와 같이 앉다고 감사하다는 바리새인으로부터 정죄받는 자리에 놓여져도

그것이 하등 심각하지 않은 이유가

정작 내 죄를 대신해서 매 맞은 예수님을 보니

자기 손가락의 찔린 가시에 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는

허걱 하고 놀라는 겁니다.

감히 그 앞에서 피부병 나사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 갑자기 부끄러워 지는 겁니다.

머리에 숯불을 얹은 냥 성령이 들어오니까

재를 머리에 뿌리고 머리를 땅에 쳐 박고서

밤새도록 벽돌로 가려운 피부를 박박 끌으면서 고쳐달라고 한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놀래서 감히 그 앞에서 그 가시면류관 쓰신 예수님 앞에서 고쳐달라고 할 입이 저절로 막힐 정도로

너무 너무 엽기적으로 쓰디쓴 짖밟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을 보게 된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가면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감당 시킨 줄도 모르고 말이죠

 

마치 향유를 부은 여인이 미리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치르는 겁니다.

아마 제자들이 그것까지 알았다면 이 여인을 죽일려고 달려들었을겁니다.

 

오늘 똑같이 두 증인인 모세와 엘리야가 굵은 베옷 곧 상복을 입고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신체에 담듯이

하늘 영광 버리고 죄인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이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죄인의 자리에 놓여져서

의사를 외치고 구원자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삼일의 간극을 말하고자

엘리야는 권세를 받아 비오지 않기를 3년반 곧 1260일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권세를 받앗고

모세는 물을 피로 그리고 10가지 재앙을 퍼붓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입니다.

 

권세라고 하니까 힘으로 생각하는데

아니 누가 1260일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겠냐 말이죠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했지요?

곧 환란을 당하는 겁니다.

죽음 속으로 피신 시키는 겁니다.

 

모세는 일부러 애굽을 건드리는 겁니다.

마치 아벨의 제사는 피를 분리하는 제사이고

애굽의 제사는 가인의 제사처럼 번제와 제사라는 행함을 지키는 것인데

모세는 이 둘을 일부러 싸움 붙이는냥 건드리는 겁니다.

10가지 재앙으로 깨작 깨작 애굽을 건드린다 말이죠

 

물론 죽습니다.

실패합니다.

그리고 졸지에 미디안의 날처럼

애굽의 날이 되고

예수님을 죽인 소돔과 고모라의 날처럼 보입니다만

 

이것이 바로 몽둥이를 쥐었다는 자체가 이미

십자가의 승리로 인한 증상이기에

몽둥이를 쥔 자체가 이미 그들은 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우는 자는 예수님이고 이스라엘이고

누가 봐도 죽은 자는 두 증인이고 쓰디쓴 실패와 지근 지근 밟히는 모습이

실패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승리로써 다 이루심의 결과로 나타난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로써 말이죠

 

즉 내 믿음의 승리 내 신앙의 승리가 아닌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승리만을 외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승리의 증상으로서 환자의 자리 죄인의 자리

쓰디쓴 고난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내가 아닌

십자가가 벌린 자작극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 곧 분리작업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비밀인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와 성도와의 차이를 벌리는 겁니다.

 

마귀는 이긴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보니 마귀가 죽인 그 이스라엘의 시체 더미 밑에

누가 깔린고 하니 몽둥이를 쥔 마귀가 깔려있고

시체가 되었고 노예가 되었다고 여겼던 성도가 아니 글쎄 신부옷을 입고

찬송의 옷을 입고 예수님의 아내로 서 있더라 말이죠

 

이게 바로 원인 없는 결과이다 말이죠

 

이것을 바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인 베드로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십자가의 지혜이다 말이죠.

 

두 증인에 대해서 마귀들도 잘 압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고요

반석을 두 번이나 쳤어요

 

또 엘리야는 열심히 특심이니 나만 남았다고 때려죽어도 쓴 말씀을 안 먹을려고 했다 말이죠

엘리야 곧 선지자의 대표자가 이런 판국인데 누가 쓰디쓴 말씀을 먹겠습니까?

 

절대로 자발적으로 먹을 인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먹는 것을 보고 그들은 머리에 숯불을 얹은냥 부끄 부끄가 되어서

이제 예수님을 외치는게 있어서 회개의 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천국이 떳기에 비로소 회개하는 겁니다.

쓰디쓴 죄인의 자리에서 뺑뺑이 돌면서 하루에 한 바퀴 돌았던 여리고성 전쟁 때의 사건처럼

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세 번 원망한 아니 10번 아니 14번 원망한 죄인입니다.

그 증거가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도장 도장끈 지팡이 깨어진 십계명 두돌판 아론의 싹난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그 증거로써 증거궤에 담겨져 있습니다 라고

비로소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를 거치는데

반드시 이 모습을 마귀가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죄인의 자리에 놓여지니 마귀는 그 반대로 몽둥이를 쥐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겁니다.

송사하는 자리 바로 검사죠

자 이렇게 되니 변호사는 죄인을 찾는 겁니다

자신의 변호 실력을 뽐내시고자

자신의 원수사랑을 뽐내시고자

자신의 피 흘리신 십자가의 사랑을 뽐내시고자 말이죠

 

마치 희년을 뽐내시고자

포로된 자 눈먼자 갇히고 억눌린자를 찾듯이 말이죠

 

그런데 아무도 예수님의 피가 필요 없데요 글쎄

주님의 살과 피가 필요가 없데요 글쎄

그 정도로 나쁜놈이 아니다고 여기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

 

전혀 가망없는 인간이라고 회개치 않더라 말이죠

 

그러니 변호사가 필요없으니 다들 놀랍게도 본인들 스스로가 말씀을 지켜서

다들 몽둥이를 쥐고 있는 검사 형사 경찰의 자리에 다 앉더라 라는 겁니다.

 

본인이 경찰이 되었으니 의인이 되었으니 건강한 자가 되었으니

기능은 저절로 그 반대의 사람을 찾아내에서 구별짖기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괜히 건강했고 괜히 경찰 되었고 괜히 의인이 되었고 괜히 몽둥이를 쥐었다 말이죠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사울왕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드디어 율법을 어긴 다윗과 도와준 제사장 아히멜렉과 에봇 입은 85명 그의 가족들 아마 최소 300명이니 그 이상 결국 마을 하나를 다 죽여버리는 식이 되더라 말이죠

 

괜히 율법 지켜서 말이죠

 

여러분 다시 한번더 강조 합니다. 말씀 지키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자꾸 장난치는줄 알아요

여려분 말씀을 지키게 되면요 결국 예수님을 또 죽이는

반드시 예수님을 경쟁자로 삼아 적개심을 품어 살인의지를 발동케 됩니다.

안그럴꺼라고 단언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그러신다니깐요

니가 믿는 예수는 그럴지 몰라도 내가 믿는 예수님은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다 라고 우겨도

깨작 깨작 끍어 대시면 아무도 그 장담이

곧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늘 넘어뜨린 자이다 라고 욕먹게 된다 말이죠

예수님은 안그러신다가 아니라 그러십니다.

오로지 마귀만을 상대하지 인간 상대 안하시니까 말이죠

베드로에게까지 심하디 심한 욕을 하시는 이유가

베드로에게 절대로 안보이는 마귀만을 곧 죄악만을 상대하시거든요

베드로 보다 커요 죄는 마귀는

베드로는 자기 보다 큰 죄와 마귀는 때려죽어도 안 보이니까

사망의 권세인 풍랑을 일으키시고

모든 매사가 마귀만을 겨냥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게 바로 비유(비밀) 이다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를 가짜 베드로에게서 빼내시고자, 마귀에게서 세 번 부인케 만들었다니깐요

 

쓰디쓴 말씀을 먹게 되니 비로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게 되지

안그러면 자꾸 세 번 부인 하지 않았다고 자꾸 우길꺼다 말이죠

 

예수님의 피 공로 곧 피 발림으로 가지

인간의 믿음

행함

말씀 지킨 것 안 보십니다.

바울은 그것을 배설물이다고 했다 말이죠

 

그래서 마귀를 거치게 하시는 겁니다.

마귀에게 잡혀 오라는 겁니다.

원래 잡혀 있고 포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 차이로써 십자가의 승리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달리 보여요

두 증인도 그 과정을 거쳤다 말이죠

과정이라고 하니까 시간이 아니라

사건 곧 경과를 거쳤다 말이죠

어떻게?

24장로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외친 죄인이고

원수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원수의 자리에서 외칠 것은 오로지 인애와 자비이지

마귀처럼 번제와 제사를 외치지 않는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상한심령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썩어 뭉들어지는 마음

 

이렇게 말하니까 억수로 고생하고 핍박받는다고

지가 지 스스로 자해하듯이 고통을 주어서 바알 아세라 선지자처럼

몸에 고통을 가해서 지성이면 감천이다고 하늘의 응답을 받겠다고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상한심령이란 예수님의 마음처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는

종말을 끝을

다 이루심을 미리 끌어당기다 보니까

 

번제를 쌓고 제사를 쌓는 자들에게 저절로 밉상으로 취급받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거짓선지자의 차이로써 굵은베옷 곧 상복을 입는 겁니다.

그러니 저절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 냐 아니면 번제와 제사냐

믿음이냐 아니면 행함이냐 라는

세상의 기준인 건강한 자 의인의 자리에서 저절로 미끄러지다 보니

저절로 죄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외칠 수밖에 없는

십자가의 피가 발려 버리니까

피가 나를 그렇게 외치도록 하지

내 능력으로 내 믿음으로 내 실천능력으로 외치는게 아니다 말이죠

 

그러다 보니 저절로 내가 가만히 있어도

저들이 분리 작업을 해요

더럽다고

부정하다고

죄인이다고

문둥병자 라고

 

고침받아 봤자 소용이 없어요

? 10명의 문둥병자 중에 유대인 9명이 고침받으니까

졸지에 건강한 자

의인이 되었다고 바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더라 말이죠

? 그 동안 못 지킨 말씀 지켜서 의인이 되어야지

죄인 되면 안되니까

또 예루살렘 성전 바깥에 부정한 자리에 놓여질까봐 퍼뜩 돌아가지만

 

한 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예수님이 너도 그들 따라 가지 라고 해도 안 간다는 겁니다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분은 예수님이

저 건물이 아니다 말이죠

 

오히려 저 건물은 가증한 물건이 세워졌기에

그저 그저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꼬 하닌 자들만 모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오늘날 한국 교회가 그래요

약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곳이다 말이죠

 

그래서 선지자는 누구에게 보내심을 받는다?

성전측량을 통해서 거룩과 속됨을 측량해서 배치시킨다 말이죠

아무리 거룩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치된 대제사장 일지라도

거룩과 가까울 뿐인 자리의 배치이지

거룩은 아니다 말이죠

즉 더럽다 말이죠

 

그리고 이방인의 뜰 바깥은 아예 인간 취급도 안하는 취지이다면

아무리 거룩한 대제사장일지라도

그 기능을 보시고 취급하지 인간으로 본다 안본다? 안 봅니다.

 

나 인간 맞잖아요 라고 모세가 인간 취급해 달라고 하다가 두 번 쳐서

주님한테 한 대 쥐 박히고

나 인간 맞잖아요 라고 엘리야가 열심히 특심인데 나만 남았다고 배신 때리기 있냐 라고 묻다가

한 대 쥐 박히고

나 남을 7번 용서하는 인간 맞잖아요 라고 베드로가 인간 취급해 달라고 하다가 쥐 박히고

 

그래서 지근지근 밟혀서 쓰디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난 뒤로부터는

이제는 자발적으로 피를 외치는 죄인의 자리에서 외칠때에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의인의 자리에서 대조로써 나오더라 말이죠

마치 베드로를 잡은 마귀가 율법을 쥐고서 송사할려고 재판관 노릇하듯이 검사노릇을 할 때

 

예수님은 율법이 아닌 율법 외의 한 의로 오시는 겁니다.

율법으로 오면 다 타죽거든여

 

그래서 오늘 나오는 성전의 배치대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쓴잔을 대신 마심으로 인해서

율법 외에 한 의로 오심으로써

 

도리어 누구에게 보내심을 받는다

대제사장?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죠

레위인? 예수님이 시체처럼 부정한 자리에 놓여지니까 부정한 것 만지만 안된다고 삥둘러 간다 말이죠

 

누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는 자가 되냐 말이죠

 

성전 짖는데 그렇게 방해를 했던 철천지 원수 사마리아인이다 말이죠

 

예수님의 피가 바로 이 죄인 원수에게 딱 들어맞아 공명으로써 짝꿍으로써 울려퍼져나오는

찬양자가 될 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정 그게 싫으면 찬양을 해 보시던가?

데제사장이 이 십자가의 지혜를 못 노래 해요

 

탁 목에 걸려서 거치는 돌이 가로막듯이 노래가 안 나와요

노래는 사건이거든요

 

유대인은 이 십자가가 껄끄러워서 노래 못해요

노래 할려면 자신들은 의인의 자리 포기하고

건강한 자리 포기하고

죄인의 자리에서 노래해야 하거든요

 

예수님을 무슨 수로 믿냐 말이죠

똑같은 죄 지은 가룟유다는 버렸고

똑같은 죄 지은 베드로는 사랑했는데

 

베드로 못 되고 가룟유다 되면 우짤려고

무슨 수로 믿냐 말이죠

 

믿을 구석은 그저 첫아담에게서 난 시간과 공간 이라는 율법(양심) 속의 나 밖에 없지

 

이불 밖은 위험해

법 밖은 위험해

시공간 밖은 위험해

 

곧 율법 외의 바깥은 위험하다고 본다 말이죠

 

그래서 성전 밖은 위험하다고 9명은 예루살렘으로 갖지만

사마리아인은 그 건물에 갈 이유가 없어요

 

인물 곧 사건이 자기 눈 앞에 있는데 어딜 가냐 말이죠

 

(17:11, 개역)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7:12, 개역)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7:13, 개역)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궁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7:14, 개역)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7:15, 개역)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7:16, 개역)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17,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7:18, 개역)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7:19, 개역)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9명의 유대인들은 악학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의 세계인 행함의 세계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곳인 애굽의 세계에 들어갔고

 

그들의 철천지 원수인 사마리아 한 명의 문둥병자는 믿음의 세계인 예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겁니다.

 

마치 엘리사 선지자가 유대인에게 보내심을 받지 않았고

유대인의 많은 문둥병자에게 보내심을 받지 않았고

이방인에게 보내심을 받지 않았고

이방인의 많은 문둥병자에게 보내심을 받지 않았고

이방인의 많은 문둥병자 중의 단 한 사람 나아만 장군에게만 보내심을 받은 것이 바로

 

희년

복음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라는

피의 세계 곧 믿음의 세계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이 죄인만을 부르신다 말이죠

? 이 십자가의 피를 찬양하니까

 

자꾸 유대인 유대인 카시는데

그럼 유대인에게 십자가를 노래하라고 해 보세요

안 해요

완악한 수건을 벗지 못해요

왜 완악한 수건인고 하니

자신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거든요

영광 스러운거 맞아요

 

그런데 영광 스러우면 뭐합니까?

예수님을 죽이는데

 

(고후 3:7, 쉬운) 돌판에 새겨져 있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율법에 의한 직분도 영광스럽습니다. 그래서 비록 사라질 영광의 광채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 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십의 일

이레에 두 번 금식

다 영광 스러운 거 맞아요

그런데 그것을 인간이 쥐면 왜 자꾸 예수님을 죽이는 그 이유를 모른다니깐요

가인을 왜 죽이는지 알수가 없어요

다윗을 죽이고자 아히멜렉을 왜 죽이는지 알수가 없다니깐요

 

차라리 안 하면 예수님의 피를 감사하고 노래라도 하지

그렇게 되면 소통이 안되기 때문에 매매를 못하기 때문에 조직에서 쫏겨나죠

 

정작 찬양자로 세운 자는 노래가 안나오고

개같은 이방인에게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음에도(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불구하고

왜 귀신들린 딸의 어미는 예수님을 노래할까요? 찬양할까요?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15:25, 개역)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5:26,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5:27,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15:28, 개역)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팔의 어긋남의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줄 아는 성경박사는 없어요

신학자 철학자 아무도 없어요

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말이져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사랑은 원인이 없다니깐요

이유 없어요

 

원인이 생기면 또 반대로

또 이유가 생기면 또 반대

무조건 인간을 피해 갑니다.

 

더군다나 귀신까지 들린 딸의 어미이니

 

아마 유대인처럼 오늘날 한국교회 사람들이 다 달려들어서

이 딸이 부모 죄 때문에 귀신들린것인지

아니면 자기 죄 때문에 귀신들린것인지 딸에게 추궁할것이고

 

그 어미에게도 너 어미 땜에 딸이 귀신들린것인지

아니면 딸 때문이면 그 책임을 어미는 어떻게 처신을 하고 있는지

다들 달려들어서 이단 감별사 노릇을 할 꺼다 말이죠

 

이유를 따져요

원인을 따지고

조건을 따집니다.

 

못 고친다 라고 하면 될 것을 ~~~~

저는 가짜입니다 라고 하면 될 문제를 ~~~

 

주님의 믿음은 이겁니다 그런 인간의 믿음 거부하시고

그 다음 니 차례인데 우짜노 라고 말이죠

 

인간의 종교 곧 신앙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노래 못해요

도리어 이렇게 우리들에게 정죄 받고 있는 이 귀신들린 딸의 어미가

예수님을 노래 하는 겁니다.

 

뭐 남들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다굽쇼?

강도의 소굴이 된 돈에 미쳐 돈을 사랑하는 한국교회에 십자가의 피를 자랑해보세요

고만캐라 마이 무따 아이가 라고

죽일 듯이 미워합니다

 

그럼 교회에서 뭘 해야 미움 안 받냐?

666 곧 사람들끼리 소통될수 있는 것을 말하면 됩니다

그게 종교 이다 말이죠 절대로 막살면 안된다가 소통이 되지

말도 안되는 십자가는 거리껴서 안 통합니다.

개방이 통해요

우상이 통해요

가증한 물건이 선 것을 보면 도망치라 말이죠

 

종교(십의 일을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가 통해요, 민주주의는 종교이거든요)
또는 국가(돈과 권력)

 

이것이 소통 꺼리입니다
마귀의 세가지 시험 내용물 만이 통해요.

십자가의 피 말했다가는 다 뚝뚝뚝 끊켜요 단절 됩니다.

갈라져요

 

두 증인이 그거 말했다가 개죽음 당합니다

엘리야는 십자가의 3일이라는 간극을 말했고요 곧 삼년반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했고요

모세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 제사 드려야 한다고 물을 피로 만들고 10가지 재앙을 퍼붓습니다

십자가를 외치다가 말이죠

 

이들이 결국 죽습니다 눈 감습니다

그러나 안 죽어요 믿음으로 다시 삽니다

인간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한 아기가 떳기 때문에 그 증상으로 다시 살도록 되어 있어요

다시 눈 떠서 보게 됩니다.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떳기에 말이죠.

 

그러나 마귀는 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나팔 승리의 나팔을 무시하기 때문에

바보 같이 몽둥이를 괜히 잡아서 알리바이가 형성 됩니다.

 

더럽다고

부정하다고

제사장 옷 에봇을 더럽혔다고

 

아무도 그게 눈에 안 보이고 안 띄이는데

기가막히게 찾아냅니다.

밀까부듯이 돋보기로 조사해서 찾아내거든요

실로암 소경도 정죄하는 판국에 다 잡힐 수밖에 없다 말이죠.

 

그래서 에봇 입은 85명 다 죽이고 그의 가족들도 몰살 합니다.

다윗을 대접했다는 이유로

율법을 어겼다고 말이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옳았다고 외치는 이유로 두 증인을 죽입니다.

 

십의 일을 드리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한

번제와 제사를 드리는 달인들은

곧 건강하다고 의인의 자리에 넢쭉 앉는 마귀들은

 

이 더러운 자를 그냥 못 넘어가요

반드시 법으로 송사 합니다.

 

이 말은 자기는 법 지켰다 라는 주장이거든요

 

두 증인이 쓰디쓴 말씀을 먹고 굵은 베옷을 입어 상복을 입어

죽음의 자리에서

부정의 자리에서 외치는 꼴을

 

의인의 자리에 앉은(의인이라서가 아니라 율법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해 가입됨)자들은 그 꼴을 못 본다 말이죠

 

그래서 송사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잡은 노예에게 범인에게 죄인에게 깔려 죽고

영원히 어두운 터널에서 못 빠져나오고

 

반대로 두 증인은 다시 사는 겁니다.

부정하다고 괜히 잡는 바람에 도리어 잡히는 꼴이 된 거죠

 

본인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떳다는 것을 봤다면

죄인의 자리에서만 십자가를 노래 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심판의 자리에 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십자가를 노래해야 하는데

 

자기 구원

내 믿음 내 행함

자기 열심을

 

누가 똥떵어리로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그 똥냄새를 맡지 못하는 이상

그것을 자랑하고 돌아다닌다 말이죠

 

고맙게도 율법 외에 한 의가 그 똥을 다 치워주시는 바람에

똥물에 7번 몸을 담궈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찬양하는 겁니다.

 

똥물에 들어가야 마땅한 죄인이요 심판 받아 마땅한 자라는 것을 여기지 못하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노래 못해요

 

모세의 노래를 못해요

유리바다의 노래를 못해요

물이라는 심판 속에서

죽음 속에서 노래하는 자가 찬양자입니다.

 

계시록이 이처럼 신나고 즐겁고 노래 밖에 할 게 없는 기쁜소식 밖에 없습니다.

 

뿌 뿌 뿌 ~~~~~~

 

내 죄 다 씻은 날 오 해피 데이 로 끝나지 않고

 

세상에나 신부 옷 까정 입히시는 것이 십자가의 지혜 입니다.

 

마귀는 이 천하디 천한 기집이 왕비가 되는 것에 격동을 해 견디질 못합니다.
그 정도의 십자가의 피 인데 우리는 이런 마귀를 빼먹고 가니까
주님의 전쟁이
나팔이 안 보이는 겁니다.

 

예수님은 마귀만을 상대로 일하시고 그 탈취물을 함께 먹고자 하십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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