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새 언약, 내가 너를 쳤으나 이제는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사 60, 4-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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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5 새 언약,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사 60, 4-16)

눈을들어 산을보니 433 

버림받는 하나님(예수님)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고, 치셨으나 도로 싸매어 주시리라

(호 6:1, 개역)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뿌뿌뿌 이전 것은 지났고 보라 새 것이 되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 1- 3)
이사야 2017 2020. 9. 20. 08:52
18-104 뿌뿌뿌 이전 것은 지났고 보라 새 것이 되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 1- 3)

(사 60:4, 개역)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사 60:5, 개역)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사 60:6, 개역) 『허다한 약대, 미디안과 에바의 젊은 약대가 네 가운데 편만할 것이며 스바의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 60:7, 개역)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여지고 느바욧의 수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사 60:8, 개역) 『저 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 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
(사 60:9, 개역)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사 60:10, 개역)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사 60:11, 개역)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열방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사 60:12, 개역)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사 60:13, 개역)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사 60:14, 개역)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사 60:15, 개역)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사 60:16, 개역) 『네가 열방의 젖을 빨며 열왕의 유방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사 60:4, 새번역)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너에게로 오고 있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으로부터 오며,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서 올 것이다.』
(사 60:5, 새번역) 『그 때에 이것을 보는 너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흥분한 너의 가슴은 설레고, 기쁨에 벅찬 가슴은 터질 듯 할 것이다. 풍부한 재물이 뱃길로 너에게로 오며, 이방 나라의 재산이 너에게로 들어올 것이다.』
(사 60:6, 새번역) 『많은 낙타들이 너의 땅을 덮을 것이며,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너의 땅을 뒤덮을 것이다. 스바의 모든 사람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할 것이다.』
(사 60:7, 새번역) 『게달의 모든 양 떼가 다 너에게로 모여들며, 네가 느바욧의 숫양들을 제물로 쓸 것이다. "내가 내 성전을 이전보다 더욱 영화롭게 할 때에, 이것들이 내 제단 위에 합당한 제물로 오를 것이다."』
(사 60:8, 새번역) 『저기,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 제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날아오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
(사 60:9, 새번역) 『너의 자녀들이 온다. 섬들이 나를 사모하며, 다시스의 배들이 맨 먼저 먼 곳에 있는 너의 자녀들을 데리고 온다. 그들이,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려고, 은과 금을 함께 싣고 온다. 주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사 60:10, 새번역) 『이방 자손이 너의 성벽을 쌓으며,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비록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를 불쌍히 여기겠다."』
(사 60:11, 새번역) 『너의 성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서, 밤낮으로 닫히지 않을 것이다. 이방 나라의 재물이 이 문을 지나 너에게로 오며, 이방 왕들이 사로잡혀서 너에게로 끌려올 것이다.』
(사 60:12, 새번역) 『너를 섬기지 않는 민족과 나라는 망하고, 그런 이방 나라들은 반드시 황폐해질 것이다.』
(사 60:13, 새번역) 『"레바논의 자랑인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이 함께 너에게로 올 것이다. 그 나무가 나의 성전 터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니, 이렇게 하여서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하겠다."』
(사 60:14, 새번역) 『너를 괴롭히던 자들의 자손이 몸을 굽히고 너에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너의 발 아래에 엎드려서, 너를 '주님의 도성'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시온' 이라고 부를 것이다.』
(사 60:15, 새번역) 『"비록 네가 전에는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아서, 너의 옆으로 오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길이길이 너를 높이고, 너를 오고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겠다.』
(사 60:16, 새번역)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아먹을 것이니, 이것으로써, 너는 나 주가 너의 구원자이며, 너의 속량자요, 야곱의 전능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새 언약을 어디서 만나는가?
바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라는 자리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면서 빠져나올길 없는
이 사망의 몸에서 만나는 겁니다.

무엇을? 메시아의 새 언약을
이것이 야곱의 전능자 너 몰랐지 이제 알려주마 라고

전능자 곧 괴롭히는 자를 통해서 새언약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나를 [나오미] 라 하지 말라
기쁨 이라 하지 말라

[마라] 라 해라
괴로움 이라 해라

분명히 똑똑한 척 원인에 따른 결과를 이야기 했습니다

아 그런데 첫 번째 며느리는 가라 해서 갔고

둘째 며느리는 가라 했는데
하나님이 여기 계시는데 제가 왜 갑니까 라고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구원하시는 그 구원을 봐 버렸거든요

아니 며느리 룻아 방금 못 봤니
나 쫄딱 망했잖나

네 봤습니다 그러니까 왜 제가 갑니까

아니 못 봤니 나 지금 망했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란다

네 그러니깐요
그런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아닙니까
전세계에 그런 신 있으면 나와 보라 카이소

어무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아니 죽는 마당에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는 말이 나오냐 말이죠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끊어질수 없는 관계
나누어지지 않는 잉여이거든요

그것을 며느리 룻은 봤다 말이죠

정작 이방여자 모압여자 룻이
이 약속의 땅의 속성에 맞는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가는
회개자 였던 겁니다.

도대체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 모압여자 룻에게 어떻게 복음을 증거한 겁니까?

하나는 제대로 도망쳤고
하나는 제대로 복음을 곧 약속을 보게 되었거든요

어무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라고

오늘 본문에

(사 60:10, 새번역) 『이방 자손이 너의 성벽을 쌓으며,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비록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를 불쌍히 여기겠다."』

(사 60:14, 새번역) 『너를 괴롭히던 자들의 자손이 몸을 굽히고 너에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너의 발 아래에 엎드려서, 너를 '주님의 도성'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시온' 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방나라 사람들이
각양 예물을 드릴려고 유다 나라에 경배하고자 나아온다 라는 겁니다.

아니 둘이 서로 원수 지간 아닙니까?
하나는 반드시 멸망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영원히 세워져야 하는데

졸지에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 둘의 차이가 극과 극의 간극이
졸지에 없어져 버린 것처럼
하나가 되어버린 겁니다.

아니 사막에 어떻게 샘이 넘쳐 흐릅니까
사막에 어떻게 꽃이 피어서 향기를 냅니까

사자들이 어린양과 어떻게 뛰 놉니까
둘은 먹고 먹히는 관계인데?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는 장난쳐도 물지 않는다니요? 말이 됩니까?

주가 다스리는 나라는 말이 안되는 것으로만 이루어 지는 겁니다

저렇게 서로 원수지간인 이방인과 이스라엘은
바로 율법이라는 계약서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차이를 그 간극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그 간극이 졸지에 사라져서
평준화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어떻게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갑니까?

율법에서는 말이 안되지만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창기와 세리가 안 되면 천국에 못가도록 되어 있는
여전히 법 법 법 율법 이라는 전남편만 우기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런 전남편과 이혼케 만드시고자
주님은 이스라엘을 창녀 오홀리바로 만드시는 겁니다.
새 언약에 걸맞는 백성으로 말이죠

자 이렇게 되어 버리면
율법을 지켜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 주의 이름이 나의 모든 허물을 다 대신 짊어지시는 분이시기에
율법을 완성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래서 이제는 율법이 아닌
새 언약

새 언약을 기준으로 해서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시겠다 라는 겁니다.

누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일까요?
유대인 일 까요?
이미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있는데
죽는 하나님을 믿을 턱이 없으니
주의 이름을 부를 턱이 없어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그래서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노라 했다 말이죠
왕이 그런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백성의 대표이기에
백성 모두가 그렇다는 겁니다

일괄처리 해 버리시는 겁니다

어떻게? 모조리 세례요한처럼 모조리 다 물에 빠뜨려서
평준화 시키시는 겁니다.
잘난놈 못난놈 이런 구별이 없는

나누어 짐이 없는 잉여
이것이 새이스라엘 이거든요
새언약의 백성이 새이스라엘이거든요
기존에 아무리 이스라엘이라고 우겨도 소용없어요
새이스라엘이 되지 않으면
새언약의 백성이 안되는 겁니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거든요

그럼 새 언약의 기준은 뭡니까
옛언약이 기준은 율법입니다 전남편이라고 하지요
새언약이 나타남으로 인해
새남편 때문에 전남편과 이혼해야 할 판국이다는 겁니다.

율법과 새남편의 차이는 뭘까요?

율법은 아무리 인간 쪽에서 지킬려고 해도
못 이룬다는 점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인데
남을 사랑하는 내가 남 보다 내가 더 사랑스럽다 라는 겁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도리어 율법을 어기는 속성이
인간 속에 내재가 되어 있는데
이것이 선악이라는 죄 라는 거죠
죄 때문에 안되더라 라고
사도바울이 율법 나도 다 해봤다 안되더라
오히려 이 사망의 몸에 갇혀 버렸음을
율법이 깨닫게 해 주더라 라는 겁니다.

율법은 남은 사랑하기는커녕
죄 아래에 갇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써 너 안되지? 그럼 누구를 쳐다봐야 하니?
저 분 이란다 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율법은 마치 우리를 모조리 죄 아래 가두는
모조리 일괄처리로 불뱀에게 물려 죽게 만드는 기능입니다
매일 매일 율법의 고소에서 벗어날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소 안 당할려고 지켰는데
남을 사랑한게 아니라 나를 내가 더 사랑하게 되더라 말이죠
그러니 고소하는 위치에 서고자 하지
고소 당하는 위치에 서고자 누가 그러겠냐 말이죠

그래서 서로 서로 높아지고자
세베대의 두 아들의 어미처럼 하나는 좌편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엄마찬스를 쓰는 것 자체가
무시 받으면 안된다 라는 율법의 고소 기능을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한번 말리면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기 때문에
늘 사람들을 두려워 하면서 낮아지게 될까봐 높아질려고 하는 겁니다.
법은 그렇게 우리를 선악이 구조에 자꾸 집어넣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더욱 살인의지가 강해지는 죄 아래에 가두는 식이 되지

누가 주여 저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나오겠냐 말이죠
그런 자는 율법이 아닌

주의 이름을 부르는, 다윗의 자손만을 봤기에 나오는 고백이자 기도이자 회개입니다.

율법의 취지는 남을 살리고자 함 인데
오히려 남을 죽여야 자기가 사는 육체의 연약함을 들추어내도록 되어 있더라 말이죠

정 그러면 한번 살려 보라 말이죠

다윗이 바보 입니까? 회개 눈물 금식 기도
즉 율법을 지켜서 아이를 한번 살려보겠다고 나섰다 말이죠

아이고 듣기겠나
더 크게 더 크게 
아이고 모기 소리네
듣끼 겠나 더 크게

백날 해 보세여 아이를 살려내나

다윗언약이란 곧 새언약입니다.

다윗 이후의 참선지자들은 이 다윗언약을 기준으로 해서
즉 새언약
평준화를 기준으로 해서
다윗의 운명 속에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 조차도 다 집어넣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불도져에 모조리 다 밀려짐 당해서
평준화가 되었을때에

어라 이방인이 왜 너거 이스라엘이 우리가 보는 그 중앙에서
밀려짐을 당하는 심판을 당하는 평준화됨을 보여주니?

그렇게 잘난 율법이 있는 민족이 왜 율법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니?
어 이제는 율법이 아니라 새언약 곧 다윗언약에 의해서
모조리 구분이 차별이 없이 구원을 펼치시겠데??

어 그래? 이스라엘아 그게 정말이니?

그래 이방인아 그래서 우리 이스라엘은 사울왕의 속성만 가졌는데
졸지에 다윗 때문에 다윗의 고백이 튀어나도록 우리를 심판하셔서
평준화 불도져로 밀어버려서
높은자 낮은자 없도록 잘난놈 못난놈 없도록
이방인 유대인 없도록

누구든지 주의 이름
누구든지 다윗의 자손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이 구원을 구원하시는 새언약을 너희들에게 보이시고자
우리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거래

높아진 이스라엘을 불도져로 밀어서 평평하게
첩경을 평탄케 해서

주의 길을 예비 하라 라꼬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라꼬 이스라엘을 평평하게 쭈욱 펴서
이스라엘을 밟고 가시라고

주의 길을 평탄케 하시고자 말이지

아 그래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네
그 어무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구만

어서 어서 그분을 경배하고자 너 유대 나라로 나아가겠노라

너가 용서 받았듯이
나도 용서하시는

그 의로움 그가 찢으셨으나 도로 싸매어 주시는
그 의를 보고
간담이 녹아서

이스라엘에게 자기 나라 재산을 왕도 가만히 있는데
옛따 받아라 옛따 이스라엘 너 했뿌라 라고

주를 경배하고자 주 앞에 나아온다 말이죠
온 열방이
만군의 여호와를 경배하고자
주님 앞에
이스라엘 나라로 들어온다 라는 겁니다.

도대체 주님께서 중간에 무슨 짖을 하셨길래 말이죠????

이것이 새언약인데 새언약의 내용이 도대체 뭐길래????

아니 자기 나라의 신을 버리고 말이죠
즉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산 것이다 라고

바로 주님의 죽음
요나의 표적
인자가 들려야 하심을 보고서
이방나라가 주 앞에 자기나라의 신을 버리고
여호와의 이름만 듣고서 간담이 녹아가면서
간담이 녹으면 여호와의 이름을 안 듣고자
이방인 이니 누가 나무래지도 않는데
도리어 더 더 더 간담이 녹을 작정을 하고서
자기 나라의 신을 버리고
주 여호와 전능자 앞에 나아온다니

그 정도로
새 언약이라는 기준의 내용은
율법이나 양심 즉 양심과 도덕 곧 법과 연관이 되거든요

이 법에 의한 것이 아닌

그 인애와 자비를 보고
실제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보고

자신이 불뱀에게 물렸음을
죄인임을
벗어날 수 없는 죄 아래 갇혔음을

아 그런데 그 죄 속에 뛰어드신 요나의 표적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보고서

이방인 조차도
맞습니다 맞고요 진주를 개에게 줄수 없는 것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개도 주인이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그 긍휼을 먹고 살지 않습니까 라고

율법이 아닌

새 언약 기존 아닙니까 라고

이방인이 도리어 이 새언약으로 인해 주 앞에 돌아오는
찢으셨으나 도로 싸매어 주시는 그 인애와 자비를 보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인자의 피 용서를 보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주 여호와께 경배하고자
유다나라로 나아 오는 겁니다.

시어머니 나오미 이시여 이제 아들 못 낳지요? 더 이상 수태치 못하는 죽은태 이지요

제가 며느리인 저 룻이 대신 낳아드릴께요

어무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 아닙니까

내가 놓으나 시어머니가 놓으나 누가 놓으나
나눌수 없는 이스라엘입니다
누가 놓든 어무이 아들입니다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데요 글쎄

찢으셨으나
머슴아들 다 죽이셔서 끊어지도록 했으나

도로 사매어 주셨답니다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데요

그래서 룻이 모압여자 이방여자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겁니다.
창기 세리가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번제와 제사 라는 율법을 보고 이방인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숨막혀 죽는 그 하나님을 구원하시는
이 새언약을 보고

인애와 자비를 보고

아니 막살았는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무할례자 인데

졸딱 망했는데

용서 해 주시더나?

(롬 4:1, 개역)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개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역)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9, 개역)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롬 4:10, 개역)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롬 4:11, 개역)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

장대 높이 달려 죽으심으로써 자기 사랑을 확증 하셨다 아이가

그래?

도대체 이 이사야 53장에 고난 받는 종이 누구시길래?
에디오피아 내시가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나서

유대인도 찾지 않는
이사야 53장 달달달 외우는 고난받는 종이라고 달달달 외우는 자도 찾지 않는
그 고난 받는 종을

에디오피아 내시가 성령의 인도로 인해
감격하면서 이 고난받는 종이 바로 예수님을 알고
기뻐하며 감격에 겨워 하더라 말이죠

(행 8:34, 개역)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행 8:35, 개역)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행 8:36, 개역)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행 8:37, 개역) 『(없음)』
(행 8:38, 개역)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행 8:39, 개역)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즉 세례 곧 평준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는 회개자가 되는 겁니다.

이방인도 이런 판국인데
이스라엘을 주님께서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불도져로 쫘아악 밀어버려야 하지요

자 이렇게 이스라엘의 멸망이 저들에게 구원이 되는 겁니다.
이 평준화로 인해서
새 언약으로 인해서 말이죠

결국 새언약이란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이란
하나님의 거룩은 바로

인간이 흉내조차도 낼수 없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으심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이다 말이죠

네 맞습니다 바로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피 용서입니다
율법의 완성 다 이루었다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으로서
이방인은 주 앞에 나아올수가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예물을 가지고 옴으로써
이스라엘은 그 혜택을 누리는
이 약속을 중심으로 살도록 되어 있는데

또 그것을 가지고서 어떻게 하면 더 높아지느냐 라고
또 나누어요 글쎄

안 나누어 지는 것을 이방인이 보여줘도
창녀 세리가 먼저 천국가는 그 회개를 보여줘도
(포도원 주인에게 세금을 내는, 회개는 내는, 포도원 약속의 땅에 맞는
죄용서해주심에 감사함을 내는데
악한 농부는 자기 믿어준 행함의 댓가를 주장해서 또 평준화를 거부하고 첩경을 쌓는 겁니다
자기 의를 세울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런 천국을 달라고 바벨탑을 또 세워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또 구별짖기를 말이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끝까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나누겠다 라고 삥둘러가는
강퍅함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배불러서 그래요
막살면 안된다 라고 절대로 막살면 안된다 라고
이스라엘 망할 턱이 있나??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인데

이 완악한 수건을 안 벗기 때문에

동산 중앙에서 발가벗겨지는 채로
이방인들이 삥 둘러 쳐진 이방 나라 한 복판에서
이스라엘은 지옥 한 복판에서 주님의 나라가 어떻게 세워지는 가를
바벨론 한 복판에서 보여줬듯이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예수님의 참성전 곧 더러움에서 죄에서 거룩으로 이동 시키시는
하나님의 의
그를 상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그를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원하심에

기쁜소식으로 만드심 앞에
이방인들이 무릎 꿇고 나아오도록 하신 겁니다.

그 일에 아무리 유대인이 부정해도
그 일에 증인입니다

최전방의 당사자 사도바울이 그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무대장치 총 감독인
그 당사자가 사도바울 이라는 증인이였듯이 말이죠

이방인들이 주께로 나아 온다는 시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유대인들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증인이듯이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지 순례라고 전세계에서 와서 관광겸 경배겸 온다 말이죠
(BTS가 왜 전세계적으로 인기있는가?

평준화 때문입니다
기존의 노래들은 자꾸 점점점 치우쳐 지더라 말이죠
그런데 부모들도 좋아하는 가삿말에 허락을 하니까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노래를 배울려고 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이 평준화가 목말랐으면
비록 그림자 이지만
그 그림자 평준화, 그림자 평화에 마져도 경배할려고 할 판국이다 말이죠
실체가 오면 새언약이 오면 오죽 더 하겠습니까?
지금은 그 실상이 이미 왔어도 줘도 못 먹어요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 교회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죠
다시 첩경을 쌓고 다시 구분짖기를 하는 놈들이 되어버렸으니
도리어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더라 말이죠.
약탈과 깡패짖에 치를 떨어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봐도 몰라요
왜오지? 예수님의 긍휼을 보고 오는데

정작 그들은 그저 굴러들어온 돈 벌이로만 볼 뿐이다는 겁니다.
이용만 해 먹는 거죠
그런 사고방식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던 겁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구요

끝까지 완악한 수건을 안 벗는 겁니다
율법으로 여전히 갈라요

너는 사마리아 나는 예루살렘

엣날 가요 가삿말에 너는 뭐뭐 나는 뭐뭐
아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갔는데 다시 안 떠오르네요

아무튼 이건 아니지만 너는 여자 나는 남자 라는 구분이
천국에는 남자 여자도 없는데
무식하게 그것을 끝까지 나누어요 글쎄

무식한 사두개인은 토라 곧 모세오경으로만 나누었고

더 똑똑한 척한 더 무식한 바리새인은 전승까지 다 동원해서 일일히 구분짖고 하나 하나 잘개 잘개 다 나누는 겁니다.
그들이 진짜 무식하냐? 천재들입니다

천재들의 정치는 결국 구분짖기일 뿐입니다.

그러니 바리새파야 말로 예수님과 정면 충돌함으로 인해서
다 탈탈탈 털려야 하듯이
대표성으로 털리면 사두개인도 같이 털리는 셈이니까 말이죠

얼마나 저들 따나 해석 한다 말이죠
해석 자체가 하나 하나 나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안 나누어요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오라 라는 겁니다.

안식일 못 지켰다는 둥
왜 안식일 날만 골라서 병자를 고쳐서 안식일에 일 하느냐 라는 둥
율법 법 법 따지는데 있어서 하나 하나 나누는데 있어서

주님은 오히려 사랑으로써 안나누어 지는 도리어 너희들이 나누어서
버린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하나로 맹글어서 안나누어 지게 만들어 버리니까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심에 감사하는게 아니라

너 안식일 어겻다 라고 나누어 버리니

아무리 어미 닭이 병아리를 자기 품에 모을려고 해도
그렇게 못하도록 가로막더라 말이죠

(마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눅 13:34,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언제까지 그런 의미 없는
의문의 반복을 계속할래?

그런다고 나누어지지 않는데
왜 칼로 물을 배어서 나눌려고 하니

아이고 의미 없다

그래도 끝까지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다 말이죠
자기 얼굴에 광채나니까

그거 없어질까봐

아니 없어질 영광 왜 쓰니?
높아져야지만 무시 안 받고
높아져야지만 남을 정죄하고 구분 짖는

졸지에 거룩(구별짖기)을 펼칠수가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구별 짖기를 안해요
여인아 너를 돌삐 쳐죽일려고 한 율법을 쥔 자들이 어디로 갔니?
다 어디로 갔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즉 이 말은 모든 인간을 이미 물에 다 빠뜨려서
평준화 시키는 세례를 펼쳤다 라는 겁니다.

물 세례 바로 참선지자 계통의 세례요한처럼
이제는 그 노선에 따라서 이제는 불로 평준화 시키고
종말에는 모든 인간의 자기 신을
민족의 신이든
자기 개인이라는 자기를 위한 우상
자기자신이든

모조리 물로 불로 태웠듯이 평준화 시켰듯이
이제 아예 성령으로 세례 평준화
자기 신을 버리고

주님 앞에 나아오도록 하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이것이 종말 끝을 미리 앞당겨서 누리게 하는

종말의 영이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마지막 때

시간이 끝장나 버리는 성령의 시대가 되도록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겠다 라는 겁니다.

결국 이방인이 더더욱 주님 앞에 경배하러 온다는 겁니다.

더더욱 유대인을 시기케 만드시는

이 주님이 새언약이 있는데

율법을 쥐겠다는 것은
마치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원리처럼
자기 지혜에 자기가 속아넘어가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유대인으로 사탄의 회로 들통나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새 언약이 떳는데
어딜 헌 술과 헌 부대를 들이대냐 말이죠

오로지 이 십자가 라는 새언약으로만
모든 열방들이 주 앞에 무릎꿇고 입술로 주를 경배하는

이 다윗의 시편이 이루어 지는 겁니다.

이것을 오히려 유대인들이 안돼
이방인은 무조건 지옥가야만 하고
우리 유대인들은 무조건 천국가야 한다는
그 완악한 육체의 소욕에

주님은 성령의 소욕인 새언약을 끝까지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항복하는 자가 회개자입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고 쌓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가 버리셨으나 다시 살리시는 새언약 곧 십자가입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을 보고 주님께 이방인들이 나아오는 겁니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
열방의 하나님이시기에 말이죠

이것이 새 언약 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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