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어찌하여 네 옷이 붉으냐 (사 63, 1- 6).mp3
9.65MB


18-110 어찌하여 네 옷이 붉으냐? (사 63, 1- 6)


새 이름 [버리지 않는 도성] 이라 부르리라 (사 62, 1-12)
이사야 2017 2020. 10. 25. 09:33
18-109 새 이름 [버리지 않는 도성] 이라 부르리라 (사 62, 1-12)

(이사야 63: 1- 6, 구약성경 1043 쪽, 찬송가 195장 이 세상의 모든 죄를, 187장 너희 죄 흉악하나)

1,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3,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사 63:1, 새번역) 『에돔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붉게 물든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권세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이분은 누구신가? 그는 바로 나다.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의 권능을 가진 자다.』
(사 63:2, 새번역) 『어찌하여 네 옷이 붉으며, 어찌하여 포도주 틀을 밟는 사람의 옷과 같으냐?』
(사 63:3, 새번역) 『나는 혼자서 포도주 틀을 밟듯이 민족들을 짓밟았다. 민족들 가운데서 나를 도와 함께 일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분내어 민족들을 짓밟았고, 내가 격하여 그들을 짓밟았다.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 내 옷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사 63:4, 새번역) 『복수할 날이 다가왔고, 구원의 해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사 63:5, 새번역)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를 도와서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없었다. 나를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분노가 나를 강하게 하였고, 나 혼자서 승리를 쟁취하였다.』
(사 63:6, 새번역) 『내가 분노하여 민족들을 짓밟았으며, 내가 진노하여 그들이 취하여 비틀거리게 하였고, 그들의 피가 땅에 쏟아지게 하였다.』


(사 63:1, 쉬운) 『<여호와께서 백성을 심판하신다> 에돔에서 오시는 분,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시는 이분이 누구신가? 화려한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오시는 이분이 누구신가? “그는 나다. 나 주는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의 능력을 가진 자다.”』
(사 63:7, 쉬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내가 여호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리라. 여호와께서 하신 일로 여호와를 찬양하리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그러움을 보이셨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셨다.』
(사 63:15, 쉬운) 『<도움을 구하는 기도> 주여, 주님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하늘 집에서 굽어 살펴 주소서. 여호와의 뜨거운 사랑과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찌하여 여호와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서 감추십니까?』

(사 63:1, 현대어)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성문을 지키는 파수꾼이 먼 곳에서 들이닥치는 이를 보고 물었다. `저 에돔 땅에서 오는 이가 누구냐? 에돔의 수도 보스라에서 붉은 옷을 입고 오는 이가 누구냐? 화려한 옷을 입고 기운 차게 걸어오는 이가 누구냐?' 어느 사이에 그 사람이 보초에게 이르러 대답하였다. `내가 바로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이이다!'』
(사 63:7, 현대어) 『[이스라엘의 회개와 간구] 여호와여,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이제까지 주께서 베풀어 주신 일들을 내가 기억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온갖 일들을 내가 기억합니다. 오직 주님의 백성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일들을 내가 모두 기억합니다.』

소제목이 달린 번역서를 올려봤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이미 선언하시고
그 새 일이 먼저 떳기에
그 증상으로써 증상물들이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원인 없는 결과 로서 말이죠

결국 이 말은 처음부터 새 일에
하나님의 일에
인간은 배제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배제된 입장에서 참여하거나 개입 할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간따나 안되는 판국인 불가능성에
더더욱 안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인간은 이미 시간에 갇혀 있습니다
시공간이라는 역사에 말이죠

묵시적인 존재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시공간을 초월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 보니 그 배제와 결핍을 무엇으로 메꿀려고 하는고 하니
이 하나님의 일에
사람의 일로써 

사람의 일에 하나님도 메시아도 십자가도 다 끌여들여서
하나님의 일이다 라고 우기는 식으로 결핍을 채우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율법 지키기에 목숨 거는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를 목숨 걸며 지켜요

그러다 보니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인해 주를 삼키게 되는 겁니다.

아니 좋은 일 할려는 것이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꼴이 되니
왜 그러냐 왜 그런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느냐 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랑으로 창조한 세계를
인간이 선악의 법으로 채워버렸기에

사랑이 없는 겁니다

아니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를 지켰다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 사랑이 없다 라는 겁니다

성화론자와 대화를 해 보면 기가막혀서
성경에도 없는 논리를 말해요
이단 전문가들이 도리어 이단 짖을 해요 글쎄

뭐라고 하냐 하면

성령이 오시기 전 까지는 안 되는 것 맞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이후에는 이제는 가능해 졌다 라고 말이죠

결국 그 말은 성령이 오기 전 까지는
고장난 밧데리 이니까 아무리 충전해도 바로 방전이 되어버리니 고장났지만

새 밧데리 성령으로 인해 이제 구약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다 로 이야기 하더라 말이죠

그럼 산을 바다로 옮기고
죽은 자를 살릴수 있게 되어야 한다 말이죠

그것을 못 하니까
오히려 자기 검열을 해요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리고자 그 죽은 자를 고침 받아야 하는 조건들을 나열해요 글쎄

그냥 못한다 라고 하면 될 것을
이웃 사랑을 실천할려고 하니 과연 이웃 됨의 조건이 맞는지를 보겠다 라는 식이더라 말이죠

성화된 자기 사랑을 그렇게 드러내는 겁니다
결국 우상숭배자 인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원수이구요

그냥 못한다
그럼 뭘 해도 죄인이며
신앙 떨어지지 않도록 성화 해야 한다 라고
교인들을 닦달낼 필요가 없이

목사 본인 조차도
물에 빠진 죄인이다 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야 할 판국이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뭔가 자기 쪽에서 말씀을 지켰다 라는 구실이 조금이라도 있게 되면
범죄자가 아닌 졸지에 의인 행세를 자꾸 하게 되니

이 병을 무슨 수로 고치냐 말이죠

성화 했다 라는 것은 뭔가 하나님의 일을 내가 했다 라는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를 깔고 있는 자기 사랑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이것이 시드기야 였다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이스라엘은 내가 이스라엘 왕으로써 어떻게 해서든 지키겠다
이것이 거짓선지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반대로 여고냐는
또는 참선지자는 졸지에 그냥 포로 잡혀 가 버리는 겁니다
그동안 그렇게 외치는 배신자 였고
매국노 였고

때려죽어도 이스라엘 편에 서지 않는 자들이였다 말이죠

오히려 포로 잡혀 감이 불쌍히 여겨주심 안에 들어가게 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말이죠

하나님나라 독립 운동 펼치는 가룟유다와 함께 동행하시지 않고

마귀에게 포로 잡혀간 베드로와 함께 동행 하시더라 말이죠

가룟유다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살하는 순간 까지도
자기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를 절대로 포기 하지 않았다 말이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를 못 지키니까
그런 자신을 용서 못하겠다 라고 자기를 자기가 죽여요
이 얼마나 자기사랑의 중독 입니까
남이 심판해야지 왜 자기가 심판 하냐 말이죠
율법의 심판을 자기에게 실행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베드로는 마귀에게 포로 잡혀 버리니까
정작 아무것도 내세울 꺼리가 없이 탈탈탈 털려버리는 겁니다

에스겔서처럼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 편입니까?
저 바벨론 편 입니까?

어라 바벨론은 왜 저 매국노 참선지자 에스겔과 예레미야 등등 손을 안대요
시드기야는 그렇게 갈기 갈기 찢으면서
왜 손 안대냐 말이죠

도대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헷갈린다 말이죠

하나님의 일 곧 새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의 일 중심으로 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말이죠

특별한 여호와의 이름
곧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그 하나님을 못 보니까

엉뚱한 하나님 엉뚱한 메시아
에스겔 인자가 그 당시의 메시아 기능을 한다고 했듯이
거짓선지자 또한 그들의 엉뚱한 메시아 기능으로 인해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요? 저 소경입니다

저 따르지 마세요
저는 거짓선지자입니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가를 진 적 조차도 없습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 예수 믿지 말라고 말하는 판국에
왜 저를 따릅니까
나중에 저 핑계 대지 마시고요

자 이렇게
우리는 예?
예수 믿지 말라는 말이 할 소리냐 라굽쇼?
인간이 믿는다 라는 가능성을 펼친다 라는 자체가
엉뚱한 예수를 조작해서
또한 믿고픈 예수만 믿지
그것이 자기자신을 투사한 방식입니다
그러니 인간 쪽에서의 믿음 안 받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믿음을 받은 자만이
믿음은 선물이니까 말이죠
왜 자기가 믿음을 생산하고 만들어내고 양산하냐 말이죠
엉터리일 뿐인데

아 참 아까 말한 성화론자와의 대화 곧 성령 조차도
서로 달라요
그들은 악령 곧 광명한 천사를 성령이라고 하는 판국이다 말이죠
자기들이 욕하는 이단들 중에 바로 성령론을 그렇게 똑같이 이야기 하거든요
그런데 자신들은 예외 래요
자기들 조직은 안 그렇데요 ㅋㅋㅋㅋ

자 그렇듯
믿음에 대해서도 서로 말이 안통해요
믿는 것은 내가 믿어야지 라고 나와요
성화도 인간의 실천성에 달려 있다고 보는 판국인데
믿음 이라는 의미가 서로 같은 의미로 통할 리가 있겠냐 말이죠
믿음 조차도 자기 숙제로 보는 판국일테니 말이죠

어떤 장로가
제가 [믿음은 없는거다] 라고 하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설명을 해 보라 라고 하니
제가 이 양반이 논리와 합리 뭐 그런 답변을 요구하는 입장이라서
그거 내가 할 줄 몰라서 머뭇머뭇 거리다가
다른 바쁜 일로 인해 답변을 못하고 흐지브지 지나갔다 말이죠

아 그런데 무슨 비밀을 지 혼자만 알고 자기에게 안알려준다는 식으로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을 하던데

참나 믿음을 무슨 수로 설명을 하냐 말이죠
설명 자체가 불가능한데

마침 타이밍이 기가막히게 딱 떨어지게 되니까
저 혼자 지금에 와서 보니 아 이거구나 라고 했다 말이죠

믿음요? 지금에 와서야 제가 밝힙니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ㅋㅋㅋ

믿음요?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를 인정하는 것과
주님 혼자 다 했다 라는 것을 믿는 겁니다

나 아니요 주님 ㅋㅋㅋ

존재에서는 믿음이 안 나옵니다
믿음의 주 예수님이 안나오고 자기만 나옵니다
없는 자아가 있다고 자꾸 주장합니다
자기 의, 자기 믿음, 자기 사랑, 자기 거룩 그 허구를 양산하는 것이 존재이구요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 말이죠 심심하면 누가 크냐 라는 선악법만 따져요
번제와 제사 만 따진다 말이죠
사랑이 없기에 울리는 꽹과리 이니까 무기는 존재이거든요 달가닥 달가닥 나의 존재성을 알아달라고 말이죠

그러나 믿음은 기능에서만 나와요 무브 무브
움지기는 것은 사랑 뿐이거든요
질투의 사랑 말이죠

존재는 우상이지만 (선악, 죄의 소원)
기능은 성령이다 말이죠 다 찢어요 물에 다 빠자뿌린다 말이죠
종말적이다 말이죠 끝을 끌어와 미래를 미리 앞당겨요
죽음을 미리 앞당겨 버린다 말이죠
자아가 없는 그 뒤 그 이후를 끌어온다 말이죠 무화과 나무 저주 비유처럼

죽은 자를 살려 보세요 죽은 자를 못 살려내지
그러나 기능은 합니다 산 자의 하나님 이거든요 


그러니 인간은 오로지 자기만, 자기에게만 관심 밖에 없기에 믿음은 없는 거죠
주님이 다 알아서 숙제를 해 버리니
내 숙제는 없는 거죠

(롬 4:1, 개역)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개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역)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9, 개역)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숙제 없다 라는 말은 원인 없이 결과만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믿는다 라고 믿음을 원인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내 숙제가 있어야 한다고 외치는 겁니다

내 숙제가 없다 는 것이 믿음이라니깐요

내부문제가 아니라
외부 문제 아닙니까
그러니 선물이 믿음이거든요

선물 주시는 자에 의해 달려 있는 문제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왜 그날 따라 설명할려고 하니까 입이 안 떨어졌는지
소름이 돋았어요
차라리 잘 됐다
설명 해 봤자
설명도 안되는 원인 없는 결과이고
설명 해 본들 무슨 소리인줄 상대방도 못 알아먹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그 사람에게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의 숙제에 달린 문제이니까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하나님의 일이란
곧 믿음 이란
(심지어 믿음이 인물 이라는 것을 안알려주는 거짓선지자들 목사들이 너무 많아요
거의 백 프로 100% 이지요
즉 믿음은 타 인물 타자입니다
인간 속에는 없어요
그런데 역설 적이게도 죄인 속에 있어요
죄인으로 오신 본체는 하나님이시나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오신 죄인 이 믿음입니다
인물
인간으로 오신게 아닙니다
죄인으로 오셨다 말이죠 그 정도로 질투의 사랑으로 왔다는 겁니다
죄인으로 오셨다? 그게 믄 말이냐? 죄인과 같이 되셨다 라는 겁니다
율법을 다 이루기 위해서 말이죠
이웃사랑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약자보호법 이웃환대법 말이죠
끝까지 책임 지겠다 라고 말이죠
인간은 책임지는 자 없어요 첫아담 속에 속했기에
살려주는 자는 없어요
그저 자기 살려고 율법 지키는 겁니다. 좀비가 가정부가 자기숙제만 해요 글쎄

(롬 13:8, 새번역)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롬 13:9, 새번역)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 ㉠출 20:13-15; 17; 신 5:17-19; 21 ㉡레 19:18』
(롬 13:10, 새번역)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자 그러니 율법 지켰다 자기 숙제를 했다고 우기는 놈들은 자꾸 정죄 곧 전남편 노릇을 해요 마귀죠 독사의 자식이지요

그런데 8절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율법을 다 이룬 겁니다
즉 질투가 없는 인간의 하나님 사랑은 율법을 다 이룰수 없어요 그래놓고 율법 지킨냥 설쳐댑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 10절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누굽니까?
예수님이지요
인물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타인입니다
그것도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이웃으로써 사랑할 수 있을까요?

율법사는 이 선한사마리아인을 거부하고 있음을 전제로 깔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자 그렇게 되면 이 율법사는 강도로 변해서 예수님을 강도만난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말이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구요
날강도처럼 큰 계명 두 계명이 뭡니까 라고 묻는 것 자체가 날강도 아니냐 말이죠
성화론자들 날강도입니다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너희 조상과 같이 선지자를 죽이는 이 무한반복의 뫼비우스 띠에 걸려든 겁니다
무슨 수로 이 고리를 끊겠습니까? 의문의 반복인데

네 맞아요 숙제를 냅따 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님에게 맡겨버리는 겁니다
주여 죽어주시옵소서
한 쪽 강도는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숙제를 냅따 죽는 양반에게 부탁하고 있어요

다른 한 쪽 강도는 아니 자기 숙제를 자기가 해야지
죄도 우리가 달게 받아야지
왜 남에게 떠 넘기냐 라고 말도 안된다 라고 따지잖아요 죽는 판국에
선악의 숙제
죄의 소원을 여전히 풀려고 해요
풀수 없다니깐요

그냥 주님께 맡기라 말이죠
믿음에게 맡기면 되니
믿음 포기 하라는 겁니다.

결국 로마서 10장의 이웃은 예수님이고
남도 예수님입니다

이 이웃인 남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도리어 예수님으로부터 이웃 이라고 대상이 되어버렸고
남을 사랑하는 그 남 생판 모르는 남 심지어 원수 였었거든요

그 사랑을 받으니
우리의 이웃은 예수님 뿐이고
우리의 남은 바로 예수님이다는 겁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몸 과 같이 라고 단서를 왜 붙였을까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 말이죠
네 맞아요 이것을 예수님이 했다는 겁니다
이것을 내가 숙제 한 것 아무것도 없고
주님 혼자 숙제 다 하셨습니다 라고 믿는 것이
믿음 없다 라고 표현 한 겁니다
즉 인간에게는 믿음 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어요
다른 말로 상대적인 인간은 오로지 선악의 법 법 법
우상 밖에 없다 라는 것을 인정하라 라는 겁니다.)

자 다시 돌아와서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하나님의 일이란

(사 63:5, 개역)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사 63:5, 공동)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돕는 자가 없었다. 놀랍게도 내 편을 드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팔밖에 믿을 것이 없었고 나의 분노만이 나를 밀어주었다.』
(사 63:5, 현대어)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도와주는 자가 없고 나를 붙들어 주는 이가 놀랍게도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일을 하고 내 분노의 힘으로 이 일을 단행하였다.』

(사 63:5, 현대인) 『내가 보니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아무도 없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분노하여 혼자 심판을 단행하였으니』

분노 진노 심판 격노 만이 이 일을 단행했다 라고
이 분노, 다른 번역에서는 이 심판, 이 격노, 진노 라고 나오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 곧 앞의 마태복음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두 계명 큰 계명의 핵심 
뿌리
근원이 바로 

네 맞아요 질투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진노의 사랑
시기의 사랑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이다는 겁니다.

이 특별함이 담긴 이름이 바로 여호와 라는 이름 이다는 겁니다
신약에서는 바로 임마누엘 곧 예수님 이고요

임마누엘 곧 누구 누구의 아들 이라는
인자 라는 새 성전 만이

너희와 함께
곧 동행하는 움직이는 성전이다는 겁니다

왜? 다른 성전은 녹이 쓴 가마솥이라서

더러움 에서 거룩으로 이동이 안 된다는 겁니다.

참성전은 그 꼴 못 보겠다 라고
모든 죄를 십자가에 다 못 박아 버리시겠다 라고

인자로써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써
동행으로써

하나님 그 자체로써 오시는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자는 누구 누구의 아들은
모든 허물을 담은 박스
증거궤
언약의 상자가 졸지에 인물
그것도 다들 외면하는 죄인
다들 무시하는 어린아이 누구 누구의 아들 이니까 말이죠

그 모습으로 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도 특별하게 보일 리가 없지요
여호와의 이름이
안 특별해요

이 말은 따로 특별함의 기준을 이미 인간이 가지고 있거든요
그거 깨뜨리시고자

일부어 나약한 모습으로 와야
미끼를 덮썩 물꺼 아니겠습니까?
젖먹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줄 모르고 말이죠

아무리 젖먹이를 보세요 강한가? 특별함이 있는가?
없어요

이미 인간에게는 따로 강함의 기준이 따로 설정이 되어 있으니

하나도 귀하지 않는 겁니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더라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주님 홀로 직접 자기가 자신을 도와서 일을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인간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 하는 겁니다

인간이 하겠다 라고 나서는 하나님의 일이란 질투의 사랑이 없어요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이 없다 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죽음으로부터 종노릇하고 있는 판국 이니까 말이죠

그러나 자기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 라는 것은
곧 사람의 일 즉 사탄 이라는 겁니다

음란이란 바로 이런 사랑을 말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가 바로 제사장 딸 아닙니까
사단의 회 인 이스라엘이 왜 음녀 노릇을 할까요
자기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 라는 이 율법을 지키겠다는
그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겠다 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의 자기 사랑으로만 입혀주시는 그 사랑으로만 새신부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황무지에서 생명수로
버림받음 속에서 버리지 않는 도성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즉 그 이전에는 버렸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나오는 진노입니다
질투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다른 남편에게 빠져 있는 아내 이스라엘
아내가 아닌 계집종 노릇을 가정부 파출부 노릇을 하고 있는 아내를
질투의 사랑이 아니면 그 음란 곧 우상숭배에서 빼낼수가 없다 말이죠

음란이란 한 번 맛 보면 해어나올수 없는 쾌락이다 말이죠

모든 남자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듯이
모든 여자들 또한 오홀라(더러운 사마리아), 오홀리바(더 더러운 이스라엘 남유다)처럼
젊고 힘세고 스트롱맨 권력을 쥔 남자에게 환장을 하는

심지어 제가 아무것도 모를때에 동땡교회 김덕땡 목사의 철야기도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 목사 말이 젊은 새댁이 자꾸 우는데 있어서
왜그런가 싶어 물어보니 말도 안하고 그저 우는데
아 이 목사가 소위 말하는 영빨이 있어서 보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그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이야기 하더라 말이죠

젊은 새댁이 마음 속에 음란을 다른 남자로 보통 하는데
세상에 예수님에 대해서 음욕을 품었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남자만 그렇게 심할 줄 알았는데
제가 여자가 아니다 보니 여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든요

맨날 여자는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잔소리가 얼마나 심한지
그런데 정작 법을 그렇게 지키라고 잔소리하는 그 당사자 또한 역시나 안된다 라는 것

여자도 마찬가지이다는 것을
얼마나 남편이 사랑을 안해줬으면 말이죠
사랑에 눈 뜨게 해 준 머슴아가 얼마나 내평개쳤으면
아내가 아닌 가정부 노릇으로 빠지게 되는
책임져줄 남자가 없으니 말이죠

이게 알고보면 흔해요
교회 여자들을 그래서 제가 싫어하는데
남편이 무심하다 보니 여자들이 다 목사에 대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을 너무 흔하게 봤거든요
남편 말은 개코로 듣는둥 마는둥 개무시 해 버리지만
목사 말은 목숨 걸고 지켜요 글쎄 ㅋㅋㅋ

카톨릭은 어린 남자 아이를 추행하는 것이 교회 체제가 그러하다 보니 나오는 증상이고
이단들은 젊은 여자
그리고 개신교 기존의 교단들은 유부녀를 건드려요 자꾸 
밧세바를 취해서 우리야 장군을 죽이고자 말이죠

다윗 핑계 대면서 말이죠

이것이 구조 
곧 조직 체제 자체, 교회 제도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안 바뀌어 집니다

오죽하면 빤스목사 라는 놈이 나오겠냐 말이죠
그냥 나온게 아니거든요
증상물이다 라는 겁니다

한쪽으로는 빨갱이 물러가라 라는 독립투사운동이고
그런 운동을 하는 놈이 빤스목사 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국 교회 전체가 바로 이런 놈이다는 거죠
그러니 박땡순 시장도 그런 운동가 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무슨 운동 한다는 것 자체가
여자들이 음란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 (멋들어진 구원운동 이라는 음란성)
남편들은 목사에게 아내 안 빼앗기고자 노력해야 할 판국이다는 겁니다
두 살림 차린 목사들 많거든요
사모는 알아도 먹고 살기 위해서 눈 감아요
냄새만 맡아도 알거든요 여자들의 직감을 못 피해요

이사야 사칠8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그렇다고 남편이 뭐 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지만
남편도 유혹 곧 음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판국에 말이죠
자기 의를 쌓는데 미쳤거든요

베드로 보세요 남들은 다 버려도 저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 라고
촛불 운동 끝까지 하겠다 라고 ㅋㅋㅋ

바로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나서는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는 구나 라고 욕 얻어 먹어야 할 사랑이다는 거죠

왜? 바로 이런 사탄에 대한 질투가 없으니까 말이죠
사탄이 하나님으로 둔갑을 했으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믿지
누가 자기가 사탄의 일을 한다고 여기겠습니까
알면 안하지
모른다 말이죠

그 정도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겁니다
곧 사랑 즉 질투의 사랑이 없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진노 저주 심판 이라는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다른말로 거룩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
곧 이사야 25팔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간극을 벌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
거룩 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거룩을 입히시고자
거룩을 입히지 않는 내버려두는 자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음란한 자들을 말이죠
바로 애굽입니다

그러면 이 애굽을 피해 가는게 아니라
애굽을 통과 하시는 겁니다

통과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 이라는 동행이 아니고서는 통과 못한다 말이죠
음란을 유혹을 무슨 수로 인간이 이길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너희는 못하나 나는 한다 라고 이 애굽과의 차이를 벌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질투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그럼 거룩은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거룩이나
바리새인이 말하는 율법 지키기 큰 계명 두 계명 지키는 것이 거룩입니까

오히려 그런 것에 대한 진노를 퍼붓는 것이 거룩이다 말이죠
에스겔 서 녹슨 가마솥 비유에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서 공격을 하고자 할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로
도리어 진노를 받아야 할 짖으로써 규정이 되는 겁니다

거봐 성전에 모이니까 내가 진노를 퍼붓겠다 라고 말이죠

이 특이성이 바로 여호와 라는 이름이다는 겁니다

이 진노가 바로 질투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인간은 사랑해 달라고
자기의 사랑을 포기 못한채로 구원해 달라고
뭐 할까요?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까요 라고 하지만

바로 그 따위 질문 자체가 매를 버는
진노의 심판을 당하는 모습이다는 겁니다

뭐 지켰다고? 과연 지킨 것 맞을까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이다는 거죠

얼마나 엉터리 가짜 하나님을 믿었으면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고
이스라엘 선생이라는 지도자, 치리자 가 저런 질문을 하겠냐 말이죠

(눅 18:18, 개역)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8, 쉬운) 『<한 부자의 질문> 어떤 지도자가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눅 18:18, 킹흠정) 『어떤 치리자가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매』
(눅 18:18, 현대어) 『[부자 청년;마19:16-26,막10:17-27] 한번은 유대 지도자 한 사람이 예수께 이런 질문을 가지고 왔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 엉터리 하나님을 깨뜨리러 왔다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이 달라졌어요 라고 말이죠

가룟유다와 나머지 제자들 시선에서 예수님은 자꾸 저 하나님의 적 로마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자꾸 교회 사람
성전사람
이스라엘과 자꾸 싸우시냐 말이죠

아이고 예수님 바리새인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아이고 우리가 잘못했군요 라고 인정 할 줄 알았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은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2, 새번역)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마 15:12, 공동) 『그 때에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마 15:12, 쉬운)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감정이 상한 것을 아십니까?”』
(마 15:12, 킹흠정) 『그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실족한 것을 아시나이까? 하매』
(마 15:12, 한글킹) 『그때에 제자들이 와서 주께 말씀드리기를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듣고 실족한 것을 아시나이까?"라고 하니』
(마 15:12, 현대인)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주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화가 난 것을 아십니까?' 하고 묻자』
(마 15:12, 현대어) 『그때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지금 하신 말씀이 바리새파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였나 봅니다.'』

이 말은 제자들 역시나 바리새인처럼 예수님 말이 짜증나고 화나는 말이다 라고
자기들 조차도 제자들 조차도 화나고 짜증난다 라는 겁니다

바로 앞의 글 마태복음에서도 언급했던 장로의 유전 문제로 충돌이 된 사건에서 말이죠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왜 손 안씻고 먹냐 라고

(마 15:11, 개역)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여기에 눈치 없는 베드로는 더 자세히 비유 비밀을 설명해 달래요 글쎄
다들 짜증내고 화내고 있는 판국에 배신자 노릇을 해요 글쎄

어디서 많이 들은 노래 제목인데 눈치 없는 난 ㅋㅋㅋㅋ
저 저 배 배 배신자가 따로 없어요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5:14, 개역)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마 15:15, 개역)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마 15:1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마 15:17, 개역)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마 15:18, 개역)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 15:19, 개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 15:20, 개역)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결국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살인
악한 생각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증거
훼방 밖에 없어요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더더 말이죠
왜? 사랑이 없기에 울리는 꽹과리 이니까 말이죠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라고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 말이죠

사랑이 없는데
발이 없는데
그 허구와 허상 곧 우상이
먹혀든다면
그거 엉터리 하나님 아니냐
가짜 사랑 아니냐 라고

질투의 사랑을 나타내시겠다 라고
적군 로마가 아닌
이스라엘을 적으로 삼아서 공격하시는 겁니다

왜? 오홀리바가 사마리아가 음란하다고 욕하면서
자기들은 더 더 더 음란하기 때문에 말이죠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보고 있으니까

질투의 하나님은 정작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바벨론을 공격하시는게 아니라
그런 하나님인 줄 알고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기도를
오히려 기도 한다고 심판을 퍼붓는 것으
도대체 누구 편이냐 말이죠

하나님은 누구 편도 아닌 하나님 자신 편만 드시는 겁니다
바벨론은 바로 그런 이유로 동원이 된 겁니다
이스라엘에게 진노를 퍼붓기 위해

왜? 진노가 바로 특이성 이거든요
어머니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 라고
그 특이성 특별함을
전능자 라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혔다 라고 나오미 기쁜자라 하지 말아라
[마라]라 해라

오빠 라고 불러다오 노홍철과 장미여관
마라 라고 불러다오 나오미와 아이돌(며느리 룻)
전능자께서 나를 괴롭혔다 라는 겁니다

왜? 질투의 사랑이 진짜 하나님만이 펼치시니까 말이죠

그 죽었던 자가
하나님 곧 여호와 전능자가 괴롭혔던 자가 아들을 낳은 겁니다
후사 곧 부활이 있더라 말이죠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살아 있으니 질투를 하니까 말이죠

이 진노 속에서의 구원이니까 말이죠

다시는 황무지라 부르지 않겠노라 쁄라 라
다시는 마라라 부르지 않겠노라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라는 이름을 주겠다 라는 겁니다
왜 너는 나의 기쁨이니까 헵시바 이니까

‘헵시바’는 ‘버림받은 자’를 뜻하는 '아주바'(Azubah)와 ‘쁄라’는 ‘황무지’를 뜻하는 '셰마마'(Shemamah)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말이죠
즉 상대적인 너의 옛날 이름은 미움이다 기쁨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미움덩어리 버림받은 자 였다는 겁니다

그 잃어버린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자에게먄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아니 왜?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희년이냐 말이죠?
그럼 다른 사람들은? 고아 아닌 자
과부 아닌 자
나그네 아닌 자는 왜 안되냐 말이죠

바로 여기서 질투의 사랑이 저들의 하나님 사랑과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인간의 사랑은 죽은 자를 살리질 못할 뿐더라
율법 지키는 것이 가난한 자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줄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왜? 질투가 없으니까
왜 여러분은 가난합니까 제가 그 가난이 미워서 해결해 버리겠습니다 라고 나오는 자 없어요
왜?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고 있으니
율법 지켜 본들 자기 사랑
우상사랑이라는 종노릇이니까 말이죠

그럼 나는 뭐 먹고 사느냐 라고 근심하고 등돌리고 돌아서 가는 겁니다
다시는 예수님에게 안 올겁니다 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것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되니까
이 하나님의 질투의 거룩이 덮쳐지지 않으니까 말이죠

엉터리 하나님 곧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산 자의 하나님을 믿는 척 했는 것이 들통나 버렸으니 말이죠

그냥 처음부터 나는 믿음 없습니다 라고
제가 믿는 하나님은 늘 엉터리였습니다 라고
나오면 될 것을 말이죠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여전히 자기 숙제를 들이내민다 라는 것은
큰 계명 두 계명을 지켰다 라고 들이내미는 것은
질투의 사랑이 없이
그냥 사랑하겠다 라고 나오는 죽은 자의 하나님 곧 우상이다는 거죠

그 질투의 사랑
내가 직접 하겠다 라고
누가 돕겠냐
나를 도울 자 있겠냐
없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직접 홀로 이루시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베드로가 안 됩니다 라고 해도
선생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그거 가짜 사랑입니다
진짜 사랑은 질투입니다
땍지 사탄아 물러가라
어딜 감히 속일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너를 너가 또 속이고 있구나

진짜 사랑은
십자가 곧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저주 이다는 겁니다
질투 가 들어간 사랑 입니다

이것이 거룩이니까 말이죠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이니까 말이죠
일곱이 그런 의미입니다
일곱 교회 라면
이 심판 속에서 구원 받은자 이다는 겁니다

물론 상대적인 가짜 교회 일곱교회 또한 대조시켜서 나열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간 쪽에서의 숙제를 요구하는 식이며
그 숙제를 했다고 나오는 식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일곱교회는
죽은 자 같으나 산 자 인 모습으로써

사람들이 바라는 특별함이 아닌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 당한 찔림과 질고
이런 것들이 졸지에 특별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양탈무리가 말하는 거룩이 아니라 그건 가짜이고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은 바로 반대로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하다 라는 식으로
정반대의 모습

곧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서
허물이 드러나고 그 허물이 에스겔처럼
암몬과 모압으로부터 공격받는
거봐 특별함은커녕 우리 보다 더 더럽네 라고
미끼를 덮석 무는 식으로
그 허물이 공격대상이 되겠끔 하도록 하시는데
그 허물이 바로 이스라엘의 특별함 이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여호와 이름 곧 특별한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바로 질투의 하나님을 말하기 위해서
허물로써 드러났는데
그 허물을 보고 달려드는 이방인들을 오냐 잘 걸렸다 라고 심판 하시는 것이 질투 라는 사랑이다는 겁니다

오히려 정반대가 된 적이 있었죠
녹쓴 가마솥 비유에서 말이죠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자들로부터 공격받음에 있어서
우상숭배 라는 허물을 공격해 달라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오히려 너희가 더 더 더 우상숭배자 라고 말이죠

언제든지 팔을 어긋맞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거룩으로 하나님의 의로 입힌 이 이스라엘을 포도 알갱이 하나 하나로 여겨서
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서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거룩 입히심의 출현이다 말이죠
이와 반대로 상대적인 애굽은 없다 라고 했잖아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이스라엘의 출현과 함께
비거룩한 나라도 출현해야 하듯이 말이죠

에서는 미워했고
야곱은 사랑했다 처럼 한 세트를 구성하는 겁니다

그러니 형 에서가 먼저 출현했을때에
동생 야곱은 없었다 말이죠 아무리 쌍둥이 라고 해도 말이죠

어라 그런데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서 그때부터 야곱이 발생한 겁니다
없었던 자가 졸지에 생겼다 말이죠

마찬가지로 애굽이 먼저 있어야 했고 이스라엘은 없었다 말이죠
언제 이스라엘에 태어나느냐
바로 10가지 재앙을 퍼붓는
질투를 펼치실때에
그 질투의 사랑으로 인해서 없던 이스라엘이 발생 하는 겁니다

마치 애굽을 10가지 재앙으로 치니까
홈이 페이고 그 홈 페인 그 진노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에 발생하듯이 말이죠

이것이 거룩한 민족이다 말이죠
거룩이란 진노 속에서 나왔거든요

그카이 세례요한처럼 모든 참 선지자는 자꾸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다시 라는 식으로
물 속에 빠뜨려서 평평하게 불도져로 밀어서
그 죽음을 찢고 나온 거룩만이 이스라엘이다 라고 새로 출발하는 겁니다

알고보니 그 진노 속에서 어린양의 피가 발림 당하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출발입니다

마치 베드로를 요나를 물속에 빠뜨려 죽여서
그 죽음 속에서 생명을 만나는 겁니다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비록 없을 지라도 말이죠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요 부활 이다는 말은
우리는 안 길이요 안생명이요 안진리요 안부활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생명을 만날려면 안생명 이라는 죽음 속에 놓여져야 한다는 거죠

그 심판 속에 아뿔사 어린양의 죽으심 피 흘리심이
내 죽음 보다 더 심각하게 있는 겁니다
내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드는 하나님의 죽음이다는 거죠

이게 거룩입니다
이 거룩을 바르겠다 라는 겁니다

저들 애굽이 없는 거룩을
심지어 애굽이 보기에 이스라엘은 노예요
고아요 과부요 나그네일 뿐인
죄인의 무리
범죄자의 무리
히브리 곧 노예 잡족
족보도 없는 놈들이다 말이죠

즉 상대적으로 자신들은 의인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졸지에 팔이 어긋맞게 되어버렸다 말이죠
최강의 부자 나라가
졸지에 하루 아침에 거지나라
아니 아예 쫄딱 망한 나라가 된 거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펼쳐진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가 되었고요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특이성이 아닙니다
특이성은 이 질투의 사랑인 어린양의 피 만이
하나님의 거룩이다 말이죠

이 거룩은 인간이 해석할 길이 없어요
즉 인간의 숙제가 안 먹혀든다는 겁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은
질투의 하나님이 거룩한 나라고 맹글겠다

어떻게
다시는 버림받은 도성 이라 부르지 않겠노라 라고 이름을
새 이름으로 갈아서 말이죠

왜? 버림받은 자였거든요
미움 덩어리 였다 말이죠

그런데 헵시바야 나의 기쁨아
아니 미움이 변하여 기쁨이 됐다는 겁니다

황무지 땅이 졸지에 결혼한 땅 쁄라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시록 할때에 살펴봤듯이
포도 농부의 기쁨은 이 포도 알갱이를 포도틀에 넣어서 짜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도 알갱이 하나 하나로써
그 포도알을 하나 하나 발로 터트리는 이 진노가 바로 질투의 사랑으로써
거룩을 표출하시는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옷이 붉게 변하지 않겠냐 말이죠

우리는 뭘 해도 음란한 자일 뿐입니다
저 애굽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니냐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도알갱이를 짖밟아 터트려서
진노를 질투를 퍼부으심으로 인해
세상에서 벗어날길이 없는 우리 음란한 자를
이 음녀의 딸인 음녀를

황무지를 쁄라로
이 음탕한 고멜과 같은 우리와 결혼 하시겠다 라고
음란성을 우리와 함께 터트리심으로 인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시키고자 어린양의 피를
먹보다 더 검은 죄 위에
모든 허물을 덮는 십자가의 피로 덮어버리십니다

아무리 너희 죄가 붉을 지라고 말이죠

오로지 이것은 주님의 홀로
아무런 도움없이 직접 홀로 이루신
질투의 사랑
죽기까지 복종 하신 어린양의 피 덕뿐에 거룩한 나라 된 겁니다

맏이가 아니라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이 아니라
탕자를 통해서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써

희년 곧 복음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주님 홀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