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을 밝히시는 여호와의 구원의 손 (사 59, 1-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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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을 밝히시는 여호와의 구원의 손 (사 59, 1- 8)


내가 곧 길(공의,평강)이요 그러나 너희는 평강이다 라고하나 평강이 없다 (사 59, 1- 8)

187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결박을 풀어주는 나의 기뻐하는 금식(예수님의 죽음) (사 58, 6-14)
이사야 2017 2020. 8. 23. 09:11
18-100 결박을 풀어주는 나의 기뻐하는 금식(새 금식 예수님의 죽음) (사 58, 6-14) 


(사 59:1, 개역)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 59:2, 개역)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3, 개역)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사 59:4, 개역)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사 59:5, 개역)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사 59:6, 개역)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사 59:7, 개역)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사 59:8, 개역)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사 59:1, 새번역)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사 59:2, 새번역)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사 59:3, 새번역) 『너희의 손이 피로 더러워졌으며, 너희의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너희의 입술이 거짓말을 하며, 너희의 혀가 악독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사 59:4, 새번역) 『공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진실되게 재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말하며, 해로운 생각을 품고서, 죄를 짓는다.』
(사 59:5, 새번역) 『그들은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로 옷감을 짠다. 그 알을 먹는 사람은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혀서 터지면, 독사가 나올 것이다.』
(사 59:6, 새번역) 『그들이 거미줄로 짠 것은 옷이 되지 못하고, 그들이 만든 것으로는 아무도 몸을 덮지 못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죄악을 저지르는 것뿐이며, 그들의 손에는 폭행만 있다.』
(사 59:7, 새번역) 『그들의 발은 나쁜 일을 하는 데 빠르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신속하다. 그들의 생각이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황폐와 파멸이 있을 뿐이다.』
(사 59:8, 새번역) 『그들은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공평이 없다. 스스로 길을 굽게 만드니,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이 없다.』

(롬 3:15, 새번역)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 ㉥사 59:7; 8』
(롬 11:26, 새번역)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구원하시는 분이 시온에서 오실 것이니,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못함을 제거하실 것이다. / ㉥사 59:20; 21; 27:9(칠십인역)』
(엡 6:17, 새번역)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 ㉥사 59:17』


내가 곧 길이요 라고 자기자신을 길이다 라고 선포하심은
다른 길은 다 가짜요
다른 사람들은 올바른 길을 제시할수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한 세트가 되어야 한다 말이죠

예수님 자신이 나는 평강이요

(사 9:6, 개역)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새번역)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 ㉡또는 '놀라운 자, 조언자' ㉢또는 '권좌에 앉으신 이'』

즉 다른 사람의 어깨의 정사 곧 통치자는 엉터리 통치자이고
다른 사람의 기묘 곧 슬기로운 지혜 생활은 엉터리 지혜로움이다 라는 거죠

(사 28:29, 개역)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사 28:29, 새번역) 『이것도 만군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주님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끝없이 넓다.』

결국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평강은 다 엉터리 평강이다는 겁니다.

거짓선지자의 특징이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하나 평강이 없잖아요

(사 48:22,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 57:21, 개역)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렘 6:14, 개역)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8:11, 개역)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샬롬 샬롬 하면서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면서 저주를 퍼붓는 인사말을 하더라 말이죠

진짜 샬롬 즉 비밀의 인사말 샬롬은 새해 저주 많이 받으세요 라는 뜻인데 말이죠
간밤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안타죽었다니
우와 그 정도로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억수로 불쌍히 여겨주셔서
피 흘리심으로 용서해 주셨구나 라고 우는 자가 회개하는 자가
저주 받은 자가 복 되도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샬롬이 종교라는 짐승나라의 인사말이 되어서 매매 소통이 되는 겁니다.
마치 오늘날 성령을 빤스목사든 
빤스목사와 같은 수준낮은 저급한 성화론이 아니다 라고 하는
수준 높은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성령이든
성령으로 교통할려고 하는 짐승나라의 특징 거짓선지자의 특징을 보여주듯이 말이죠

그런데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
주님이 자신의 구원의 손을 펼치시는 방식은
반드시 원수를 그 발 아래 놓으시는 방식으로써 나타나는 구원의 손입니다.

그렇기에 그 상대적인 비언약은 바로 아브라함 본인이였듯이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이듯이
다윗 언약 또한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주의 오른손인 구원의 손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 죽음의 자리
비언약의 자리에 놓이시는 주의 오른손 곧 구원의 손이다 말이죠

그래야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
그 죄인을 부르러 오신 구원자를 볼게 아니겠냐 말이죠

그런데 다들 평강의 자리에 설려고 해요

내가 곧 평강이다 라는 주님의 외침은
다른 평강은 다 가짜인데

자꾸 가짜의 자리에 서고서는 평강을 외치니 그것이 거짓선지자 아니냐 말이죠
거짓 백성이다 말이죠

그러니 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주의 구원의 손이 낱낱이 밝히 시는 겁니다

앞의 글 에스겔에서도 이스라엘의 죄악이 나열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스라엘의 죄악이 나열이 됩니다.

에스겔 22장에 이스라엘의 죄악은

(겔 22:12, 개역)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전과 이식을 취하였으며 이를 탐하여 이웃에게 토색하였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2:13, 개역) 『너의 불의를 행하여 이를 얻은 일과 네 가운데 피 흘린 일을 인하여 내가 손뼉을 쳤나니』
(겔 22:14, 개역)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룰지라』

바로 즐거움 곧 오락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지난 주 이사야서에서 오락이 된 금식이라고 했다 말이죠
금식 자체가 불행이다면 인간들은 안 합니다.
그런데 금식 조차도 자기의 즐거움을 깔고 하기 때문에
견뎌내더라 말이죠

그러다 보니 오락이 되다 보니 니 잘났니 내 잘났니 싸움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비밀이 깔려 있지 않은 종교오락이 된 금식이
더 나은 결박을 풀어주는 금식인 예수님의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강도의 죄인의 친구 되신 비밀의 금식을 견디질 못하는 겁니다.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서 가난이라는 결박을 풀어줄줄 모르는
율법 지키는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키는 부자청년의 행함은
결국은 사기 였다 말이죠
살인의지였다 말이죠
예수님을
생명을 등지고 돌아서니 말이죠

그냥 제가 가짜입니다
진짜는 당신 뿐입니다 라고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나는 율법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 라는 선악을 끝까지 포기 못하겠다 라고
돌아서는 겁니다.
절대로 손 못 놓겠다 라고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의 죄악은 오히려 바리새인의 의로움처럼
부자청년의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킴처럼
맏아들이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처럼 (저 탕자와 같지 않았다처럼)

평강이 아니면서 평강인척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세상이 지옥됨을 보여줄수가 없어요
오히려 이스라엘이 지옥임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이 지옥임을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니 니느웨 백성이(요나의 표적)

(욘 3:5, 개역)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눅 11:30, 개역)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눅 11:32,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스라엘이 보여줄 기능을 거꾸로 니느웨가 보여주면서
거꾸로 이스라엘을 니느웨가 심판하는 겁니다.


(마 12:38, 개역)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마 12:3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40, 개역)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 12:42,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지혜가 없다 라고 지혜의 왕을 찾은 남방여왕이
이스라엘을 심판한다는 겁니다.
거꾸로 말이죠
이스라엘이 정죄를 받아서 심판의 주를 외쳐야 하는데 거꾸로
맏아들이 아니라
탕자를 통해서 맏아들이 왜 심판 받아야 함을 보여주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의 죄악은 주님이 덤핑 뒤집어 씌운 겁니다.
물론 원래 당연히 이스라엘이 행했던 죄악이기도 하구요

그것을 나열하면

에스겔 22장에서는

겔 22:7-12절에

부모를 업신 여기며(부모란 선지자 이거든요 출애굽의 경험을 증거하기에 말이죠
즉 선지자를 죽였다 말이죠 예루살렘 살인자의 도성이니 말이죠)

(겔 22:7, 개역)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겔 22:8, 개역)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나그네를 학대 했고 즉 처음사랑을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어린아이를 거부하듯이 말이죠 죽은자를 살리는 긍휼을 스스로 거부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아 과부를 해치더라 말이죠
즉 부정한 자를 자신들의 거룩함 때문에 거리두기를 하는 겁니다

결국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 그러하다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의 성물을 업신 여기며 안식일을 더럽혔다 말이죠

즉 안식교처럼 거룩한 성전의 기능을 도리어 자기들의 배를 위하여 우상화 하듯이
살인자의 도성으로 예루살렘을 만들고

안식일날만 골라서 예수님이 안식의 주인으로써 손마른자를 고치시니까
그것에 대한 반발을 나타내는 겁니다.
차라리 안식일을 안 지켰으면
도리어 손마른 자였으면 안식의 주인을 만났을텐데
안식의 주인을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죽이는 겁니다.
그 정도로 더럽기 짝이 없음을 
도리어 손 깨끗이 씻어서 마음이 더러움을 감추는 식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입술로는 경배하나 마음으로는 저주하는 거죠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으로써
주님의 구원의 손이 들추어내시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심판의 손이 아니면 우리는 안 들킨다 말이죠

평강이 없으면서
생명이 없으면서
대충 심상히 고치면서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치니 웃끼는 거죠

그 정도로 안식일을 더렵히고 있으면서
대충 대충 심상히 고치면서 안식일 지켰다고 우기는 겁니다 



(겔 22:9, 개역)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음란하는 자도 있었으며』

자기에게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고 살인을 저지를려고 서로 이간질을 붙이더라 말이죠
그리고 시온 산에 산당을 지어서 우상숭배를 하고
그 제사에서 음란한 짓을 하고

또 근친상간 부녀간 남매간 음행을 저지르고
월경하는 여인에게 구합? 아마 강제로 더 더럽힐려고 어차피 더러운 부정한 상태이니
더 더럽히는 잠자리를 하더라 말이죠
긍휼을 바라는게 아니라 말이죠

(겔 22:10, 개역) 『네 가운데 자기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에게 구합하는 자도 있었으며』
(겔 22:11, 개역) 『혹은 그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혹은 그 며느리를 더럽혀 음행하였으며 네 가운데 혹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과 구합하였으며』
(겔 22:12, 개역) 『네 가운데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전과 이식을 취하였으며 이를 탐하여 이웃에게 토색하였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이웃의 아내와 동침하고
며느리를 욕보이고
청부살인으로 돈 벌고
그리고 변전? 이식? 즉 이자놀이로 고리대업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자 이웃을 함정에 빠뜨려 토색? 갈취 탈취 삥뜯더라 말이죠

오늘 본문 이사야 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죄악을 나열하면 바로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멸망당해도 마땅하다는 겁니다.

(사 59:3, 개역)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사 59:4, 개역)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고
손가락은 더럽고 입술은 거짓을 말하고 혀는 악독을 내뱉더라 말이죠
공의대로 하지 않고 부당한 거짓 고소 거짓 고발을 서로 일삼으며
진리대로 판결하거나 변호하는 자도 없고
허망한 있지도 않는 터무니 없는 것을 신뢰하고 믿고 있고
거짓의 음모를 꾸며서 생산해서(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네 맞습니다 다윗의 범죄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다윗 말이죠
주의 오른손이 다윗의 죄악을 주의 발등상에 다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감추고 감출려고 해도
이방인은 냅뚜지만
다윗 만큼은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다 들추어 내시는 겁니다.
정직한 영 즉 새 것이 없음을 말이죠
이것이 주의 친절한 팔이 나타내시는 일입니다.)

(사 59:5, 개역)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또 독사가 거미줄을 어떻게 짭니까? 그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계획적으로
우리야 장군을 죽이는
미필적 고의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렇게 사망이 나오는 겁니다

율법 네 배나 갚으라 에서는 평강이 나오지 않고
대충 대충 심상히 고치는 거짓선지자만 나온다는 겁니다.

바리새인이 그래서 나타나야만 하듯이 말이죠 
독사의 자식들이 그렇게 발생하는 겁니다.

그들 또한 소성
갑자기 이유 없이 
원인 없이 나와야 하니까 말이죠

(사 59:6, 개역)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

이런 이전 것은 지나가는 것으로 짠 옷은
오히려 완악한 수건만을 고집하는 겁니다.
수치를 가리우기는커녕
더더욱 수치를 생산한다 말이죠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릴수 없으니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우면 가릴수록
더더욱 완악하니까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남을 7번 용서 등등 다 포기하라 라는 겁니다
신앙 조차도 포기하세요

믿음 조차도 믿음을 포기하는 믿음인
불가능한 믿음 곧 예수님이라는 믿음을 외부에서 선물 받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자기 의를 쌓고자 하는 짖에 그 오락에 중독이 되어서
못 빠져 나와요  성화론자들 보세요
자기의 의로움 쌓기에 미쳐 있어요 종교오락 말이죠

곧 하나님의 의란 이사야 이오팔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망 이라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수치를 제거하시는
사망을 멸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마귀 곧 하나님의 원수로 몰아가서
진짜 보이지 않는 마귀를 잡는 미끼로 삼으실때에
주의 오른손을
즉 죽음 속에서 비로소 길을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나의 죽음의 자리에서
모든 길이 다 막혀서 스올 큰물고기 뱃속 그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빛을 보라 라꼬

의도적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각기 제길로 가는 양 같은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그래야 진짜 마귀가
베드로 마귀를 잡아왔다 라고 그 거짓을
그 가짜 평안을 펼칠때에

주님은 자신의 피 옷으로 흰눈과 같은 거룩한 신부의 옷으로
이 창녀 같은 베드로를 새롭게 입혔을때에

세상이 견디질 못하고 격동하면서
지옥의 본질을 드러내더라 말이죠

이 방식이 아니면
십자가의 피 용서가 아니면
마귀는 드러나지 않아요

인간이 백날 말씀을 지켜서 의를 세워보세요
마귀가 격동을 하나?
안 합니다.
다들 미끼가 되기 싫어서

이스라엘이 되기 싫어서
종교 오락만 할 뿐이다 말이죠

오늘날 교회들이 하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안 그러는 교회가 없어요
헌금 뜯어낼려고 예배에 목숨 걸겠다 라는 한교총 회장이 사기를 치듯이 말이죠
다들 서로 서로 그 사기에 놀아나고 속고 또 속이고 하는 겁니다.
다른 길이 없다 라는 증거죠

이거 하면 안된다 가 아니라
율법은 바로 이렇게 세상사람들이 보여주는 지옥이 아니라
가짜 지옥이 아니라

이스라엘만이 이런 진짜 지옥을 보여줌으로써
심판 주의 오른손이 나타나야 함을 보여주는 겁니다.

너희 세상사람들아 지옥은 그게 아니야
우리 이스라엘만이 보여줄수 있어
하나님에게 까불면 이렇게 지옥을 격게 되어 있어 라고 말이죠
이스라엘 본인도 모르는 이스라엘의 기능을 
멸망을 당하면서 까지도 펼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 심판 속에서 성전의 기능인
하나님의 집
기도하는 집의 기능은

주의 오른 손의 구원의 기능을
발등상에 놓여져서 말이죠

마귀 잡는 미끼로 말이죠

누가 미끼가 되고 싶어하겠냐 말이죠
다 도망치죠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런 방해적인 요소를 다 극복하시니까

나는 절대로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할게 아니라
내 숙제는 없고
주님의 숙제는 이런 나 같은 죄인에게서 마저도
끝까지 주의 일하심을 다 이루어 내시는 군요 라고
만드시는 겁니다.

이게 뭐 자랑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황현희의 불편한 진실, 개콘)

마치 지난 주처럼

주님이 생명이시다를 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죽음의 자리에서 외치도록 되어 있듯이 말이죠

주님의 구원의 손을 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주님의 발등상에 놓여진 원수의 자리에 놓이는 겁니다.

(시 110: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시 110:2, 개역)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시 110:3, 개역)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눅 20:43, 개역)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자신이 마귀임을 아는 자들이 회개하는 자이고
자신이 마귀가 아니다 라고 하는 자들이 마귀이다는 거죠

다윗은 새 것(예수님의 죽음)을 구하는

지혜의 왕이 보여준 아기의 죽음
임마누엘
누구 누구의 아들의 죽음을 구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평강이 없이
대충 대충 심상히 고치는 가짜 평강에 의해
의문의 반복을 멈출수가 없는 겁니다.

다윗이 외치는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이스라엘 왕 다움에서 나온 외침은
아무리 진실되게 진정성 있게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외쳐도
그거 다 장난 이였음을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음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정직한 영이 없음을 새 것이 없음을
그저 지나가는 옛 것으로써 땜빵하듯이
율법 네 배나 갚으라? 장난 하냐 말이죠

그게 육신이라는 겁니다.
늘 자기를 위한 우상을 뿜어내는 하나님과 같이 된 몸 육체가
계시를 흉내내면서 계시를 뿜어내는 가짜 몸이다 라는 겁니다.
뭘 해도 가짜인데

나 이렇게 하나님 잘 알죠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판결내는 것이 하나님 뜻 맞죠 라고 나오는
그 육체를 주님은 치시는 겁니다.

왜 새 것 곧 인자
죽이시기로 작정된 예수의 몸이 먼저 떳기에

마침이 없는 미완료, 이미와 아직의 반복을 깨뜨리기 위해
지나가게 만들고 삭제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 엉터리 구원관 말씀관 성전관을 깨뜨리시고자
오로지 주님은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인 긍휼로써만 일하신다 라는 겁니다.

(롬 11:30, 개역)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롬 11:31, 개역)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1:32, 개역)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3, 개역)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4, 개역)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5, 개역)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6, 개역)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뉘게 나타났느뇨?????!!!!!!!

이 또렷함(십자가의 피 용서가)을 자신이 원수됨의 자리에서
그 죽음의 자리에서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고래 고래 외치는 겁니다.

안 그러면 도리어 니느웨 백성으로부터 심판 받고
남방의 여왕으로부터 정죄 당한다 말이죠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요 12:38,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 53:1, 새번역)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또는 '우리가 전한 것을'』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개같은 이방인에게 나타났다는 겁니다.

바로 주의 친절한 구원의 손이 먼저 떳기에(이미 벌써 먼저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과거완료로 먼저 떳기에)
그 증상으로
우리는 불뱀에게 물린 자리에서
원수의 자리에서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도록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기쁜소식을 바라고 부르짖는 자로써
새 이스라엘로써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구원의 손의 증상물이
원수의 자리에서
다윗의 자손을 크게 크게 부르짖으라꼬 나타나는 새노래 찬양자입니다.

이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젖먹이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집 기도하는 집의 기능을 외치지 부르짖지 아니하면
돌들을 통해서라도 이미 다 이룬 
보라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는 먼저 떠버린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성전의 기능
죄를 씻어주신 피흘리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된 용서의 기능을
못 외치고
도리어 거부하는 사태로 벌어지는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개같은 이방인과 다를바가 없는 겁니다.

율법은 바로 저 분이 옳았다를 외치기 위해서
생명을 말하기 위해서
저분만이 생명이고 우리는 죽음 뿐입니다.
저 분만이 평강이고 우리는 그저 막힌 담일 뿐입니다 라고 외치도록 하고자

율법은 우리를 죄 아래 가두는 거다 말이죠

모든 율법은 곧 모든 말씀을 예수님을 말하기 위함이지
인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거든요

인간 구원은 없어요
예수님의 구원 밖에 없다 말이죠
그럴때에 비밀로써의 주님의 구원의 손이 펼쳐지시는 겁니다.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냐 라고

이것이 여호와가 하나님이
그를 죽이시기로 원하셨도다 라는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는
그 새 일 새 것 곧 예수님의 죽음을 작정하셨음이 바로 기쁜 소식이다 라고

젖먹이들이
임마누엘이
누구 누구의 아들 인자가

바로 새성전의 기능으로써 펼치시는 겁니다.

다른 구원
다른 부활
다른 길
다른 평강
다른 생명은 없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길이요 진리요 부활이시기에
나머지는 가짜로써
가짜 평강으로써

원수의 자리에서 이 생명을 쳐다보도록 하시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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