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승리와 고난 (12: 9-17)

계 35 성도의 승리와 고난 (계 12, 9-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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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개역)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2:11, 개역)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12, 개역)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2:13, 개역)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2:14, 개역)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2:15, 개역)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2:16, 개역)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2:17, 개역)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12:10, 새번역) 그 때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이렇게 울려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의 동료들을 헐뜯는 자,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헐뜯는 자가 내쫓겼다. / 또는 '메시아' , '형제들'

(12:11, 새번역) 우리의 동료들은 어린 양이 흘린 피와 자기들이 증언한 말씀을 힘입어서 그 악마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12:12, 새번역) 그러므로 하늘아,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자들아, 즐거워하여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가 있다. 악마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몹시 성이 나서 너희에게 내려갔기 때문이다."

(12:13, 새번역) 그 용은 자기가 땅으로 내쫓겼음을 알고, 남자 아이를 낳은 그 여자를 쫓아갔습니다. / 또는 '박해하였다'

(12:14, 새번역) 그러나 그 여자는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가지고 광야에 있는 자기 은신처로 날아가서, 거기에서 뱀을 피해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부양을 받았습니다.

(12:15, 새번역) 그 뱀은 그 여자의 등 뒤에다가 입에서 물을 강물과 같이 토해 내서, 강물로 그 여자를 휩쓸어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2:16, 새번역) 그러나 땅이 그 여자를 도와주니, 땅이 입을 벌려서, 용이 입에서 토해 낸 강물을 삼켰습니다.

(12:17, 새번역) 그래서 그 용은 그 여자에게 노해서, 그 여자의 남아 있는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과 싸우려고 떠나갔습니다.

(12:18, 새번역) 『㉥그 때에 그 용이 바닷가 모래 위에 섰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그 때에 나는'

 

 

승리가 있고 고난이 있다는 것은 전쟁 속에 놓여졌다는 것이고

전쟁은 곧 적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의 결과로써

원인 없는 결과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적에 대해서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적을 모른다면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면

 

누가 꾀고 있는 속이는 자인줄 모르고 휩쓸려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저들의 속임수는 의문의 미흡하고 모호한 것에 목매이다 보니

또렷하고 완료가 다 된 십자가의 밝히 보임을 못 보도록 하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그러니 이 광야 곧 한때 두때 반때 라는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12603년 반의

3일의 간극인 십자가라는 그 빈터인 십자가 속은

 

곧 고난 속은 주님의 사랑의 깊이 높이 넓이 길이를 알려주심으로써

상대적인 마귀의 꾀에 인간의 꾀에 짐승의 꾀에 666에게 속지 않는다는 겁니다.

 

영적전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나의 적이 아닌 주님의 적으로써

주님의 원수로써의 마귀와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를 누리는 겁니다.

광야교회에서 말이죠

그러니 신부의 옷을 입혀짐 당한 거룩한 흰옷을 입힘당한

곧 피 발려져서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은

육의 단절이다는 겁니다.

즉 시간의 순서인 노동 인간의 행함의 개입이 없다는 겁니다.

원인이 없어요

미래에서 결과가

원인 없는 덮쳐진 겁니다. 4

 

처녀가 어떻게 남자없이 아빠 없이 아이를 놓냐 말이죠

그런데 두 언약 (4)에서는

수태치 못한 자가 젖을 물리고

해산치 못한 자가 해산한 자의 어미의 자식 보다 자식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믿음이 아닌 행함에서는 도저히 말도 안되는 단절성이지요

 

그럼 종교가 이 단절성을 어떻게 이어볼려고 성령을 개방으로 해석하지만

오히려 성령은 더더욱 단절의 단절 이중단절로 나아갑니다.

 

(54:1, 개역)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4:27, 새번역)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54:1

(4:27, 공동) 성서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기 못 낳는 여인이여, 소리 높여 외쳐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인이여, 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으리라." / 이사 54:1.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다섯 여자가 바로 이런 여성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이 단절 속에 놓여졌다 말이죠

곧 고난 곧 광야 속에 옮겨짐을 당한 겁니다.

 

저들 붉은 용의 세계에서 빼돌린 겁니다.

저들 선악의 사고방식에서 말이죠

은혜로 옮기움을 당한 겁니다.

 

그래서 이 육의 차단 단절인 3년 반 동안 머물게 하시는 겁니다.

여기서 십자가로 우리를 낳으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흔적으로 인해 우리가 태어난 겁니다.

세례 연합 말이죠

 

이 성령의 세례를 단절 없이 바로 개방 연결로 해석을 하니까

개혁주의나 성화론 다 엉터리 인 겁니다.

 

다섯 여자 라는 이 부정적인 여성의 단절성 불임성으로 인해

예수님의 승리의 세계 곧 자유하는 여자

하늘에 속한 여자로써 불임을 단절을 누리는 겁니다

 

그럼 상대적인 두 언약의 계집종 하갈 곧 육의 대표성이지요

이들 붉은 용은 어떻게 됩니까?

 

반대로 몽둥이를 쥐고서 참소하죠 고소 고발 송사하죠

무기를 쥔다 말이죠

 

그러니 이 두 언약은 반드시 맞물리는 겁니다.

 

여자인 성도는 이 싸움에 미끼역할로써

저들이 격동할 수밖에 없도록

그 분노에 분노를 더하도록 몽둥이를 아예 주님께서 쥐어주고 있어요

그럼 상대적인 여자는 단절을 누리는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를 누려요

 

?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에

그러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지

행함으로 노동으로 이어지는 법이 없어요

 

믿음의 세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바로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한 것을 택하고

강하고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이사야 14장에서 바벨론 심판 이후 그 뒤의 모든 이방나라가

바로 이 약속대로 배치되면서 멸망당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반대로 마치 하늘에 속한 자유하는 여자처럼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남은자만 돌아오게 되는 방식으로 광야 속에

바벨론 포로 속에 놓여지게 되다가 다시 돌아오죠

그 반면에 이 이스라엘 외의 이방국가는 서로가 서로의 몽둥이 역할로써

서로의 전쟁으로 인해 이 이스라엘의 주변국가들이 약속에 의해 철저하게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말이죠

여러분 주변의 인물들

또는 최근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도

다 주님의 일하심 속에 놓여져 활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역사가들은 한치도 미래를 볼줄 모릅니다.

미래를 과거를 따져서 현재를 거쳐 해석하니까 말이죠

점쟁이 토정비결 이게 다 계명성이 하는 방식이다 말이죠

미래라는 것은 미래에 있는게 아니라 현재에 쳐들어 오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과거를 따질 이유가 없어요

몇날 몇시에 태어난 것이 의미가 없어요

원인이 안되요

그런데 기여이 구지 원인을 맹글어요

선악을 추구해요

원인을 따지겠다는 것이 조건을 따지겠다는 것이

선악을 안다는 것을 구지 내세우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것이거든요

 

이것 마저도 하나님의 경영 속에 저들을 내어버려 두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여자처럼 성도는 주님이 끝까지 매를 대시면서까지

저들 사생아처럼 내어버려두지 않고

간섭하십니다.

 

저들 사생아의 모습이 그야말로 처참합니다.

그 최강의 국가가 하루 아침에

시체가 되더라 말이죠

마치 애굽처럼 출애굽날에 졸지에 쫄딱 망해요

그 망한 것을 뻔히 보고도 지금까지도 모든 국가가 다 따라해요 글쎄

그것이 이사야 24장까지 이스라엘 주변 국가의 멸망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정작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되었다가 다시 돌아올때는

그게 국가가 아니다 말이죠

국가 꼬라지 하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광야예요 광야교회

죽은자 같으나 산 자이다는 겁니다.

여기서 이 불임여성과 같은 이스라엘에게서

아빠 없이 남자 없이

아기가 태어나는 겁니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데?

수태치 못하는데?

해산하는 고통을 느낀적도 없는데?

어떻게 남자 있는 여자가 낳은 자녀보다

더 많은 자녀를 놓냐 말이죠

 

그러니 육을 끌고와서 영을 증거하는 겁니다.

도저히 육에서는 이 영을 무슨소리인줄 모르게 말이죠

두 소욕이 육의 소욕은 영의 소욕을 거스리고

영의 소욕은 육의 소욕을 거스리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요

종교가 어떻게 해서든 해석해 볼려고 애를 쓰나

모잘라 함량미달이야

종교는 국가의 하수이거든요 국가라는 붉은 용의 하수인 짐승이

종교 666이다 말이죠

종교는 어떻게 해서든 국가를 위해서 우상(다니엘서의 금 은 동 철 흙)을 위해서

예수도 끌어오고 하나님도 부처도 다 끌어모아요 신이라는 신

? 자기 배를 위해서

 

그런데 광야에서 매를 대심으로써 저들 사생아처럼 내어버려 두지 않고자

끝까지 낮추시고

곧은 뻣뻣한 완악한 목을 꺽고자

그 자기 배를 빵구멍을 뻥뻥 뚫는 겁니다.

 

그래서 굵은 베옷을 입고 쓰디쓴 말씀을 먹고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쫏는 우리의 습성을

그 배에다가 빵구멍을 놓는 기간이 그 간극이 삼년반이다 말이죠

 

(11:10, 개역)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11, 개역)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죽었다가 다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는

믿음으로 사는 세계

 

한때 두때 반때

엘리야도 그랬지만

 

이사야도 삼년동안 벌거벗고 또 신발도 신지 않은채로 발가벗은 맨발로

지내도록 하시는 겁니다.

 

(20: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저들 애굽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꼬 말이죠

우상이다 말이죠

 

앗수르가 쳐들어 오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게 도움을 청하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발가벗는 겁니다 삼년 동안

 

이것은 저들은 발가벗은 자들이다

장독대에 밑빠져서 새는 바가지다

그런데 갈증난다고 저들에게 우상을 의지하는 자에게 도움을 청하느냐

발가벗었다니깐

 

저들 발가벗은 자들에게 왜 도움을 청하냐 라는 겁니다.

저 부끄럽게 망한 자들인데

이미 망한 것 안 보이니

저 수치를 왜 수치가 제거된 약속의 민족이 왜 수치에게 도움받니?

 

이것이 실상을 보는 눈인데

이스라엘은 그저 현실을 눈에 보이는대로만 보더라 말이죠

즉 허상 허구만 보더라 라는 겁니다.

 

(왕하 6:13, 개역)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왕하 6:14, 개역)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왕하 6:15, 개역)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왕하 6:16, 개역)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왕하 6:17, 개역)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 6:18, 개역)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 정작 이사야가 멸망당하고 수치스럽게 부끄럽게 발가벗은 모습이니까

거꾸로 보이니 말이죠

애굽이 저주 받은게 아니라 도리어 그렇게 말하는 이사야가 아무리 봐도 저주 받아 보이거든요

 

아무리 봐도 예수님이 싫어버린바 된 모습이거든요

풍채도 없고 아름다운 고운 모양도 없고

질고 병들어 저주 받은

그래서 아무도 안 듣는 겁니다.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는 줄도 모르고

우리의 어두운 눈을 뜨게 하실려고 하는 줄 모르고 말이죠

그래서 삼년동안 발가벗는 겁니다. 이사야가 말이죠. 수치를 당하는 겁니다.

누가 알았으리요?

 

바로 이겁니다 아무도 못 듣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의 단절성인데 오늘날 교회는 누구든지 납득이 되는 소통이 되는

종교를 외쳐요 글쎄 사랑받아야 한다고

 

이사야 7장 글에서 언급했듯이

남유다 아하스 왕에게 에브라임과 연합하지 말라고 합니다.

두나라 세나라 자꾸 힘을 끌어모아서 공격하니까

방어할려면 더 큰힘을 지닌 나라와 연합하여서 방어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이것이 나라를 구원해야하는 이스라엘 왕의 임무가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이사야는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 나라는 힘이 쎈 나라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허구이다는 거죠

그들은 그저 연기나는 부지깽이 타다 남은 다 타다 남은 찌끄래기다 말이죠

 

(7:4, 개역)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그래서 이 십자가의 흔적에서 태어난

임마누엘을 증거합니다.

 

이 임마누엘이 떳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태요

주변 국가들이 배치되는 이동상황이다는 거죠

 

이들은 미움받기도 작정이 되었으니까 말이죠 형에서처럼

그러나 야곱은 이스라엘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으니까

저들에게서 빼내시는데

밑둥치 다 짤라서

땅에 속하지 않고 땅에 발 못 딛도록

국가를 의지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녀가 아이를 임신한것처럼

그 날에 이 그리스도의 세계가 저들 붉은 용의 나라를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끼로 이 여자 이 이스라엘 이 성도 하나 잡아먹을려다가

? 아기를 임신했기에

 

그러니 저들은 밤새도록 울부짖는 겁니다.

그 어두움 속에서 빠져나올수가 없어요 시편내용처럼

그러나 주의 인애와 자비가 덮쳐진 자는 아침을 맞이하는 겁니다.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전쟁을 붙이셔서 뒤로 빼돌려 광야로 십자가의 흔적으로

주의 사랑의 깊이 넓이 높이 길이를 알게하시고자 낮추시고 매를 대시는

사생아로 여기지 않으시고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하시는 겁니다.

 

물론 저들은 못 빠져나오죠

저 의문의 반복에서 말이죠

 

그러니 이미 이긴채로 벌어지는 사태요

주변국가의 배치입니다.

 

그것이 바로 계시록 11장에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워짐에 있어서

하늘의 성전에 언약궤가 있다고 했잖아요

 

(11:19, 개역)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나의 죄를 제대로 심판(번개 음성 뇌성 지진 큰 우박)하는

심판주는 주님이지 주 예수 그리스도이지

부지깽이들은 아니다 허상들은 아니다 말이죠.

 

우리를 이 언약궤 속에 담아서 피 뿌리는 겁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거 정치 문제죠

또 십계명 두 돌판 이거 종교문제죠 사랑받기 싸움

그리고 만나는 담은 항아리 이거 경제 문제죠 먹고 마시고 하는 문제

 

이 문제는 예수님께서 복음증거 시작하기 전에

이미 마귀로부터 시험받아서 이긴 문제입니다.

즉 마귀가 이것으로 모든 인간을 장악했다는 겁니다.

경제 종교 정치문제

 

여기에 포로되었고 갇혔고 억눌린자에게 희년이

기쁜소식이 이미 승리한채로 덮쳐지는 겁니다.

유대인 받아라 라고 하니까 안 묵을려고 안 받겠데요 글쎄

 

그래서 패쓰 넘어갑니다.

세리 창기 강도가 먼저 천국에 갑니다.

이들의 허물 세가지가 약속의 박스

예수님의 몸 박스에 담겨져서

며느리 다말처럼 세가지 물증을 저당잡혀서

광야에서 우리를 낳은 겁니다.

 

죽은자인데 산자요

불임여성인데 더 많은 자녀를 놓으니까

이미 승리한채로 벌어지니까

 

수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라고 합니다.

아니 무슨 수로 기뻐하냐 말이죠

여자의 기능은 아이를 못 낳으면 주변으로부터 저주받은 여자라고

대를 끊는 부정한 자라고 공격이 이만 저만치 않거든요

 

그런데 원인 없이 결과가 덮쳤어요

아빠 없이 아이를 낳았어요

 

아 그러니까 아이 못 놓는 불임여성이라고 공격받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예 무시험 합격 하니까

본격적으로 숨어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등장해서 공격하는 겁니다.

 

3장의 전쟁 말이죠

 

바로 이것 때문에 유일하게 인정하시는 것이

아빠 없이 아이를 낳은 여자입니다.

 

마리아요

예수님 족보의 다섯 여자요

오늘날 성도입니다.

 

약속을 임신한 여자

복음을 임신한 교회

 

그래서 이미 임마누엘이 떳기 때문에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다르다 라고

 

니 하나님은 3일의 간극 저 세가지 시험의 광야를 못 통과하지만

내 하나님은 저 광야에서 우리와 결혼 또 우리를 낳은 생명의 주가 되시더라 라는 겁니다.

나의 허물 세가지를 십자가의 피로 덮어버림으로써

거룩한 흰 옷 신부옷

피옷으로 입혀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 시아버지 유다가 찬양 안하고 못 배기죠

그래서 패쓰 넘어갑니다 통과 합니다

함량미달인 666이 아니다

 

흘러 흘러 넘쳐서 초과잉적으로 속건제 20%가 더 넘치도록

신부까정 삼으시니

요셉의 죽음을 들고오니까

이 십자가의 죽음을 들고 오니까

이 모든 허물을 들고오니까

예수님께서 다 사해주시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의사의 기능

못 고치는 병이 없는 겁니다.

죄를 들고오라고

광야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왜 깨끗케 하시고자 말이죠

 

성화론자들처럼 자신들의 손으로 할례하는 식으로 깨끗해지는 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더더욱 완악한 수건을 덮어쓰는 것과 같습니다.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저 세리가 가는 천국이면 더러워서 안 간다고

부활이 없다고 사두개인처럼 형수가 누구의 아내가 되냐고

그거 따진다는 자체가 더러운 천국이면 안간다고

 

그 정도로 선악 선악 선악 법 법 법 번제와 제사에 미쳐 있는

우상 허구 의문에 빠져 있는 겁니다.

 

이 임마누엘 이 이미 떳기에

나라 없이

국가 없이

이미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졌기에

약속의 궤 박스에 우리의 허물이 담겨져서

광야에서 저당 잡혀서

너끈히 이기시는 그 사랑을 보라고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이 사랑만을 쳐다보는 자가

이미 승리한 자요

그리고 우는 자가 기뻐한다고 수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라고

주님의 세계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신나는 피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셔서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주님 자신의 기쁨에 그 잔치에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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