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000 과 시온 산의 어린양 (14, 1- 5)

 

시온 산의 어린양만 따라다니는 144,000명의 새노래꾼

계 38 144,000 과 시온 산의 어린양 (계 14, 1- 5).mp3
9.51MB

(14:1, 개역)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14:2, 개역)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14:3, 개역)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14:4, 개역)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14:5, 개역)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14:1, 새번역)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4:2, 새번역) 그리고 나는 많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은 음성이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음성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노랫가락과 같았습니다.

(14:3, 새번역)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과 그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땅에서 구원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밖에는, 아무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14:4, 새번역)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정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첫 열매로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14:5, 새번역)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을 수 없고, 그들에게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2, 개역)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율법이 가입된 것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함입니다

자 그러면 모든 인간은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시온에서 나옴으로 인해서

곧 심판주가 말이죠

 

자 그렇게 되면 가짜 심판들 가짜 거룩들

율법의 완성자도 못 되는 가짜들

가짜 사랑들이 밝혀 지는 겁니다.

그 인간의 꾀, 속임수가 말이죠

 

그래서 시온산 주변에 의도적으로 산당들이

높이 높이 신비롭게 종교가 세워지는 것을

방치하시는 겁니다.

 

그래 허깨비 우상 그래 그래 부러워 죽는구나

그래 많이 섬겨 봐라 과연 그것이 옳은지 말이죠

 

그래놓고 시온산에서 율법이 나옴으로 인해서

소위 심판주로 행세하는 몽둥이를 쥔자들이 허구로 들통이 나는 겁니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그랬고
예수님 주변의 소위 말씀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몽둥이만 쥐고 심판자 행세만 할 줄 알았지

제대로 심판도 할 줄도 모르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못 보여주더라 라는 겁니다.

진짜 사랑이라면 죄를 그렇게 그렇게 미워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남의 죄를 그렇게 미워하면서 자기 죄악은 오히려 너무 너무 사랑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가지고 정죄할때에

예수님께서 땅에 슥 슥 뭔가를 적으니까

 

돌을 들어서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을려고 했는데

하나 둘 씩 빠져나가는 겁니다.

 

자기 죄를 미워할 정도로 자기를 먼저 돌로 쳐서 죽여 놓고

그 다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 말이죠

 

죄가 없어지고 난 뒤에 돌로 쳐 죽이라 말이죠

 

주님께서 돌로 쳐 죽이지 말아라 라고는 하시지는 않았어요

돌로 제발 치세요

그래 그래 돌로 쳐 죽여라

그러나 그 대신 죄가 없는 자가

죄가 삭제된 자는 그래라 라는 겁니다.

 

땅에 쓴 것은 자기들도 인지 못하는 죄가 아닌

자기자신만이 꽁꽁꽁 가매채 놓은 죄악들을

세상에나 어떻게 예수님이 아시고 적었겠냐 말이죠

아무도 모르는 그 죄를 말이죠

 

오히려 돌을 냅따 내팽개치고 나 살려라 돌삐 맞을라 라꼬 줄행랑 치는 겁니다.

아무도 땅에 쓴 것을 보고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제가 돌삐 맞아 죽어야할 자입니다 라고 하지 않더라 말이죠

 

그러니 정죄는 여전히 있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정죄한 거죠.

도망쳐도 그 정죄는 계속해서 따라다닙니다.

도망친 것이 그 상황에서 벗어난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속임수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는 겁니다.
돌삐가 평생을 따라 다녀요 글쎄 안 보인다고 안도 하니까 속는거죠.

 

그러나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이제 정죄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거짓 여선지자는 끝까지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발악 발악을 하면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식으로 속임수를 펼치는데 있어서

끝까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잡아서 돌삐 쳐 죽이겠다는 식으로

안색이 변하여 돌을 놓지 않더라 말이죠

율법을 놓지 않아요 글쎄!!

본인이 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보다는 깨끗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더 더럽다고 여기지 못하니까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말씀 지키기 주장이 옳아보이는 그 겉, 껍데기만 남들이 알아주면 된다고 보고 있지만

그 자체가 속임수 입니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꾀냐 말이죠.
십자가의 피 용서를 말하기 위한 죄인의 자리 환자의 자리에 놓이지 않는 것은
다 사기치는 속임수일 뿐이다 말이죠.

 

율법을 끝까지 쥐겠데요 글쎄
왜? 거룩하니까!!
아닙니다 거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기를 쥐고 있는 겁니다.

그럼 자기가 자기를 돌로 쳐라 말이죠 왜? 율법 곧 거룩한 말씀이니까 말이죠.

무슨 심뽀인지 율법은 끝까지 안 놓겠다고 하면서

그 돌삐는 자기가 아니라 남을 향해서 기여이 던지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양의 탈을 쓴 늑대이구나 라고 보게 되었다 말이죠

 

우와 저런 지옥, 저런 양탈쓴 무리에서 빼내주신 것 자체가 복 받은 것 아니냐 말이죠
 

재물이 많은 것? 그거 복 아니다 말이죠

 

지옥에서 건져주셨으면 그것 보다 더 충만한게 어디있냐 말이죠

 

그래서 오늘 나오는 십사만 사천명이

새노래를 부릅니다.

 

출애굽 했다는 겁니다.

지옥에서, 우상에서, 해방, 건짐을 받았는데

 

자기가 말씀 지켰거나 해서가 아니라
(포로 되어 갇혔는데 믄 말씀을 지켰겠냐 말이죠, 바벨론 포로됨에서도 마찬가지)

오로지 어린양의 피 흘리심으로

오직 피의 공로로만

그 피가 저들 우상숭배자들 곧 애굽 곧 짐승을 이기시고

피 안 묻은 자는 다 멸망시키시고

 

자신의 피를 바른자는

유리바다를 건너면서

홍해를 건너면서

 

미리암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라 라고 놀래서

너무 너무 놀래서 새노래가 안나오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들에게 무슨놈의 재물이 필요하며

무슨 놈의 건강함과 의로움을 갖추어야 하겠냐 말이죠

그런 조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단 하나 피 때문에 천국 가기 싫어도 천국 갈 수밖에 없는

어린양의 운명과 같이 동행하는 졸졸졸 따라다니는 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오로지 어린양의 피로써 이 죽음을 저 지옥에서 빠져나왔으니

이것 보다 더 또렷한게 어디있냐 말이죠

 

즉 이 어린양과 함께한다는 그 자체가

이 동행이 복이다 말이죠

돈이 아니라 재물이 아니라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재물 재산 건강 의로움 곧 어릴적부터 단 한번도 율법을 어긴적이 없다고 손 치더라도

 

어린양의 피가 발리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말씀 지키기 도사고 나발이고 해도

이 새노래를 못 부른다는 겁니다.

 

너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해서 화목제물을 주셨다는 겁니다.

이 화목 제물 보라꼬 광야 속에 집어넣었다 말이죠

 

모조리 다 지옥에 보내놓고

모조리 다 불뱀에게 물리게 해 놓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고 합니다.

 

그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글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일찍 죽임 당한 어린양입니다.

 

아니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글쎄 누가 봐도 딱 알수 있는 무시 무시한 심판자

골리앗 같은 자인줄 알았는데

아무리 밀어도 밀리지 않는 김종국같은 자 인줄 알았는데

글쎄 어린양이래요 이 어린양이 글쎄 심판주래요

약하디 약한 이 어린양이 말이죠

 

누가 이 싫어버린 질고를 아는 세상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심판주로 보겠냐 말이죠

 

불뱀에게 물렸으면 약을 줘야지 왜 어린양을 주냐 말이죠

아무리 봐도 심판주 안 같은데???

 

그러니 이 어린양에게 입맞추고 졸졸졸 따라갈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말라꼬 광야에 가냐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어린양을 보고파서 졸졸졸 따라다니고자 광야에 가지 않는다 말이죠

죽고자 하는 길에 안 가는 겁니다.

 

그러니 복은 누가 봐도 재물의 소유 정도에 따른 것이다 말이죠

재물이 없으면 매매 자체가 없게 됨으로써 죽은거나 마찬가지다 말이죠

 

누가 매매 자체가 없는 광야로 누가 자발적으로 들어갈수가 있겠냐 말이죠

저마다 율법을 쥐고 행사하는 종교와 국가 속에 갈려고 한다 말이죠

 

그러니

어디 죽음 속에 놓여지기라도 했겠냐 말이죠

포로된 적도 없는데

어떻게 빠져나오는 것이 있겠냐 말이죠

 

모든 종교가 외치는 구원은 그저 보험이고 개타는 것이지

소유가 더해지고

자기유익이 더 커지는 것이지

 

오히려 있던 소유물 날라가 버리면 저주 받았다고 안된다고 할 꺼다 말이죠

 

그저 종교 교리 실천 이것으로 충분히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데

말라꼬 꼬끼오 세 번의 눈물 속에 들어가고자 하겠냐 말이죠

 

이웃사랑 교리만 지키면 충분히 소통되는데

이웃사랑 진짜로 하면 단절 된다 말이죠

그 지킨 것으로 (의인)

아무것도 못 지킨자 (더러운 죄인)에게 아낌없이 다 줄수 있겠냐 말이죠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말이죠

분명 그렇게 하면 본인이 더러운 죄인이 되어 모든 관계가 단절 될 지라도 말이죠

 

그러니 인간의 사랑은 거짓이다 말이죠

인간이 지키는 말씀은 의문이다는 겁니다.

 

부자청년이 왜 근심했겠습니까?

다 주면 자기는 없는데 무슨 수로 천국가겠냐 라고 근심한 겁니다.

천국갈수 있는 마일리지를 다 남주면 무슨 수로 티켓을 사냐 말이죠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 너무 작은 수 144,000에 속하지 못하면

천국 못 가니까 잠을 못 자는 겁니다.

 

그래서 이 숫자 속에 들기 위해서 여호와증인들이 전도를 해대는 겁니다.

그 전도가 지도(자기도) 지옥가고 남도 지옥가도록 하는 속임수인줄 모르는 거죠

 

사랑은 없고

지켜야 잠은 오고

부자청년처럼 근심하는 것을 감추는 속임수인 종교 곧 짐승이다 말이죠

 

이 여호와 증인 아닌 종교가 어디있겠습니까?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모든 종교가 다들 마귀 집단들이다 말이죠.

이슬람 핑계만 댈 뿐이다 말이죠

 

예수님을 안 믿고 눈에 보이는 종교조직을 믿거든요.

 

그러니 새노래를 부를수가 없는 겁니다.

 

홍해를 건넌적이 없는데

아니 그 전에

포로 된 적도 없는데

무슨 빠져나옴이 있겠냐 말이죠

 

구원 개념 자체가 달라요

사람의 구원은 헛된데 왜 자꾸 사람을 구원해 달래

아무도 요나의 표적

예수님이 구원 되기를

말씀이 구원 되기를 바라지 않거든요

누가 자기 구원 내 팽개치고 예수님을 제발 구원해 달라고

교회에 증거해 보세요 당장 쫏겨나지!!!

교회는 예수님을 이용해 돈 버는 돈먹는 하마이거든요

 

약속인 복음의 관심사는 오로지 예수님 구원 밖에 없어요

말씀이 말씀 스스로 말씀을 이루는 말씀 되게 하시는 겁니다.

그것도 주님 혼자만의 공로인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이죠

 

그저 땅의 예루살렘에 산다고 좋아라만 했지

그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주님의 상한마음은 쳐다도 본 적이 없다 말이죠

그 썩어 문들어진 상해서 시커멓게 된 예수님을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누가 저 분을 살려달라고

저분을 구원해 달라고 하겠냐 말이죠

 

맞습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에게 제발 좀 죽어주세요 라고 할 뿐이다 말이죠

정작 안약을 사서 발라보니

예수님의 죽음 덕분에 보게 된 것이

어두운 눈이 뜨게 된 것이

내가 죽어있던 것을 불 속에 있던 것을

살리고자 이 불 속에 뛰어드셨다는 겁니다

 

지옥 속에 뛰어드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심판주가 시온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이다 말이죠

 

안그러면 자꾸 왜 율법 못 지켰냐고 정죄 밖에 없는 거죠.

 

여러분 교회 절간 성당 뭐 예배당도 속하고 그 소위 종교시설을 보고 운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그런 거룩한 물건들과 함께 한다고 좋아라 했습니까?

 

예수님은 울었거든요

 

왜 지옥과 함께 불타고 있느냐 라고 말이죠

 

자기들은 구원받을수 있는 조건이라는 조건을 다 갖출수 있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의 눈물 그것도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그 눈물이 보이겠냐 말이죠

9명의 문둥병자가 아무리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아도

그 동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 결핍을 채우고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그게 매매 소통이거든요

 

예수님이 아무리 자기를 병고쳐줘도 예수님을 따라 갔다가는 단절 되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안 따라 오면 할 말이 없을 껀데

개같은 사마리아 문둥병자 한 사람은 글쎄 예수님을 따라갔네요 글쎄???

자 그래서 심판의 기준이 세워지는 겁니다.

인애와 자비를 안 쫏고 번제와 제사인 우상이나 종교에 빠진자는 지옥이다는

이 두 갈래의 갈라짐이

과거의 행실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래완료인 십자가의 다 이루심에서 율법의 완성인 사랑에 의해서 갈라지더라 말이죠

 

사랑은 현재 이지 과거가 아니거든요

지금 이 순간이다 말이죠

이 현재를 미래완료가 침범하는지

아니면 과거가 흘러 흘러 현재를 구성하는 결국 그래서 미래 조차도 결국 과거가 원인이 되어서

과거 현재 (과거) - 미래 (과거) 가 되는 겁니다.

 

어린양을 따르지 않는 자는 그들 미래도 역시나 과거일 뿐이다 말이죠

 

그러나 어린양을 졸졸졸 따라다니는 자는

 

과거도 미래완료요 현재도 미래완료요 미래도 미래완료이다 말이죠

 

과거의 그 어떤 허물도 다 덮어버리셨죠 묻지도 않고 주님 마음대로 말이죠

현재도 한때 두때 반때 속에 집어넣죠

미래도 눈에 보이는 것 일체 기대 걸지 않는겁니다.

이미 다 이루었는데

말라꼬 국가 이스라엘을 의지 하겠냐 말이죠

이미 새 이스라엘이 다 완성되어 이루어졌는데

그래서 오히려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눈에 보이는 성전, 교회, 오히려 허물어 버리는 겁니다.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겁니다.

이미 완료된 새 몸이 있거든요

 

새로움이란 지금 작용하고 있지

그것도 헌 것과 한 세트를 구성해서

헌 것이 허물어 뜨리면서 말이죠

헌것과 새 것을 썩으면 부대가 터진다 말이죠

 

그러니 새 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은

누구를 무엇을 노래 할까요?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아예 노래꺼리가 안 되는 겁니다.

찬양 꺼리가 안되더라 말이죠

 

시편을 지키는 자는 찬양자가 아니다 말이죠

도리어 그런 찬양자는 아무리 시편을 불러도 지켜도

시편대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도록 되어 있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참 이상하죠

다윗이 시편에서 예수님만 찬양 했는데

다윗의 자손을 기다린다고 시편을 외운 자들은

예수님을 찬양을 못하더라 말이죠

 

이게 새노래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새노래 땡땡교회 라고 이름도 개명해요

그런데 새노래가 아니더라 말이죠

 

포로된 적도 없는데 어떻게 빠져나오면서 그 홍해를 건너는

유리바다를 건너는 자만이 부르는 새노래를 부를수 있겠냐 말이죠

 

다윗도 꺽으신 뼈가 아니였다면

못부를뻔 했다 말이죠

 

다윗에게서는 새노래를 부를수 있는 그 어떤 근거가 아예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는 회개 금식 눈물 기도를 안 드리겠다고 한다 말이죠

안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 회개 이다 말이죠

오히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이게 회개다 말이죠

 

로또 당첨 연속적으로 100번 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는거다 말이죠

 

밥 안 먹는게 금식이 아니라, 커피 마셔 가면서 잠 쫏는 철야금요가 깨어있는게 아니라

밥 맛있게 먹는게 금식이다 말이죠 잠을 쿨쿨 잘 자는게 깨어있는거다 말이죠

 

왜 한 세트이니까 말이죠

 

심지어 예수님 마저도 저런 종교물건처럼 다룰려고 하는 자가 쫏아오니까 도망치셨다 말이죠

우시거나 도망치시거나

왜 종교물건처럼 가정에 마리상 두고 촛불 켜 놓고 기도하는 식으로

예수님 하나 장만 할려고 종교의 거룩한 물건 다루듯 소유 할려고 말이죠

 

그러니 도망치셔야지요

 

전혀 우리 인간과 안 맞아요

맞는 것 하나 없이 피해 가십니다.

나에게 인간에게 포착 되는 예수님은 가짜 예요

그것을 오늘날 교회가 포착했다고 자랑하니까

웃끼는 소리죠 들어보면 다 가짜예요

 

시어머니 잔소리 못하겠끔 교회 안에 꽁꽁꽁 묵어 두는 식이다 말이죠

그 잔소리 일주일에 한번만 들어줄게 라고

매일 매일 간섭하지 말라고 말이죠

 

자 그런식으로 예루살렘을 보시고 예수님이 우시는 겁니다.

지옥 백성인줄 모르고

천국백성인줄 알고

지옥을 잔뜩 꾸려낮더라 말이죠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지옥을 잔뜩 끌어모아놓았어 그래놓고 천국 간데?

도대체 마약을 얼마나 마셨으면?????

 

예루살렘에 살면서 뿌듯했는데, 복받았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신다면

그게 지옥이 아니고 뭐겠냐 말이죠

교회가 지옥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빠져나와야죠

 

그리고 그 땅의 예루살렘을 쳐버려야

하늘의 예루살렘이 보일꺼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율법은 시온에서 나오고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 예루살렘을 칠 자가 없는데

고맙게도 예수님이 치시는 겁니다.

천국은 그렇게 침노 당하는 겁니다.

 

갑자기 영화 매드맥스가 생각나네! 물은 그 장소에만 나오니까 말이죠

 

자 그러니 두 언약 두 여자가 한 세트를 구성하듯이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을 깨지 않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예루살렘은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장소로서의 예루살렘을 보거나

그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복받았다고 착각하면

또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거다 말이죠

 

눈에 보이는 교회를 깨지 않으면

눈에 안보이는 예수님의 몸은 안 보이는 겁니다.

실상을 봐야지

왜 허구를 보냐 말이죠

 

성전을 헐라

내가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

 

아니 이 소리를 글쎄 성전에 미쳐있는 자들에게 대 놓고 말을 했으니

안 죽고 배기겠습니까?

 

저들이 네네 제발 좀 교회 허물어 주세요 라고 하겠냐 말이죠

반대로 처참하게 갈기 갈기 찢어 죽이니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저주를 받았다고 뒤짚어 씌워 퍼붓겠다고

정작 하나님을 죽이더라 말이죠

 

이것이 비밀 곧 십자가의 지혜 곧 요나의 표적입니다.

이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데요

자기 백성에게 죽임 당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마귀의 속임수를 볼 길이 없거든요

 

괜히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되어 있는게 아니다 말이죠

그래야 새 노래를 부르는 자로 만드신다 말이죠

안그러면 헌 노래에 빠져서 시편 외울줄 안다고 그거 그 헛된거 자랑만 할 뿐이다 말이죠

시아버지 유다 보세요 찬양자 보세요 약속의 가문이 기껏 하는 것이

약속의 가문을 이 며느리 개같은 이방인 여자가 다 망친다고 화형 시키잖아요

그런데 이게 진짜 약속의 가문을 살리는 구원자이다는 겁니다.

나 시아버지 유다를 가짜 찬양자로 못 밝혀 내는 며느리는 가짜다 말이죠

그것도 약속의 언약의 사람인 시아버지를

그것도 개같은 이방인 여자로써 며느리 로써 말이죠

 

시아버지를 기여이 이 도장 도장끈 지팡이가 옳았다고 찬양케 만드는 것이

 

기존의 약속의 혈통이라고 우려먹는 그 찬양 그 자랑이

이제는 도장 도장끈 지팡이를 찬양하는 새노래를 부르는 자가 되더라 말이죠

 

이 부정한 세가지 도구

이 부정한 십자가의 3일의 간극이 옳았다는 겁니다.

 

어린양은 우리를 이 속에 집어넣습니다.

실상을 보라고

 

너희는 다 불뱀에게 물려 지옥 속에 있는 죽은자라꼬

누가 살리는 심판주인가를 보라꼬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기만 하면 낫는다고?

아니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무시무시한 돌삐인줄 알았는데

어라 난지 팔일 밖에 안되는 약하디 약한 어린양이네

 

누가 저 어린양을 보고 따라가겠냐 말이죠

 

제물이 될꺼 뻔한데?

 

그런데 우짭니까? 이 화목제물 안 쳐다보면

사랑을 모르는데

 

다 우상에 빠져서 짐승의 속임수에 다 넘어가있는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데

 

아니 그것 자체가 안 보이는데

 

지옥 속에서 우리가 지금 불타고 있는 줄 몰라요

미래에 죽어서 가는 줄 알아요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셔서 피를 바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안 보여요

보이는대로만 살도록 되어 있지

안 보이는 것을 못 본다 말이죠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내려오는 말씀을 못 보고

땅의 예루살렘 저 멸망 속에 놓여진 예루살렘에 산다고 좋아라 하고 있더라 말이죠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어라 라고 하시는 것은

조금 있으면 예루살렘 멸망 한다는 겁니다.

저들은 절대로 그렇게 안 보이고

그저 불쌍한 청년 너무 너무 정치인들에게 종교인들에게 까불다가 죽구나 라고

안타까워 하는 그 허상에

실상은 오히려 너희가 죽는다고 하시는 겁니다.

여자에게 아무리 죽는다고 이야기 해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여자의 전부는 자식이거든요

자식 이야기 해야

빈 말이 아니다 라는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이 허물어지지 않는 이상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리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내려온들

안들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원천인 성전이 있기에

다시는 이 눈에 보이는 성전을 건드리지 못하게

자기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인간의 신체를 그것도 율법 지키는 말씀 지키는 자기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그것도 율법대로 죽이겠다고 캬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마귀가 원하는대로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이것이 아주 아주 예수님께서 마귀의 실상을 제대로 들추어내신거다 말이죠

아니다 라고 말할수 있는 자 있으면 나와보세요

 

그래서 이 십자가는

헬라인 곧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고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 저 걸림돌만 없으면 좋겠네 ~~~

 

종교는 예수님을 활동 못하도록 잔소리 못하도록 가두는 것이고

반대로 예수님의 몸은 인간을 꽁꽁꽁 묵어서 십자가에 못 박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식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이미 성취 다 이루었다 말이죠

새 몸이

이전 것의 몸을 지나가게 했다 말이죠

 

새노래가 이전의 노래를 지나가게 삭제 시켜버렸다 말이죠

 

보라 새 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어린양만 졸졸졸 따라다니니까 새 몸만 있고 새 노래를 불러요

 

헌 몸처럼

지나간 몸처럼 선악에 저촉 당하지 않아요

마귀만 애달아서 자꾸 허물을 들추어 본다 말이죠

 

부끄러운 구원이니 뭐니 하면서 종교심을 집어넣어요

 

언제 그거 따져서 한 쪽 강도가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새노래를 불렀습니까?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세 번 씩이나 베드로가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예수님 세 번 부인할때는 언제고 3초도 안되어서 새노래를 부르냐 말이죠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이죠

 

새 노래 앞에서 이전의 것을 가지고 올 필요가 없거든요

삭제 되었고 지나가 버렸는데

왜 지나간 것을 다시 끄집어내어서

들추어 보냐 말이죠

 

주님 본인이 용서했다는데

왜 마귀가 들추어 보냐 말이죠

 

그러니 마귀의 실상을 알아야

새노래를 부를수 있는 겁니다.

 

마귀의 실상이 십자가에서 밝혀지니까

십자가 속에 들어가 보니

그 우상 권력 힘 돈 이 모든 것들이 허구 허상이였다는 것을

실상 속에 있게 되니 알게 된거다 말이죠

 

진짜 복은 십자가에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사는

이 삼일의 간극

 

그래서 이 새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1260일 이라는 삼년 반 한때 두때 반때 속에 놓여지는 겁니다.

주님이 그 속에 집어넣어서

새노래를 부르게 하셨다는 겁니다.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라고 우신 주님의 사랑가 속에 놓여지게 되니

비로소 부르게 되지

 

이 꼬끼오 밖에는 아무리 노래 잘부르고 해도 헌노래 가짜노래

첫아담의 노래일 뿐이다 말이죠

헌 술은 헌부대에만 담고

새술 새언약 새노래를 새 몸과 동행할 때만 나오는 겁니다.

 

그 새 몸이 글쎄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님의 몸

죽었다가 다시 삼일 만에 다시 사신 몸

그 몸과 동행 하라고

우리를 그리심산이 아닌 에발산에 몰아가서 상대방 산을 향해 외치는 겁니다.

축복산이 아닌 저주산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

인간의 몸 절대로 십자가에 달릴수 없는 십자가와 무관한 몸이 아닌

십자가에 달린 새 몸 곧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양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만을 쳐다보는 자만이 새노래를 부르는 자입니다.

인간의 몸

죽었다 깨어나도 이 몸을 절대로 포기 못하겠다는

인간이라는 우상을

우상만을

인간만을 건드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한 세트 이거든요.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자 말이죠

 

왜 우상이거든여

 

인간의 몸은, 인간의 신체는 우상이다 말이죠

 

시온 산의 어린양이 이 뜨인돌로써

이 우상을 겨냥하고 등장하는 겁니다.

모든 산당을 깨부수듯이

모든 육체를 허물어버리고자 못 박고자 말이죠.

 

그리고 자유하는 자

곧 죽음을 이긴자

어린양과 함께 함으로 동행함으로

어디든지 따라가는

죽음 속이든 불 속이든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이 자유하는 자는

예루살렘 곧 예수님의 몸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말씀 곧 약속이다 말이죠

 

기생 라합 처럼

눈에 보이는 땅의 이스라엘 나라?

땅의 예루살렘?

땅의 교회당? 다 팔아 버리고 날려버리고

애굽을 허물어버린 여호와께 다 넘겨버리듯이

 

이미 완료된 예수님의 몸이 세워진 것을 보고

신나게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짖겠다고

예수님의 몸만 바라보는 자이지

 

눈에 보이는 교회에 미친 자가 아닙니다.

 

그 속에 내 열심 충성 봉사 다 있는데 그거 지우지 말래요

내 열심이 특심인데 나만 남은자 였는데 그거 없애버리면 안된데요

그거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만이 지워버립니다

배설물 똥 덩 어 리 라꼬

 

그래 되면 새노래를 부를수 없다 말이죠

 

오히려 삭제 됨을 당한 자만이 새노래를 부르고

새 몸만 쳐다 보고 어린양만 졸졸졸 따를꺼 아니냐 말이죠

 

바로 그런 교회로부터 빠져나오는

출교회 입예수님의 몸

3일 만에 다시 사신 그 예수님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자가 이 새노래를 부르는 자입니다.

 

세상에나 저 애굽이 지상천국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루아침에 쫄딱 망하니까

그 껍데기가 벗겨져서 실상을 보니 지옥이였다는 겁니다.

저 지옥에서 건짐 받았다는 자체가 복이지

 

재물이 많거나 의를 많이 쌓았거나 건강한게 복이 아니다 말이죠

 

그러니 저 지옥에서 빠져나온 것이 얼마나 복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환자 만들어

(그래서 일부러 환자 되는게 아니라 그래 되면 존재이지 기능이 아니다 말이죠)

죄인 만들어

(기능은 누가 의사인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날 때부터 소경되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한 세트로써 바리새인은 소경 아니다고 하니

이 하나님의 영광과 무관한 새노래와 무관한 자로 들통이 나는거다 말이죠.

성도는 뭘 해도 환자요 죄인입니다. 새삼스럽게 죄인으로 설정하지 말고 골프치면 다 죄인 되나요? 자기 꾀에 자기가 속은 거죠. 저 사람에게 없는 조건을 나는 갖추었다고, 아니 의사를 말하는게 아니라 죄인 조건 갖춘 자기를 외쳐요 마귀죠 )

포로된자 만들어

억눌린자 만들어

죽은자 만들었다가

모조리 다 지옥에 넣어 놓고서

다 불뱀에게 물려 죽게 만들어 놓고서

시온에서 율법

곧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는

 

저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쳐다보라 라는 겁니다.

안 쳐다보고 못 따라가는 자는

새노래가 없는 거죠 뭐

중립은 없어요

모조리 다 짐승의 수에 속한 자 일 뿐이죠

 

빼내시는 그 어린양의 피를 바르시니까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을 보게 됨으로써

 

저것이 부요한게 아니라 헐벗은 허상임을 보게 되더라 말이죠

 

부자가 황금옷을 입고 있는데 정작 주님은 헐벗은줄 모른다고 안약사서 발라서

어서 돈을 줘서라도 심판 속에서도 살아남을수 있는 옷을 사서 입어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글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3:18, 새번역)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서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심판의 불을 견디는 새 옷이 그들에게 없어요

이것을 정결로 표현했다 말이죠

주님이 일방적으로 거룩한 흰옷 신랑이 입혀준 피흘려 만든 신부옷 이 아니면

그 어떤 누구도 심판의 불에 활활 타 버릴 뿐이다 말이죠

이 현실을 외면한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옷

솔로몬이 입은 옷 입어 본들

발가벗겨진 거나 마찬가지다 말이죠

벌거벗은 임금님이 글쎄 어린아이의 말을 들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린양을 쫏아갈 리가 없지요

왕의 체면에

어른들의 선악만을 쫏아가야 체면을 안 구긴다 말이죠

 

오히려 왕 된게 지옥 가게 된 거다 말이죠

예루살렘에 사는게

교회에 다니는게

 

그거 안 깨면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오는 말씀이 없어요

아니 말씀 자체가 그것을 깨뜨리는데 건들지 말래요

 

반대로 누가 봐도 헐벗은 가난뱅이 서머나교회가 오히려 주님의 눈에는 부요하다는 겁니다.

철철철 흘러 넘치는 충만 속에 가득하다고 말이죠

 

이것이 한 세트로써 두 언약을 이루는 겁니다.

성경은 항상 그렇습니다.

 

(2:8, 개역)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2:9, 개역)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이미 죽었다가 살아난 그 십자가의 간극 속에 놓여졌기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죽은자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산자요

없는자 같으나 부요한 자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허구로 만들고

눈에 안보이는 것은 실상으로 만든다 말이죠

 

실상은 유대인이 아라 사단의 회인데 그런 사단의 회 될래?

 

아니면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와 함께 동행하는

어린양과 같은 운명인

3일의 간극, 1260일 삼년반동안 비도 물도 못 마시는 광야 속에 놓여진

한 때 두때 반때 속에 놓여진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신부 될래?

 

신부가 한 몸 아니냐 말이죠 따로 국밥의 따로된 몸이 아니라

 

누가 심판자이냐 라는 겁니다.

율법도 완벽하게 못 지키는 자들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진 적도 없는 자들이

 

(고전 1:13, 개역)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

 

심판자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나를 제대로 심판 하시는 그 분에게 무릎꿇고 입맞추라 말이죠

 

진노가 급하다 말이죠

 

시온산 절대산 시온에서 율법이 나오는데

 

산당에서 나오는 것들이 나를 제대로 심판하겠냐 말이죠

 

그들은 나의 육체를 죽일지언정 내 영혼은 멸하지 못하는 가짜 심판자들이다는 겁니다.

 

아무리 몽둥이를 쥐었다고 해도 말이죠

주님이 일부러 저들에게 몽둥이를 쥐어준거다 말이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인을 돌로 쳐죽일려고 하는 것처럼

일부러 돌을 쥐어준 것이다 말이죠

그래야 예수님과 저들의 율법 지키기가 차이가 나는 겁니다.

 

예수님도 정죄 하지 않겠데요 글쎄

 

아니 유일하게 정죄하실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님 뿐인데

예수님도 안하겠다는데

양탈쓴 사모는 왜 그렇게 정죄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뻘겋게 큰 글자로 미혹케 하는지

 

인간과 인간끼리의 비교에서 자신은 우위에 있다고 외칠 뿐이지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더라 말이죠

 

뭘 해도 예수님과 비교하면

우리는 순 엉터리 가짜요 거짓인데

예수님과 비교할 생각은 안하고

실상과 비교할 생각은 안하고

 

허구인 인생과 인생끼리 비교를 해요 글쎄

 

먼지와 먼지끼리 비교한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요?

 

누가 박그네 보다 나는 깨끗하다고 말할수 있고

엠비 보다는 나은 인간이다 라고 할 수 있겠냐 말이죠

 

그렇다고 내버려 두라 라는 말이 아니라

죽은자는 죽은자에게 맡겨라 말이죠

괜히 씩씩씩 거리지 말고

 

촛불 들면 저쪽은 그럼 태극기 안들겠냐 말이죠

촛불든 죽은자들에게 맡겨라 말이죠

 

촛불든 안개와 태극기를 든 안개가 서로 지 잘났다고 싸우는데

그 혈과 육의 싸움인 안개를 왜 의미 두냐 말이죠

아무 의미도 없는데

 

저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 새노래가 있던가요?

 

주여 저 지옥 애굽에서

저 성전을 헐라 삼일만에 짖겠다고 한 저 성전인 지옥에서 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하다고 하는 자

새노래를 부르는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어린양을 안 따라다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속에

한 때 두때 반때 속에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실상을 보라고

 

그 불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덩실 덩실 춤 춰요 글쎄

 

주님이 나를 죄인 환자 안 만드셨다면

이 새노래 못 불렀을텐데

 

예수님을 세 번 부인케 만드셔서 죄인이 되니

마귀가 이 미끼를 덮썩 무는 바람에

누가 가짜 심판자이고 누가 진짜 심판주인지

하나는 번제와 제사 어겼다고 정죄하고 돌삐 들고

또 한분은 인애와 자비로 정죄치 않겠다고 하고

 

누가 실상이냐 말이죠

고래등 싸움에 새우처럼 낑기는 바람에 실상을 보게 되더라 말이죠

 

이 십자가의 피로 안약처럼 발라서

아무리 껴 입어도 헐벗은 부자가 아닌

그런자를 부러워 한 것이 다 허구 허상임을

 

실상이라는 믿음 되신 예수님 덕분에

1260일 속에 집어넣어주심 덕분에

죽음 속에

환자 됨 속에

죄인 됨 속에

포로됨 속에 집엄넣어주심 덕분에

 

실상을 보게 해 주신

 

이 십자가의 피로 인해

감사하게도

 

마귀의 속임수를 알게 해주셨다는 겁니다.

 

저 지옥에서 빼내주시고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다는 겁니다.

 

이 종교라는 짐승에게서 건져주시고

국가 라는 짐승에게서 빼내주시더라 말이죠

 

이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니

입이 저절로 이 자유를 노래해요

유리바다를 건너면서

홍해를 건너면서 불렀더 모세의 노래처럼

새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이 새노래만이 우주 만방에 흘러 흘러 넘치도록 까가득 하게 전세계 전지구 전우주에 까지

이미 퍼진 새노래를 신나게 나팔 부는 겁니다.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 하시리로다

 

(136:1, 개역)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 개역)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3, 개역)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4, 개역)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5, 개역)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6, 개역)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7, 개역)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8, 개역)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9, 개역)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0, 개역)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1, 개역)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2, 개역)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3, 개역)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4, 개역)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5, 개역)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6, 개역)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7, 개역)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8, 개역)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9, 개역)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0, 개역)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1, 개역)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2, 개역)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3, 개역)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4, 개역)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5, 개역)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6, 개역)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