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자만 돌아오리라 (사 10:15-34)

몽둥이로 너를 칠지라도 시온에 거한 자들아 두려워 말라 남은자만 돌아오리라 

 


(
10:24)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10:15, 개역)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10:16, 개역)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0:17, 개역)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그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 소멸되며

(10:18, 개역) 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감 같을 것이라

(10:19, 개역) 그 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10:20, 개역)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10:21, 개역)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10:22, 개역)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10:23, 개역)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10:24, 개역)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10:25, 개역)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10:26,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 드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

(10:27, 개역)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10:28, 개역) 앗수르 왕이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10:29, 개역) 영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 사람은 도망하도다

(10:30, 개역)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10:31, 개역) 맛메나 사람은 피난하며 게빔 거민은 도망하도다

(10:32, 개역)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10:33, 개역)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10:34, 개역)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

 

(10:15, 새번역) 도끼가 어찌 찍는 사람에게 뽐내며, 톱이 어찌 켜는 사람에게 으스대겠느냐? 이것은 마치 막대기가 막대기를 잡은 사람을 움직이려 하고,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 하는 것과 같지 않으냐!

(10:16, 새번역) 그러므로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질병을 보내어 살진 자들을 파리하게 하실 것이다. 생사람의 가슴에 불을 질러 홧병에 걸려 죽게 하실 것이다. 그의 재물은 화염 속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10:17, 새번역)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불꽃이 되셔서, 가시나무와 찔레나무를 하루에 태워서 사르실 것이다.

(10:18, 새번역) 그 울창한 숲과 기름진 옥토를 모조리 태워서, 폐허로 만드실 것이다. 마치 병자가 기력을 잃는 것과 같게 하실 것이다. / , '영혼과 육체를 아울러'

(10:19, 새번역) 숲 속에는 겨우 몇 그루의 나무만 남아서, 어린 아이도 그 수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10:20,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과 야곱 겨레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시는 그들을 친 자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주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할 것이다.

(10:21, 새번역) 『③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 , '스알야숩'

(10:22, 새번역) 이스라엘아,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여도, 그들 가운데서 오직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너의 파멸이 공의로운 판결에 따라서 이미 결정되었다. / , '스알야숩'

(10:23, 새번역) 파멸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주님, 곧 만군의 주님께서 온 땅 안에서 심판을 강행하실 것이다.

(10:24, 새번역)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온에 사는 나의 백성아, 앗시리아가 몽둥이를 들어 너를 때리고, 이집트가 그랬듯이 철퇴를 들어 너에게 내리친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10:25, 새번역) 너에게는 머지않아 내가 분노를 풀겠으나, 그들에게는 내가 분노를 풀지 않고, 그들을 멸망시키겠다."

(10:26, 새번역) 만군의 주님께서 오렙 바위에서 미디안 사람을 치신 것 같이 채찍을 들어 앗시리아를 치시며, 또한 이집트에서 바다를 치신 것 같이 몽둥이를 들어서 그들을 치실 것이다.

(10:27,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앗시리아가 지워 준 무거운 짐을 너의 어깨에서 벗기시고, 앗시리아의 멍에를 너의 목에서 벗기실 것이다. 네가 살이 쪄서 멍에가 부러질 것이다. / 칠십인역에는 '네 어깨에서'

(10:28, 새번역) 앗시리아 왕이 리몬에서부터 올라가서 그가 아얏으로 들어갔다. 미그론을 지나서, 믹마스에다가 그의 군수품을 보관하였다.

(10:29, 새번역) 험한 길을 지나서, 게바에서 하룻밤을 묵겠다고 하니, 라마 사람들은 떨고, 사울의 고향 기브아 사람들은 도망하였다.

(10:30, 새번역) 딸 갈림아, 큰소리로 외쳐라. 라이사야, 귀를 기울여라. 가련한 아나돗아, 대답하여라.

(10:31, 새번역) 맛메나 사람이 도망 친다. 게빔 주민이 그 뒤를 따른다.

(10:32, 새번역) 바로 그 날, 벌써 적들이 놉 마을에 들어왔다. 딸 시온 산에서,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먹을 휘두른다.

(10:33, 새번역) 그러나 주님, 곧 만군의 주님께서 그들을 나뭇가지 치시듯 요란하게 치실 것이니, 큰 나무들이 찍히듯, 우뚝 솟은 나무들이 쓰러지듯, 그들이 그렇게 쓰러질 것이다.

(10:34, 새번역) 빽빽한 삼림의 나무를 도끼로 찍듯이, 그들을 찍으실 것이다. 레바논이 전능하신 분 앞에서 쓰러질 것이다.

(9:27, 새번역)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10:22; 23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3, 개역)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3, 새번역) 성경에 기록하기를,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믿으며, 그러므로 말합니다. / 116:10(칠십인역)

(116:10, 개역) 내가 믿는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116:10, 새번역)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우냐?" 하고 생각할 때에도,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16:10, 공동) '내 인생이 왜 이리 고달프냐.' 하고 생각될 때에도 나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116:10, 바른) "내가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고 말할 때도 나는 믿었다.

(116:10, 현대인)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나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고후 4:14, 개역)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 4:15, 개역)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7, 개역)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전 9:27, 개역)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지지난 주에 계시록을 녹음하면서

엄집사님 질문에 답한 내용을 말하면서

미리 토요일에 적은 글을 보탤려고 했는데 까먹어서 또 까물까 싶어서

아예 지금 올립니다.

 

고후 412절 까지 올렸는데

오늘은 그 밑 구절까지 올려봤는데요

 

사도바울이 자기 스스로를 치는 이유가 바로 자기를 침으로써

즉 치는 것이 먼저 있고 그 다음 시간에 사도다움이 되는게 아니라

시간의 역순으로

사도성이라는 성령의 은사가 덮쳐졌기 때문에 안 치고는 못배기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젓선지자와의 차이 라는 기능으로 인해서

안 치고 싶어도 칠 수밖에 없는 기능이 덮쳐졌으니 이것은 행함이 아닌 믿음이지요

행함이 아닌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는 겁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닌 행함이 있는 펄떡 펄떡 살아 있는 믿음이다는 겁니다.

 

흐릿한 무목적성이 아니라

또렷한 목적성으로 목숨 걸 수밖에 없는 행복에 차있는 자기를 치는 것이다 말이죠

 

결국 이것은 사도라는 직분 곧 은사란 나는 죽음에 넘겨지고

상대적인 성도인 너희는 생명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는 겁니다.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이것을 고전 9:29절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보태고 싶었습니다.

너무 너무 딱 들어 맞거든요.

 

(고전 9:27, 개역)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자 이것이 사도라는 기능이듯이

오늘 나오는 몽둥이와 남은자의 차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차이성을 이번주 설교에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즉 두 패로 가르는 차별 구별 구분 분리하기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이 사도라는 그릇에 담겨져서 내려온다는 겁니다.

즉 때려죽어도 거짓선지자의 노선에서는 안 온다는 말이겠죠.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정우성)

 

그런데 이 너무 당연한 것이 막상 실전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거짓선지자의 노선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귀를 거치지 않고서 바로 예수님께 나아갈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자기가 예상했던, 자기가 고대했던 메시아가 아니였더라 말이죠

그래서 꿈에도 몰랐죠 예수님을 바알세불 걸린 마귀 왕이라고 몰아세우지 않나

심지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 까지 하더라 라는 겁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들통내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거친다 말이죠.

 

미디안의 날을 거치지 않고서 구원의 날을 바라다 보니까

부자청년처럼 근심하고 등돌리고 떠나가 버리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비밀인 선지자의 노선을 그들은 거부했다는 겁니다.

사도라는 기능의 노선으로 하나님의 비밀이 내려오는데

이것을 거부하는 겁니다.

 

즉 사도의 기능이나 또는 참선지자의 노선은 무엇을 외치는고 하니

본인들 자체가 죽음에 넘겨짐으로써 성도들을 생명에 거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데

그냥 독자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반드시 거짓선지자나 삯꾼목자와 맞물려서 그 차이로써 죽음에 넘겨지니까

졸지에 하나님의 비밀은 두 패로 나누어짐을 펼치더라 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몽둥이로 나타나고

또 하나는 이 몽둥이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목 베임을 당하는 겁니다.


자 그럼 시체는 누굽니까? 이스라엘이지요

시체로 만든 몽둥이는 누굽니까? 앗수르죠 과거 애굽이 그랬다 말이죠

 

그런데

이거 변함없습니다.

누가 봐도 시체될 운명은 이스라엘이고

몽둥이로 시체로 만들자는 앗수르 또는 애굽입니다.

여기에 그 어떤 누구도 반대 될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자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시체 밑에 또 누가 깔려 있다는 겁니다.

누구냐 하면 애굽입니다. 앗수르입니다.

( 10:4, 개역) 포로 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이게 말이 되냐 말이죠

 

분명 미디안의 날이다 말이죠

하만의 날이였다 말이죠

앗수르의 날이였다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도리어 시체에 깔려 죽는 시체가 되어 있는 겁니다.(부정의 부정)

 

그리고 탈취물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긴다는 겁니다.

이것을 희년이라고 하는데

(사 9:3, 개역)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사 9:4, 개역)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희년이 믿음의 날인데

믿음이 주체가 되는 날인데

인간이 믿는게 아니라 믿음이 인간에게 덮쳐지는 날인데

분명 포로 되었다 말이죠

갇혔다 말이죠

억눌렸다 말이죠

즉 죽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살아났고 자유케 되고 해방이 되는 구원의 날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냥 바로 구원이 아니라

포로였었었는데

갇혔었었었는데

억눌렸었었는데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사냐 말이죠

 

네 맞습니다.

말이 되는 구원이 되면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말이 안되는 겁니다.

 

왜 말이 안되냐 하면

분명 앞의 미디안의 날이 있었다 말이죠

마귀가 승리했다 말이죠

애굽이 이겼다 말이죠

하만이 이겼어요

 

누가 봐도 말이죠

 

그런데 말도 안되고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 딱 3? 너무 긴가? 1초 만에 뒤집어 지더라 말이죠

 

이게 하나님의 비밀이다는 겁니다.

에서는 미워하기로 작정이 되었고

야곱은 사랑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두 패로 나누어짐이 바로 비밀이다는 겁니다.

 

누가 봐도 장자권은 형 에서이거든요

불변입니다. 시간을 거스를수가 없어요 역사 이거든요

 

그런데 말도 안되게 뒤집어 져요

? 이게 하나님의 비밀이다니깐요

그것도 또렷하게 말이죠

이삭이 아무리 아버지라도

아무리 에서가 바친 고기를 무지 좋아라 해도

아무리 야곱을 싫어해도

이삭이 장자로 삼더라 말이죠

 

이것은 곧 또 가인과 아벨의 두 패로 나누어지는 살인사건으로 이어진다 말이죠

 

그러니 장자권이 축복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도망치지 않으면 안되는 저주처럼 보인다 말이죠

몽둥이를 그럼 누가 쥐게 됩니까? 형 에서죠

반대로 동생 야곱은 어떻게 됩니까? 죽은 시체나 다름없죠

 

이게 하나님의 비밀이 떳다는 이유로 두 패로 갈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비밀의 증상인거죠

 

자 이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나타납니다.

 

누가 몽둥이를 쥐게 됩니까? 바리새인 유대인 빌라도 등등

그럼 누가 시체가 됩니까? 예수님 이지요.

 

자 그럼 누가 돌아올까요? 몽둥이가 돌아올까요 아님 시체가 돌아올까요?

 

시체가 돌아왔다는 영화도 있었는데

 

남은자가 돌아온다 말이죠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비밀이였으면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을 남은자 라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포로된 적도 없고

갇힌 적도 없고

억눌린 적도 없으니

 

몽둥이에 의해 시체도 된 적도 없다 보니까

 

시체가 돌아와야 하는데

 

시체가 아니면 몽둥이다는 것인데

졸지에 그들이 십자가에서 몽둥이로 앗수르로 애굽으로 들통나더라 라는 겁니다.

 

시체였으면 돌아왔을텐데

시체 아니다고 하니 몽둥이로 들통나더라 라는 겁니다.

소경이였으면 볼 것인데

소경 아니다고 하니 영원이 못 보는 겁니다.

 

무엇을? 하나님의 비밀을

바로 예수님을

바로 이스라엘의 흥함과 패함을 나누는 비방받는 표적을

그들은 무시하는 겁니다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그래서 참선지자는 또는 사도는

복음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게 되는 겁니다.

 

내 죽고 너 살아라 라고 말이죠

 

우블리처럼 니 죽고 나 죽고가 아니라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을 치는 겁니다.

자기를 쳐야 구원이 되는게 아니라 그건 행함이고 그건 역사 시간이고

반대로 이미 구원이 덮쳐졌기에

복음에 매인바 된 몸이라서

하나님의 비밀을 담았기에

그 증상으로써 핍박받는다는 겁니다.

죽음에 넘겨짐을 당한다는 겁니다

남들이 핍박하기도 전에 자기를 자기가 핍박한다 말이죠

 

이것이 거짓선지자와의 차이이거든요

 

거짓선지자는 그럼 딱 하나 밖에 안 남았죠

죽음에 안 넘겨지니까 시체가 안되니까

뭐만 된다? 기능이예요

바로 몽둥이를 쥐게 되는 겁니다.

쥐기 싫어도 소용없어요

하나님의 비밀이 떠버렸기에

몽둥이 안 쥐고 싶어도 안쥘수가 없는

반드시 마귀 짖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비밀이 아니고 무엇이겠냐 말이죠

 

마치 이것은 애굽 또는 앗수르가

자기들의 칼에 의해 막 죽어나가는 그 시체에 깔려 죽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무협영화처럼 전쟁에서 큰 창칼로 막베어나아가는 장수가 있는데

그 장수가 한번 베면 추풍낙엽처럼 막 우수수 떨어져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정작 그 시체에 깔려 죽는 자가 그 장수라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사건이겠냐 말이죠

 

(10:4, 개역) 포로 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자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불의가 들통나는 겁니다.

율법을 쥐어주니까 아주 난리났어요

 

(10:1, 개역)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솔로몬의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두 패로 나누는데 있어서

누구에게 몽둥이를 또 누구에게 죽음에 넘겨짐을

주느냐로 나타나는 겁니다.

 

참선지자 본인이 죽임에 넘겨지기에

이스라엘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반면에 거짓선지자는 이스라엘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외침으로 인해서

눈에 거슬리는 참선지자를 죽일 수 밖에 없는 몽둥이를 쥐게 되더라 말이죠.

 

하만과 에스더의 대립구조가 바로 하나님의 비밀의 증상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하만은 끝에서 지옥이 땡기는 자로써

에스더는 끝에서 천국이 땡기는 자로써

그래서 하만은 몽둥이를 쥐고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다윗의 자리에 놓여져서 한 아기를 맞이하는 겁니다.

보배를 담는 그릇은 처음부터 죽으면 죽으리라 였었었다 말이죠

 

뭉둥이가 돌아오는게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가 돌아와요

보배가 담기는 그릇이다 말이죠

 

실상은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엄청난 큰 심히 큰 보배에 찰싹 철거머리처럼 딱 달라 붙어서

보일락말락 째깨만한 그릇들이 우렁이 알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다 말이죠

?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 해서 매 맞아 죽음에 넘겨졌거든요

이것 보다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반짝 반짝 빛나는 것 있으면 나와보라 말이죠

 

몽둥이 아무리 쥐어봤자 흐릿해요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시체를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역시나 그 시체에 깔려 죽을 뿐이다 말이죠

몽둥이 쥔게 착각한거다 말이죠

살고자 총 쥐었는데 도리어 죽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도리어 살더라 말이죠

 

몽둥이는 아무리 해도 안 돌아와요 ~~~ 부산항에 ㅋㅋ 아무말 잔치인 의문일 뿐이다 말이죠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돌아 옵니다

남은자만 돌아오거든요

 

또렷하게 밝히 보이는 믿음이니까 말이죠

 

자 임마누엘이 떳기에

남은 씨가 떳기에

이렇게 두 패로 나누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떳기에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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