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음녀)와 그가 올라 탄 일곱머리 열뿔을 가진 짐승의 비밀 (17; 1-18)

계 44 음녀의 비밀 (계 17, 1-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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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개역)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17:2, 개역)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17:3, 개역)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17:4, 개역)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17:5, 개역)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17:6, 개역)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17:7, 개역)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17:8, 개역)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17:9, 개역)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7:10, 개역)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17:11, 개역)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7:12, 개역)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17:13, 개역)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7:14, 개역)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17:15, 개역)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7:16, 개역)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17, 개역)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17:18, 개역) 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 10:9, 개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 10:10, 개역)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10:11, 개역)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 10:12, 개역)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10:14, 개역)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10:15, 개역)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10:16, 개역)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10:18,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 10:19,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 10:20, 개역)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 10:21, 개역)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 65:1, 새번역)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 65:1, 공동) "나에게 빌지도 않던 자의 청까지도 나는 들어주었고, 나를 찾지도 않던 자 또한 만나주었다. 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민족에게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해 주었다.

( 65:1, 쉬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 “나는 나를 찾지 않는 백성에게 나를 알려 주었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그들에게 나를 밝히 드러냈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하였다.

( 65:1, 현대인)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나를 나타내고 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에게 내가 발견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은 나라에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다.' 하였다.

( 65:1, 현대어) [하나님의 대답, 처벌과 보상]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너희를 도와주려고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었으나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그들 중에 하나도 없었다. 나의 백성 가운데서 내 이름을 부르며 호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항상 `내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알려 주었다.

 

( 10:20, 개역)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 10:20,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65:1(칠십인역)

( 10:20, 공동) 또 이사야는 더욱 대담하게, "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이 나를 만났고 나를 구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하였습니다. / 이사 65:1.

( 10:20, 쉬운) 또 이사야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에게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10:20, 현대인) 그리고 이사야는 더욱 담대하게 `나를 찾지 않던 사람들에게 내가 발견되었고 나에게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나를 나타내었다.' 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 10:20, 현대어) 그후에 이사야도 대담하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 `나는 너희를 도와주려고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 70인역 사65:1)

 

(17:1, 새번역) 대접 일곱 개를 가진 그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에게 "이리로 오너라. 큰 바다 물 위에 앉은 큰 창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 주겠다.

(17:2, 새번역)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더불어 음행을 하였고,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 여자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17:3, 새번역)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으로 나를 휩싸서, 빈 들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한 여자가 빨간 짐승을 타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였고, 머리 일곱과 뿔 열 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 , ''

(17:4, 새번역) 이 여자는 자주색과 빨간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가증한 것들과 자기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습니다.

(17:5, 새번역) 그리고 이마에는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큰 바빌론'이라는 비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7:6, 새번역) 그리고 나는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보고 크게 놀라니,

(17:7, 새번역) 그 때에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놀라느냐? 나는 이 여자의 비밀과, 이 여자를 태우고 다니는 머리 일곱과 뿔 열이 달린 그 짐승의 비밀을, 너에게 말하여 주겠다.

(17:8, 새번역)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으며, 장차 아비소스에서 올라와서, 나중에는 멸망하여 버릴 자다.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창세 때로부터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짐승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은, 그 짐승이 전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17:9, 새번역) 여기에 지혜를 가진 마음이 필요하다. 머리 일곱은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요, 또한 일곱 왕이다.

(17:10, 새번역) 그 가운데서 다섯은 이미 망하고, 하나는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나타날지라도, 잠깐밖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17:11, 새번역) 또 전에 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여덟 번째인데, 그것은 그 일곱 가운데 속한 것으로서, 마침내 멸망하여 버릴 자다.

(17:12, 새번역)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이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였지만, 그 짐승과 함께 한동안 왕권을 차지할 것이다.

(17:13, 새번역)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능력과 권세를 그 짐승에게 내줄 것이다.

(17:14, 새번역) 그들이 어린 양에게 싸움을 걸 터인데, 어린 양이 그들을 이길 것이다. 그것은, 어린 양이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기 때문이며,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7:15, 새번역)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본 물 곧 그 창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다.

(17:16, 새번역) 그리고 네가 본 그 열 뿔과 그 짐승은, 그 창녀를 미워해서 비참하게 만들고, 벌거벗은 꼴로 만들 것이다. 그들은 그 창녀의 살을 삼키고, 그 여자를 불에 태울 것이다.

(17:17, 새번역)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때까지, 당신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셔서,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17:18, 새번역) 네가 본 그 여자는,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진 큰 도시를 가리킨다."

 

 

여자는 18절 곧 제일 마지막 절에 큰 성 바벨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도록 되어있는 자이다 말이죠

실제로 바벨론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멸망 되었고요

이 바벨론 승리가 바로 17절 말씀에 의한 응하심이다는 거죠

 

아니 이거 뭔가 잘못된거 아닙니까

말씀에 응해야 한다면 바벨론이 승리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승리 해야지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이 말씀에 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승리하는 것이 말씀에 응하는 겁니다.

 

어 이상하다?????

 

어 이상할 것 하나 없어요

역사에서 이미 바벨론이 승리했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부터 멸망 받아 포로 되어 끌려갔습니다.

 

역사에서 그렇게 결정 놔 버렸다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역사를 깨뜨리고 찢는 묵시가 졸지에 개입해 버립니다.

 

묵시는 계속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망한다고

바벨론이 이긴다고

이 음녀는 모든 가짜 질서를 한순간에 확 깨뜨리는 유혹을 펼친다고

그럼 이 바벨론의 승리가 참된 승리라서 이기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가 떳다는 그 이유로

허상을 깨드리는 몽둥이로 사용했을뿐

몽둥이는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가 아니다 말이죠

 

즉 바벨론은 가나안 일곱 부족으로써

가나안이 정복 당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이스라엘이 정복하는데 실패 한다는 겁니다.

역사에서는 실패 다 말이죠

 

그런데 이 실패가 실패라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라

 

약속이 쳐들어 오는 것을 가나안 땅은 이 약속을 물리쳤다고 보고 있고

승리했다고 여기겠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여겼지만

정작 가나안 전체가 이스라엘(예수님 당시)도 포함해서

어차피 가짜 이스라엘이기에

예수님을 죽였다고 여겼겠지만

 

그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창세전에 생명책에 기록된 바를 이루시는

다 이루었다가 되더라 말이죠

오히려 예수님을 좋게 해준 결과다 말이죠

 

아무리 원인이 승리했어도

그 승리한 원인이 없어요

그러니 승리 해 본들 소용이 없어요

 

결과는 예수님의 죽음이 옳았거든요

이 예수님의 운명에 이스라엘도 집어넣음으로써

분명 역사에서는 이스라엘이 실패했는데

원인은 실패 인데

 

결과는 졸지에 승리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아니 분명 실패했고 멸망했고 심판 받았는데

그 심판 받음이 졸지에 승리라는

원인 없는 결과가 되어버린 겁니다.

 

성령의 부으심이란

역사 속에서 양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서 길이 없는데

졸지에 길이 저 죽음 속에서 길이 열리더라 말이죠

홍해 라는 죽음의 바다 속에서 길이 열려요

그래서 막 죽으러 가요 왜? 생명의 길이 있어서 말이죠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 되니까

환상의 골짜기인 예루살렘 사람들은 에라이 어차피 죽을꺼

소잡고 양잡고 잔치 렛츠고 파티나 벌리다가 죽자 라고

비로소 본색이 드러나는데

 

이 예루살렘과 정반대인 두로의 기생들은

오히려 몸을 파는 창녀가 되어서라도

누가 봐도 섬기는 임금 하나 없는 나그네와 같은 자가 되어버렸어도

졸지에 만군의 여호와의 개입 때문에

졸지에 여호와를 앙망하면서

이 무역 상인들로부터 받은 이 돈으로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확 땅겨서 장사 치르는

나사로 오빠의 여동생 마리아처럼

주 여호와를 앙망하더라 말이죠

두로 여자인 귀신들린 딸의 어미가

네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고

주인 곧 나그네에게 비로소 죽기까지 섬기러 오신 왕이 나타났다고

글쎄 죄인의 자리에서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의 기능은 의사의 기능으로 고쳐달라고

구원자의 기능으로 불쌍히 여겨 구원해 달라고

졸지에 개같은 이방인은 창녀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바라보는데

 

정작 환상의 골짜기 예루살렘 사람들은 양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죽음 속에 놓이니까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더라 라는 겁니다.

 

오히려 두로의 창녀가 앙망을 해요 글쎄

 

그러니 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할

비록 못하고 실패하지만

여전히 약속은 한다 말이죠

이미 결정났기에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가 떳기에

역사가 아닌 묵시에서는 이미 끝난 결과이기에

가나안 땅은 이미 정복 된 것인데

 

이 묵시를 못 보는 예루살렘 거주민은 유대인 이스라엘은

오히려 음녀가 되어서 거룩을 알면서도 거룩을 방해하는 제사장 딸 음녀가 되어서

(레 21:9, 개역)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

(레 21:9, 새번역) 『제사장의 딸이 창녀짓을 하여 제 몸을 더럽히면, 제 아버지를 더럽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 여자는 불태워 죽여야 한다.』

 

가나안을 사수 하는

큰 성 바벨론을 사수하는

강도의 소굴을 사수하는 자로써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는데 성공 하더라 라는 겁니다.

 

자 역사에서는 이스라엘도 장악해 버렸고(광야에서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통해서

이미 모든 인간을 특히 이스라엘 유대인도 다 장악한 마귀의 유혹임이 드러났기에)

심지어 예수님 마저도 죽여버리는데 성공 했으니

 

열두 지파 이스라엘도 이제 사라졌고

예수님도 죽이는데 성공한

큰 성 바벨론인데

 

앞에서 두 증인을 죽였다고 큰 성 바벨론이 좋아라 했다 말이죠

 

그런데 이 두증인이 다시 살아났뿟다 말이죠

 

오히려 이 사망이라는 무기가 소용이 없음이 들통나 버렸다 말이죠

믿음 앞에서는 사망이 소용이 없어요

 

사랑 앞에서는 울리는 꽹과리이다 말이죠

 

오히려 큰 성 바벨론이 분명 승리했는데

예수님의 시체에 도리어 깔려 죽는

자신의 먹잇감이 된 시체 이스라엘에게 깔려 죽는

이 구체적 보편성의 진리에 깔려 죽는 승리이니까 승리 해 본들 의미가 없더라 말이죠

그런 승리는 의문의 반복일 뿐이고

 

실상은 사랑 앞에서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음 꽹과리 였을 뿐이였다는 겁니다.

 

그런 큰 성 바벨론이 바로 식스센스의 반전처럼

이스라엘 유대인이 음녀였다는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거룩을 지켜요

? 거룩해지고 싶어서?

아닙니다.

가인이 열심히 제사를 지키듯이 지키잖아요

여호와를 앙망해서?? 가 아님이 드러났잖아요

오히려 그런 거룩 지키기가

번제와 제사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 곧 살인의지였다는 겁니다.

눈에 안 나타나서 그렇지 나타나기만 해 봐라 당장 죽여버리겠다는 것을

감춘 것이 거룩 지키기 이다 말이죠

 

이게 음녀 이스라엘 이다 말이죠

 

지금 현재 이스라엘을 보세요 가나안 부족의 우두머리이다 말이죠

짐승을 길들여서 올라타야 하기 때문에

서로 싸우는 원수들처럼 보이겠지만

아닙니다.

같은 편들이다 말이죠

 

그런데 왜 그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바로 아벨을 죽이기 위함이라는

말씀 응하심 때문이다 말이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려고 자기 스스로가 가리우고자 하는데

졸지에 아벨의 죽음이라는 제사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확 벗겨 버리니까

죽여 버리는 겁니다.

 

더 나은 아벨의 제사를 보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인애와 자비인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보는게 아니라

도리어 자기 보다 더 나은 것이 등장해 버리니까

경쟁자의 등장으로 죽여버림으로써

경쟁자가의 제거가 됨으로써

자신의 제사가 옳게 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음녀인 겁니다.

말씀이 응하게 하기 위함이니까 말이죠

결과가 덮쳤으니 이 뿔이 박힘을 스스로 뽑아낼수가 없어요

 

음녀의 비밀은 짐승의 비밀은 결국 거룩을 지키기 한다는 겁니다.

말씀을 지켜요 글쎄

말씀을 소유한다는데 있어요

믿음도 성령도 교회도 성전도 거룩도 모조리 다 구비해서

조건을 갖추는 소유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무기로써 울리는 꽹과리이다 말이죠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을 죽이니까 말이죠

 

광야에서 붉은 빛 짐승을 여자가 탔다고 나오는데

 

(17:2, 개역)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17:3, 개역)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기서 음행이란 야동에 중독 되어 성추행을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거룩한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참선지자를 죽이는 마음

그것이 곧 탐심 곧 우상숭배인데

자기를 위하여

자기 구원을 위하여

그 구원의 장치를 날려버리는 참선지자를 죽인 피

그 피에 취해서

피의 붉은 색에 취해 있는 강도의 소굴

곧 번제와 제사에 빠져있는 것이 바로 음행이다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때려죽어도 인애와 자비는 안 쳐다본다는 거죠

즉 죄인의 자리에서

환자의 자리에서 의사를 앙망하는게 아니라

 

의인의 자리를 때려죽어도 포기 못하고

예루살렘의 자리는 때려죽어도 포기 못하면서

동시에 여호와는 앙망하지 않는

예수님을 부활로 안보고

부활교리 잔뜩 믿어서 그 부활믿음을 소유해서

이 번제와 제사를 포기 못하는

의인 실천 거룩 실천 말씀 실천을 한 것을 잔뜩 모은 것을

음녀 라고 한다 말이죠

 

누가 봐도 가장 거룩한 자 바리새인인데

예수님 혼자만 가장 더러운 음녀로 보고 있고

 

반대로 누가 봐도 가장 더러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인데

이 사람이야 말로 진짜 음녀요 현장에서 딱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있는데

예수님은 이 보편성을 깨뜨리고 나도 너를 감히 정죄하지 않겠다고

더러운 여자

음녀 라고 감히 말 하지 않겠다고

 

원인 없는 결과를 확 땡겨 버리더라 말이죠

마치 생명책에 기록된 바를 확 땡기듯이

 

그러나 아무리 바리새인이 거룩을 실천하는데 누가 봐도 다 인정하는 거룩한 자인데

예수님은 백날 그래도 생명책에 기록이 안 되었다고

생명책을 거쳐서 보니까

안 적혔는데요? 라고 하니

 

비로소 그들의 본색이 확 드러나더라 말이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그러니 또 의문의 역사를 반복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겁니다.

참선지자를 죽였듯이

또 피가 가득해요

 

붉은 빛의 짐승을 올라타는 겁니다.

즉 절대로 거룩을 지키기 때문에

자신들의 손에는 피를 안 묻힙니다.

 

그럼 방법은 뭐냐? 개같은 이방인의 손을 빌리는 겁니다.

빌라도의 권력을 빌려서 피를 묻힌다 말이죠

 

아니 그런다고 자신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지 않게 되는 건가요?

 

웃끼죠

 

그러나 끝까지 자신들의 손에 피를 안 묻힌다는 것을 끝까지 지켜요

아니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이미 마음 속에 간음 했고

이미 마음 속에 미워했음으로 이미 살인했는데

 

아니 말씀을 지킨다고 해 놓고

말씀이 그 깊이까지 파재끼는 것은 무시하잖아요

예수님을 무시하잖아요

말씀대로 특히 시편 즉 이것은 유대인이 어릴적부터 달달 외우는 시편대로 행하셨고

이사야 말씀대로 행했다 말이죠

이사야 말씀은 저들의 묵시운동이거든요

끝까지 이스라엘을 포기 안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유대인이다 말이죠

우리만 남았나이다

나만 남았나이다

10지파 11지파 다 날라가 버렸고

한 지파 유다 지파만 남았나이다

내 열심이 특심이오니 나만 유다지파만 남았나이다

 

네네 그렇다 칩시다

그럼 11지파의 회복을 우짜실려고?

유다지파를 벗어나서 11지파를 살리시던가?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니 더럽기가 짝이 없는데

저기서 무슨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를 살리겠냐 말이죠

유다 지파 하나도 지금 벅차다 말이죠

그래놓고 무슨 놈의 말씀을 지켰다고 우기냐 말이죠

 

결국 이것은 약속을 바라보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시편을 제대로 보는게 아니라

시편을 나는 외웠다고

지켰다고 우기는

울리는 꽹과리인

그야말로 종교라는 탐심

우상숭배

666 의 모습을 오히려 감춘 것이 오히려 더 드러나는 셈이다는 겁니다.

 

자기 따나 아무도 못 보도록 감춘 것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잡은 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음행을 더더욱 들추어내는 꼴인줄 모르는 겁니다.

 

? 번제와 제사를 지키기에

 

인애와 자비가 없다는 것에 한탄하고 통곡하는 마음이 아니기에

정직한 영이 없다고 상한심령이 되는게 아니라

인애와 자비를 쳐다보는게 아니라

 

이게 음녀이다 말이죠

 

네 맞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음녀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내 개인의 욕망에

구원 욕망

천국을 탐하는 욕심에

이 우상 숭배

자기를 위하는 우상에 이용해 먹는

음녀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감사한데

 

이 음녀인 우리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자

더더욱 말씀 지키기로 가리우고자 하면 할수록

더더욱 발가 벗기는 이 십자가가

졸지에 걸림돌로써

 

다른 것은 다 속이고 자기자신도 꾀는데

이 십자가 앞에서는 이 속임수가 안 통해서

거리끼는 걸림돌에 넘어지더라 라는 겁니다.

 

환상의 골짜기에 사는 예루살렘 거주민이 양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니까

더 이상 길이 없으니 오늘밤 먹고 마시다 죽자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런데 정작 두로 사람들은 창녀가 된 것이

마치 성령이 부어져서 이 창녀가 길을 열어주는

우리가 가장 무시하는 이 십자가가 밝히 보여줌으로써

 

그 동안 임금이랍시고 백성을 섬기는 임금이라는 둥

말씀을 지켜서 거룩을 실천해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했던 그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 셈이다는 겁니다.

 

차라리 창녀가 몸을 팔아서라도

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이 모습이

우리가 다들 무시하는 저 창녀가

저 매국노 세리가

너희 보다 천국에 먼저 간다 말이죠

 

기생라합이 거짓말을 해서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인 거짓말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는 믿음인줄

누가 믿겠습니까?

 

말도 안되게??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닙니까?

 

그럼 새삼스럽게 우리 모두가 창녀 기생 노릇을 해야 할까요?

이제 기생 지키기 할까요?

아닙니다 이미 벌써 기생 짖만 해왔고 하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도 기생 짖 밖에 할게 없는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인생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이 덮쳐지니까

아니 글쎄 여호와를 앙망해요

정직한 영이 없다고

눈물을 흘리는 자리

죄인의 자리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니까

 

아니 글쎄 성령이 부어지듯이

말도 안되는 곳에서 길이 열리더라 말이죠

우리가 늘 무시했던 그 자리가

 

즉 죽음의 자리가

심판의 자리가

저주의 자리가

 

이 양사방의 우겨쌈을 당하는 길이 없는 막혀버린 곳에

길을 트여주더라 말이죠

 

이것이 바로 위를 거쳐서 보는 시선입니다

끝을 거쳐서

종말을 거쳐서

십자가의 죽음을 거쳐서 보는 시선입니다.

 

믿음은 부활교리 지식을 소유하듯이 소유 습득하는게 아니라

죽음 속에서 믿음이 출발하더라 말이죠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죽음 속이

오히려 믿음의 출발을 비로소 보게 되는 증인으로써

십자가가 밝히 보임으로써

그 동안 눈에 보였던 것들이 다 속임수

우상숭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것을 바라고 지키고 했는데

그게 다 음녀 짖이였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만군의 주 되심이라는 기능은

부른 적도 없는 이방인에게 응답하신 바 되었다고

부른적도 없는데 오냐 내가 왔단다 라고 택배왔어요 라고 선물을 잔뜩 주더라 말이죠

하늘에서 길이 열릴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땅에서 막혔는데

역사에서 막혔는데

하늘에 길이 있는 줄도 몰랐죠 뭐

 

바로 이런 원인 없는 결과인 묵시를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무시하고자

 

음녀는 오히려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안식의 주인을 거부하는 짖만 하도록 되어 있는

뿔이 박혀 고정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이런 마귀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써

이 십자가의 3일이라는 간극이

부지런히 움직여서

이 역사의 껍데기를 낱낱이 밝혀 발가벗겨 버리는 겁니다.

 

음녀나 마귀 또는 짐승은 남을 발가벗겨 죽일 입장이 못되요

오히려 그러다가 미끼를 확 물어 버린 것이 되는

도리어 남을 벗길려다가 본인이 발가벗겨지는 결과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말씀의 응하심이다 말이죠

 

로마서 10장을 위에서 언급했는데

어떤 누구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신이 가릴수 없기 때문에

이 음녀 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작 심판 받아 마땅한 음녀는 바로 나 인데

 

이 포로됨에서 이 갇힘바 됨 속에서 이 억눌림바 됨 속에서

고아 과부 나그네

어제 언급한 창녀가 된 두로

창녀 됨 속에서 유일하게 벗어나게 해 주는

유일하게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해주시는 분은

 

창세전에 유일하게 예정된 단 하나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피 흘리신 어린양 예수

이 분만을 앙망하는 것이

 

유일한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길이다 말이죠

 

창녀 된 것이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창녀가 되었어도 주를 앙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지옥에 가는 것이다는 겁니다.

 

이제 이 음녀 곧 주의 십자가의 피 용서를 안 쳐다보고

거부하고자 자신의 거룩을 채우고 가릴려고 하는 모습인

이 음녀의 속성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밝히 보여주심 덕분에

 

인간의 꾀

음녀의 꾀

짐승의 꾀에 속지 않고자

 

오히려 저들이 무시하는

조롱하고

비웃는

부끄럽다고 근처도 가지 말라고 하는

 

저 십자가 라는 죽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 일곱 대접은 낱낱이 역사의 껍데기를 벗기면서

밝히 보이는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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