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대접과 회개치 않는 자들 ( 16: 1-16)

계 42 일곱 대접과 회개전쟁 (계 16, 1-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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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개역)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16:2, 개역)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16:3, 개역)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16:4, 개역)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16:5, 개역)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16:6, 개역)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16:7, 개역)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16:8, 개역)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16:9, 개역)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6:10, 개역)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6:11, 개역)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16:12, 개역)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6:13, 개역)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6:14, 개역)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6:15, 개역)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16, 개역)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16:17, 개역)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16:18, 개역)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6:19, 개역)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16:20, 개역)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16:21, 개역)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16:1, 새번역) 나는 또 성전에서 큰 음성이 울려오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음성이 일곱 천사들에게 이르기를 "가서,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을 땅에 쏟아라" 하였습니다.

(16:2, 새번역) 그래서 첫째 천사가 나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니,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에게 아주 나쁜 종기가 생겼습니다.

(16:3, 새번역)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닷물이 죽은 사람의 피처럼 되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었습니다.

(16:4, 새번역)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샘물에 쏟으니, 물이 피가 되었습니다.

(16:5, 새번역) 내가 들으니, 물을 주관하는 천사가 말하기를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거룩하신 주님, 이렇게 심판하셨으니,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16:6, 새번역) 그들은 성도들과 예언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므로, 주님께서 그들에게 피를 주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였습니다.

(16:7, 새번역) 또 내가 들으니, 제단에서 "그렇습니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16:8, 새번역)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다 쏟았습니다. 해는 불로 사람을 태우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16:9, 새번역) 그래서 사람들은 몹시 뜨거운 열에 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재앙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고,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16:10, 새번역)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괴로움을 못 이겨서 자기들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16:11, 새번역) 그들은 아픔과 부스럼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16:12, 새번역)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프라테스에 쏟으니, 강물이 말라 버려서,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16:13, 새번역) 나는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와 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6:14, 새번역) 그들은 귀신의 영으로서, 기이한 일을 행하면서 온 세계의 왕들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 대비하여 왕들을 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6:15, 새번역) ("보아라,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며, 자기의 부끄러운 데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 , '자기 옷을 지키다'

(16:16, 새번역) 그 세 영은 히브리 말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16:17, 새번역)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니,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다 되었다" 하는 큰 음성이 울려 나왔습니다.

(16:18, 새번역) 또 번개가 치고, 음성들이 나고, 천둥이 울리고,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이런 큰 지진은 사람이 땅 위에 생겨난 뒤로 일찍이 없었던 것입니다.

(16:19, 새번역) 그리고 그 큰 도시가 세 조각이 나고, 민족들의 도시들도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큰 도시 바빌론을 기억하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독한 포도주의 잔을 그 도시에 내리시니,

(16:20, 새번역) 모든 섬들이 사라지고, 산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6:21, 새번역) 그리고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 위에 떨어지니, 사람들은 우박의 재앙이 너무도 심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먼저 왜 일곱 대접이 왜 떳을까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일곱 대접이 떳다는 자체가 회개하는 자를 모으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곱 대접이 떳다는 것이 안 보이는 자는

회개를 하지 않는 자이다는 거죠

 

우리가 앞에서 일곱인 일곱나팔을 살펴 봤습니다.

일곱인이 왜 떳는가?

 

전쟁 준비로써 전쟁을 벌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곧 악한 영들에 대한 전쟁싸움입니다.

 

이 전쟁 속에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목격자 증인으로써 그 전쟁을 목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아도 전쟁은 벌어집니다.

누가 전쟁 속에 들어가 구경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증인이어야 하기에

목격자이어야 하기에

전쟁이 떳다는 그 자체가

전쟁의 목격자로써 전쟁의 증인으로써 놓여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아닌 자들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피난을 가서

전쟁과 멀리 멀리 떨어져야만 하는 자들이지만

 

이스라엘의 특이성이 이 전쟁

곧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닌

 

악한 영과의 전쟁을 목격하는 목격자로써

전쟁종군기자로써 사진을 찍고 기사를 적고 적어서 기록해야 하는 자로써 임무를 다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죄악을 이기셨는지에 대한 내막을 낱낱이 밝혀 적는 기쁨에

목격자 증인은 기뻐하는 겁니다.

 

다른 기쁨은 없습니다.

 

그러니 탕자는 많이 탕감받아서 그 사랑에 감사하는 기쁨에 놓여지고

맏아들은 죄악과 싸워 이긴 아버지의 사랑이 전혀 안 보이기에

기쁘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일곱나팔은 드디어 전쟁시작입니다.

일곱인을 통해서 전쟁 상대자인 애굽과 곧 악한 영들 곧 우상숭배자들과

자기를 위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자들과 등등의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 드디어 시작이 됩니다.

 

이미 싸움이 벌어졌다는 자체가 이미 승리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죽어도 상관이 없는 겁니다.

 

일곱나팔의 특징은 성도들이 막 죽어나가는데

저들 애굽 저들 큰성바벨론이 분명히 이스라엘을 시체로 만들어버려 죽였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 시체에 깔려 죽는

괜히 힘을 쥐었고 괜히 몽둥이를 쥐게된

그것이 저들에게는 승리가 아니라 도리어 저주인 심판받은 진노의 그릇이고

 

오히려 저런 몽둥이를 쥔 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성도는

심판받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의 죽음과 합하는 연합 세례로써

긍휼의 그릇으로

도리어 저들의 힘을 부러워함으로써 스스로 가리우고자 했던 죄악인 수치를 짤라 굴러가게 하는

애굽을 짤라내는

저들과 영원히 이별 빠이 빠이 분리 구별 단절이 되는

차이성으로써의 전쟁시작이 바로 일곱나팔이다는 겁니다.

저들은 살고자 죽이고 있고

반대로 죽고자 막 죽임 당하는 어리석은 모습이 도리어 산 소망 속에 놓여진

어린양

그냥 어린양이 아닌

일찍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따라다니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애굽과의 차이 분리 단절인 할례인 거죠

 

그래서 이제 일곱 대접은

이 출애굽해서 광야 속에 들어감으로써

드디어 예수님이 당하신 마귀의 세가지 시험처럼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

용은 에너지 힘 국가 권력이고 곧 경제 에너지의 터 위의 국가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종교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짐승은 네 우상은 부활하는 기적으로써

종교로써 사람을 미혹하고

거짓선지자는 음녀처럼 제사장 딸인 여자처럼

속임수로 꾀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속임수를 펼치는

예수님의 죽음이 또렷한데

평강이다 평강이다 대충 심상히 고치는

정치술 곧 의문의 반복

흐릿함의 반복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의문을 반복하는

이 정치 술수로 속이는

 

세 가지 죄악

만나를 담은 항아리 (경제, 먹고 사는 문제)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 (종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꽹과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 (정치, 니 만 지도자 하냐 나도 지도자 하자? 섬기는 임금인가? 속이는 정치꾼, 등쳐먹고 잡아먹는 삯꾼, 늑대인가?)

 

이 세가지로 미혹해서

고아

과부

나그네 만들어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의 죽음에서 끊고자 동원이 되는데

 

이들 자체가 등장한다는 자체가

이미 일곱 대접이 떳기 때문에 그 증상으로써

저들의 맡은 역할로써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는 자는 적기 때문에

걸러내는 작업에 동원이 되는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위해 벌리는 잔치 사건으로써

 

이미 십자가의 사랑이 다 이루었다는 그 증상으로써

이 사건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오히려 이 악한 세 영의 속성들이

우리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적 받거나 간섭받거나 들통당하지 않는다면

회개 할 꺼리가 뭐가 있겠냐 말이죠

 

회개 할 것이 없는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다 말이죠

 

그러니 일곱 대접이 떳다는 자체가

우리 속에 저런 악한 영들이 심어놓은 것들을 신나게 지적당함으로써

아 이 회개가 덮쳐졌고

저들과 구별 차이시키고자

이 죄악을 물러나게 하실려고

짤라내게 하실려고

이 어린양의 죽음 사건을

이 십자가 사건을 무한반복으로써

또렷함의 반복으로써

 

늘 내 속에 있는 속임수

나의 꾀를

들통당하는 이 세 가지 증거를 저당 잡힘으로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도록 하셨다는

저 또렷함만이 매일 매일 밝혀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이 죄악이 떨어져 나가는 즐거움을

전쟁 종군 기자처럼

나의 신체 나의 마음을 하나의 전쟁지도로써

주님의 십자가가 나의 마음 어느 곳을 점령했는지를 세록 세록 기쁘게 전달하는 증인 목격자

종군기자처럼 기록하고 외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전쟁을 벌리셨다는 거죠

우리는 새간처럼 집주인을 결박하고 새간을 빼앗는 이 도둑 예수님의 활동상을

마치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처럼

네 네 들어갔습니다 고 오 올 ~~~~~~~~~~~~~~~~~ 이라고

흥분이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이 승리골 잔치를 종말잔치를

신나게 중계하는 중계아나운서처럼 스피커처럼

방방곳곳에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 나의 죄를 아는 선지자가 떳어요

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것처럼

이것 보다 생생한 것이 어디있겠냐 말이죠

 

지금 천사들이 활동하는데

앞에서 일곱천사들이 낫을 들고 포도를 낫으로 베고 포도주틀에 넣어 짜듯이

신약은 전부다 천사들의 활동상이다 말이죠

성령행전인 사도행전도 그렇구요

 

그런데 구약은 바로 그 천사들이 낫을 들고 베는 추수때의 베는 역할을

참선지자들이 했다 말이죠

 

천사야 눈에 안보이니까 잡을수도 없고

또 죽여본들 안 죽으니까

인간이 어떻게 방해를 하거나 손 써볼 어떤 여력이 없지만

 

구약에는 참선지자가 딸랑 혼자서 활동하는데 있어서

두 세명만 데리고 가도 충분히 막아서 죽여 없애 버릴수가 있다 말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선지자는 죽이면 또 한 명 나타나고

또 죽이면 또 나타나고

마치 사도바울을 밤새도록 패서 쓰레기 통에 버렸듯이 이젠 죽었겠지 했는데

또 그 다음날 나타나서 또 복음 전하면 또 패서 쓰레기통 버리면

또 그 다음날 또 증거하고 그런 식으로

 

인간이 막을 길이 없더라 말이죠

 

이 밝히 보이는 십자가

창세전에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딱 하나 뿐이다 말이죠

십자가의 피 흘리심

 

이 또렷한 십자가의 피 용서를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는 것이 바로

못 쳐다보도록 하는 방식이

 

바로 회개치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봐 버리면 저절로 회개를 하게 되어 있다 말이죠

원인 없는 결과로써 말이죠

 

그러니 못 쳐다보도록 회개치 못하도록

가짜 회개의 달인이 되어서

다윗처럼 회개 금식 기도 눈물 4종 세트로써

자기 스스로 수치를 가릴수 있도록 만들어 버리도록 하는 거다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십자가를 왜? 안쳐다보겠습니까?

죄! 죄! 죄! 죄인! 죄인!!! 고만캐라 마이무따 아이가 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뭡니까?

십자가는 지나갔고 부활이 있다는 주장이거든요.

 

이게 거짓영을 받은 세 악하고 더러운 영을 받은 자들의 역할인 기능이다 말이죠

개구리는 거짓말하는 큰 입을 나타내고 있으니까

그 정도로 사람들이 다 넘어간다는 겁니다.

속임수의 달인이다는 거죠

이들의 말빨에

설득에

납득에

다 넘어갈 정도로 못이긴다는 겁니다.

 

이런 거짓영을 받은 자들인 부정한 자에게 부정의 부정으로써

십자가는 더더욱 심판 속으로

저주 속으로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왜? 상대적인 저들이 들어갈수 없기에!!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못 쳐다 보는 겁니다. 자기 모습을 못 봐요
자기가 그렇게 달려야 하거든요! 뱀이 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을 볼까요? 

그래서 광야 속으로!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둘 다 완전히 발가벗겨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광야 속에서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그 약점을 파고들어와서

유혹하는 겁니다.

 

떡 떡 떡

 

그러나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말이죠

 

그러니 도리어 약점을 파고 들어왔는데

도리어 마귀의 정체가

그 속임수의 내막이 드러나는 겁니다.

 

안 속아야지가 아니라

 

아 그래서 나는 이미 벌써 속았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안 속았다고 우기고 있는 내 모습을
마귀의 정체를 밝히 심으로 인해서
40일 동안 굶으신 광야의 예수님이 밝혀 주심으로써
이 속임수에 대해서 회개를 하게 되더라 말이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마귀는 막을려고 한 것이 도리어 더 열어주게 되는

 

부정의 부정인

구체적 보편성의 진리 앞에서

도리어 자신의 정체만 들통날 뿐이기에

이미 승리한 채로 광야 속에 들어가시는

 

이 십자가가 얼마나 또렷하냐 라는 겁니다.

그러니 속임수는 얼마나 우리를 속였는지를 제대로 보게 된 거다 말이죠

 

그러니 회개를 해야 할텐데 라고 걱정하고 회개하면 기뻐하고
회개를 못하면 걱정하는 것이 속임수 였음이

 

다시는 회개 하지 않을거야 라고 마음 먹는 것이 회개이다 라는 겁니다.
내 회개 내 손할례를 다시는 안 보고
주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 곧 인간의 손으로 불가능한 마음판의 할례
주님께서 모든 허물을 덮으시는 그 사랑만을 쳐다보는 이 회개

 

마치 금식해서 거룩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밥 맛있게 잘 먹는 것이 금식이듯이

선악과 반대되는 행동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치는 것이

금식이요 회개이다는 겁니다.

 

한세트가 되는 악한 영의 속임수를 못 본다면

아무리 단독적인 행동을 해도 의미가 없다 말이죠

 

저들 악한 영들이 막살면

절대로 막살지 않는 삶을 살고

 

반대로 저들 악한 영들이 절대로 막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면

저들의 밥 상에서 막 사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는 겁니다.

 

이게 회개다 말이죠

 

저들이 금식하고 금주를 하고 의인들인 거룩한 자들과 이웃으로 어울릴때에

 

예수님은 아예 보란듯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고 더러운 죄인 세리 창녀 문둥병자의 친구라고

너무 너무 초정밀 관찰을 잘하는 바리새인들에게로 부터 별명을 안붙이고는 못배기도록 하셨다 말이죠

 

맞아요 팩트입니다. 가짜 뉴스 아니다 말이죠 팩트 맞아요

 

그런데 이것이 저들에게는 나쁜소식이지만

창녀와 세리 매국노에게는 기쁜소식이다는 겁니다.

아니 예수님이 금식을 안하고 먹기를 탐한 것이 어떻게 기쁜소식입니까?

아니 예수님이 금주를 안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것이 어떻게 기쁜소식이냐 말이죠

 

아니 예수님이 어떻게 죄인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이 기쁜 소식이냐 말이죠

 

이것은 상대적인 저들이 나쁜소식으로
여기는 그 판단기준인 선악의 사고방식과 한 세트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저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뉴스로 보낼겁니다.
오늘날 강도의 소굴인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말이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엄기~(혓바닥 냄름) 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 라는 청년이 뭔가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 주는 메시아의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먹기를 탐하는 것으로 밝혀 졌고

포도주를 즐기는 술꾼!! 알코올 중독자로 밝혀졌고

세리! 친일파 매국노, 강도와 죄인의 친구로써 활동하는 자로 밝혀졌음에

이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참으로 안~~~~~~타깝게 이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와르르 무너뜨리는

그는 과연 메시아 맞기는 맞을까요 라고

 

속으로는 좋아라 죽으면서

안타까운 소식이라면서

나쁜소식이라면서 증거하고 있지만

 

정작 그런 의인들 회개할 것이 없는 저들 의인에게는 나쁜소식이지만

 

함께 먹고

함께 마시고

함께 즐기는 그 당사자

세리 죄인 강도들에게는 희년 기쁜소식이다는 겁니다.

 

누가 함께 해 주기라도 했냐 말이죠

정죄 하고 욕 안하면 다행이게????

 

이 포로 되었고 갇혔고 억눌린 자들 속에 들어왔다는 자체가

천국 되신 예수님께서 쳐들어왔다는 자체가

 

이 죄악 속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는 자체가 이미 해결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바리새인 곧 악한 영을 받은 거짓영을 받은 자들은

행동 하나 하나를 감시해서

요건 선이고 요건 악이고 가려내더라 라는 겁니다.

 

요건 율법 지켰고 요건 율법 어겼고

 

아니 율법의 완성이신 사랑 그 자체인 당사자가

율법에 저촉 받겠습니까?

사랑 그 자체이신데

 

판단을 받겠냐 말이죠

 

이 말은 반드시 판단 하는 자가 생기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사랑은 판단을 안 받는데

 

조건이나

이유나

원인을 따진다는 자체가 무의미 한데

 

이유 없이 조건 따지고

이유 없이 이유 따지고

이유 없이 원인을 따지겠다는

사랑 자체에다가 시시비비를 따지겠다는 간 큰 놈을

사랑이 일부러 배치시켜 그 역할을 감당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사랑은 차이에서 드러나거든요

 

아니 사랑은 곧 의사는 환자에게 가지

건강한 자에게 왜 가겠습니까?

 

건강한 자에게 가면 의사라는 기능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다 말이죠

 

자 구원자께서

심판의 주 께서

 

죄인에게 갔습니다

 

기쁜소식일까요 나쁜소식일까요?

 

 

뉴스를 이렇게 보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쁜소식이 아닐수 없습니다.

의사께서

드디어 환자를 만났습니다.

 

유대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은 예수님께서

 

드디어 귀신 들린 딸의 어미를 만났습니다.

 

유대인에게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가

 

드디어 99마리 양을 버리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로써 나타나셨습니다.

기쁘지 않을수 없습니다 라고

 

기쁜소식을 스포츠 중계 고오올 ~~~~~~~~~~~~~~~ 외치는 흥분한 아나운서처럼 소식을 전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눈 앞에서 실상으로 현실로 막 펼쳐지니까
그 기쁨 그 승리 그 기쁨의 골이 펼쳐졌는데
증인이 되어버렸는데 눈 앞에서 목격했는데

몸이 저절로 흥분해서 고~~~~~~~~ 올 이라고 저절로 나팔수처럼 뿌뿌뿌
곤잘렐라????  부부렐라?  아 맞다 부부젤라를 아니 부르고는 못 배기더라 말이죠!

 

그러나 저들에게는 기쁜소식으로 안 보입니다.

같은 장면, 같은 사건을 접해서

같이 보고 있어도

저들에게는 하나도 안 기뻐요

도리어 나쁜소식입니다 예수청년이 사람들의 기대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이죠

선악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 마음 속에 죄악을 끊어내는, 건져내는 구출자 구원자 예수님으로 안 보이고

의사로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자신이 환자임을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의사로 보이니까

움직일수 없는 앉은뱅이인 자신에게 하늘에서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 성전 문을 열고 의사가 직접 이 누추한 곳 까지 직접 방문하셔서

이 지옥 속에 있는 나에게 함께 먹고 마시고 한다는 자체가

이미 벌써 나음을 입은 거다 말이죠
기뻐하심을 입은 자이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저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콩고물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유대인에게 아무리 찾아가도 예수님에게 주인이라고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신을 개로 고백하는 자는 유대인 백날 만나봐도 없었다 말이죠

 

예수님을 의사로 본다면

자신을 환자로

병든자로
정신병자로

문제가 많은 자로

몸이 비정상적인 혼이 가득한 자로 볼 것인데
갇힌 자로 포로된 자로 억눌린자로 말이죠

 

의사로 안 보이는데 어떻게 자신을 환자로 고백하겠냐 말이죠

 

예수님을 더더욱 구원자로 볼 리가 없지요

시험 할려고 주위를 빙빙 도는 거다 말이죠

구원자로 볼 것 같으면 벌써

그분 앞에서 재를 뿌리고 머리를 쳐 박고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여길텐데

 

아무도 회개하는 자가 없다 말이죠

 

죄인이 아닌데 어떻게 회개를 하겠냐 말이죠

 

자 일곱 대접이 떳습니다.

이유 없이 우리는 무조건 죄인입니다.

개입니다

멍멍이 개다 말이죠

 

이유 없이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완벽한 거룩 완벽한 심판의 주 앞 놓여졌다는 자체가

뭘 해도 죄 밖에 없음이

십자가의 밝히 보이는 그 영광 앞에서

거룩 하나 내어놓을게 없는 부끄러운 수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아예 단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착각하고 내 꾀에 내가 속아서 내 속임수를 가득모았는데

괭과리요 배설물이였다 말이죠

 

내 회개 내 눈물 내 기도 내 금식으로

나의 죄 때문에 죽는 저 아이를 살릴 길이 없었다 말이죠
아무리 수치 죄악을 내 손으로 가릴수가 없다 말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것이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다

의사의 기능을 막는 자요

구원자의 기능을 막는 자이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이게 회개치 않는 악한 영을 받은 자들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거짓영을 받은 용과 짐승 거짓선지자의 속임수이다는 겁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꾀냐 말이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냐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을 막고자 나쁜소식으로 보는 그 시선 그 안목과 전쟁하는 십자가 입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야 말로 기쁜 소식 입니다 라고 외치는 자가 회개자 이다 말이죠

이 속임수와 회개의 대립 구조가 일곱 대접의 전쟁 마무리입니다.

 

십자가가 저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지만

이 십자가의 죽음이야 말로 우리에게는

환자에게는 기쁜소식 희년이고

죄인에게는 기쁜소식 희년이다 말이죠

 

고아 과부 나그네의 종지부를 찍는

희년 기쁜날이다는 겁니다.

 

이 전쟁 마무리가 얼마나 신납니까?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것도 광야입니다.

 

당연히 우리 같으면 벌꺼 하루도 못 되어서 다 넘어갔는데

기쁜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안 속아 넘어가고 이 시험을 이 유혹을 이기신 분이 떳다는 겁니다.

그분 한 분의 믿음 때문에

우리는 덩달아 무시험 합격케 되었다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다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막아도 막일 길이 없어요

이미 다 들통났거든요

 

내 개인의 실패는 의미 없어요

개인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 없거든요

그건은 하나의 조건 이 되니까

 

원인 없는 결과인데

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단 한 분이 사망 권세를 깨 버린 이상

더 이상 마귀의 유일한 무기는 의미가 없어요

죽어도 상관 없다 말이죠

 

아무리 마귀가 사망이라는 무기로 몽둥이로 우리를 죽여도

그게 바로 대륙의 실수 마귀의 실수인 겁니다.

나는 모세의 제자이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라고 한 것이 실수다 말이죠

실로암 소경에게 누가 자신을 고쳐준 자인지를 갈켜 주고 있으니 말이죠

 

성도를 십자가의 저주에 매 달아 죽이는 것이 오히려 성도를 도와주는 셈이다 말이죠

같은 운명으로 만들어 주고 있으니 이런 황공함이!!!

 

시체가 된 이스라엘의 시체 밑에 마귀가 깔려 죽어요 글쎄 ㅋㅋㅋㅋ

결국 사망은 마귀 본인에게만 해당 되는 것을

자아라는 하나님과 같이 된 선악을 알게된 자아 라는 허구를 만들어서

그거 숫자 많이 복제 해 본들 결국 하나 이거든요

괜히 숫자롤 겁줄려고

이 말은 마귀 본인이 공포에 사로잡힌

그야말로 죽음이다는 거죠

 

그 죽음 덩어리이다는 정체를 들통당하는 겁니다.

왜 마귀가 율법을 쥐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율법 지키는데 목을 맬까요?

자신이 이미 악이라는 것을 감추고자 선으로 가면을 쓰는 거다 말이죠

 

그러니 성도를 아무리 죽여도 그 성도의 시체에 본인의 정체만 드러날 뿐이다 말이죠

죽음 조차도 속임수였다는 것

그래서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구체적 보편적 진리이다는 거죠

쓸모 없다고 버리면 버릴수록 머릿돌로 서더라 라는 겁니다.

 

육체를 죽이는 자를 두려워 할게 아니라 영과 혼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 하라 라고 했듯이

본인이 선악을 안다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픈 그 교만함이 들통나는 겁니다.

 

이것을 안다는 자체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떳다는 이유로

그 알려주심으로 인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누가 속이냐 말이죠

 

종교꾼들은 너는 사랑받아야지 미움 받으면 안돼 라고 기적 곧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속이고

세상사람들은 경제 돈 떡 사람은 떡으로 살고 돈이 있어야 사람 답다고 우기는데 있어서

사람은 떡으로 살지 않는다고


거지나사로가 오직 믿음의 주만 바라봤다고 소유가 없어도 걱정하나 없이 자신감 있게 살았지만

세상사람들은 소유에 따라 존재감이 달라지는 그래서 소유의 넉넉함에 따라서

걱정 불안 기쁨이 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그런 부자가 지옥에 가니 여전히 지옥에 왔는지 조차도 모를정도로
(그게 지옥) 소유를 따지면서

물 한 방울이 있으면 지옥이 사라지는 줄 알고

목 마름이 사라지는 줄 알고

물 천 방울도 지옥이 안 없어지는

본인 마음 자체기 이미 지옥


소유로 계속 따지니까


지옥 가기 전에도

죽기 전에도 이미 지옥이였던 거죠

 

그러니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나사로를 부려먹을려고

선지자 보내달라고 모든 시선이 소유로 보더라 라는 겁니다.

 

그 소유성이 자기 가족만은 이 지옥에 안 오도록 선지자 보내달라고

선지자도 소유고 그 가족도 소유 보고 있고

어느 하나 소유 바깥의 의미는 전혀 없는 겁니다. 그게 지옥인거죠 이미

 

그 존재성의 반대가 바로 거지나사로의 기능입니다.

약속이 거지나사로를 품어버리니까

아브라함이 거지나사로를 품듯이

약속이 품으니

말 히나 행동 하나 하나가! 모든 행동이 그 어떤 책임도 없이

아브라함이! 하이카 가!! 다 알아서 처리 하더라 말이죠 변호하는 겁니다
.

그러니 불안한 것 아무것도 없는 거죠

돈이 없는 거지인데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겁니다.

돈 없으면

소유 없으면 저 부자 보세요 모든 사고방식이 소유에서 존재에서 나오는데

거지나사로는 오히려 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약속에서 모든 사고방식이 나오니까

말도 변명도 그 어떤 것에 할게 없이

그저 아브라함 품에

미쁘심 품에

믿음 의 품에 안겨서

믿음에

믿음의 조상에 모조리 다 맡겨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어린양의 십자가의 죽음에 다 맡겨버리는 겁니다.

그 어린양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광야교회가

바로 광야에서 결혼하는 최종 하이라이트가 되는 거죠

죽음도 못 끊는 사랑임을

 

반대로 거짓영 세 영은 이 결혼 하는 꼴을 못 봅니다.

모든 것을 다 모아서 반댈세

이 결혼 반댈세 라고

모든 힘 권력 유혹 미혹케 함 속임수 꾀를 다 동원하는 겁니다.

이것이 아마겟돈이라는 장소에 다 모으는 거죠

 

바로 회개치 않는 자들을 모으는 겁니다.

거짓영에 다 속은자들을 다 모으는 겁니다.

 

발람의 꾀로 어떻게해서든 이 가나안 땅 약속의 땅

천국에 못 들어가도록 말이죠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승패를 자신들의 힘 결집으로

소유로 보는 반면에

이미 들어왔기에 이 사건을 벌리시는 약속을 저들은 지옥간 부자처럼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천국이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이 광야를 거쳐서 오기만을 기다리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천국이 스캔하듯이 이 이스라엘을 통과 하는 겁니다.

천국이 침략을 해요 글쎄!!

이스라엘을 말이죠

그래서 천국에 의해 이스라엘은 10번 원망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실패하도록 되어 있어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럼 마귀가 좋다고 베드로를 잡아오겠지요

그 마귀는 이미 광야의 세가지 시험으로 예수님에게 벌써 진 자입니다.

그런 마귀가 베드로를 잡아오니 적반하장이지요

그래서 마귀는 베드로를 상대해 주십사 하고 대신 잡아왔다고

형사노릇을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베드로를 미끼 삼아서 마귀를 잡는 겁니다.

형사로서의 마귀가 베드로를 수잡채운 것이

도리어 마귀가 십자가의 피로 무고죄로 잡아온 비리형사를 잡아버리는 겁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겁니다.

 

곧 마귀만을 상대로 하신 회개전쟁이다는 거죠

천국전쟁입니다.

그러니 이 천국을 일곱천사들이 대접 쏟아붓듯이

천국을 쏟아 붓습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인다고

이 어린양의 피가

지성소의 휘장을 찢어서

막힌 담을 헐고 어린양의 피를 쏟아 부어버리는 겁니다.

이 광야인 죽음의 사망의 권세가 가득한 유혹 밖에 없는 곳에

이 어린양의 피를 사망의 권세가 이겨볼테면 이겨 보라고 아예 당당히 말이죠

 

이 예수님의 믿음으로 우리는 이 광야 속에서 예수님과 혼인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에 흥건히 온 세상을 다 덮는 그 사랑을 누리는 겁니다.

그것도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겁니다.
전남편과 이혼케 하시는 새남편을 등장 자체의 증상으로 말이죠

마귀 보란 듯이

아예 약을 바짝 올려요

 

즉 회개 안하는 마귀는 아니 회개의 달인이면서 회개 할수 없는

이 결혼에 이 세례에 이 하나됨 연합에 못 들어가는 것이

명명백백 드러나는 겁니다.

 

천한 기집이 왕비가 되면 세상이 견디질 못하고 격동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구스여인이 아내가 되는 것은

오로지 긍휼히 여기심이라는 예수님의 사랑 곧 온유하심입니다.

이 온유에 마귀의 속임수는 밝혀지는 겁니다.

 

이 사랑이 미래완료로써 덮쳐져서

잃어버린 자를 찾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미래완료의 증상으로써 잃어버린자 곧 회개자로, 증상물로, 전리품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회개를 해서 회개 안하면 천국 못하고 회개하면 천국가는

그런 원인으로써의 회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천국이라는 결과 때문에
원인 없는 결과의 등장 떄문에 
그 증상으로

회개자는 그 증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천국인 겁니다.

이 천국전쟁 회개전쟁을
모든 것을 다 때려부어서 벌리시는 겁니다
.

곧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으로써 말이죠

이미 승리한 채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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