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뿌뿌뿌 이전 것은 지났고 보라 새 것이 되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 1- 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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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4 뿌뿌뿌 이전 것은 지났고 보라 새 것이 되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 1- 3)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따
창녀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과 결혼하시는 창조주
다윗의 자손이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경건치 못한 야곱의 죄악을 제거하시는 영원한 언약 (사 59,19-21)
이사야 2017 2020. 9. 13. 11:13
18-103 경건치 못한 야곱의 죄악을 제거하시는 영원한 언약 (사 59,19-21)

(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 4:15, 새번역)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 ㉤사 9:1;2』
(사 9:1, 개역)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 9:2, 개역)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사 60:1, 개역)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2, 개역)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사 60:3, 개역)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사 60:1, 새번역)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
(사 60:2, 새번역)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
(사 60:3, 새번역)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찾아오고, 뭇 왕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보고, 너에게로 올 것이다.』

(사 60:1, 쉬운) 『<예루살렘의 영광> 예루살렘아, 일어나 빛을 비추어라. 네 빛이 이르렀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사 60:1, 현대어) 『[새 예루살렘의 영광] 예루살렘아, 이제 일어나 환한 얼굴로 기뻐하며 네 얼굴에서 광채가 빛나게 살아라! 내가 네게로 다시 왔으니 네 빛은 바로 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내 영광이 너를 환하게 비추어 태양과 같이 밝을 것이다.』

(사 60:22, 공동) 『가장 보잘것없는 자가 천 명으로 불어나고 가장 하잘것없는 자가 강대한 민족을 이루리라. 나 야훼가 제때에 지체없이 이루리라.』



에스겔 오홀라 오홀리바를 통해서
사울 왕은 이스라엘 1대 왕으로써 그저 왕 그저 죄인 밖에 안되는 식입니다.
그녀 안에 그녀의 텐트처럼 말이죠

그러나 다윗 왕은 사울 왕 보다 더 나쁜놈으로 만들어서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들어서
그녀 안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겁니다.

마치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과 결혼하시듯 말이죠

예수님의 족보 또한 더럽기 짝이 없는 여자 다섯명을 골라 골라서 자랑하시는 겁니다.
그것도 마귀 앞에서 마귀 보란 듯이 자랑하시는 겁니다.

자랑이 여기에 나옵니다

(사 60:15, 현대인) 『비록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고 미움을 받아 아무도 네 앞을 지나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자랑거리와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겠다.』

(사 60:21, 공동) 『너의 백성은 모두 올바르게 살아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라. 너의 백성은 내가 심은 나무에서 돋은 햇순이요 내가 손수 만든 나의 자랑거리다.』

영화롭게 하겠다 도 나옵니다

(사 60:13, 새번역) 『"레바논의 자랑인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이 함께 너에게로 올 것이다. 그 나무가 나의 성전 터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니, 이렇게 하여서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하겠다."』

이 얼마나 거룩하냐 라고

이 거룩 곧 하나님의 의로 입혀주심 말이죠
가장 아름다운 옷 곧 신부 옷
희고도 흰 하얀 옷을 신랑이 직접 자기 신부를 위하여 만들어서 입혀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거룩은 선악으로 판단해서
자꾸 예수님의 족보를 깨끗하게 만들려고 해요

그렇게 되면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서 이름을 부정적인 이름
예로 김멸망 김저주 최심판 박음녀 이창녀 등등 
부정적인 이름을 짖는 것에 이해가 도저히 안되는 겁니다.

오히려 이런 부정적인 바로 이런 창녀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간다는 겁니다.
이런 자는 자기 의(로움) 자체를 내세을 꺼리 자체가 아예 없어요

이미 바닥 이기에 나누어질 잔여가 없어요
이미 찌끄래기 이니까 말이죠
쇠찌그래기

그런데 뭐 일어나 빛을 발하라 굽쇼

아니 말이 되냐 말이죠

오히려 빛은 그야말로 맏아들처럼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는 자가 빛을 발하지

탕자가 무슨 수로 빛을 발합니까? 빚만 잔뜩 졌지

빛이 아니잖아요 빚이잖아요  ㅊ 과 ㅈ 은 하늘과 땅 차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은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입니다
즉 선악의 법 인 거죠

인간의 사고방식은 결국 법입니다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는 방식입니다.
어떤 철학자 말 마따나 상징계는 법의 세계이다 말이죠
남근의 세계입니다
그런 언어 구조 속에 갇혀 있다 말이죠

맏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선으로 따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탕자를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다 라는 회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는 사랑을 운운하는데 있어서
사랑으로 창조한 세계를 인간은 맏아들은 자꾸
탕자 그 놈은 악입니다 어떻게 아버지께서 악을 옳다 라고 받아주십니까 라고

뭐 눈에 뭐 밖에 안 보인다 라고
선악의 법만 따지는 자 눈에는 법으로만 보이니
악으로만 탕자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의를 쌓았다는 그 선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은혜 용서를 거부하게 되는
마귀 보란 듯이 펼치시는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에 반발하더라 말이죠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으로는 의롭게 못 된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행함과 대조 되는 믿음을 언급하십니다.

(갈 3:2, 개역)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그리고서는 다시 행위와 믿음을 대조하는데 있어서 성령을 언급 하십니다.

성령은 회개의 영입니다
즉 인간은 회개 마저도 행함으로 행위로 하는데 있어서
미치 차단 단절 시키는 것이 성령으로만 회개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갈 3:10, 개역)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래서 자신이 저주 아래에 있는 자 이기에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아무리 자기자신을 살펴봐도 구원될 자격이 단 일도 없으니
그야말로 이 지옥 속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울게 되니 말이죠

이런 환자가 누굴 부릅니까?
건강한 자가 찾고 부르는 의사는 과연 의사 맞을까요?

솔로몬 지혜 재판에서
누가 아기를 두 동강 내는 심판에서 긍휼을 구하는 자 입니까?
아이를 버리는 냉정하기 짝이 없는 엄마가 진짜 엄마 곧 속이는 자가 참 된 자입니다.

그러나 가짜 엄마는 네 맞습니다 맞고요 왕의 판결 그대로 두 동강 내어서
저도 가지지 말고 이도 가지지 말도록 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다 라고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다는 아하스 왕과 똑같지 않나요?

(왕상 3:25, 새번역) 『왕이 명령을 내렸다. "살아 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분명 죽여라 라는 말이 아니거든요
나누어 주어라 라고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라 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짜 엄마는 선악으로 해석해서
둘 다 가지지 못하도록 해 달라 라고 선악의 법으로 해석 해요
법으로 본 겁니다.

그런데 진짜 엄마는
그 죽음에 뛰어드는 부정의 부정으로써
나누어 질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왕의 명령에 전면 도전을 한 셈이지요
이 얼마나 불의하냐 말이죠
그러니 자기에게는 의로움이 나오지 않으니
아이를 살릴 길은
아기의 죽음에 동참하는
인애와 자비를 구하는 겁니다.

제사와 번제를 구하는 법 대로 하자 법대로 해 가 아니라
인애와 자비 곧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는 자비를 구하는 겁니다.

재판으로 끝까지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재판을
법을 포기 해 버리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포기 할테니
아이를 두 조각으로 나누지 마시고
저 여자에게 주라 라고
아이를 버려요 글쎄

누가 속이는 자 같으나 참 됩니까?

둘 다 창녀 인데

자 이렇듯 그럼 성령을 받은 참선지자는 
회개의 영을 받은 선지자는 우리를 어디로 몰아간다?
모조리 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일괄처리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회개 곧 인애와 자비를 바랄 것 아니겠습니까
환자 만이 의사를 부르짖거든요 살려달라고

그런데 건강한 자는 의사를 안 불러요
법을 부르지
행함을 따지지

법을 포기 못해요
즉 인간 임을 포기 못해요

저 인간 아닙니다 인간임을 포기 합니다 라는 회개를 할 수가 없어요
그저 죽음 뿐입니다 그러니 이 죽음 속에서 생명되신 진리 되신
길 되신
부활 되신 예수님을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가 없이
구지 죽으실 필요가 없이
나의 의로움으로 충분히 천국가고도 남을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니

누가 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겠냐 말이죠

일괄처리로 광야에서 불뱀에게 다 물려 죽게된 입장에 놓인 이스라엘이 아니였다는 겁니다.
엉뚱한 다른 민족이니까 쏙아 내시는 거죠

왜? 임마누엘 곧 인자가 먼저 떳기에
그래야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즉 회개 하라고

그런데 인간은 자력으로 회개를 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어요
새 영 인자의 마음 새 마음
회개의 영을 따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선악의 법으로 따지게 되니
믿음도 하나님도 그런 선악으로 보게 되니
내가 낮아지는 무가치한 자가 되면 안되기에
임마누엘 구한다 안 구한다? 안 구한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높아지는 가치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하나님도 영광 받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고 선악의 법으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 꺽으신 뼈를 안 구하죠
꺽으신 뼈가 대신 우는 그 울음
닭의 세 번의 눈물이 필요 없다 라고
나도 충분히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갈수 있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본색으로 애굽과 손 잡아 연합하여서
이스라엘 절대로 망하지 않도록 이스라엘을 지키겠다 
고로 예수님도 지키겠다 끝까지 따라가겠다 장지지겠다 라고 장담 하는 겁니다.

이 선악을 좋아하는
이 우상을 좋아하는 그 우상에 의해서 쫄딱 망하는 겁니다 멸망 당하는 겁니다

법을 세울려다가 법에 의해서 망하는 거죠
율법대로 네 배나 갚으라 ~~~~
그 놈이 니다 이 놈아 ~~~~~~~

그런 이스라엘 지켜본들 가짜 이스라엘이다 말이죠
가짜 교회 이다 말이죠

그럼 진짜 이스라엘은 어떤 자 인가
진짜 회개 곧 성령을 받은 자는 어떤 자 인가?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얼마전에 댓글 남겼죠

거기서 늘 의문이 남았던 부분이 해소가 되니
속이 뻥 뚫린 것처럼 기뻤습니다.

누구 말 마따나 그런 의미도 모른채 남들 외우는 유명한 구절이라고
남들 따라서 무조건 외웠던 구절이였는데
알고보니 정반대 였던 거죠

멋들어진 구절로써 외우거든요
누가 자기를 자기 스스로 미워하고자 외우는 구절이 어디 있습니까?
단 하나도 없지요
다들 멋진 구원을 바래서 멋진 구절만 외우잖아요

그런데 앞 뒤 짤라서 외우다 보니
정작 거리끼는 부분을 다들 놓쳐요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는 멋들어져요

아 그런데 같은 의미인데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속이는 자 같으나 참 되며 이것은 무슨 말인줄 목사들에게 아무리 물어도 몰라요 글쎄
아는 목사가 없어요 글쎄

그러니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8절 빼고 9절 10절만 외운다 말이죠

같은 의미 인데 왜 빼냐 말이죠
즉 인간은 자기 믿고픈 것만 골라서 믿는 확증편향이다는 거죠

속이는 자는 야곱 아닙니까

앞의 글 마태복음에서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간다고 했잖아요

속이는 자 세리가 해당 되듯이 더러운 창기가 여기에 역시나 해당 된다 말이죠

그리고 또 더 놀라운 창기와 세리(속이는 자)
이 둘 다 해당 되는 인물이 있어요
그것도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다섯 여성 속에 말이죠

기생 라합입니다.


(마 1:5, 개역)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히 11:31, 개역)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약 2:25, 개역)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기생 곧 창녀 라합이 행함이 아닌 믿음의 대표성으로써 증거 되고 있어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뭡니까? 속이는 거짓말 아닙니까

그럼 성령의 행함으로 인해
마치 성령을 받은 참선지자는 우리를 모조리 다 어디 속으로 집어넣는다
심판 속으로
멸망 속으로 
죽음 속으로
광야 속으로 집어넣는 겁니다

왜?

이것이 오히려 속이는 거짓선지자 아닙니까
이스라엘은 망해야 한다 라고 외치는 참선지자는 속이는 거짓선지자 아니냐 말이죠

오히려 이스라엘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라는 멋들어진 구절처럼 멋들어진 말을 하는 거짓선지자야 말로 진짜 참된 선지자 속이지 않는 꿈과 희망을 주는 참선지자 아니냐 말이죠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의 분류가 선지서에서 확연하게 갈라지지만

정작 그 이전에 훨씬 앞서서 기생라합의 노선을 따르는 자가 바로 참선지자 이다는 겁니다.

기생라합은 자기 나라를 멸망 시키러 오는 이스라엘에게
적군인 이스라엘을 영접하고
정탐꾼 간첩을 숨겨주고
자기 민족의 아군에게는 거짓말 곧 속이는 말로써 감추어줌으로 인해서

어서 어서 자기 나라와 민족 자기의 신들은 어서 망해야 한다 라고
미리 미리 국가를 팔아먹고 민족도 팔아먹고 집문서 국가토지문서 다 내어놓는 겁니다.
멸망하는 마당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라는 식으로 말이죠

매국노 세리 보다 더 해요

이것이 천국이 왔는 판국에 회개하는 자의 모습
성령 곧 종말의 영을 받은 자의 모습이다 말이죠

즉 천국이 왔으면 우리는 망해야 한다는 겁니다.
회개란 오호라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망하는 자가 무슨 놈의 제사를 잘 드렸다는 둥
번제를 잘 드렸다는 둥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그저 일만 군사를 지녀도 이만 군사를 몰고온 자 앞에서 무조건 항복
집문서 국가토지문서 모조리 다 포기

이것이 속이는 자 같은 참선지자의 외침이다 말이죠

야 야 야 이스라엘 망한다
빨리 포기하고 항복해라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말이죠

누구 누구의 아들을 구하라 말이죠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할 자를 구하라 라고 말이죠

다윗의 자손이여 저 원수 저 하나님의 원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항복하라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을 나를 무너뜨리는 
우상을 파괴하는
나를 파괴하는 파괴자

심판자로 안 보이니까

모욕적인 구원을 안 바라니까

아직도 배불러 터진
절대로 이스라엘 망할 리가 없다
창조주가 그럴 턱이 없다
자기 백성을 누가 심판하겠노 라고
하나님을 자꾸 착하게 선하게 포장해요 글쎄
즉 자기를 투사한 겁니다
자기자신을 선으로 포장했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포장하는 겁니다.

임마누엘을 구하는
꺽으신 뼈를 구하는
그런 모욕적인 구원을 펼칠 리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임마누엘이 그래서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다르다 라는 겁니다.

니 하나님은 개방이고 연합이고 동질성 합일성 이고
내(누구 누구의 아들 이사야의) 하나님은 단절아고 심판이고 진노이시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나누어요
분절 시켜요

왜? 인간들이 다 나누어 버렸기에

더 더 더 나누어서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님을
니 내 누군지 아니?
창조주가 누군지 아니
여호와인줄 알려 주마

에이 이스라엘이 창조주를 모를턱이 있나
여호와가 누구인줄 모를턱이 있나

몰라요
왜? 이미 이스라엘은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님을 나누어 버렸거든요
어떻게? 디리 디리 마구 마구 썩어버려서 하나로 만들어버렸어요

나눈게 아니라 합친거네?

네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자기자신 이라는 우상과 하나님을 합쳐 버렸다 말이죠
혼합주의 라고 하죠

그러면 참선지자 이사야의 하나님은
그것을 나누는 겁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그것이 임마누엘입니다.

높으신 하나님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죽는 하나님
심판 당하시는 하나님으로 말이죠

이것을 의 이라고 한다고 했죠

하나님의 계획 뜻이다 라고
인간의 계획은 항상 악하거든요 자기를 높이는데 일관하지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에 일관하지 않아요

항상 율법을 지키는 행함이 나오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놓였다고 여겨야 하는데

(갈 3:10, 개역)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래서 율법이 가입이 된 것인데
어라 거꾸로 해석해요
그러니까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으니까 구원 받아야 한다 라고 우겨요
오늘날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 다 이래요

사도바울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예수님의 영
곧 회개의 영인 성령을 받으니
비로소 제대로 된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피곤하구나 주님은 율법을 주셔서 나를 죄 아래 가두는 저주 속에 넣었는데
나는 그것을 일일이 피곤하게 하나 하나 축복으로 바꾸는 식으로 해석했구나

죄 아래 가두심으로 인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기 위한

새 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라는 이미 다 이루어진 새 일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인데

피곤하게 시리
그 무거운 짐을 나도 못 지키고 남도 못 지키고
서로 서로 못 지키면서 서로 서로 짐 지우는 의문의 반복을
피곤하게 곤고하게 병든자인줄도 모르고
소경인줄도 모르고 본다고 우겼구나 라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 라고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자각
이 회개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자각 함이 성령으로 인함으로 인해서

갑자기 빛이

이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자
흑암의 백성에게 갑자기 원인 없는 결과로 빛이 비추어지니까

(마 4:11, 개역)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 4:12, 개역)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마 4:13, 개역)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일어나기 싫어도 아니 일어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일어나는 것이 어딥니까 빛이 없는데 빛을 비추심으로 인해 반사가 되어서
빛까지 발하는

의사를 노래하는 찬양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벙어리 인데 찬양하고
소경인데 예수님을 보고서 경배하고
앉은뱅이인데 예수님을 보고 기뻐 뛰어놀며 노래하는 겁니다.

말이 되냐 말이죠
앉은뱅이가 어떻게?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세 
출처
배후세력에 관한 문제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또 나의 숙제로 돌리는 종교꾼 목사들의 사기에 놀아나지 마세요

행함의 문제가 아닌 믿음 곧 내 믿음도 아닙니다 인간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믿고픈 것만 골라서 자기 유익을 쫓는 자기 유리한 것만 믿는 행함이고요
예수님의 믿음이 덮쳐지는 겁니다.
예수님의 믿음이란 미완료가 더 이상 없는 다 완료가 된
주님의 숙제이지
인간의 숙제
개개인의 숙제로 돌리면 또 의문의 반복
완료가 안 됩니다


언제까지 솔로몬 재판의 가짜 엄마처럼 선악으로 판단해서
이도 가지지 말고 저도 가지지 말라는
그 피곤함을
그 곤고함을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질려고 하냐 말이죠

내려 놓으세요
숙제 포기 하세요
믿음 포기 하세요
믿음을 포기하는 믿음을 가지세요

믿으란 말이냐 믿지 말라는 말이냐? ㅋㅋㅋㅋ

언제는 잘 믿은 것처럼 말하냐 말이죠
맨날 속고도 또 속냐 말이죠
사기를 그렇게 당하고서도?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병신!! 목사말 듣지 말라고 그렇게 눈치를 줘도 안들어요 글쎄

모든 종교는 작은 신이 되라고 합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서
빛을 비추어라 라고 말이죠

이 작은 나의 빛 비추게 할테야 라고 노래 불러요

어린아이란 죽은자 라서 그 노래가 맞아요
그런데 어른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작은 빛을 비출거다 라는 것은
작은 신이 되어서 작은 예수가 되어서 빛을 발하겠다는 식입니다.

이게 성화론이거든요

정작 어른은 단단한 음식 곧 죽음을 먹는 자입니다
장성한 자가 되고 어린아이의 것을 버려라 라고 한다 말이죠

장성한 자 곧 단단한 음식을 먹는 죽음을 먹는 자가 누굽니까?
참선지자를 인자야 라고 부른다 말이죠
누구 누구의 아들 이라고

임마누엘을 구하는 자
왜? 아무도 안 구하기 때문에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외치면서 참선지자 곧 인자는 임마누엘을 구하는
즉 회개하는 자로써 회개를 외치는

왜? 천국이 이미 떳기에
빨리 항복해라
다 망했다 망한단다 라고 외치는 자입니다.
일괄처리로 이 사망 속에
죽음 속에 다 집어넣겠다 라는 겁니다.

그 심판의 불 속에서 임마누엘을 구하는 자로 만드시는
이 새 일을 보라 라고 말이죠

그러니 회개는 오히려 창기 세리 강도가 하게 되고
천국은 이런 회개하는 자가 먼저 들어가는 겁니다.

낮은자 
죽은 자

를 살리시는

이 하나님의 의가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말이죠

빛이 떠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그 증상물로써

어두움 속에 있는
흑암의 백성들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자들
개같은 이방인 갈릴 리가

이 빛을 외치는 겁니다.

이 빛을 노래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미 일어서 있다
앉은뱅이가 아니다
나는 심판 받을 이유가 없다 라는 자에게서는

일어서 있다는데 일어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이미 빛의 아들들이라고 우기는데
빛을 발하라 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말이죠

이미 건강한데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가 없는데

빛의 자녀 의인이라고 우기는게
그런 의인에게 구원자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빛이 비추어주심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 말이죠

빛은 어두운 흑암의 백성을 부르러 왔거든요
그래서 예루살렘을 창녀 보다 더 더 더 심한 더 더러운 창녀 중의 창녀로 만들어서
그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을 나타내시는
이스라엘의 기능을 펼치시는 겁니다.

나 죄 용서 받았다

이런 고멜과 같은 창녀도
하나님의 원수 중의 원수도 용서하시는 이 사랑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법이 아닌 이 사랑으로 창조하신 창조주를 노래하는 찬양자로

원수를 사랑하신 이 십자가의 피로 창조하신 창조주를 노래하라꼬

(사 60:18, 공동) 『다시는 너의 나라 안에서 횡포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며, 침략자와 파괴자가 침입하였다는 말도 들리지 않으리라. 너는 너의 성벽을 '구원'이라 이름지어 부르고 너의 성문들은 '찬양'이라 이름지어 부르게 되리라.』

(사 60:14, 현대어) 『너를 괴롭히던 족속들과 너를 조롱하던 모든 이들이 허리를 굽히고 너를 찾아와서 네 앞의 땅바닥에 엎드려 경배하고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도성이요, 시온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고백하며 나를 찬양할 것이다.』

이 찌그래기를 모아 모아서 풀무불에 넣어서 정금같이 만드시는
새 창조를 펼치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거짓선지자는 절대로 이스라엘 망할 리가 없다고 하고
참선지자는 무조건 이유 없이 창녀로
음녀로 무조건 몰아버립니다.
왜?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이미 떳기에
이미 주의 오른 손이 먼저 떳기에

하나님의 발 등상의 원수로 참선지자는 만들어 버립니다
그 심판의 자리에서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그 십자가의 피 용서를 찬양하는 새노래꾼으로 만드시고자 말이죠

이 심판 주가 바로 긍휼의 주 이니까 말이죠
심판의 자리에
음녀의 자리에 말이죠

이것은 하나님 본인이 자신을 심판 하시는 그 새 일에
이스라엘을 집어넣는 겁니다.

그 지옥 속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말이죠

솔로몬의 지혜의 판결내용도 마찬가지로

이 죽음 속에서 어떻게 건짐을 받냐 라는 겁니다.

두 창녀입니다
그 속의 아들입니다

이 아들을 살리는 방법은

(왕상 3:25, 새번역) 『왕이 명령을 내렸다. "살아 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더 더 더 더러운 음녀로 만드는 겁니다

(왕상 3:26, 새번역) 『그러자 살아 있는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 대한 모정이 불타 올라, 왕에게 애원하였다. "제발, 임금님, 살아 있는 이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어도 좋으니,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안 될 테고, 네 아이도 안 될 테니, 차라리 나누어 가지자" 하고 말하였다.』

생명이라는 길은 진리는 지혜는
깨끗한 곳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더럽고 심판이며 저주 속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 더러운 여자에게 주어서 살려내 달라 라고
이렇게 자식을 버리는 이 더 더 더 더러운 엄마가 진짜 엄마 이다 라고 말이죠
이 속이는 자 같은 엄마가 진짜 엄마이다 말이죠
왜?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성을 나눌수 없기에

그런데 멍청한 마귀는 좋다 라고 나누라꼬 박수를 쳐요
나눌수 없는데 자꾸 나누라꼬

그 선악의 법이 옳다 라고
지혜란 선악이 아니라 인애와 자비인데
남을 7번 용서하는 번제와 제사가 아니라
도리어 7에 70번 용서 받아야 하는 긍휼인데 말이죠

아무리 더럽고 더러운
음녀 중의 음녀가 되어도
죄인 중의 괴수가 되어도
이 음탕한 저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관계는 나눌수 없거든요
왜?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게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해서 화목제물이 되셨으니 말이죠
베드로는 빛을 안 발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주저앉을수가 없어요
일어나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이 나누어지지 않는 잔여입니다
찌끄래기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이스라엘입니다
처음사랑입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찌끄래기를 먹지 않습니까?
이것이 이스라엘이고
지혜로 인해 다시 태어난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 이다는 겁니다.

그러나 마귀는 기여이 나눌수 없는 잔여를
이스라엘
기여이 나누어 버려서

저도 아니요
이도 아닌 것으로

무용지물로
주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로 만든 피조물을
이도 저도 아닌 무용지물로 만들어라 라고

분절 시키는 겁니다.

단절 되어야 할 것은 끝까지 단절 되지 않고자 도리어 남을 단절 시키기 바쁘고
정작 단절 되지 않아야 할 이스라엘은 매일 매일 죽음 속에 넘기워 지는 겁니다
그러나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그 잃어버림 속에서 다시 되찾으니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성령을 훼방하는 알리바이를 잡고자
미끼로 삼으시니 말이죠

도리어 이 하나님의 의
곧 천한 계집을 왕비로 삼는 그 지혜에 복종하지 않고
탕자를 금가락지 살진소 새 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복종치 않고

견디지 못해 격동케 하는 지혜에 의해
숨은 마귀는
심판 받아야 할 마귀는 드러나는 겁니다.
왜? 이 십자가의 피 용서만을
은혜로 창조하심에 반발하는

선악을 펼치니 말이죠

이것이 사망의 그늘에서 주저앉은 흑암의 백성에게 빛이 비추임으로서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이스라엘의 기능입니다 미끼로써도 말이죠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고
치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빛되신 예수님께서 벌리시는
십자가의 도
지혜
의입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십자가요
헬라인 지식을 쫏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지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지혜가 십자가 이니까 말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니
영광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인가!!!!!!!!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8-105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사 60, 4-14)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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