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불의한 십자가로 맺은 영원한 언약 (사 61, 8-1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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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8 불의한 십자가라는 영원한 언약 (사 61, 8-11)


피로 사신 교회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불의한 영원한 언약 (사 61, 8-11)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여호와의 신이 임한 인자 (사 61, 1- 7)
이사야 2017 2020. 10. 11. 09:5918-107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여호와의 신이 임한 선지자 (사 61, 1- 7)

(이사야 61: 8-11, 구약성경 1042 쪽,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새 252), 찬송가 265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새 516),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와서 마셔라)

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사 61:8, 새번역) 『"나 주는 공평을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한다. 나는 그들의 수고를 성실히 보상하여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사 61:9, 새번역) 『그들의 자손이 열방에 알려지며, 그들의 자손이 만민 가운데 알려질 것이다. 그들을 보는 사람마다, 그들이 나 주의 복을 받은 자손임을 인정할 것이다."』
(사 61:10, 새번역)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사 61:11, 새번역)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에 뿌려진 것을 움트게 하듯이, 주 하나님께서도 모든 나라 앞에서 의와 찬송을 샘 솟듯이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눅 4:18, 새번역)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 ㉤사 61:1; 2』

(마 11:5, 공동)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 ㉠이사 61:1.』
(눅 4:18, 공동)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 ㉠칠십인역 이사 61:1-2(58:6 참조).』
(벧전 2:9, 공동)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 ㉠신명 7:6, 10:15; 이사 43:20. ㉡출애 19:5-6; 이사 61:6.』

(사 61:1, 쉬운) 『<여호와의 구원> 주 여호와께서 내게 영을 주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마음이 상한 사람을 위로하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사 61:1, 현대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언자] 주 여호와의 기운이 나를 휘감아 돌았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어 예언자로 세우시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이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일으켜 주고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너희가 이제 풀려 나간다! 모든 옥문들이 열리게 된다.'고 알려 주라고 나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셨다.』
(사 61:4, 현대어) 『[새 예루살렘의 생활상] 이제는 이스라엘이 무너진 옛터에 도성을 재건하고 오랫동안 황폐하던 곳들을 다시 개발할 것이다. 돌무더기가 된 성읍들을 다시 새로 건설하고 대대로 무너져 있던 곳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사 61:8, 현대어) 『[정의와 진실의 도성이 되리라] 새 예루살렘은 옛날처럼 서로 강탈하며 탄압하는 도성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정의와 법을 사랑하고 강탈과 불법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어느 족속이든지 이곳으로 침입하고 강탈하면 내가 그들에게 그대로 갚아주겠다. 나는 내 백성과 언약을 맺고 언제까지나 그 언약을 지키며 그들을 보호하겠다.』
(사 61:10, 현대어) 『[시온의 감사 찬양] 우리 하나님 여호와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주께서 의복으로 몸을 감싸듯이 구원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고 외투로 몸을 덮듯이 주께서 승리로 우리를 휘감아 주십니다! 신랑이 화환으로 장식하고 신부가 폐물로 단장하며 기뻐하듯이 우리가 모두 기뻐하고 만족해합니다.』

(사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먼저 [공의]가 뭔가
[공평, 정의, 평화] 등등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심지어 법 도 들어가네요 정의의 법 이라고 
(사 61:8, 개역)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사 61:8, 새번역) 『"나 주는 공평을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한다. 나는 그들의 수고를 성실히 보상하여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사 61:8, 공동) 『나 야훼는 공평을 좋아하고 약탈과 부정을 싫어한다. 나는 그들에게 고생한 대가를 어김없이 갚아주며 영원한 계약을 그들과 맺으리라.』
(사 61:8, 쉬운)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도둑질과 모든 악한 짓을 미워한다. 그동안 내 백성이 받은 고통에 대하여 성실히 보상하겠다. 그리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겠다.”』
(사 61:8, 킹흠정) 『나 주는 공의를 사랑하며 번제 헌물에 쓰기 위해 강도질하는 것을 미워하노니 내가 진리 안에서 그들의 일을 지도하며 그들과 영존하는 언약을 세우리라.』
(사 61:8, 한글킹) 『이는 나 주가 정의를 사랑하고 내가 번제를 위해 강도질하는 것을 미워함이니, 내가 진리로 그들의 일을 인도하고 내가 그들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사 61:8, 현대인)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정의를 사랑하며 강탈과 부정을 미워한다. 내가 성실히 내 백성에게 보상할 것이며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을 것이다.』
(사 61:8, 현대어) 『[정의와 진실의 도성이 되리라] 새 예루살렘은 옛날처럼 서로 강탈하며 탄압하는 도성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정의와 법을 사랑하고 강탈과 불법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어느 족속이든지 이곳으로 침입하고 강탈하면 내가 그들에게 그대로 갚아주겠다. 나는 내 백성과 언약을 맺고 언제까지나 그 언약을 지키며 그들을 보호하겠다.』


공의가 뭔가를 알려면
반드시 차이가 나는
그 반대의 기능을 보면 차이를 알수가 있겠죠

맹 같은 구절에 있습니다. 맹 사투리, 어차피, 역시나, 매, 매번, 마찬가지로 아 안동이구나 어머니 말을 제가 따라한 셈이네요 ㅋㅋㅋ 마찬가지로 같은 구절에 있습니다

공의에 반대말 [불의] 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로 묶은 [불의와 강탈]로

이 [불의]를 각 번역에서는
한테 묶어서 [불의와 약탈] 로 번역했네요
[약탈과 부정, 도둑질과 모든 악한 짓, 번제 헌물에 쓰기 위한 강도질,
강탈과 부정, 강탈과 불법] 등등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럼 제가 제목을 잘못 적은 것 아닙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불의한 영원한 언약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 말이죠

왜 분명 정의와 공평이라고 공의라고 표현된 것을
당신은 방금 성경 구절에 그 반대되는 불의한 영원한 언약으로 표현했냐
지난 주 이사야 글에도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해 놓고서는
나쁜소식을 전하는 선지자 라고

왜 자꾸 반대로 이야기 하느냐 말이죠

그것은 아시다시피 인간의 구원, 인간의 믿음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말이죠
인간이 믿는 하나님은 가짜다 그 가짜를 깨드리기 위해서 말이죠
제가 깨뜨려요? 천만의 말씀 저도 깨뜨림 당해야할 입장일 뿐입니다.

성경 말씀이 그래요 그래
그러니 이것은 믿으라고 준게 아닙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들만 기록이 된 것이 성경말씀입니다.
말이 되면 인간들은 다 달려들어서 믿어요
그리고 믿음도 가능해요, 가능성으로 바꾸어 버려요.
가능성의 믿음을 추구해요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그 불가능성을 행함으로 땜빵을 할려고 한다 말이죠
오죽 안 믿겨졌으면 오죽 불가능했으면 땜빵하겠냐 말이죠
그 행함이 바로 인간의 믿음이다는 겁니다.
주체는 결국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주체가 된 적이 없어요
다른 인간이니까 말이죠 남 이다 타인이다 말이죠
전혀 다른 인물
그 어떤 인간과도 일치성이 단 하나도 없어요 단절 그 자체입니다.
진짜 주체이신 예수라는 인물이 나 라는 인간을
또한 인간의 믿음을 날려버리면서 다가오는 것이 영원한 약속이다는 겁니다.
믿음 되신 예수님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언약 약속 곧 말씀이다 말이죠

인간에게 읽혀짐 당하는 실천 당하는 말씀은 없어요
그 반대입니다 말씀이 운동력이 있어서 인간을 찔러 쪼개서 가르는 겁니다

인간은 자꾸 자신의 대상물로 삼을려고 해요
그것이 남편이 없는 여자의 독자적인 모습입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여성인데
오로지 남편의 섬김으로만 사는 여성인데
남자가 없으니까 자기가 자기를 단도리 해야 하니까
독자적으로 나서는데 있어서 음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인간의 믿음에게는 없는 것이 또 뭔고 하니

바로 자손, 후손 개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 아이를 낳고 자기가 키우고 자기가 그 아이를 성장 시킬려고 한다 말이죠
아브라함이 그래서 비웃었다 말이죠
그렇게 할 수 없는 나이 이다 라고
아내도 할머니 이고 죽은태 이다 라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떻게 아이를 후손을 키우냐 말이죠

그래서 후손 문제를 순풍 순풍 아이를 잘 놓을수 있는 젊은 여자를 통해서 낳더라 말이죠
그런데 이런 후손은 후손이 될 수가 없데요 글쎄
행함이지 믿음 곧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하나님의 의가 입혀진
믿음이 아니래요
믿음의 자손이 될 수가 없데요 글쎄

하갈 또한 아이를 후손을 그렇게 키웁니다
내 자식 고아 만들 수 없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말이죠

이 두 소욕 두 언약을 후손 곧 두 자녀로써 언약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4장)
인간 자체를 비유덩어리로 만드시는 겁니다.
당사자 본인들도 모르도록 되어 있어요
왜 자기가 천국가야하는지 이유 없어요 원인 없어요
왜 자기가 지옥 가야하는지 그 이유와 원인은 없다 말이죠

이거 괜히 적혀진 성경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리 옆에 노아 다니엘 욥이 있어도
이 세 명의 [믿음의 영웅]이 옆에 있어도
한 명도 아닌 세 명 씩이나 있어도
즉 한국교회가 그렇게 사기를 치는 용어

확실한 구원

얼마나 확실성이 없었으면
확정성이 없었으면
확실함을 강조했을까요?

구원 자체가 확실한데 또 확실하다를 붙이겠냐 말이죠
사회적으로 80년대에 이어서 90년대로 넘어가니
엄청나게 교인수가 늘어나니까
이제 서로 교인 빼앗기 경쟁이 벌어졌으니
조금더 자극적인 용어 
종교적인 용어
게임 용어가 필요했다 말이죠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시큰둥한 광고에 나오는 용어들 처럼
얼마나 자극적입니까? 욕망을 건들지 못하면 돈을 벌수 없어 굶어죽고 사업 망한다 말이죠

드라마도 막장드라마가 돈이 되거든요

학실히 구원 이라는 용어가 그런 식으로 사용 되는 거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 라고 했던 그 학실히 장로 말이죠

그런데 십자가라는 요나의 표적은 더 심합니다 더 자극적이다 말이죠
아이고 그것도 자극이냐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라고
성전을 헐래요 글쎄

너희의 믿음을 집결한 교회를 헐어라 
그렇게 되면 믿음 곧 후손이 날라가요
애굽이라는 국가가 날라간다는 것은
최종적인 장자가 죽는다는 말이거든요
그거 보호할려고 보디가드로 열 개가 넘는 우상이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지잖아요
만들어진 신 말이죠
최종적인 우상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 우상 10개의 보디가드를
열 가지 재앙으로 만드셔서 심판을 퍼붓는 겁니다.
니 꾀에 니가 한 번 속아보라 라꼬

장자가 죽으면 부활이 없는 겁니다.
후손이 죽는데 내가 지금 구원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이스라엘 국가를 날려버려요
즉 이 말은 후손을 열매를 믿음을 날려버려요 
손 떼라 라는 겁니다.

애굽의 장자의 죽음을 너희도 격어 보라 라는 겁니다.

누가 사는지
하나님의 독생자냐? 인간의 장자냐?
인간의 장자 인간의 믿음은 안 죽고 다시 사는 트릭을 쓰고
하나님의 독생자는 죽었다가 다시 불 붙는
물 뿌렸는데 제단에 불 붙는 
하나님의 의의 방식으로

둘 다 죽여서 누가 사는지 보자 라고
우와 이거 얼마나 도발적입니까

바알과 아세라는 안 죽는 방식인 십자가 방식이 아닌
행함으로 열심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고
더 크게 부르짖고 자기를 학대하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고
정성을 바친다 말이죠
그것이 바로 시드기야의 죽음과 같아요

아 그런데 정작 어린아이 여고냐(여호야긴)은 그 죽음 속에서도
그 포로 속에서도 살려주심으로 인해 잘 먹고 잘 살더라 말이죠

수치를 안 당하겠다 라는 자는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자는 수치를 가려주시는 자 덕분에 살더라 말이죠

그러니 오늘날 교회가 십자가를 외친다는 것은
교회 안 하겠다는 말과 같아요
수치 모욕 수모를 당하는 것과 같아요

교회는 이미 이 십자가에 의해서 교회 망했습니다 라고 전제를 깔고 하는 겁니다.
유대인에게 괜히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 아닌 거죠

이스라엘 전체를 어디서 굴러온 뼉따귀 돌삐 하나가 뜨인돌이 나타나서 시온의 산당을 다 부서뜨리고 짤라서 다 날려버린 겁니다.
우상이거든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로 만드신다 말이죠
(자 이렇게 시온에서 나온 뜨인돌 율법은 우리를 무조건 깨부수는
죄아래 가두어서 심판하는 기능을 합니다
뭘 해도 죄인이라는 것을
바로 우상 깨 부수기입니다

그렇게 잃어버린 자로 만들어서
예루살렘에서 나온 말씀으로
왜? 예루살렘인가? 거기서 죽어야만 하거든요
참성전의 기능이 뭡니까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는 기능아닙니까
그러니 예루살렘에서 반드시 죽으심을 당하는 겁니다.)

자 이렇게 가짜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을 싹 다 갈아엎어버렸거든요

하도 하도 우상과 하나님을 섞다 보니 뭐가 뭔지 우상인지 하나님인지 모르는 겁니다

사사기 보김 사건에서도 나오지만
항상 언약 곧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라는 의미에는 
항상 우상 개념이 같이 상대적인 의미에서 동반해서 나옵니다

주님은 언약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우상과의 차이로서 제시해요
그런데 인간은 항상 그 약속을 우상과 섞어버려요

그것이 구약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덮습니다.
마치 섞어버린 것처럼
그런다고 물과 기름이 섞여지겠냐 말이죠
아무리 구분이 안되도록 섞었다고 해도
주님은 일일이 갈라내시는 겁니다.

앗수르가 아무리 이스라엘 남자와 앗수르 여자와 결혼케 만들어서
혼혈정책을 아무리 펼쳐도
민족말살정책을 펼쳐도
더 이상 구분 못하도록 섞고 섞고 섞어도 말이죠

아이고 그것도 혼혈 정책이가 그것도 섞은 거가
차라리 내가 섞어주마 라고
더 타락
더 음란
더 우상숭배에 빠지도록 말이죠

더 이상 자신의 신앙에 손 대지 못하도록 손떼게 만들어 버립니다.

내가 봐도 내가 더러워 할 정도로 말이죠

그것도 더러운 거가 내가 더 똥을 발라줄게 라고 말이죠

율법이 가입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아예 손 못 대도록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영원한 언약은 바로
부부관계로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지난 주에도 언급했듯이
잠깐 에스겔 아내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여자의 기능도 함께 언급했죠
아내란 남자에 의해서 완성이 됩니다
오늘날의 뭐 페미니즘이 말하는 여자나 남자 개념이 아닙니다
또는 그 반대인 한남충과 같은 그들이 언급하는 남자 여자 개념이 아닌
성경 창세기에서 말하는 남녀 곧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남자가 여자에게 의미를 다 붙입니다.
하와라 생명이라 라고 말이죠

자 그렇듯 영원한 언약을 이런 부부관계로서 언급하면
여자를 곧 이스라엘을
남자가 책임 짐으로 인해서 여자는 비로소 여자가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자가 아무도 자신을 책임져 주는 남자가 없게 된다면
자기 숙제를 하기에 바쁘게 되죠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우는 전 남편의 율법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 숙제하는데 바빠요
그런다고 율법이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법은 책임져 주지 않고 추궁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남편은 책임을 대신 집니다

고로 여자는 비로소 남편의 사랑으로 인해 여자에서 아내로 
곧 사랑받는 자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자의 노력이나 숙제로 인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남편의 사랑으로만 되는 거다 말이죠

자 그럼 아내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여기서 중요합니다.,
앞의 에스겔서의 녹슨 가마솥 비유나
마태복음의 비유나
또 앞부분의 이사야 내용이나
다들 한결 같이

아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를 또 지켜요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할려고 안하기를 지켜요 글쎄
이것이야 말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겁니다
막살기를 지키는 자가 있어요
자 그렇게 되면 막살지 않은 자를 막 찾아내어서 정죄하기 바빠요
그래여 막살기를 한 자기가 의미가 있게 되니까 말이죠
이런 모든 것이 독자적인 노선으로써 자기숙제하기에 해당되는 겁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라는 말은
관계망 속에 들어감을 당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누가 대신 다 하더라 라는 겁니다.

누가 대신 다 해주는 외부인이 없으면
인간은 자기가 하게 나서게 됩니다.
막살기를 한다든지
막살지 않기를 한다든지
둘 다 누가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본인이 직접 하더라 말이죠

그것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아내는 아내 스스로 아내 됨을 만들수가 없어요

오로지 남편에 의해서만 아내는 여자에서 아내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자꾸 만든다 라고 하니까 기분나빠하시던데
여기서 중요한 것인 자꾸 여자가 남자를 만들려고 하는 속성 때문입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 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가 있듯이
자꾸 아내가 남자를 남편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아내가 되지 못하고
그저 아이 하나 더 키운다 라는 짐 하나를 더 얹진 꼴이다는 거죠
신세 한탄만 하는 겁니다.

그렇게 좋아보였던 장점이 결혼 후에는 단점으로
그 장점 때문에 결혼했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그 장점이
단점으로 변해서 그 단점으로 아니 그 장점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다 라는
어떤 프로그램을 스치면서 본 적이 있는데

결혼도 마치 자기 숙제인냥 남녀가 모두 그렇게 생각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남의 눈치를 의식해서라도 못살겠다 가 되는 거죠

아무튼 부부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아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남편에 의해서 시작된 부부관계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남편됨으로 인해서 완성이 되는 겁니다.,

바로 영원한 언약의 수행자는 바로 남편이다는 겁니다
아내가 아니다 라는 아내 배제입니다.
결국 이 말은 인간의 남편 인간의 아내 개념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을 수행하시는 하나님 본인이 남편으로써 아내인 이스라엘을 끝까지 책임지시겠다 라는 거죠
그 하나님만의 작업으로써 성사 되는 영원한 언약이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는 바로 이스라엘 곧 아내가 이 영원한 언약에서 손 떼게 만드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꾸 구원작업에
영원한 언약 작업에 자신이 자꾸 개입을 할려고 해요
배제인데 자꾸 할려고 해요

전남편에 속아서 말이죠
율법 말이죠

율법이 가입이 된 것은 죄 아래 가두기 위함입니다.
즉 전남편 율법은 영원한 언약이 있기 전에
잠깐의 한시적으로 주어진 언약입니다.

새언약이 주어지기 전에 옛언약이다는 거죠


마치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자손 말고
자기의 힘으로 낳은 자손을 가지고서
힘 떨어지기 100세 전에 낳은 자식으로써
후손 이라는 열매
부부관계
믿음의 관계
열국의 아부지 어무이 라는 약속을 이룰려고 하는 방식이다는 겁니다.

즉 여자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남편이 따로 있는데
그 남편을 마다하고 자기가 이해가 되고 자기가 납득이 되는 상식적인
누구나다 양심적으로 
율법은 이방인으로 치면 양심을 자꾸 찌르거든요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남편을 선택해서 결혼한 셈이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는 방식이다는 거죠
육체는 그렇게 해야 가능하고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니
법이 보장해주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냐 말이죠

법만 지키면 남편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수가 있다 라고 말이죠

자기의 뜻대로 다룰수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지 
누가 자신의 소유물이 되지 않는
내 편이 되어 주지 않는
남의 편이라고 해서 남편 이라는
남의 편이 되는 남자를 누가 원하겠냐 말이죠

그래서 그 유명한 노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한다 라고
아이고 애 하나 더 키운다 라고 노래하잖아요

전형적으로 율법을 남편으로 삼았다 라는 겁니다.

문주란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처음에 사랑할 때 그이는 씩씩한 남자였죠 
밤하늘에 별도 달도 따주마 미더운 약속을하더니 
이제는 달라졌어 그이는 나보고 다해 달래 
애기가 되어버린 내 사랑 당신 정말 미워 죽겠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결혼을 하고 난 후 그이는 애기가 돼 버렸어 
밥 달라 사랑달라 보채고 둘이서 놀기만 하재요 
할일은 해도 해도 많은데 자기만 쳐다보래 
웃어라 안아달라 조르는 당신 골치 아파 죽겠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검색하다가 슈가맨에서 나왔던 에피소드를 언급했더군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남자들이겠죠

개콘처럼 남성인권 보장회처럼 보장하라 보장하라 라는 식으로 ㅋㅋㅋ
문주란은 사과하라 사과하라 ㅋㅋㅋ
남자만 귀찮게 하냐 여자도 귀찮케 한다 사과하라 사과하라 

자 그렇게 여자가 자신의 뜻을 유감 없이 발휘할수 있는 그런 남자를 먼저 선택함으로써
자기가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그런 남자를 반겼다 라는 겁니다.

(사 61:8, 개역)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이스라엘이 선택한 남편 즉 분명 자신이 납득이 된 남편 율법은
이스라엘 자신들이 고수했던 그 율법은 도리어 이스라엘을
첫언약을 고수했다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을
그 고수한 율법으로 인해서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호되게 징벌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율법이 금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지 말라는 것을 듣는 순간 도리어 더 하고픈 충동에 놓여지게 되니까 말이죠

그렇게 옛남편 전남편인 율법은 아내에게 모든 책임을 추궁하게 되는 겁니다. 로마서 7장
그러니 아내의 모든 행위에 법이 따라 붙어서 잘못을 끄집어 내어서 그 죄에 대한 징벌과 저주를 퍼붓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율법을 남편으로 삼은 아내의 부부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다행히도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 아닙니다
즉 잠시 임시방편으로 잠깐 주어진 언약이였다는 거죠사라지는 언약이다는 겁니다.사라지는 영광도 얼마나 영광적이였으면 수건을 안 벗을려고해요
그래서 완악한 수건을 지금도 안 벗는 겁니다.

그러나 그림자 언약은 실상인 새언약이 오면 뒤로 물러나 사라져야 합니다
그림자가 어딜 감히 주인공 앞에서 깝죽대냐 말이죠
어떤 장로가 이 율법폐기론자를 이단으로 몰겠다 라고이단감별사 인냥 나서더라 말이죠
마치 이단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니가 이단이구나 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계속 꼬뜨리 잡더라 말이죠이단 중에 이단이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해요 자꾸

아니 어차피 사라질 언약이고 잠시 임시방편일꺼면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를 말지
왜 줬을까요?

왜 임시적으로 격어야 하는가
바로 마귀가 이 율법을 쥐고서 고소한다는 겁니다 송사 말이죠
사망아 너가 쏘는 곳이 어디냐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2, 새번역)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고전 15:53, 새번역)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고전 15:56, 새번역)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고전 15:57, 새번역)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고전 15:58, 새번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 ㉦그, '형제들'』

사실은 우리가 그런 마귀 짓을 율법을 쥐고서 해 왔다 라는 겁니다.

이제 반대로 당해 보라 말이죠
녹슨 가마 솥에 들어가 당해 보라 말이죠

자 그렇게 남편 교체 작업
하나님 교체 작업
그래서 새 남편인 영원한 언약을 통해서
더 이상 아내는 율법을 지켰다 라는 자기 의를 내세울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아내의 아내 됨은 아내 스스로가 아닌 오로지 새 남편에 의해서만 되는 겁니다
정작 전남편 율법은 아내를 아내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가정부 

노예로 삼았던 것을 알게 된 거죠

노예는 가정부는 그 행한 노동의 댓가만 받으면 끝납니다
어쩌면 아내는 아내가 되고픈게 아니라 가정부를 원했던 겁니다.
돈을 주니까 말이죠

피 땀 눈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댓가인 월급을 노렸던 겁니다.
그럴꺼 같으면 종을 삼지 왜 아내로 삼겠냐 말이죠

약속의 땅에 구지 살 필요가 없이 딴나라 딴민족으로 노예는 충분하거든요

지난 주에 내 사랑아 내 어여쁜 자야 나의 구원아 나의 찬송아
아 갑자기 또 춘향전 사랑가가 입에 맴도네요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아내가 남편이 주는 월급으로 산다면
더 이상 아내가 아닙니다
아내는 오로지 남편의 사랑만 먹고 삽니다.

남을 7번 용서하는 자는 종교꾼이지 이스라엘 아닙니다 신부 아닙니다 가정부입니다.
7에 70번의 무한대의 용서를 먹고 사는 자가 이스라엘
곧 나의 구원아 나의 찬송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황무지가 난무한 
죽음이 난무한 그 속에서 구원이라고 불러야
진짜 신부이고

슬픔이 난무한 그 속에서 나의 찬송아 라고 불러주셔야
진짜 찬송이다 라는 겁니다.

이런 판국에 어떻게 자기의 의를 아내가 내세울수가 있단 말입니까
아예 마음조차 못 먹도록 만드신다 말이죠

자유하는 여자이지
계집 종이 아니니까 말이죠 가정부가 아닙니다

자 이렇게 더 이상 자기 의를 내세울수 없는 입장이고
더 이상 언약을 지킬수가 없는 입장에서
어떻게 이 영원한 언약은 유지가 되는가
부부관계가 유지가 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이제 전의 율법때처럼 더 이상
행함이라는 지키냐 못 지키냐 라는 하라 하지 말라라는 행함에서 유지되는게 아니라

사랑 곧 믿음으로 인해서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도 아닌 아내의 믿음도 아닌
새남편의 믿음으로 인해서 말이죠

예수님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율법 때와 성령 즉 율법적이지 않은 영적으로 주시는 영적 때의
아내의 모습은 서로 다릅니다

율법 때의 아내는 완벽한 거룩함을 요구 당하는 겁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말이죠
즉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가능성을 요구 당하는 겁니다.

그런데 육체의 연약함이 크면 클수록 장애인은 더 심하거든요
늙은이와 고아 과부 나그네 또한 오죽하겠냐 말이죠

자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육체가 덜 피곤한 자가 당연히 서열이 높게 되는 겁니다.
그 완벽추구는 마치 공산당이 인민재판하듯이
자아비판을 서로 서로가 하면서 감시하게 되면
그게 무슨 정의요 공의요 평화 입니까?

자기 보다 못한 놈 찾기에 바쁘지
그저 노예 삼기 바빠요

그 속임수에 놀아나야 겠냐 말이죠

율법만 그런게 아니다 말이죠 양심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윤리 도덕이라는 것이 그래요

환경이 좋을수록 잘 지킬수가 있겠지만
몸이 아파봐요 장애인에게는 더 그러하다 말이죠

자 그러니 윤리와 도덕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더욱 재판이 많아지고 더더욱 법이 강화되면
질서가 잡히는게 아니라 불만이 쌓여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음녀가 선택한 국가 라는 남편이 그렇다 말이죠
음녀 곧 사단의 회인 유대인이 돈이 많을때는 국가 라는 짐승에 올라탈수 있지만
돈이 없을때는 바로 저런 율법의 추궁에 의해서 괴롭힘을 국가로부터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자기 혼자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죠
자기 보다 약한 자를 율법 어긴자를 찾아서 그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는 거죠

그러니 녹슨 가마솥 비유가 안 나오고 배기겠냐 말이죠
정작 너는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신원하지 않으면서
너는 왜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느냐

즉 신원하라 압제하지 말라가 아니라
도와 달라고 하나님을 찾는 그 하나님이 내가 아니다 라고
그 하나님을 교체하시겠다 라고 나오신다는 겁니다.

즉 교체하시겠다고 나온다는 자체가 이미 교체 된 거잖아요
그래서 그 새신랑에 맞게 새신부를 그 다음에 교체 하시는 겁니다.
저절로 바뀌어지는 거죠

이제 새남편은 의문의 증서인 율법을 십자가의 피로 완성해서 다 찢으심으로 인해서
더 이상 새신부에게 추궁할 것들을 남기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이제 아내는 과거의 가정부 노릇
주인님 방청소 하겠습니다
빨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화장실 청소를 못했군요 지금 하겠습니다

주여 제가 십의 일조를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세리처럼 삥뜯지 않았구요
그렇게 하게 해 주신 것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게 아니라
새남편이 새신랑은
주여 저에게 정직한 영이 없습니다,
빨래 안했습니다
아버지 재산 다 말아먹고 배고파서 꿀꿀이 죽이라도 얻어먹고자 왔습니다

자꾸 자꾸 나는 죽은자입니다
나는 잃어버림 당했습니다
주여 살려주세요
라고 나온다 말이죠

이게 무슨 신부냐 말이죠
차라리 또 쉬운 남편
이해가 되는 남편
술꾼에 폭력적인 남편이라고 해도 그 남편이 좋다 라고

다시 그 남편으로 가느냐
아니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남편
고멜로 만들어서 용서하는 남편
대신 매 맞는 남편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용서하는 남편

이 새 남편은 행함에서 선악에서는 이해가 안되고
믿음으로만
십자가의 피 로만
소통이 되는
단절로써만 소통이 되는 남편이다는 겁니다.

율법을 찢어버렸으니
더 이상 할게 없어요

자꾸 새신랑이 다 이룬 숙제만 보래요 글쎄

그 숙제가 뭔고하니
다 이루었도다

즉 십자가로 이 율법을 다 이루었다 라는 겁니다
어떻게 율법의 성향을 띠는 이 선악의 소원을 추구하는 몸을 육체를 율법과 함께 찢었다
십자가로 다 찢었음을 다 이루었다 라는 겁니다.

자 이제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다루지 않습니다
영원한 언약인 약속한 성령이 우리를 다룹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육체의 열매를 거스립니다

남들 보다 7배 더 온유할려는 그 탐욕을 성령은 거슬러서
7에 70번 온유함을 받도록 구스 여인 만드셔서 결혼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미리암이 육체의 열매가 반항을 하지요
다시 미리암도 문둥병 걸려서
모세의 온유함으로 인해 대신 간구함으로 인해 깨끗함을 입게 되는 성령의 열매가 주어지는 겁니다.

안 격도록 조심하자가 아니라
이것 조차도 모두다 성령이 우리를 다스리는 간수하시는 방식입니다.
그저 우리는 당하는 이 성령이 벌리시는 십자가의 사건을 당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당함으로써 율법이 찢어지듯이 우리의 육체도 함께 찢겼다 라는 사실에

휴 구원아 찬송아 라는 그 호명이 감사할 뿐인 겁니다.

안 불러주셨다면 내가 구원을 이루고자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고 또 음녀 노릇
또 전남편을 찾고
또 매를 버는 영원한 언약을 거부하는 육의 소욕대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랑치 않는 자는 내버려 두시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닌
가정부
계집종이지만

사랑하는 자는 자유하는 여자로 만드시고자
예수님 자신의 숙제로 다 이룬
십자가로 율법이라는 의문의 증서를 찢으셔서
더 이상 누가 너를 추궁하느냐 라고
너를 피로 값주고 샀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피로 사신 교회가
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인지
나의 구원아 인지
나의 찬송아 인지

도저히 구원이 없는 저 사막 저 황무지 저 죽음 한 복판에서
사랑을 보여주시고

도저히 찬송을 할수 없는 그 슬픔 한복판에서 그 잿더미로 다 타버리는 그 불속에서
나의 찬송아 라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한 몸으로써
불속에서 찬송을 부르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 불가능한 사랑을
우리는 졸지에 남편이 달라졌어요
남편이 새로 생겼어요 라고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
나의 죄를 용서하는 남편이 나타났다고 신나고 동네 방네 외치는
찬송하는 새노래꾼으로 삼아 주신 겁니다.

노래는 신나서 저절로 나오는 거지
노동이 아니니까 말이죠

돈 받고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금과 은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내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라는
새 일을 외치는 새노래꾼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몸의 행실을 죽입니다

(롬 8:13, 개역)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4, 개역)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몸의 행실이 뭡니까

또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저 세리와 같이 삥뜯는
매국노가 로마 앞잡이 일본 앞잡이 로써 그 세금 거두는 일이 몸의 행실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십의 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라는 이것이 몸의 행실
육체의 소욕
율법을 지킨 것은 반드시 죽을 것이지 영으로 사는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다윗이 율법 네배나 갚으라 가 육으로 사는 죽을 것이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영으로 사는 것은
예수님을 미리 장사치르고
변화산에 느닷없이 나타나 주여 별세해 주소서 라고
사가지 없는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막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이고(그렇다고 또 막살기를 지키는게 아니라
지키고 안지키고의 여부를 떠난 이미 죽은자로 간주해 버렸다 라는 겁니다 성령이 말이죠)
반면에 절대로 막살지 않겠다 라는 것이 몸의 행실로 사는 반드시 죽는 것이다 말이죠

남편이 서로 다르니까 말이죠

이제 영원한 언약은
이 십자가라는 불의한 하나님의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로
율법을 찢으심으로써 다 완성하셨다 라는 사실에
우리는 더 이상 책임 질 것이 없이
주님이 다 이루셨다 라는 사실에 기뻐 노래하는 자로써 새로 태어난 겁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는 고백은
새 아내만이 하는 고백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전남편이 있는
육체가 죽지 않은 자는
때려 죽어도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가정부는 남편과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거든요
그저 돈 만 바랄 뿐 편안함 편리 곧 우상만 바랄 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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