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아끼지 말고 크게 외쳐 죄를 고하라 (동네사람들 나의 죄를 아는 선지자가 나타났어요) (사 58, 1- 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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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 아끼지 말고 크게 외쳐 죄를 고하라 (종말을 땡기는 겸손한 자) (사 58, 1- 5)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 남편 여섯 있는 나의 죄를 까발리는 새 남편이 왔어요! 

나의 죄를 담당할 선지자가 나타났어요!! (야곱의 우물가의 여인)

(요 4:28, 개역)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 4:29, 개역)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요 4:30, 개역)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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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사 57,14-21)
이사야 2017 2020. 8. 9. 08:12
18-98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주님) (사 57,14-21) 

(사 58:1, 개역)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사 58:2, 개역)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사 58:3, 개역)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사 58:4, 개역)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사 58:5, 개역)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사 58:1, 새번역) 『"목소리를 크게 내어 힘껏 외쳐라. 주저하지 말아라. 너의 목소리를 나팔 소리처럼 높여서 나의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알리고,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려라.』
(사 58:2, 새번역) 『그들이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이나 되듯이,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가를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사 58:3, 새번역) 『주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주님께서 알아 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너희 자신의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사 58:4, 새번역) 『너희가 다투고 싸우면서, 금식을 하는구나. 이렇게 못된 주먹질이나 하려고 금식을 하느냐? 너희의 목소리를 저 높은 곳에 들리게 할 생각이 있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금식을 해서는 안 된다.』
(사 58:5, 새번역)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사람이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 되겠느냐?"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는다고 해서 어찌 이것을 금식이라고 하겠으며, 주님께서 너희를 기쁘게 반기실 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덩어리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을 에스겔에서는 무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무당의 자식 말이죠

그런데 무녀의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버려져서 핏덩어리 채로
죽어 마땅한냥 버려진 채로 태어났는데
그런 자와 약속을 하셨다 라고 하십니다.

아니 태어난지 1시간도 안 된 아기와 무슨 대화를 하고
무슨 약속을 하겠냐 말이죠
귀가 제대로 자라기를 했나요
눈을 제대로 뜨기라도 했나요
모든 것이 무능이요
심지어 무당의 자식이질 않나
거기에다가 버려져서 핏덩어리로 독수리 밥이나 마찬가지인데

뭘 보고 무슨 희망이 있어서
이 절망 밖에 없는 아기에게 약속을 하시느냐 말이죠

이것이 바로 말씀에 의해서 밝혀진 나의 진짜 모습이다는 겁니다.
즉 죽어 마땅한 자로 태어났다는 것

그런데 인간에게 허구 허상이 들어가게 되니
이런 약속 보다
이런 말씀 보다

우상이 우선시가 되다 보니
그 대표적인 자들이 이방인 아닙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가 우선시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또한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우선시가 되다 보니

소위 집권자처럼 임의로 사람을 대하는 겁니다.
깡패짓 갑질을 말이죠

죄를 크게 크게 고해야 할 시온의 딸이라는 애통하는 자가

도리어 애통은 벗어버리고
금식이라는 종교오락을 하는 겁니다.

즉 금식을 한다고 하면서
힘이 빠지는게 아니라
도리어 깡패짓을 하고 남을 일 부려먹더라 말이죠

이것은 마치 회개를 큰 길가에서 기도하고 있지
골방에서 은밀하게 하지 않는 겁니다.

율법을 지킨 것이 도리어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낮아진 마음이 아니라 도리어 깡패나 마찬가지인 높아진 완악한 마음을 가진 것이더라 말이죠

두 소경이 크게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그러자 제자들이 말립니다 제발 고함치지 말라꼬

그러자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꼬

지난주 마태복음 말씀인데
그 앞의 지지난주에서는

세베대의 두 아들의 어미가 하나는 좌편 하나는 우편에 앉도록 명령하라 라고
주님을 임금 취급합니다.
권력자 높은자 깡패 집권자로 말이죠

그런데 두 소경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면서
그래 뭘 원하는데
보기를 원한다 라고

아니 너희 둘은 왜 우편 좌편을 안 구하니????

안 보이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 있냐 말이죠

안 보이는데

졸지에 주님이 민망히 여겼다 라고 나옵니다.

(마 20:34, 개역)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사전에 이렇게 나오네요

부끄럽거나 당황스러운 일을 당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을 느끼는 상태에 있다
답답하고 딱하여 안타깝다
낯을 들고 대하기에 부끄러운 데가 있다

물론 지난주처럼 다른 번역에 너무 너무 불쌍해서 긍휼히 여겼다 라는 표현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사전의 의미처럼


당 당 당황 하셨 셨어요 라고

왜 당황 하셨을까요?

정작 겸손한 자를
이스라엘 속에서는 못 찾으시고
귀신 들린 딸의 어미의 고백을 통해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게 되니

주님이 민망
당황 하셨던 겁니다.

겸손한 자를 건강한 자에게서는 못 찾으시고
환자 그것도 앞을 못 보는 소경에게서 찾으셨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신부 이다 라고
겸손한 분이
온유한 분이 자기 짝 아내를 찾으셨따 라고 말이죠

그런데 인간의 회개는 회개의 달인은
그것이 졸지에 종교인의 오락이 되다 보니
그것이 졸지에 돈이 되는 겁니다.
이방인의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가 되듯이
돈이 되다 보니
권력자 집권자가 되니
임의로 수시로 깡패짓이 마구 마구 튀어나오는 겁니다.

교회 목사
장로 들 보세요
일종의 권력자가 되다 보니
깡패짓이 튀어나와요

그게 바로 교회 질서를 지켜야지 이렇게 호산나 시끄럽게 찬양하면 되나?
조용한 평화의 성 예루살렘에 소동이 벌어지잖니 좀 조용히 해
예수여 당신 제자들과 아이들을 좀 조용히 시키세요

이것이 바로 종교오락 조용히 하기 시체놀이를 하는 자들에게

전쟁 선포 뿌뿌뿌 나팔을 불며 천국을 침략하는
예루살렘 성을 침략하는 전쟁 선포 이다는 겁니다.

무엇이 애통하는 자의 기도이며
무엇이 시온의 딸의 기쁜소식이며
무엇이 수태치 못한 여인의 즐거움입니까?

남들이 다 이해하고 알아먹는 회개나 죄를 고하는 것은
그것은 비유가 아닙니다.

비밀이 아니다 말이죠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써의 죄를 고하는

그것도 크게 크게 부르짖는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외침 부르짖음입니다.

누구 들으랍시고?
종교 오락하는 자들 들으랍시고 말이죠

회개 오락
금식 오락
십일조 오락
이레에 두 번 금식 오락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오락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는 오락

왜 오락일까요? 졸지에 나중에 권력이 되어버려요
우와 다들 부러워 하고요

즉 다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오락은 누구나 다 이해 가능해요

그런데 비유는 도통 이해가 안되요

왜 저렇게 두 소경을 고래 고래 고함치지?
왜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지
예수님 이라고 안 하고
이름 모를 리가 없는데

어라 좀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만
더 크게 고함치며 고성방가 하고 있네

왜 저리지

도통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분의 등장으로 인해 
그 겸손한 분과 관계성을 맺게 된 분은 그의 증상물로써 단절이 된 채로
소통이 안되고 해석불가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오히려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부자청년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으니 말이죠

어라 그런데 다시는 안 만나겠다 라고 등돌리고 근심하고 돌아서 가 버리는 겁니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처럼 말이죠

아니 이 부자청년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을 가지고 온 자가 어디 있냐 말이죠
왜 그런데 주님은 외면하시는 겁니까

아니 주님이 외면 했습니까?
부자청년 자기가 외면 했지

아니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못 나누어 주면
주님과 등돌리고 살겠다 라고 누가 외면합니까

즉 자기 삶이 그것도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는 자기 삶을 누가 폭파를 시켜주지 않으니까
폭파 되지 않는 한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 조차도 율법으로 작용할테니
자기 속임수에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겁니다.

그게 뭐 중요하다고 주님을 등 돌리느냐 말이죠

자기가 율법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까

예수님이 우선 입니까

새 것 곧 성령 곧 탄식하는 죄를 고하는 영이 없으니까

자기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서 속아넘어가는 겁니다.

아 전재산을 못 나누어 주는 것 보니까
나는 애초부터 율법을 단 하나라도 지킬수 없었던 죄인이였군요

주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전재산이신 목숨을 저에게 부어주소서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해야

주님이 당 당 당 황 당황하셨어요 라고 될 것 아니겠냐 말이죠

겸손하신 분이 찾으시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곧 시온의 딸이 아니였던 겁니다.
애통할 꺼리가 없는
배불러 터진 겁니다.

목말랐던 것이 아니라
목마른 척 했던 겁니다.

뭐든지 말씀하소서 당장 지금이라도 지키겠습니다
이게 무슨 순종 입니까

완악한 거지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자기로 결과를 맺고자 하니까 말이죠

주님의 죽음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라고 외치는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간 자입니다.

주여 죽어주시옵소서 라고 외치는 자가
바로 두 소경 고함 치면서
부르짖으면서
제발 다윗의 자손이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외치는 자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아끼지 않고 크게 외치면서 죄를 고하는 자입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 겁니다.
자기 죄가 말이죠
소경 됨이 말이죠

종말을 땡긴다 라는 말은
자기 죽음은 죽음도 아니기에 땡길 필요나 가치도 없어요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을 구하는 땡기는 자가 크게 외치는 목마른 자입니다.

목 마름
우물가의 여인이 생각나지요
목 마르지도 않은 여자에게
갑자기 죄를 캐 묻고서는
갑자기 새롭게 목마르게 만드는
소성케 하시는 겁니다.

갑자기 여인이 물 주세쇼 물 주세요 목 마릅니다 라고 말이죠
그래 너의 죄 덩어리 가지고 온다
네네 여기요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기뻐하거든요

애통함으로써 날 책임져줄 남편 하나 없어서 지내왔던 것이
졸지에 남편이 생겨 버렸고
졸지에 눈을 뜨지 못했던 지난 날이 졸지에 눈 뜨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냐 말이죠

그런데 상대적인 대조를 이루는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어렵게 어렵게 몰래 밤에 찾아와서
동료들에게 안 들키게 말이죠
한 수 배울려고 말이죠
그렇게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너 니고데모의 종교 오락 곧 가르침 지혜 등등
그 오락에 안 말려들겠다 라고
너는 죄를 가져올 것 없지?
거봐 너는 이스라엘 선생이다 보니
가져올 죄가 없을 거야 라고

주님 앞에 아뢰올 것이 없는 겁니다.

그저 다른 바리새인처럼
십의 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저 매국노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 이렇게 깨끗한 삶을 살게 해서

아니 죄 가지고 오라니깐



아뢸게 없어요

아니 의사가 자꾸 너 병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자꾸 건강한 것 만 내밀고 있으니

아뢸게 없어요

도리어 예수님이 큰 소리 치고 있어요

그럼 왜 날 불렀냐 라고

종교 오락으로 깡패짓만 하더니
이제는 예수님 앞에서 까지 그 개버릇을 펼치는 겁니다.

의사는 환자를 찾는데
자기 건강하다고 의사를 불러놓고 말이죠

이거 뭐 장난하냐 말이죠

성화론자들 보세요
개혁주의자들 보세요
장난치고 있어요
자기가 건강하다 의인이다
성화 되었다
그것이 의사에게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의사는 병자를 고치는 기능 밖에 못해요

자기 의술을 건강한 자에게 안 펼칩니다.

그러니 인간의 신앙은 다 장난입니다.
사기 치는 겁니다.

그거 다윗이

두 소경이 불렀던 예수여 예수님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던 두 소경이 외친
다윗이

그 사기 다 쳐봤다는 겁니다.

회개 장난
눈물 장난 침랑을 다 적셨다 말이죠
금식 장난 아니 전국에 있는 소 물 위에 떠내려가서 지붕 위에 있는 소까지 금식시켰다 말이죠
기도 장난

다 해봤습니다.

통하더냐? 안 통합디다

그 장난들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다 폭파 당하지 않으면

꺾으신 뼈로 못 기뻐하는 겁니다.

자기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믿음을 못 봅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소경입니다.

이 소경을 찢는 것은
나의 어두운 두 눈을 찢는 것은
내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곧 찔러 쪼개시는 운동력 있는 말씀입니다.

환자의 자리에서
두 소경의 자리에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는 다윗이라는 원수의 자리에서

돈벌이하는
종교 오락을 하는 자와의 차이를 주님께서 직접 벌리시면서

새롭게 소성
전혀 알아먹을수 없는 비유 덩어리 은밀한 비밀덩어리로써
겸손한 자로 소성케 새로 만드시는 겁니다.

생명나무는 예수님 뿐입니다.
생명수는 예수님 뿐입니다.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환자요 죄인이요 원수입니다.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는 제발 의사선생님 고쳐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의사로만 오셨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게 하는 새 것은 죄인의 눈에만 보입니다

(사 65:17, 개역)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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