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요나의 표적)를 모르고, 의를 못 배운 자들의 지옥행 (20; 1-15) 303, 223

 

불못에 던져지는 사망과 음부, 사망을 멸하시는 주의 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가 나 보다 옳았다

 

사망과 음부를 지옥에 보낼 줄 모르는 의는 가짜 의, 가짜 거룩

계 47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자들 (계 20, 1-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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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31, 개역)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눅 7:32, 개역)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눅 7:33, 개역) 『침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눅 7:34,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 7:35, 개역)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20:1, 개역)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0:2, 개역)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3, 개역)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20:4, 개역)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20:5, 개역)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20:6, 개역)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7, 개역)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20:8, 개역)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20:9, 개역)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20:10, 개역)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0:11, 개역)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20:12, 개역)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3, 개역)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개역)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0:15, 개역)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 새번역) 나는 또 한 천사가 아비소스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20:2, 새번역) 그는 그 용, 곧 악마요 사탄인 그 옛 뱀을 붙잡아 결박하여,

(20:3, 새번역) 『㉡아비소스에 던지고 닫은 다음에,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 동안 가두어 두고, 천 년이 끝날 때까지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 '밑바닥이 없는 깊은 곳'을 일컫는 그리스어

(20:4, 새번역) 내가 또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나는,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베인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20:5, 새번역) 그 나머지 죽은 사람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20:6, 새번역)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런 세력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서,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20:7, 새번역)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은 옥에서 풀려나서,

(20:8, 새번역)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고 그들을 모을 것인데,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20:9, 새번역) 그들은 지면으로 올라와서, 성도들의 진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20:10, 새번역) 그들을 미혹하던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로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20:11, 새번역) 나는 크고 흰 보좌와 거기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12, 새번역)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 다른 책 하나를 펴놓았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20:13, 새번역) 바다가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고, 사망과 지옥도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 , '하데스'

(20:14, 새번역) 그리고 사망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사망입니다. / , '하데스'

(20:15, 새번역)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처음부터 뭘 해도 사망과 음부 곧 죽음이라는 권세()은 멸망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성실함과 인자하심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주의 의가. 십자가의 도가 먼저 있었기에

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라는 의의 증상물로써

그 증상물로써 사건이 벌어지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 사건의 목격자로써 증인으로서 우리는

이 사망의 권세로부터 삼키움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누가 있었다고요?

주의 십자가 라는 십자가의 피 흘리심 곧 주의 성실함과 인자하심이 먼저 있었다는 겁니다.

 

시편 기자가 웁니다.

 

(73:12, 개역)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73:13, 개역)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아니 주님의 뻔히 살아계시는데 왜 악들이 하나님을 모욕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잘 살고 죽을때도 땟깔좋게 더 잘 죽고

오히려 죽게된 자는 주님의 자녀이다는 거죠.

 

왜 이러냐고 낙심이 되어서

밤낮으로 웁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해 본들

저들이 잘 되는 것에 그만 실신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그렇게 사망의 권세가

땅이 주의 자녀를 다 삼켜 버리더라 라는 겁니다.

 

아 그런데 주의 처소에 들어가니까

하루 아침에 그들의 잘되는 것이 잘됨이 아니였다는 겁니다.

도리어 놀란 것은 시편 기자였죠

 

그렇게 시편에서 언급된 주의 처소가 바로

이사야 26장에서는 여호와의 전

또는 여호와의 산, 시온 (여호와의 문) 이겠지요

 

(118:19, 개역)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118:20, 개역)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118:21, 개역)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118:22, 개역)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8:23, 개역)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118:24, 개역)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의도적으로 시온 산 주변에 산당들이 우후죽순 첩경으로 울퉁불퉁

서로 높고 크고 길고를 자랑하고자 경쟁하듯이 세워지는데

사실은 그들의 잘됨은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하기 위한

시온산에서 뜨인 돌을 말하기 위한 증상이였다는 거죠

그래서 돌 위에 돌이 하나도 서지 못하게하기 위한

가루가 되기 위해서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던 현상입니다

그것이 먼저가 아니라

뜨인 돌 시온산에서 나타나는 뜨인돌이 먼저였다는 거죠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거든요

모조리 다 평준화 시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들 곧 대표성으로써의 바리새인의 율법지키는 목적은

평준화가 아니라

뭘 해도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회개가 아니라

첩경을 평탄케 됨이 아니라

도리어 이런 공적인 자유를(처음사랑, 잃어버린 대의, 율법의 완성은 사랑) 무시하고

사적으로 자유를 소유하고자, 구원을 소유하고자, 의 곧 거룩을 소유하고자 했던

도리어 첩경을 더 높이 더 울국불국하게 어지럽게 만들었다는 거죠

마치 시온산 주변의 산당처럼

예루살렘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겁니다.

뜨인돌 곧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을 도리어 무시하고 말이죠.

 

그러나 그렇게 그들이 거짓된 영을 받아서 거짓선지자의 노릇을 하는 것 자체도

바로 주의 인애와 자비인

주의 의가, 십자가의 도가 먼저 있었기에

카페트 깔리는 배경으로써 작용하는 겁니다.

무너지도록 그것도 하루 아침에 말이죠 무너지도록 되어 있는

주의 의, 거룩이 먼저 있었기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바로 이 십자가의 도가 먼저 있었거든요

이것만 생명책에 기록되는 주님의 의, 곧 거룩입니다. 다른 거룩은 없어요.

 

왜냐하면 찬양 곧 새찬양은 이것 밖에 없거든요

다른 것은 찬양할게, 자랑할게 못 됩니다.

오로지 십자가만 자랑하는 겁니다.

 

시편 136편은 [인자] 곧 주의 인애와 자비가 한 구절 마다 다 들어가 있습니다.

 

(136:1, 개역)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 개역)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3, 개역)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4, 개역)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5, 개역)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6, 개역)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7, 개역)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8, 개역)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9, 개역)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0, 개역)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1, 개역)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2, 개역)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3, 개역)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4, 개역)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5, 개역)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6, 개역)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7, 개역)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8, 개역)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9, 개역)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0, 개역)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1, 개역)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2, 개역)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3, 개역)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4, 개역)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5, 개역)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6, 개역)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을 영원히 찬양하라

곧 오늘 나오는 본문의 표현으로 하자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단 하나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 뿐이기에 이것만 찬양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 언약의 하이라이트인 시편 마지막 편들은 바로

이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만을 영원히 찬양한다고 아예 도배를 합니다 도배

 

도배라는 표현을 어르신들이 잘 모르시던데 도배라는 의미를 아시지만

젊은 사람들이 쓰는 표현들로써 마치 빨간색으로만 다 칠하면 그런 의미로

한가지로 통일하듯이 하더라는 거죠

특히 채팅창에 같은 말만 반복해서 올리면 도배한다고 하죠

딴 사람들은 글을 못 올리게 일방통행처럼 하나만 주구창창 올리고 나머지는 배제

배타적으로 만들더라 말이죠

 

바로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만 영원히 찬양한다고 도배를 한다면

그 나머지 것들은 배제 배타적인 것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의를 모르고, 의를 배우지 못하는

곧 십자가라는 요나의 표적

이렇게나 밝히 또렷히 명료하게

심지어 날 때부터 소경도 보게되는 판국에

 

오히려 공무원이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선생들인 바리새인들은

때려죽어도 안 보인다고 라고 우기는 이 요나의 표적

곧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 거리끼는 것이 되는 이 십자가라는

주의 의를 찬양 못하겠다고 반발하도록 되어 있는

주의 의를 모르고 배울려고도 하지 않는

 

그 배타적인 것들이 바로

의 곧 그리스도의 의가 없어서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못하고

음부와 사망이 불못에 던져지는 것처럼

십자가 가 밝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의를 주장하는 십일조 드렸다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고 / 바리새인처럼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고 / 맏아들처럼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 부자청년처럼

 

의문의 반복인 속임수라는 인간의 꾀를 주장하는 자들은

음부와 사망이 불못 곧 지옥에 던져지듯이

이들 또한 그리스도의 의가 없어서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피발림이 없어서 지옥에 간다는 내용이

바로 오늘 계시록 20장의 내용입니다.

 

말 그대로 생명이 없고 주구창창 사망이라는 의문을

이전 것을 계속 주장해서 도배를 해요

온 몸에 온 신체에 유대인들처럼 칭칭 감아요 말씀을

 

그러면 그리스도의 의를 오히려 더 잘알고

심지어 공무원 곧 공적인 자유를 더 잘 말할줄 알았는데

아니였더라 라는 겁니다.

그 공무원이라는 공적 영역을 오히려 사유화 해서

강도의 소굴로 만들더라 라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졸지에 산당처럼 우상숭배의 소굴이 되어 버려요

 

자기 의를 쌓는 장소가 되더라 말이죠

오늘날 교회가 소위 인간의 정치(거짓선지자) 소유물이 되듯이 말이죠

 

그래서 매일 매일 깨뜨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 더러운 배설물들을 더더욱 쌓고 쌓더라 라는 겁니다.

 

그래야 높아진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 의는 없어요

그런 생명은 없어요

 

오히려 생명은 버림을 받아요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님앞에 나아온다는 말은

청년회 헌신예배 때에 청년들만 해당 되는게 아니라

도리어 죽은자와 같은 늙은이들이 꿈을 꾸는

도리어 청년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불타는 청년처럼 글쎄 죽은태가 되어서

100세가 넘어서 아이를 낳는

성령이 부어지게 된다는

의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땅이 삼켰는데 도리어 내 뱉게 되는 요나의 표적이라는 의를 배우는 자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겁니다.

청년부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그러니 오히려 노년부 헌신 예배때 해야겠지요

그러나 정작 청년부 노년부 이렇게 조직 자체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자꾸 조건과 형식을 따지는 법이 강하지

사랑은 식어지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아예 눈에 보이는 교회를 없애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야 의를 배운다 말이죠

땅이 성도를 삼켜야 다시 내 뱉는 그 의를 말이죠

안그러면 요나의 표적을 구하는게 아니라

자꾸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구하게 된다 말이죠

 

그러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요나의 표적이라는

주님의 의를 배우는 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두운 밤을

죽음을

사망의 권세를 멸하신 주의 성실함을 보게 된

주의 의가 덮쳐진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덮쳐진

땅이 삼켰다가 내 뱉은 자는 모두다

새벽이라는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 속에 거하는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되는 겁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말이죠

기능이지 존재가 아니다 말이죠

 

청년부에게만 해당되는 청년 젊은이라는 존재가 아니다 말이죠

기능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려내시는 예수님의 의

십자가의 도가 덮쳐지지 않은 자는 새벽 이슬 같은 청년이 못 되더라는 겁니다.

즉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 주님의 부활에 동참 못하는 자들이다는 거죠

다른 말로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불못에 던지움을 당하는 자입니다.

 

주의 의를 못 배워서 말이죠

생명책에 기록이 못 되어서

 

아무리 말씀을 지키고

율법을 지켜서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고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켜도

 

자기 의로 못 들어가고

 

오로지 주님의 의 곧 십자가의 도 로만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먼저 있었다 말이죠

 

그러니 천년동안 왕노릇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천년동안 저들 사망의 권세와 음부는 갇히게 된다는 상대적인 의미입니다.

단독적으로 딱 떼어와서 살펴보고 해석할 것이 아니다 말이죠

예복을 입지 않아 쫏겨나서 이빨을 가는 자와

상대적으로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벌린 임금이

혼인잔치로써 신랑과 신부의 결혼으로써의 천년이라는 관계성
역사를 뛰어넘는 묵시의 관계성 약속성취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표현한 겁니다.

 

(20:4, 개역)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20:5, 개역)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20:6, 개역)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7, 개역)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20:8, 개역)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20:9, 개역)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20:10, 개역)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그러니 천년 뒤에 감옥에서 풀려난 사단에게

기회를 주는게 아니라

도리어 이 구원의 확정 즉 주의 의를 또 배우도록 하시고자

가르치시고자

주의 의가 먼저 있었기에 더더욱 확대 확장 증폭 시키는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단독적으로 뚝 떼어와서 해석하는 천년왕국론들은 다 엉터리인 겁니다.

마치 어떤 이단들처럼 십사만사천명 속에 들어갈려고 열심히 전도하는 이단들처럼 말이죠

 

아 그러면 천년왕국이 없다는 거제? 너는 무천년설이구나 라고

무천년이라는 이론도 없어요

아 그러니까 너는 무천년설이 맞구나

어허 무천년설이라는 것도 없다니깐

(마찬가지로 앞의 글 이사야 26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활이란 단독적인 혼자 뚝 떼어와서 언급되는 부활이 아니라

그런 부활은 없다 말이죠 땅이 심판 받지도 않는데 부활이 왜 있겠냐 말이죠.

땅에 삼키움을 당한 성도가 땅이 뱉어버림으로써의 주의 의가 펼치는 부활이기에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

곧 죽었다는 것은 자연사가 아닌

마귀의 실상을 들추어내는 죽음이다는 거죠

곧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한 3일만의 간극을 벌리는 부활이기에

이 간극 이 변 두 꼭지점을 잇는 변으로써의 죽음이어야 하는 겁니다.

거기서 태어나는 자만 생명책에 기록된 자이다 말이죠.

심판의 알리바이로써 증거를 잡기 위한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 까지 저들에게 돌리기 위함이다는 겁니다.

반드시 마귀와 역어짐의 죽음이다는 겁니다. 목베인 영혼처럼 말입니다.

 

반드시 땅에 대한 심판을 동반한 상대적인 부활이다는 겁니다.

그냥 혼자 딸랑 부활 되는게 없어요

마치 바리새인이 십일조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는

단독적인 혼자 의를 쌓는 개념은 성경에 없습니다.

반드시 주의 의는 마귀의 강퍅성 완악함이 맞물려 있다는 겁니다.

그래야 주의 의로우심에 반대되는 마귀의 활동들이 낱낱이 들추어지더라 말이죠

주의 의로 말이죠

그러니 철저하게 마귀는 주의 의로움에 의해 이용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심처럼 말이죠.)

 

상대적인 의미이다 말이죠

마귀가 갇혔다는 겁니다.

그럼 왜 천년 뒤에 풀어주느냐

기회를 주는 것이냐?

범인이 깜빵이 들어가서 형량을 다 살면 풀어주잖아서

감옥에서 풀려나서 새롭게 죄 짖지 말라고 하잖아요

기회 주듯이

 

아닙니다.

 

기회를 주고자 풀어주는게 아니라

그 반대죠 기회 자체가 없어요

너는 사단이기 때문에

도리어 이 주의 의를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부정적인 도구가 된다는 겁니다.

 

마치 애굽왕 파라오 왕을 강퍅케 해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 보라 라고 하시듯이

 

애굽왕과 애굽 군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겁니다.

 

이 영광의 의미가

의로움의 의미가

천년이라는 역사 바깥의 묵시의 기능인데

숫자 세듯이

천년 1000으로 계산하면 안된다는 거죠

 

하나님의 일이지

사람의 일이 아니다는 겁니다.

 

주님의 의를 배워야지

주님의 도를 배워야지

 

사람의 의를 보라는게 아니다 말이죠

 

결국 그들 사단이 천년이 차면 풀려나는게 자유케 된다는게 아니라

주님의 의를 더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의에 도전하는 싸움을 펼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싸우기 싫어도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길려고 하기 때문에 더더욱 괴물이 되듯이 말이죠

 

그러니 저들 사단의 회 곧 유대인에게는

이 십자가 라는 주님의 의가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걸림돌이기 때문에

뽑을려고 달려드는 기능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성령을 붓게 되면

늙은이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고

조금만 있으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도리어 성령이 부어지면 젊은 부부처럼 아이를 낳더라 말이죠

 

아니 죽을 양반들이 아이를 낳는데?

 

그리고 반대로 젊은이들이 도리어 죽을려고 환장하듯이

묵시를 확땅겨서 이 역사를 막 찢어요 글쎄

종말을 확 땡겨요

끝을 막 땡겨요

미래완료를 확 땡겨요

 

이게 바로 부활 곧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 주님앞에 나아오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열매이다 말이죠

열매의 열매

 

부활교리하는 그런 사기를 믿지 마시고

죽은 뒤에 그때가서 부활 할 것을 믿숩니다 라는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동네사람들의 부활관

모든 종교가 이 부활교리 없으면 장사를 못해요

그런 부활 믿지 마시고

부활도 안 될 뿐더라

거짓의 영입니다.

 

주님의 도를

주님의 의를

십자가의 도를 배우자 말이죠

 

막 죽어나가서

땅이 아무리 삼켜도

천년이 차서 마귀가 풀려나

아무리 성도를 잡아 먹어 삼켜도

다시 내 뱉어 버리는

요나의 표적이 먼저 있었기에

 

이 십자가의 도를 배우는 자가 바로

새벽이슬같은

죽음을 통과한

사망의 권세를 멸하신

주의 성실하심을 입은 새벽 이슬같은 청년이다는 겁니다.

늙은이 인데 청년이래요

어린아이 인데 청년이래요

 

젖을 물려본적이 없는 여자가

해산하는 고통을 느껴 본적이 없는 여자가

글쎄 하늘에 자식이 많다는 겁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구원을 얻거든요

 

아니 시집도 못 갔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느냐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아니라 역사가 아니라

사건으로써

여자의 기능을 다 하는 겁니다.

 

도리어 머슴아가 여자가 되어서 베드로처럼 신부 곧 교회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교회가 된

부활 곧 사망의 권세를 깨뜨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천년 뒤에 사단이 풀려난다고 해서

오히려 이미 이긴 싸움을 새삼스럽게 이긴다고 해서 이기는게 아니라

죽어도 이미 이겼기에

주의 의를 배웠기에

십자가의 도를 배웠기에

이 주님의 의가 더더욱 풍성하게 되고자

사단이 풀려남 속에서도

이 십자가의 도 라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사단에 의해서 뽑혀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이미 완료가 된 또렷함이고

여전히 마귀들은 흐릿하고 모호한 것으로 뽑을려고 하니 될 턱이 있겠습니까?

만약 마귀가 또렷함으로 싸우겠다면 뽑기는커녕 오히려 더 박아버리겠지요

그런데 마귀라는 기능 자체가 그것을 못하도록 되어 있기에

처음부터 미음 받기로 작정이 되어 있기에

사랑을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주의 의가 덮쳐진 신부인 교회는

창조주의 창조를 여자의 신체로써 생명을 잉태하는 그 수고로움

희생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사랑으로 아이를 낳으니까

 

이 부활(죽은 태에서 생명이 태어나게 하시는 주의 의,

곧 땅이 삼킨 성도를 내 뱉음으로써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주의 의[요나의 표적]를 배우는)에 참예케 되는

그 기쁨을 더더욱 찬양 우주끝까지 만유의 주를

만군의 주 되심을 증거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뭘 해도 찬양이 나오는 겁니다.

새노래 새찬양이지요

 

새찬양이 먼저 있었기에

새찬양을 하도록 되어 있기에

사단은 풀려나서 자꾸 싸울려고 달려드는 겁니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도리어 뱉어 내더라 말이죠

삼켰는데 삼켜지지를 않아요

도리어 사자가 강한 사자가 썩어버리고

죽은 성도가 꿀처럼 사자의 입 속에서 단 것이 나오는

이 수수께끼가 비밀이 바로

주의 의로움 이다는 겁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바로 이 십자가의 도를 배운

성령이 임한 자들이다는 겁니다.

뭘해도 주의 의 만 나타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탕자처럼 뭘해도

금가락지 살진소 새신발처럼

왕같은 제사장 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써

주의 의가 덮쳐진

거룩이 입혀진 자가

 

바로 상대적으로 불못에 던지움을 당해 이를 가는 자들과 대조로써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마 22장 종말의 잔치인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더더욱 극대화 시키는

요나의 표적(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3일이라는 간극을 버리시는 주님의 의 곧 행함이 있는 믿음) 외에는

보여줄 다른 복음, 다른 주의 의는 없다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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