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 가장 메시야와 상관없는 모습으로 온 메시야

먼저 구약 다니엘서 에스겔서에 나타난 인자의 모습은 심판을 친히 감당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실천학에서는 메시아가 이런 인자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인간이 바치는 그 행함의 결실에 부합이 되는 메시야가 되어야만 그 행함의 댓가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인자는 그야말로 영웅적이어야 한다.

바로 이런 유대인들의 인자에 대한 해석은 가인에게서부터 이미 전제되어 있다. 제사도 외부에서의 희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쪽에서의 희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희생을 받아주지 않는 각자의 희생의 제사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돌로 쳐서 그 경쟁자를 없애버림으로써 자기의 희생의 행함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노리는 것이 인자다.

인자란 인간의 각자의 희생적인 행함에 이유없이 미움을 받는 모습으로 드려지는 희생자의 모습이다. 아벨이 그러하였고 다윗의 손에 죽는 우리야가 그러하였고 입다의 손에 제물이 되는 입다의 딸이 그러했고 이스라엘 전체에게서 죽는 참선지자들이 그러했고 유대인과 이방인인 모든 인간의 손에 죽는 예수님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인자는 마치 법궤 상자처럼 뭔가를 담는 증거궤 노릇을 하는 셈이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인간의 죄악을 유발케 (사랑이 오니 사랑인척 연기했던 것들이 이유없이 그냥 죽여버리듯) 되어 그 인간의 모든 포장의 무화과 겉옷을 다 홀라당 벗겨버리는 것이다. (할례=마음판의)

자 인자란 자신의 희생으로써 가죽옷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준비해서 완료했다면
그동안 완료인척 했던 모든 옷들을 다 벗겨버리는 인간의 수치 허물인 죽음을 드러낸다.

사랑인척 생명인척 소망인척 믿음인척 하던 모든 가면들이

이 인자가 들추어내는 벗겨버리는 그 죽음의 실체 앞에서 다 벗겨지는데

인간이야 말로 불뱀의 실상이요 죽음 자체의 죽음덩어리 죄 바이러스 이다는 것이다.


인자는 바로 이것을 노리고 적진영 속인 인간 속에 뛰어든다.

아무도 원치 않는 모습으로 싫어버린바 된 모든 질병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무기력한 양을
하나님의 법을 손아귀에 쥐어서 정죄해야만 다시는 저런 인자가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창 3:15의 뱀의 후손의 사고방식이 비로소 드러난다.

뱀의 후손인 유대인이 원했던 인자는 결국 자기의 탐욕을 투사한 것이다.
그 외롭고 고독한 영웅적인 신앙의 길을
이제야 비로소 꽃을 피울수 있는 인자라는 메시야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젲밥에 재 뿌리듯이 재수없이 인자 인척 메시아 인척 하는 예수에게 모든 미움을 다 퍼붓는다.

그 미움을 다 담아야할 증거물이 법궤 상자에 고이 고이 담기듯이
십자가는 모든 인간의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살인의지를 다 담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라고 외친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룬 것일까?

사랑은 원수와 결부 시켜서 증거하는데 이런 모든 허물마저도 피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피의 진가를 제대로 보라고

모든 의미를 피에게 집중시킨다.

이제 이 피 외에 다른 증거를 할 수 없도록

자기의 허물을 이 피를 앞장세우면서 증거해야 하도록 한 것이다.

그야말로 껄끄러움이요 수치다.

그런데 그 수치가 허물이 남들에게 미움의 표적이 됨을 뻔히 알면서도
그 수치를 덮고도 남는 언약의 피의 활약상을 어두움과의 차이로써
죄악과 허물의 차이로써 철저하게 단절되게 불가능한 건널수 없는 강인 죽음과 저주를
피로써 너끈히 넘고도 남을 외부의 희생제물을 자랑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죄란 피가 비로소 들추어낸 피가 규정한 죄다. 피에 의해서 죄의 실체가 밝혀지기 때문에 피 외에는 죄를 알 길이 없다. 피가 비밀인 숨겨진 의미이듯이 죄 또한 비밀로써 숨겨진 은폐된 것이다. 악마의 세계 또한 그러하다.

이제 악마의 세계는 이 허물을 자기들이 지은 옷(형상-우상-무화과나뭇잎-법)으로써
가리우는데 전념을 다해야만 하는 수고함에 쳐해 있고

주님의 세계에서는 이 허물이 어떻게 완료 되었는가를 가죽옷(그리스도의 형상-피-십자가-사랑)으로써 그 가죽옷의 진가를 더더욱 드러내도록 되어 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너희를 꾀더냐

악마의 세계는 이 십자가의 의미만을 뺀 모든 것으로써 가리우면 되는 운명이고
주님의 세계에서는 십자가가 아니면 왜 안되는가를 보여주는 운명으로만 증거된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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